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18
217화
“그럼 정리하고 회사로 한번 찾아오세요. 정식으로 직원들 소개해 드릴 테니까.”
“알았다.”
고상미, 고세운 남매와의 자리를 파하고 내 차로 향했다.
탁.
운전석 문을 닫고 조수석에 놓인 노트북을 열었다.
딸깍.
나는 폴더 속에 녹음된 파일들을 확인했다.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니, 사발 쪽에서 남긴 음성 메시지가 여기로 저장되게 해놨다.
탁. 탁.
가장 먼저 저장된 음성 파일을 열었다.
[대표님. 접니다. 잠깐 짬이 나서 남깁니다. 오늘 오전 합동 기도가 끝났습니다. 아쉽게도 밤마다 복도에 순찰을 돌아서 내부를 살펴보진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일과 중에 확인해야 할 것 같네요. 조금 뒤에 또 교리 공부 시간이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탁.
[공부가 끝났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사이비들 논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슬슬 머리가 아픕니다. 이러다 저 세뇌되면 대표님이 책임져야 됩니다.]사기꾼이나, 사이비나. 누가 누구보고 뭐라 하는 건지.
다음 파일을 재생했다.
[오후 합동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말을 들어서요. 곧 그분과 함께 승천한다나? 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까? 보통 사람들도 아니고 이상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니까 좀 불안해서요. 혹시 아는 거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쇼. 수신할 수 있는 시간은 0시부터 6시. 그리고 오후 1시, 5시, 9시쯤입니다.]녹음본을 듣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승천. 승천이라.
사발의 말대로 곱게 들리진 않는 단어였다.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아무래도 우재성과 이야기를 한번 나눠 봐야겠다.
머리 좋은 녀석이니 뭔가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노트북에 저장된 녹음본은 이게 다였다.
턱.
조수석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시동을 걸었다.
‘아무래도, 사발이랑 직접 연락을 해 봐야겠어.’
미리 상황을 전달해 놓는 게 낫겠지.
나는 송태석 과장에게 전화를 걸며 액셀을 거세게 밟았다.
부웅-.
.
.
.
회사에 도착한 나는 곧장 우재성의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
-예. 들어오세요.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우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어쩐 일이십니까?”
“전할 소식도 있고, 물어볼 것도 있어서요.”
“커피 한잔 내드릴까요?”
“좋죠.”
달그락.
우재성이 물을 끓이며 물었다.
“좋은 소식입니까? 나쁜 소식입니까?”
“좋은 소식입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뭐죠?”
“그 해커 녀석이 합류할 겁니다.”
멈칫.
우재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예상 못 했는데, 어떻게 얘기가 잘 풀린 모양이네요.”
“그 녀석 누나를 공략했죠. 정보 수집 쪽에선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녀석이니, 흥신소 일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좋습니다. 잘 써먹어 봐야겠네요.”
탁.
순식간에 커피 두 잔을 뚝딱 만들어 낸 우재성이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잘 마시겠습니다.”
“네. 그럼 여쭤본다는 건 뭡니까?”
“제가 이런 말을 들었는데…….”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음성 파일을 들려줬다.
잠자코 듣고 있던 우재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곧 그분과 함께 승천한다나? 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까?]“승천이라.”
“뭔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승천이면 천국으로 간단 말인데, 조금 뜬금없이 튀어나온 것 같아서요. 그것도 곧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혹시 다 같이 죽는단 소리는 아니겠죠?”
내 말에 우재성이 멈칫했다.
“……설마?”
“짚이는 거라도 있는 겁니까?”
“대표님. Peoples Temple Full Gospel Church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예? 무슨 교횝니까?”
“한국어론…… 인민사원이라고 하죠.”
“아, 그 집단자살 사건을 일으킨 그곳 말입니까?”
대략 지금으로부터 30년쯤 전, 미국의 사이비 교주가 신도들과 함께 독극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사망자가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엄청난 대사건이었다고 들었다.
우재성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최악의 가정이긴 하지만, 어쩌면 거기서도 그런 일을 벌이려는 건지도 모릅니다.”
“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랬죠.”
그 사건이 일어나고 약 10년 뒤, 한국에서도 거의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이비 단체가 종교 겸 기업을 만든 교주가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과 스스로 목숨을 끊었었다.
그걸 떠올리니 불안감에 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우재성은 그런 나를 보며 팔짱을 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승천’이라는 키워드를 듣고 떠오르는 게 그 사건들밖에 없습니다.”
“만약 정말 놈들이 집단자살을 꾸미고 있는 거라면, 합동기도원 작전을 폐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막아야겠죠.”
원래는 그 안에서 마약이 사용됐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불법 약물을 들여온 루트를 조사해 선생 놈을 엮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되면 계획대로 진행하는 건 무리였다.
그 안에 잠입한 사발이 위험해지기도 할뿐더러, 잘못된 믿음을 가지긴 했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대거 죽게 될 거다.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선생을 잡기 위해 사람들을 죽게 두는 건 본말전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
“어쩔 생각이십니까?”
“흠.”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현재 그 안으로 들어간 사발 이사와 먼저 연락해 봐야겠습니다. 상황이 긴박하다면 바로 경찰에 연락해 침투해야겠죠.”
“좋습니다.”
마침 지금 시간은 오후 5시 5분 전이었다.
사발이 이때는 연락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아마 무전을 넣으면 응답하겠지.
탁.
나는 빠르게 세팅을 마친 뒤, 바로 마이크에 대고 사발을 불렀다.
“아, 아. 거기 있나?”
잠시 기다리자, 치직대는 소리와 함께 사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표님?
“녹음된 건 확인했어. 지금 상황은 좀 어때?”
내 물음에 사발이 걱정 섞인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대표님.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금방이라도 뭔가 일어날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데?”
-그, 뭐더라? 승천하기 전 육체를 정결하게 한다면서, 오늘은 특별한 성수를 마신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한 성수라.”
-그리고 좀 높은 사람들 분위기가 더럽게 엄숙합니다. 교황 즉위식 저리가라예요.
“일단 나랑 우재성 씨가 세운 가설이 있는데, 잘 들어.”
나는 우리나라와 해외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요약해 설명해 줬다.
-지, 집단자살?
“그래서 우리 결론은, 네가 말한 그 승천이라는 게 집단자살일 수도 있다는 거지.”
-이런 미친! 그럼 빨리 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듣기론 오늘 그 승천인지 뭔지 바로 한다던데!
내 말이 불 난 데 기름을 부었는지 사발은 불안에 떠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저 좀 데리러 와 주십쇼. 여기 곳곳에 덩치들이 있어서 저 혼자선 탈출 못 합니다.
“그래. 작전은 취소다. 경찰 불러서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빨리 와요! 이러다 저 죽어요!
“최대한 빨리 갈…….”
-잠깐, 조용!
사발의 말에 입을 다물자, 무전기 너머로 작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승호 형제님. 승천 의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가시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 전에 잠시 화장실 좀 들렀다가 갈게요. 대예배실에서 하는 거죠? 제가 알아서 찾아갈 수 있으니 먼저 가세요.
-한 명도 빠짐없이 모시고 오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기다려 드릴 테니 같이 나가시지요.
-예? 아니, 음. 그럼 빨리, 해결하고 가야겠네요. 최대한 빨리. 하하.
그 뒤로 사발은 그와 함께 방을 나섰는지, 무전기에서는 목소리가 더 들려오지 않았다.
나와 함께 무전을 듣던 우재성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끄덕.
나는 송태석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떻게 됐습니까?
“아까 보내 드린 주소로 최대한 빨리 출동해 주세요. 누가 앞에서 막아도 무조건 돌입해야 합니다. 앞에서 봅시다.”
-알겠습니다.
송태석은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서한결 팀장이 변을 당한 이후로 뭔가 감정 표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다.
벌떡.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재성도 마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녀오십쇼.”
“예. 나쁜 소식을 들고 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승천 의식이 곧 시작한다고 했으니, 빠르게 이동하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을 수 있을 거다.
사발의 말로는 보통 예배나 기도는 6시에 시작한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다.
타닷!
땅을 박차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회사 복도를 달렸다.
만약 정말 집단자살을 시도하는 거라면, 아마 선생 놈의 지시일 가능성이 크다.
놈은 항상 자신의 정체를 알거나 쓸모가 없어졌다 싶은 사람들을 제거해 왔으니 말이다.
꾸욱.
나는 손에 힘을 주며 다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선생. 이번엔 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다.
* * *
저벅.
“저, 야고보 형제님. 승천 의식은 어떻게 하는 건지 대충이라도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가면 알게 되실 겁니다.”
“아니, 참…….”
사발은 답답함에 쌍욕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안 그래도 대표한테 들은 말 때문에 불안해 죽겠는데, 이 과묵한 놈은 일언반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미치겠네.’
만약 이대로 이놈을 따라갔다가, 정말로 다 같이 독을 입안에 때려 붓는 상황이 온다면 큰일이다.
싸움 잘하는 다른 직원들이면 몰라도, 사발은 어디까지나 입을 터는 역할이다.
품에 고이 모셔둔 전기충격기 정도로는 이 안의 덩치들을 모조리 쓰러뜨릴 순 없다.
게다가 어떻게 빈틈을 잘 노려서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발이 신참인 탓인지, 자꾸 야고보나 윤 권사 같은 간부들이 따라붙어 집중적으로 관리한 탓이었다.
턱.
“가시죠.”
“…….”
이도 저도 못 하고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합동 기도를 진행하는 예배당 앞에 도착했다.
사발은 눈앞의 덩치를 지져 버리고 도망갈까 고민했지만, 예배가 시작되기 전엔 항상 출입구를 잠가 놓는단 걸 떠올리며 마음을 접었다.
‘이렇게 된 이상…… 대표를 믿을 수밖에.’
최대한 빨리 온다고 했으니, 너무 늦기 전에 구하러 올 것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토끼 같은 아내를 떠올리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제발, 빨리 와 주십쇼.’
덜컹.
커다란 철문을 열고 야고보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와 있던 건지, 기도 때마다 얼굴을 마주하던 신도들이 무릎을 꿇은 채 엄숙하게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사발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의 뒤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턱.
그때, 기도원의 리더 격인 윤 권사가 들어와 단상 위에 섰다.
하지만 평소의 기도와는 다르게, 그 옆에 덩치들이 가져온 상자 하나가 놓였다.
윤 권사는 마이크를 들고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그 물음에 신도들이 일제히 중얼거렸다.
“아멘.”
“아멘.”
사발은 어이가 없었다.
설명도 못 들었는데 준비는 무슨 준비란 말인가?
그 뒤로 윤 권사가 승천이니 천국이니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지만, 사발의 귀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달칵.
덩치들이 상자 안에서 수상하게 생긴 작은 병을 꺼내기 시작한 탓이었다.
‘절대 안 먹는다.’
사발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저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음?”
사발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걸 눈치챘다.
뭔가 화학 약품 같은 느낌인데, 오래 맡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듯한 그런 독한 냄새였다.
어딘가 잘못된 걸 느낀 순간, 사발의 시야가 핑 돌았다.
“어…….”
휘청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신도들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사발은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걸 느꼈다.
쿵.
그의 얼굴이 바닥에 맞닿았다.
어느새 방독면을 쓰고 있던 윤 권사과 덩치들은, 신도들이 모두 의식을 잃은 걸 확인했다.
“형제자매님들 먼저 보내 드리세요.”
“예. 권사님.”
윤 권사의 지시를 받은 야고보와 다른 남자들이 투명한 액체가 든 병을 들고 쓰러진 신도들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콰앙-!
굉음과 함께, 잠가 놨던 예배당의 문이 벌컥 열렸다.
윤 권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노려봤다.
“누구야!”
그 말을 들은 남자, 이주혁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가 말하는 사탄 마귀다. 이 개X끼들아.”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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