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07
206화
탁.
잔을 내려놓은 춘식이 마테오의 재떨이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시가 하나만 빌려주십쇼.”
“뭐? 이게 얼마짜린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그리고 빌리긴 무슨.”
“쩝.”
그냥 던져 본 말이었기에, 춘식은 미련 없이 시선을 돌리고 품에서 싸구려 담배를 꺼냈다.
독하긴 해도 이거만 한 게 없었다.
그렇게 춘식이 처음으로 제값을 지불한 칵테일을 즐기던 그때.
벌컥!
“보, 보스!”
마테오의 수행원 중 하나가 바의 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왔다.
이틀 연속으로 휴식을 방해받은 마테오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젠장. 또 뭐야?”
“그게…….”
수행원이 뭐라 설명하려던 순간, 바 위에 올려뒀던 마테오의 핸드폰이 진동을 토해 냈다.
확인해 보니, 마닐라 경찰서장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은 마테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봐, 마테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인터폴에서 공조 요청 문서가 날아오냐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단어에 마테오가 미간을 좁혔다.
-어쨌든, 인터폴이 개입하면 우리로선 완전히 막아 주긴 힘들어. 당분간 몸 사리라고.
“…….”
뚝.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법에 저촉되는 행동은 절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꼬리를 잘라 내며 숨어서 행동했다.
끽해 봐야 솔라 카지노에 약이 돌았고, 그 카지노의 관리자가 마테오라는 것.
생각을 이어 가던 그의 머릿속에 최근 들어 일어났던 사건들이 스쳤다.
‘……설마.’
마약을 제조하던 작업실이 습격당했고, 일을 돕던 녀석들이 하나둘씩 실종됐다.
만약 이 일과 연관이 있는 거라면?
고민에 빠진 마테오의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춘식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물었다.
“큰일 난 거 아녜요? 이거, 사장님이 잡히면 저도 돈 못 받는 거 아닌가?”
“그럴 일 없다. 이쪽 경찰들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
“그래요? 그럼, 뭐.”
탁탁.
춘식은 마테오의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끈 뒤,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같이 있다가 괜히 봉변당하는 거 아닌지 몰라서요.”
딸랑.
바를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마테오는 전화 한 통을 더 받았다.
“X발.”
수신인을 본 마테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전화를 받았다.
“예. 빅 보스.”
-마테오. 이게 무슨 일이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사업엔 지장 없겠지?
빅 보스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마테오는 오히려 더 불안했다.
여기서 정말 문제가 생기거나, 설령 카지노의 영업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내 입지는 끝장이다.’
그동안 신뢰를 쌓아 왔으니 바로 내쳐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빅 보스 밑에서 사업을 맡지는 못 하리라.
“문제없습니다. 빅 보스.”
마테오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이번 사건을 문제없이 잘 해결하게 되면, 오히려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좋아. 자네를 믿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마테오가 시가를 물고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듯 연기를 뱉었다.
오늘따라 입에 쓴맛이 맴돌았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마테오는 품 안에서 다른 핸드폰을 꺼냈다.
꾹.
그리고 알 수 없는 번호를 누른 뒤, 메시지를 입력해 전송했다.
[선생, 잠깐 얘기 좀 하지.]* * *
“그런 것도 가능하단 말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가면남은 내 생각보다 능력이 출중했다.
인터폴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가면남이 공조 요청문의 순서를 조금 손봤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폴은 마테오의 수배를 우선으로 처리하게 됐고, 그 덕에 우리는 작전을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남은 건 마테오의 반응을 확인하는 거다.
잠적하든, 경찰을 매수하려 하든. 아니면 선생 놈한테 SOS를 치든 말이다.
선생 입장에서도 큰 돈줄인 마테오를 쉽게 버리진 못하겠지.
‘어떻게 나오나 보자고.’
일단 마테오 쪽은 춘식이란 녀석을 이용해 계속 동향을 보고받고 있다.
그러니 이제 또 다른 일을 벌여 줄 차례다.
지금 선생 놈이 필리핀에 시선을 돌렸을 테니, 다시 한국에서 깽판을 쳐 주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이제 좀 협력할 마음이 들었나?”
내 물음에 가면남이 잠시 침묵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함께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 준 것 같은데.”
무력적인 측면도 그렇고, 녀석은 우재성의 존재도 알고 있다.
또 경찰, 검찰, 정계까지 뻗은 내 인맥까지 확인했을 거고 말이야.
잠시 고민하던 가면남이 내 말에 동의했다.
-인정하지.
“그럼 만나서 터놓고 이야기 좀 하자고.”
-음?
“언제까지 화면 뒤에 숨어 있을 거냐?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할 게 전화로 할 건 아니지 싶은데.”
-굳이 만날 것까지 있나?
“못 만날 것도 없지? 얼굴 가리고 목소리 변조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 우리 저번에 이미 만났잖아.”
재벌가 망나니들의 마약 파티.
가면남이 거기 왜 왔는진 몰라도, 분명 거기서 마주치고 대화도 나눴었다.
-…….
가면남은 딱히 할 말이 없는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가 뭐 괴롭힌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얼굴 보고 얘기나 하자는 거지.”
-음.
어차피 고상미랑 가족 관계인 거 뻔히 아는데 왜 정체를 숨기는진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도움이 되는 녀석이니 가까이해서 나쁠 건 없다.
“그리고 뭐 하나만 부탁하자.”
나는 내가 찾아갔던 합동기도원의 주소를 불러 줬다.
그러자 전화 너머로 키보드가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뭐 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정보가 없어?
그새 뭘 확인하고 있는지 혼자 중얼거리는 녀석에게 물었다.
“그 건물의 도면, 구해 줄 수 있나? 아, 소유주도 좀 알려 주고.”
-어려울 거 없지.
타닥. 탁.
잠시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조수석에 켜 둔 노트북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사진 두 장을 확인해 보니 건물 계약 문서와 도면이었다.
일처리 빠르네. 좋아.
“나중에 또 연락하지.”
-알았다.
탁.
나는 노트북을 덮고 틀어 뒀던 라디오의 볼륨을 올렸다.
라디오에선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일이 보도되고 있었다.
-……주범으로 지목된 민지용 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민기형 수석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역시 죄질에 비해 낮은 형량이었다.
어차피 큰 기대도 안 했다.
민지용을 보내 버린 목적은 진행자가 말한 것처럼 민정수석 민기형의 입지를 낮추는 것.
상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상, 민지용의 처우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렇게 차에서 내려 회사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우웅-.
송 과장한테 전화가 왔다.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놈들 조사는 끝났습니까?”
바로 어제, 웬 깡패들이 광철이 아저씨의 사무실에 돌을 던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었고, 현장에 있던 건한이 녀석이 그놈들을 다 붙잡았다고 한다.
단순히 정치적 사상이 다른 사람이 조폭들을 사주해 공격했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지.’
선생 놈이 날 감시했다면, 광철이 아저씨와 내가 가끔 만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이번 사무실 테러 사건도 종종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다.
내 물음에 송태석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범인들은 이런 일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의 사무실에 돌을 던지고 하는 건 엄연히 불법이다.
그래서 좀 극적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깡패들에게 돈을 주고 협박과 테러를 사주하는 거다.
이번에 잡힌 범인이 그런 놈들이라는 말이겠지.
“그렇군요.”
-우선 유치장에 가둬 놨습니다만,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흠…….”
말단 놈들이었나?
어쨌든 내 편인 아저씨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단 뜻이다.
아무래도 경계를 조금 더 강화해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인터폴 건은 잘 처리해 주셨더군요.”
-뭐, 하라고 했으니 해야죠.
하긴, 나한테 약점을 잡혔으니 안 한다는 말은 못 하겠지.
-후…….
송태석이 착잡한 마음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숨이에요?”
-그런 일을 직접 보니까 제 처자식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이렇게 주혁 씨 따라가다가 해코지라도 당하는 게 아닐지.
그러고 보니 송태석은 가족이 있었다.
와이프랑 딸이었나?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시는데, 그런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려야죠.”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무슨 회사 대표인지 잊으셨습니까? 주변에 경호원들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너무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피식.
“이제 와서 그게 무슨 걱정이에요? 어차피 그쪽은 송 과장님이 저 도와주시는 거 다 알고 있을 텐데.”
-끙…….
“가족분들에겐 피해 가지 않게 보호할 겁니다. 제가 끌어들인 건데 나 몰라라 할 순 없죠.”
-감사합니다.
누굴 붙여줄지는 아직 고민 중이지만, 송태석은 이용하기 좋은 경찰 내부의 인원이니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경찰과 협력할 일이 많을 텐데, 만약 송태석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에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도 다 일이다, 일.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잡힌 놈들은 제가 더 심문해 보겠습니다.
“예. 뭐, 정 안 되면 저희 쪽으로 넘기십쇼. 전문가도 있으니까.”
내 제안에 송태석이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그냥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고요.”
전화를 끊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 백기준한테 넘겨주는 편이 더 확실할 텐데.
그렇게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는데, 어느새 잊고 있었던 사람이 떠올랐다.
‘강유찬. 그놈이 있었지?’
일명 강 권사로, 선생 놈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
꽤 중요한 일들을 도맡아 하는 놈이었는데, 사격장에서 내가 직접 때려잡고 지하실에 처박아 뒀지.
아무래도 강유찬과 다시 대화를 나눠 봐야겠다. 이번엔 꼭 입을 열게 만들어야지.
그리 다짐하던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백기준이 밥을 주고 나왔었나?’
* * *
외진 곳의 한 창고 안에서 청명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득!
“끄아악……!”
솔라 카지노의 중간 관리자, 필립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손가락을 꺾어 버린 라세흠이 몸을 일으켰다.
고상미는 그를 툭 치며 히죽 웃었다.
“이제 내 차례지?”
“씁. 잘 버티네.”
두 사람은 돌아가며 한 번씩 필립을 괴롭히고 있었다.
필립이 백기를 드는 순간, 직전에 고문하던 사람이 승리하는 내기였다.
상품은 없었지만, 둘은 그런 것 없이도 승부를 즐기는 부류였다.
스윽.
고상미가 필립의 사타구니에 발을 올렸다.
“야, 야. 그건 반칙이지.”
“그런 게 어딨어?”
“그게 터지면 거품 물고 뒈질 수도 있다고.”
참고로 실수로 기절시키거나 죽게 만들면 실격패였다.
눈치껏 둘의 대화를 해석하던 필립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말할게! 말한다고!”
“얘 뭐라는 거냐?”
“말한대.”
필립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의 구레나룻은 반쯤 뜯겨 나가 있었고, 귀에서도 피가 흘렀다.
그리고 관절이 부서져 한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간 채였다.
“크흐흑…….”
아무리 의리를 중시한다 해도, 필립의 본질은 길거리 부랑자였다.
이런 모진 고문을 버틸 만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꺾여 버린 그를 보며 라세흠이 씨익 웃었다.
“이럼 내가 이긴 건가?”
“아니지. 내가 불알 터뜨리려는 거 보고 항복한 거니까, 내가 이긴 거지.”
“그건 아직 시작 안 한 거잖아?”
“죽을래?”
“뭐? 야. 그럼, 직접 물어봐.”
그 말에 고상미가 필립에게 확 다가와 머리채를 잡고 영어로 물었다.
“그래. 네가 말해 봐. 누가 이겼어?”
“끅. 끄윽…….”
“어, 야!”
신음하던 필립이 마침내 의식을 잃었다.
그걸 지켜보던 라세흠이 이빨을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겼네?”
“이런 썅! 일어나!”
짝! 짝!
한편, 창고 바깥에서 망을 보던 춘식의 부하는 눈을 감으며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악마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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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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