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93
192화
한숨을 내쉰 라세흠은 손을 탁탁 터는 고상미 쪽으로 다가갔다.
“쯧. 몸도 안 풀리네.”
“그러게 말이다.”
고상미의 불만 섞인 말에 라세흠도 살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이것밖에 없지?”
분명히 이런 주요 시설엔 인부나 무장 병력이 더 있을 만한데, 생각보다 허접한 놈들뿐이었다.
라세흠은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빨리 이 작전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살폈다.
혹시 이주혁이 필요한 정보가 있을까 싶어 서류 같은 게 있는지 확인하던 중.
타닷.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컨테이너 바깥인 것 같은데, 최소 열 명은 넘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상미도 그걸 느꼈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놈들이었으면 좋겠네.”
저 멀리서 남자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이 안에 있다!
-무조건 잡아!
씨익.
미소를 지은 고상미가 허리띠를 풀어 손에 감으며 말했다.
“어떻게, 반 나눠 줄까?”
“그러자고. 나 혼자 놀고 있긴 뭐 하니까.”
팍!
무기를 든 남자들이 벽에 쳐진 비닐을 걷으며 나타났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인부들을 보고 소리쳤다.
“저 새끼들이다!”
저벅.
그때,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다른 놈들에 비해 꽤 강한 느낌이었기에, 라세흠과 고상미는 눈을 빛냈다.
‘저 새끼는 내 거다.’
‘그나마 재밌겠네.’
남자는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두 사람이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작업실을 둘러봤다.
“이야……. 이거 얼마나 건질 수 있으려나.”
바닥에 흩뿌려진 마약을 보던 남자가 이마를 턱 짚었다.
“X됐구만. 서 사장이랑 삼합회가 알면…….”
“삼합회에서 넘겨준 것들이냐?”
“그래. 판매 수익을 넘겨줘야 계속 거래를 하는데, X발. 이 지랄이 나면 무조건 적자지.”
“서 사장은 서길석인가 그 양반이고?”
“그래. 그 독한 새…….”
자연스럽게 대답하던 남자가 멈칫했다.
“이런 X발 새끼가. 뭐 하자는 거야?”
“뭘 하자는 건 아니고, 네가 병신같이 다 말해 주길래 물어보던 거지.”
말문이 막힌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인상을 구기며 손짓했다.
“죽여.”
그 말과 동시에,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이들이 달려들었다.
“으아아!”
“이런 조무래기들은 건너뛰기 없나?”
“그러게.”
그리 중얼거린 라세흠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고상미도 그 뒤를 따라 쇄도했다.
탓-!
* * *
“끄아아아악-!”
우드득!
고상미의 부하, 대머리가 적 하나를 꽉 껴안으며 투덜댔다.
“젠장……. 내가 누님과 함께했어야 하는데…….”
“염병 그만 떨고 할 일이나 해.”
“크아아!”
대머리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진 남자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 주변엔 이미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진 남자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적들은 계속 이쪽을 향해 몰려왔다.
배상훈은 그걸 보며 컨베이어 위에 걸터앉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원래였으면 여기서 대판 싸우는 게 아니라 몰래 접근해 제압하는 식으로 진행했겠지만, 같은 조로 배정된 대머리가 갑자기 화를 풀어야겠다며 적들의 면전에 나섰다.
그 탓에 어디론가 다급히 향하던 인원들이 이쪽으로 달려왔고, 대머리는 잘 됐다는 듯이 혼자 싸우기 시작했다.
“X발! 누니임-!”
배상훈은 괴성을 지르며 칼을 든 남자들에게 뛰어드는 대머리를 여유롭게 구경하며 생각했다.
‘쯧쯧. 미친놈.’
대머리는 맨몸으로 칼날 사이를 이리저리 파고들며 한 명씩 관절을 부수거나 바닥에 처박았다.
또라이긴 해도 확실히 실력은 있는 놈이었다.
혼자 나서서 싸워 주는 덕에 몰래 노는 거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싸우던 대머리는 구경만 하는 배상훈을 발견하고 외쳤다.
“거기서 뭐하는 거냐!”
“구경하는데.”
“이런 양아치 같은……!”
발끈하던 대머리는 날아오는 도끼날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몸을 굴렸다.
배상훈은 낄낄대며 그걸 쳐다보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어, 왔냐?”
“그래.”
걸어오는 이주혁을 발견한 배상훈은 피식 웃으며 인사했다.
이주혁은 그런 그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넌 뭐 하냐?”
“어?”
“왜 놀고 있냐고.”
“아니, 저 새끼가 혼자 다 하니까…….”
이주혁이 표정이 팍 구겨졌다.
“어휴. 이 양아치 같은 새끼. 넌 감봉이다.”
“뭐? 잠깐!”
“다른 애들은 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데, 이 새끼는 혼자 놀고 자빠졌네. 쯧쯧쯧. 하여튼 뺀질이 새끼.”
“…….”
배상훈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젠장’이라고 외치며, 대머리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타닷!
* * *
나는 그런 배상훈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감봉이다, 새끼야.”
오는 길에 보니, 다들 알아서 잘 흩어져 이 근방을 순찰 중이던 병력을 제압하고 있었다.
자잘한 놈들은 다 처리한 것 같으니, 이제 슬슬 마약 제조 시설로 추정되던 컨테이너로 가 봐야겠다.
폭탄 두 명을 떨궈 놨으니 지금쯤이면 정리가 끝났겠지.
내 생각이 맞다면, 그 안에는 마약의 밀수 루트나 접선 방법 등을 아는 놈들이 있을 거다.
아니면 자료화된 증거물 같은 거라든가.
설령 없다 해도, 관리자만 붙잡아서 심문하면 어느 정도 사이즈는 나오지 않을까.
저벅.
내가 기억하는 컨테이너의 위치로 이동하자, 활짝 열린 문이 보였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흠.”
얼굴이 어쩐지 익숙하다 했는데, 아까 마주쳤던 관리자였다.
누군가한테 처맞은 흔적이 있었고, 천 같은 거에 손발이 묶여 있었다.
아마 부장님한테 당한 거겠지.
그에 나는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근데 그거 아나?”
턱.
“진짜 이 사람이 기절한 건지 아닌지 숨소리로 구별할 수 있다는 거?”
“크앗!”
내 말에 조민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손발이 묶인 탓에 두 발로 콩콩 뛰며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쫓아갈 것도 없이, 조민수를 향해 발치에 있던 돌을 뻥 찼다.
쐐액! 딱!
날아간 돌멩이가 놈의 종아리를 강타했다.
“아! 아악!”
이 허술한 새끼. 기절한 척하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갈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땅을 데구르르 구르는 조민수에게 다가가 놈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턱.
내 얼굴을 본 조민수가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소리쳤다.
“사, 살려 주십쇼! 제발! 처음부터 빼돌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음?”
빼돌리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잠깐 생각하던 나는 이내 씩 미소를 지으며 조민수의 머리채를 잡고 들었다.
“그럼, 잠깐 이야기 좀 할까?”
.
.
.
발에 묶인 천을 풀고, 조민수를 질질 끌며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그러자 무슨 장기매매 현장처럼 쳐진 비닐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우, 이럼 왔다 갔다 할 때 안 거슬리냐?”
“아, 예…….”
“계속 걸어.”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가면 갈수록 바닥에 엎어져 있는 놈들의 수가 많아졌다.
아마 부장님과 고상미가 처리한 놈들이겠지.
그렇게 거슬리는 놈들을 발로 치워 가며 들어가니, 부장님과 고상미가 무릎을 꿇은 남자를 둘러싸고 뭐라 갈구는 게 보였다.
“네 뒤에 한 열댓 명 있으니까 뭐라도 될 것 같았지?”
“쯧쯧. 부하들 누우니까 바로 항복이냐?”
“걔는 뭐예요?”
내가 조민수를 데리고 다가가자 라세흠 부장님이 이쪽을 보며 설명했다.
“우리 담그러 부하들 끌고 온 새끼지. 근데 걔는 뭐야? 대충 묶어 놓긴 했는데.”
“아, 기절한 척하고 있길래 그냥 데려왔어요. 그놈은 뭐 아는 거 있대요?”
“어.”
부장님은 바닥과 테이블 위에 널린 흰색 가루를 가리켰다.
“이것들 다 삼합회에서 들여온 거란다. 만들고 나면 서길석한테 넘겨주는 거고.”
“그래요?”
그 말에 나는 관리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진짜야?”
“…….”
“쯥. 부장님.”
“엉?”
까딱.
“둘 다 아는 것 같으니까, 한 놈은 보냅시다.”
“알았다.”
부장님이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자, 지레 겁먹은 관리자가 외쳤다.
“제가! 제가 더 잘 압니다! 저 새끼 제 아랫놈입니다!”
관리자의 배신에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가 경악했다.
“이런 X발! 형님으로 모셔 줬더니 이 씹……!”
콰직!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악에 받쳐 소리치던 남자가 거품을 물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고상미는 무표정하게 들었던 다리를 내리며 눈썹을 까딱거렸다.
“하던 거 마저 해.”
덥석.
나는 얼굴이 새파래진 관리자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이제 설명해 봐. 최대한 자세히.”
* * *
강남경찰서의 형사과장, 송태석은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뱉었다.
“후…….”
그동안 미치도록 바빴지만, 한참 철야 작업을 하며 고생하다 보니 여유가 조금 생겼다.
이주혁과 만난 후로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야밤에 베란다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감회가 새로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송태석은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끈 뒤, 옆에 뒀던 맥주 캔을 챙겨 거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거실 화분에 물을 주던 송태석의 아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내가 냄새 빼고 들어오랬지?”
“밖이 추워서.”
“담배 냄새 풍기면서 지윤이 방에 들어가기만 해 봐. 죽는다.”
“쩝.”
바로 딸내미 방에 들어가 귀여워해 주려 했던 송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결국 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선생’이라는 놈의 정체로 추정되는 민정수석 민기형.
그 인간을 조사하기 위해 뒤지던 자료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
다시 눈이 빠지도록 자료들을 뒤져 볼 생각에 벌써부터 피곤했다.
딸깍.
그렇게 서해결이 보내 준 과거 민기형의 담당 사건을 읽어 보려는데.
“음?”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는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수신인을 확인한 송태석은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이주혁(개새끼)]“…….”
[조만간 마약사범들 보내 드리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문자의 내용을 확인한 송태석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이주혁-!”
-시끄러!
발광하던 송태석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절망한 표정으로 의자 뒤로 기댔다.
끼익.
오래된 의자가 송태석 대신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 * *
“제, 제가 아는 건 이게 답니다. 진짭니다.”
“흠…….”
나는 책상 위에 걸터앉은 채 관리자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관리자인 조민수는 원래 서길석의 밑에서 일하던 사채꾼이었다.
그러다 서길석이 사채업을 접으면서 끈이 떨어졌지만, 대신 그놈은 뒷주머니를 차기 위해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그게 바로 마약 제조 및 유통.
서길석은 나름 약을 다뤄 봤던 조민수에게 제조를 맡겼고, 연이 있던 삼합회의 조직원을 매수해 필로폰의 원재료들을 밀수해 왔다.
‘문제는 삼합회지.’
분명 얼마 전 있었던 칼부림 사건으로 우리나라 정부는 삼합회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됐고, 그 때문에 공항과 항구의 단속이 더 빡세졌다.
그런데도 문제없이 삼합회 놈들이 마약 재료를 들고 한국에 들어온다?
이건 분명히 뒤를 봐주는 누군가 있단 소리고, 그건 아마 선생 놈이겠지.
민정수석쯤 되는 위치라면 검문 정도 뚫는 건 일도 아닐 거다.
스윽.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봉지에 든 흰 가루를 살폈다.
그리고 이 필로폰은 서길석이 작은 깡패 조직들을 이용해 한국에 유통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조민수의 설명이었다.
턱.
테이블에 내려온 뒤 무릎을 꿇고 있는 조민수에게 물었다.
“더 아는 건 없냐?”
“예. 없습니다. 근데 대체 어디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조민수는 처음엔 자신들이 마약을 빼돌리는 걸 알고 자기들을 족치지 위해 우리를 보낸 줄 알았단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이 계속 질문만 하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에 정색하며 한 번 더 질문했다.
“더 아는 거 없냐고.”
“아, 예. 아는 건 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이제 쓸모 없겠네?”
조민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 뭐라고요?”
“부장님?”
고개를 까딱이자 부장님이 손가락을 꺾으며 다가왔다.
“자, 잠깐만! 다 말하면 살려 준다고 하셨잖습니까!”
나는 발악하는 조민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하실에서 보자고.”
“이런 개……!”
콰직!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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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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