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27
226화
선생이 젊다는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왜 당연하게 민기형을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지?’
그래. 애초에 ‘민기형이 선생일 확률이 높다’였지 확실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스가와라와 민기형이 알던 사이라고 들었던 탓에 한 가지 가능성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얼굴이나 외형적인 특징은 모르나?”
“딱 한 번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정말? 직접 만났다고?”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진 않았다.”
아쉽네.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으면 누군지 알아내기 편할 텐데.
“대신 목소리를 들으면 알아볼 순 있겠지. 대화는 꽤 많이 나눴으니.”
“그런가.”
결국 이 녀석도 선생의 진짜 정체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건가.
허탈한 감정이 스쳤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헛걸음한 건 아니다.
애초에 놈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찾아왔으니, 챙길 건 챙겨야지.
“그래도 민기형에 관해선 잘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그놈도 내 목표다. 당신 말대로면 선생의 하수인일 테니까.”
내 말에 스가와라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도 괜찮은 건가?”
“말리면 들을 생각은 있고?”
당연히 없다.
스가와라는 이런 내 생각을 알고 있었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답을 정해 놨는데 거기다 대고 굳이 싫은 소리를 할 필요는 없지.”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뭐, 상관없다면야.”
민기형과 친분이 있다면 조금 껄끄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이러면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어.
“아무래도 이만 가 봐야겠군.”
“물어볼 건 이게 다인가?”
“생각을 조금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금방 다시 연락하지.”
“언제든 연락하라고. 난 개인적으로 자네의 목표를 응원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미소를 짓는 스가와라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회사로 돌아가서 정리를 해 봐야겠어.
민기형이 아니면 대체 선생이 누구인지.
머릿속을 스쳐 가는 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놈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드륵-
미닫이를 열고 나오며 표정을 굳혔다.
우선, 가장 의심 가는 놈부터 확인해 봐야겠어.
* * *
부웅-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행님. 표정이 계속 안 좋으십니더.”
“머리가 아파서 그렇다. 머리가.”
“얘기가 잘 안 풀리셨는갑네예.”
“그런 건 아니고.”
내 말에 덩치가 핸들을 탁 치며 말했다.
“에이. 한바탕 할 수 있었는데 아쉽네예. 제가 요즘에 운동 좀 한 다입니까? 그래가…….”
“됐어. 출발해.”
“……넵.”
나는 슬슬 입에 시동을 걸려는 덩치에게서 시선을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부장님이 불만스레 물었다.
“야쿠자들이랑 한판 붙는 거 아니었냐?”
“혹시 그럴까 싶어서 같이 간 거긴 한데, 뭐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네요.”
“씁. 아쉽네.”
“너무 실망하진 마십쇼. 조만간 또 한 놈 조지러 갈 겁니다.”
“그래? 조질 놈이 끊이질 않는구만?”
부장님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개새끼가 한둘이어야죠.”
“하긴.”
“근데 행님. 누굴 조지러 간다는 겁니꺼.”
“그놈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 이제 조져 버려도 되겠지.”
“예?”
원래는 민기형이 선생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접촉하진 않았다.
내 정보가 노출되어있기도 할뿐더러, 그놈은 꼭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고 싶었으니까.
물론 그 전에 놈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들어야겠지만, 어쨌든 섣불리 공격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민기형이 선생 본인이 아니라면 얘기가 다르다.
“우선, 그 자리에서부터 끌어내려 보자고.”
.
.
.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소파에 털썩 앉아 TV를 켰다.
때마침 시작한 뉴스에서 최신 소식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도원에서 일어난 사건은 살인미수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주모자 한 명이 사망했지만 일단 조사하고는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자를 뺀 나머지는 그냥 전투원으로 보이던데, 과연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일어난 경찰공무원 강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오늘 구속됐습니다.]“드디어.”
대체 어떤 놈들인지 상판이나 한번 보자고.
하지만 이어지는 앵커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용의자들은 만 14세의 학생들로 밝혀졌으며, 현장에서 검출된…….]만 14세? 그럼 아직 중학생이란 말인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내둘렀다.
“개새끼…….”
의도가 보여서 더 열받는다.
일반인보다는 경찰의 사망 사건을 더 엄중하게 수사할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꼬드겨 저런 짓을 하게 만들었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철없는 어린놈들이 치기로 저지른 범죄로 보일 테니까.
그렇게 착잡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뉴스에 집중하려는데.
“음?”
뒤이어 보도되는 소식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후, 최근 가족들의 논란으로 구설에 오르내리던 민기형 민정수석이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뭐라고?
* * *
민기형의 장인, 서길석은 급하게 옷을 챙겨 입으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보.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그놈한테 따지러!”
뜬금없이 사퇴라니.
서길석은 사위의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관사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만데 그걸 포기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뚜르르-
아까부터 계속 전화를 거는데도 받지를 않았다.
“이런 씨.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연락 안 돼요?”
“어.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누가 찾아와도 절대 문 열어 주지 마. 알았어?”
아내에게 당부한 서길석이 방을 나섰다.
“후…….”
민기형이 궁지에 몰린 데는 서길석의 탓이 컸지만, 수습할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다.
비록 며칠 전 사람을 보내 해코지하려고 했어도, 이대로 가면 서길석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년 형을 받을 것이다.
그 개 같은 놈이 정말로 증거를 경찰에 넘겨 버렸으니까.
여기까지 상황이 흘러온 이상 구속과 재판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상황까지 생각해야 한다.
‘빌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검사와 판사를 매수하는 건데, 그네들은 이미 십 년이 넘게 민기형과 한패였다.
최대한 빨리 나오기 위해선 민기형이 도와주는 방법밖에 없단 소리다.
단순히 사업가일 뿐 정계와는 인연이 그리 깊지 않은 서길석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나와 차에 타던 순간.
콱!
“읍!”
서길석의 코와 입 위로 웬 천이 덮였다.
그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지독한 냄새에 발버둥을 쳤지만, 뒷자리에 있던 괴한의 억센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다.
“으…… 그슥그그…….”
한참을 저항하던 서길석의 손에서 힘이 서서히 빠졌다.
젊었을 적이면 모를까, 나이를 먹은 지금은 뒤에서 덮쳐온 괴한을 이겨 내는 건 불가능했다.
“…….”
툭.
서길석은 결국 흰자를 보이며 의식을 잃었다.
마스크를 쓴 남자가 손을 대 서길석이 의식을 잃은 걸 확인했다.
그리고 챙겨 온 봉지를 들고 차에서 내린 뒤 조수석 문을 열었다.
덜컥.
남자는 기절한 서길석을 보고 조수석 위에 번개탄을 꺼내 올려놨다.
치익!
거기에 불을 붙이자, 차 안에 금세 독한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불이 제대로 붙은 걸 보곤 조수석의 문을 닫았다.
혹시 창문으로 연기가 새진 않나 확인한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김 실장님 일은 처리했나요?
“네. 처리했습니다.”
-그럼, 아버지한테 갔다가 복귀하세요.
“알겠습니다.”
뚝.
김 실장이라 불린 남자는 전화를 끊고 서길석의 차로 시선을 돌렸다.
차창 너머가 어느새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무심하게 바라본 김 실장이 이내 발걸음을 돌려 주차장을 벗어났다.
* * *
갑자기 사퇴라니.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내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선생이 시킨 거야.’
민기형도 선생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저 사퇴도 본인의 의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무슨 의도지?”
분명히 어떠한 목적으로 저런 지시를 내린 거다.
민정수석의 자질이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크다.
그런데도 민정수석 자리를 내려놨다는 건 어떤 의도가 있단 뜻이다.
“하.”
그러나 지금으로선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 민기형의 사퇴 후 움직임을 주시해 봐야겠지.
그나저나 아쉽네. 내가 직접 그 자리에서 멱살 붙잡고 끌어내리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알아서 내려와 주니 일은 줄었다.
이걸 감사해야 하나.
털썩.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였다.
딸깍. 딸깍.
‘이건가.’
내 눈 앞에 펼쳐진 활자들.
저번에 고세운이 설명하려다 못한, 민기형의 둘째 아들 민지훈에 관한 정보들이었다.
‘이 새끼가 1순위지.’
민기형도 선생 후보에서 탈락한 이상, 내가 의심하고 있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민지훈이다.
우선 민기형과 가족 관계이기도 하고, 사업 차원으로 자유롭게 해외를 오가며 범죄 조직들과 연을 맺을 수 있는 놈이기도 하니까.
그놈이 어떻게 아버지까지 구워삶아 범죄에 동참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민지훈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흠…….”
대신 이러면 문제가 조금 있었다.
우리가 몇 주 전 풍원한정식에 모여 공유한 정보는 어디까지나 민기형의 약점이다. 민지훈이 아니라.
이렇게 되면 민기형을 처넣을 수는 있어도, 뒤에서 암약하던 민지훈까지는 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던 놈이니 쉽게 증거를 찾기도 힘들 거다.
그러니 놈에게 닿기 위해선 주변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딸깍.
우선 이놈의 지도교수.
민지훈은 현재 화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왜 굳이 화학과인지는 몰라도, 민지훈과 실험실에서 함께하며 그놈을 돕는 교수가 한 명 있더라고.
조사해 본 결과 민지훈이 주기적으로 만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니, 그 교수를 파 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다음으론 민지훈의 회사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IT 계열 사업체인데, 고세운의 말로는 방화벽이 철저하게 깔려 있어 침투가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래도 녀석이 내부 기밀은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조만간 가져올 수 있다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분명 뭔가 있어.’
민지훈이 괜히 그런 회사를 운영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거기 다니는 직원들이 민지훈의 실체를 알지는 의문이다.
민지훈의 수하들일 수도 있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회사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 말이다.
회사의 임원들도 신상 정보만 얻었지, 자세한 정보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이쪽은 우리 흥신소 쪽에 맡기면 좋겠지.
그리고 마지막은 민지훈의 가족이자 범죄 동료, 민기형이다.
원래는 민정수석이라는 고위직에 있었기에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놈이 자진 사퇴를 한 탓에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조만간 빈틈을 노려 그놈의 관저를 한번 쳐들어가 볼 생각이다.
남상민의 말로는 분명 민기형이 주철수를 그곳으로 불렀다고 했으니, 그 장소에도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던 그때.
벌컥!
“대표님!”
“음?”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우재성이 다급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의 이런 표정은 오랜만이었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대표님.”
우재성이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민기형이…… 자살했습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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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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