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다음 날 아침, 고상미는 부하들과 함께 지내는 숙소의 방에서 맨몸 운동을 하고 있었다.
“후으…….”
손을 털고 일어난 그녀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필리핀에 넘어온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고상미의 성격으론 그것도 긴 시간이었다.
빨리 뭐라도 진행하고 싶은데, 지시가 없으니 답답했다.
‘이주혁 이 새끼, 대기시켜 놓고 자기 혼자 놀고 있는 거 아냐?’
그런 생각까지 닿은 고상미가 인상을 찌푸리던 그때, 이주혁이 문자를 보내왔다.
“음?”
고상미는 그 내용을 확인하곤 미소를 지었다.
“그래. 진작 이럴 것이지…….”
탁.
핸드폰을 접은 고상미가 숙소 문을 열고 나가며 복도까지 들리게 외쳤다.
“가자-!”
그와 동시에, 숙소들의 방문이 벌컥 열리며 부하들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그들도 작전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복장과 장비 모두 진작 준비하고 있던 상태였다.
성큼 다가온 부하 중 하나, 대머리가 입꼬리를 쓱 올리며 물었다.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누님. 어디로 가면 됩니까?”
“나야 모르지. 내가 필리핀 사람이냐?”
“아.”
대머리의 머리를 팍 때린 고상미가 손짓했다.
“일단 움직여. 그놈들 중 한 놈이 목표 지점을 파악했단다.”
“예!”
고상미와 부하들은 SA시큐리티의 팀원과 접선하기 위해 숙소 건물 바깥으로 향했다.
.
.
.
“여기냐?”
“예.”
백기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대하기엔 너무 어려운 상대였다.
그가 고상미 일행을 안내한 곳은 외진 곳의 한 공터.
거기엔 대충 쳐진 천막과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 테이블 위에서 뭔가를 빻고 담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약 만드는 데?”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긴 어떻게 찾은 거냐 물어볼 법했지만, 고상미는 그런 거엔 관심 없었다.
“때려 부수면 되는 거야?”
“네. 전부 못 쓰게 만들라네요.”
“사람도 포함이지?”
“……뭐, 그렇겠죠?”
그 말에 고상미는 자신의 뒤편에 숨어 있는 부하들을 돌아봤다.
“들었지? 나부터 간다. 따라붙어.”
한마디를 남긴 고상미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아니, 그래도 쟤네 총 가지고 있…….”
백기준은 경고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의 옆으로 고상미의 부하들도 우르르 튀어 나갔다.
“으오오!”
“크아앗!”
달려드는 고상미와 눈을 마주친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소총을 겨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남자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탁!
총구를 쳐서 돌린 고상미가 주먹을 내질렀다.
“컥.”
그대로 턱이 빠지고, 고상미는 남자를 힘으로 붙잡은 뒤 천막 쪽을 향해 그가 가지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당-!
“으악!”
“끄아아악!”
“뭐, 뭐야!”
SA시큐리티의 팀원들과는 달리, 적들의 생사에는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 탄창을 다 비운 고상미는 남자를 땅에 처박고 다른 상대를 향해 움직였다.
그 시각, 고상미만큼 빠르지 못한 부하들은 각자 흩어져서 화망을 피하며 싸웠다.
그녀의 부하이자 고문 성애자, 의사를 발견한 남자가 총을 갈겼다.
타당! 타다당!
의사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남자에게 돌진한 대머리가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쿵!
“커헉!”
총을 겨누던 남자가 옆으로 날아가 땅을 굴렀다.
대머리는 쓰러진 남자를 향해 점프를 뛰었다.
그리고 그대로 상대를 덮치듯 떨어졌다.
콰앙-!
“끄아아……!”
남자가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링 위에서와는 달리, 팔꿈치와 무릎을 세운 채로 대머리의 육중한 중량을 이용해 찍어 버린 탓이었다.
그때, 뒤에서 다른 남자가 총을 쏘며 나타났다.
대머리가 황급히 땅을 구르고, 나무에서 나온 의사가 메스 형태의 작은 칼을 던져 남자의 얼굴에 꽂았다.
“아아악!”
바닥을 구르던 대머리가 바로 일어나 달려가며 팔뚝으로 남자의 목을 후려갈겼다.
제대로 들어간 프로레슬링 기술 래리어트에 비명을 지르던 남자는 땅에 머리부터 처박혔다.
고상미의 다른 부하들도 마구잡이로 날뛰며 총을 든 인원들을 차례차례 제압해 나갔다.
이건 그들이 대규모 전투보단 이런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릴라 전투에 특화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퍼억!
이 작업장엔 무장한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고, 그들을 다 제압하고 나자 남은 건 마약 제조만 하던 일반 조직원들뿐이었다.
하지만 고상미의 손속엔 자비가 없었다.
마약을 만들던 사람들의 팔다리를 전부 하나씩 박살 냈고, 도망가려던 이는 더 잔인하게 처벌했다.
이내 장내에는 고상미 쪽을 제외하고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끄으으…….”
백기준은 땅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죄책감은 아니었다. 사정이 어쨌든 범죄에 가담한 놈들이니까.
다만 잡아서 심문할 사람도 남겨 놓지 않은 게 불만이었다.
“아니, 한 명은 남겨놔야 정보를 뽑아낼 거 아닙니까.”
백기준의 불만 섞인 말에 고상미가 귀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뭐 어때? 이주혁이 어차피 다음엔 어디로 가라고 다 알려 줄 텐데.”
“그래도 이놈들이 아는 게 있을 건데…….”
대화하는 둘을 향해 양팔이 부러진 채 엎어져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며 무어라 지껄였다.
“$@#%! @$!”
“쟤가 부는 정보를 알아들을 수는 있고?”
“하긴, 그렇네요.”
정보를 빼내려 해도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았다.
고상미는 계속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얼굴을 뻥 걷어차며 물었다.
“다음은 어디야?”
“여기서 별로 안 멉니다. 이게 다 저희 팀원들이 발품 팔아서 알아낸 정보거든요.”
“잘했네. 안내해.”
“아, 예.”
어쩐지 현지 가이드가 된 듯한 기분에 백기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시죠.”
* * *
[백기준 – G랑 알파 구역 청소 완료.] [계속 수고]핸드폰을 집어넣고 택시의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이 근방에 있는 코카인 작업장을 찾느라 팀원들이 고생했다.
특히 우리 SA시큐리티의 이사, 사발이 애썼지.
그 녀석이 한국 넘어오기 몇 년 전에 필리핀에서 거하게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더라고.
그래서 필리핀 언어는 물론이고 지리나 문화 같은 것도 꽤 빠삭했다. 그 덕분에 현지인들을 포섭해 작업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솔직히 최근 들어 써먹을 데가 없긴 했는데, 오래간만에 또 한 건을 해 줬다.
“흠…….”
작업장 처리는 팀원들과 고상미 쪽에 맡기면 되고,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나저나 차가 더럽게 막히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차량 정체가 말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택시 기사는 갑자기 미터기가 고장 났다면서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다.
슥.
“셧업 앤 고.”
“오케이.”
내가 현금다발을 꺼내며 말하자, 기사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액셀을 밟으며 핸들을 이리저리 꺾어 골목길로 들어갔다. 아마 본인만 아는 지름길인 모양이었다.
나는 차가 좌우로 흔들리는 걸 느끼며 뒷좌석을 향해 물었다.
“짐은 다 챙겼죠?”
“어.”
“챙겼다.”
우리 세 사람은 숙소를 카지노가 위치한 솔라 호텔로 옮기기로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카지노나 호텔 측에서 우리에게 접근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끼익-.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이동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에게 돈을 쥐여 주고 내린 우리는 눈앞의 건물을 보며 새삼 감탄했다.
“이야.”
“진짜 크긴 하네요.”
해가 지고 왔을 땐 화려한 조명이 매력적이었고, 이렇게 밝은 시간대에 와서 보니 그 크기에 웅장함이 느껴졌다.
확실히 대형 호텔 체인이라 그런지 돈을 엄청나게 때려 박은 듯한 디자인이었다.
물론 그만큼 카지노를 포함한 다른 곳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많다는 뜻이겠지. 마약을 팔아먹은 값의 비중도 만만치 않을 거다.
이 정도면 선생 놈의 활동 자금은 충분히 댈 수 있겠지.
“들어갑시다.”
“그래.”
우리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 체크인을 한 뒤 객실로 향했다.
역시 객실 내부도 돈을 처바른 듯 고급 가구들이 한가득이었다.
부장님은 신기한지 안쪽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와……. 여기는 1박에 얼마 정도 하려나? 몇십만원 하나?”
“몇십만 하겠어요? 몇백은 우습게 넘지.”
“미쳤네.”
툭.
캐리어를 침대 옆에 놔둔 배상훈이 파란 재킷을 벗으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대낮부터 카지노는 아닐 거고.”
“뭐, 우리도 슬슬 몸을 써야 되지 않겠어?”
그 말에 부장님이 미소를 지었고, 배상훈은 반대로 입꼬리를 내렸다.
“작업장 처리는 다른 애들한테 맡긴 거 아니었냐?”
“작업장 말고, 우린 실무자들을 좀 찾아가 봐야지.”
“실무자?”
“그래. 이런 카지노 근처엔 오히려 깡패 같은 놈들이 많은 법이거든. 그런 놈들이 이 업장이랑 관계가 없겠어? 그것도 마약이나 팔아먹는 곳이랑?”
“그렇긴 하지.”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부장님도요. 어제처럼 말고, 적당히 돈 쥐고 있을 것 같은 패션으로요.”
내 설명을 들은 부장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깡패들은 너무 부자같이 보이면 오히려 꺼릴 수도 있어요. 괜히 잘못 건드리면 피 보거든요. 대신 좀 만만하게 보이면 순식간에 속옷까지 털어갑니다.”
“참나. 어제는 호구 잡히더니, 오늘은 소매치기당하러 나가는 거냐?”
“비슷하죠.”
스윽.
부장님과 배상훈은 적당히 배낭여행 좋아하는 사람이 입을 법한 옷으로 골라서 갈아입었다.
“원래 어리숙한 여행자들은 현지에서 코 베이기 마련이죠.”
이렇게 나가면 백이면 백 털린다.
대신 털려 줄 사람도 중요하다.
범죄자 꿈나무들 말고, 진짜 깡패 같은 놈들이 우리를 삥 뜯으러 접근할 때까지 돌아다닐 거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잡아서 털다 보면 대충 윤곽이 잡히겠지.
보통 저런 카지노에 마약을 들여오는 경우엔 이런 깡패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거든.
단속 나오거나 수사를 받을 때 자를 꼬리로 써먹기 위해서 말이야.
“그 정도면 됐습니다.”
“넌 안 가냐?”
“전 얼굴이 팔렸잖아요. 꽤 크게 호구 잡혀서 카지노 쪽으로 이야기 들어가면 바로 알 겁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도 VIP룸까지 들어갔는데.”
“그럴 줄 알고 마스크도 준비했죠.”
내가 마스크를 건네자 배상훈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귀찮은 일 짬 때리려는 걸 눈치챈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대로 나까지 나서긴 조금 애매한 감이 있었다.
건장한 3인조 동양인은 너무 우리로 특정하기 쉽고, 한 명은 위험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둘만 보내는 거다.
나는 가방에서 현금을 적당히 꺼내 쥐여 주며 말했다.
“중간중간 연락해요.”
“그래.”
“이 새끼. 혼자 쉬려는 거 같은데.”
“넌 닥치고 가라. 수고하십쇼.”
삐빅.
두 사람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호텔 방을 나섰다.
“후.”
잠시 서서 다시 들어오나 확인한 뒤, 그대로 침대에 몸을 털썩 던졌다.
“오우. 푹신하네.”
이 정도면 머리만 대도 곯아떨어지겠는데.
비록 드러누워 있긴 하지만, 절대로 혼자 쉬기 위해 그런 게 아니다.
카지노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는 건 오후부터다.
꾹.
그동안 한국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광철이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려다 말았다.
솔직히 어제 머리를 많이 써서 조금 피곤하긴 하네.
딱 30분만 눈 붙이자. 딱 30분…….
* * *
호텔 바깥으로 나온 라세흠과 배상훈은 주변을 둘러봤다.
도로에는 차들이 꽉꽉 들어찬 채 매캐한 매연을 내뿜고 있었고, 갓길에는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어디로 가야 되나?”
“글쎄요. 일단 대충 저쪽으로 가보시죠.”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라세흠은 자신의 주머니를 스치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고 그 범인을 콱 붙잡았다.
“아!”
“음?”
손목을 붙잡힌 건 기껏해야 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어린애였다.
녀석은 살짝 당황한 라세흠의 손에서 팔을 빼내며 도망쳤다.
그 소리에 배상훈이 다가와 물었다.
“뭐야. 벌써 털렸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라세흠은 주변을 둘러봤다.
보기에는 화려하고 좋은 도시였지만, 어두운 골목을 보니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과 빼빼 마른 어린아이들이 관광객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걸 본 라세흠의 표정이 굳어졌다.
“야. 저쪽으로 가자.”
“예? 뭐 있어요?”
라세흠이 아이들 뒤에 서 있는 남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쓰레기 새끼들의 냄새가 나서 말이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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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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