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28
227화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사퇴를 선언한 전 민정수석비서관 민기형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조사 중이며, 현장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경찰 측에선 근래의 논란에 의한 죄책감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지켜보며 이마를 짚었다.
“하…….”
민기형이 정말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한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 놈이 자신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입막음을 했던 것처럼, 민기형도 그런 이유로 죽은 게 분명하다.
그놈 밑에서 온갖 짓거리를 저지르던 놈이 고작 저런 이유로 자살할 리가.
차라리 선생이 누군가를 시켜 죽였거나, 민기형을 압박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겠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분명 그놈이 개입한 일이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우재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알아서 죽은 건 다행 아닙니까?”
“그건 맞긴 하죠. 하지만 선생은 따로 있습니다.”
“결국 민기형은 선생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네.”
“그럼…….”
우재성의 의문 섞인 표정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민지훈, 기억하십니까?”
“민정수석 둘째 아닙니까. 설마 그 사람이……?”
“아직 추측이긴 한데, 반쯤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정식집에서 뜬금없이 나한테 접근한 것도 이상할뿐더러, 존재 자체가 그냥 수상한 새끼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민기형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아봐야겠죠. 지금은 힘들겠지만, 송 과장님한테 부탁하면 될 겁니다.”
드륵.
어쨌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민기형이 그렇게 된 이상 놈에게 알아낼 수 있는 건 마땅치 않았다.
놈이 유서에 자신과 아들이 저지른 범죄들을 나열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럼 우선 그 교수부터 조져 볼까.’
항상 같은 곳으로 출근하니 찾기는 쉬울 거다.
일단 이놈부터 한번 만나 봐야겠다.
* * *
한 회사의 건물.
똑똑.
“김정우입니다.”
-들어오세요.
서길석을 처리한 민기형의 비서, 김 실장이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탁.
문을 닫고 돌아선 김 실장이 눈앞의 남자를 보며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전달했습니다.”
“그래요.”
안경을 쓴 젊은 남자, 민지훈이 의자를 빙글 돌리며 물었다.
“아버지는 고통 없이 가셨나요?”
“……예.”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은 없었구요?”
김 실장은 태연한 민지훈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도 태연한 표정이라니…… 무서운 놈.’
민지훈의 지시로 민기형의 밑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한 김 실장이지만, 자신의 혈육도 가차 없이 제거할 줄이야.
“원하는 걸 꼭 이루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래요?”
김 실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병 안에 든 액체를 쭉 마시던 민기형을 떠올렸다.
민지훈은 아버지의 죽음이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제가 직접 블렌드한 걸로 드렸으니 편하게 가셨을 거예요.”
“……예.”
“이제 남은 게 누구죠?”
그 말에 김 실장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파악했다.
경찰에 넘어가거나 붙잡힌 이들 중 입막음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성자를 포함해 기타 등등은 죽거나 입을 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몇 명이 남아 있었다.
“정민수 목사와 남상민, 한인석 정도만 처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거밖에 없어요?”
“아…….”
“관련자는 전부 제거하세요.”
“전부 말입니까?”
김 실장은 살짝 당황했다.
관련자라고 하면 그 살인마부터 강북도끼파 잔당들까지 다 포함일 텐데,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이란 말인가?
당황한 듯한 그의 표정에 민지훈은 안경을 슬쩍 올리며 말했다.
“잔챙이들은 굳이 손댈 필요 없고, 이쪽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것들만 처리하세요.”
그 많은 사람을 일일이 없앨 생각을 하니 막막한 기분이었지만, 명령을 받은 이상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아, 강 권사님도 포함입니다.”
그 말에 김 실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정말이십니까?”
“네. 혹시 구출 가능성이라도 있나요?”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적진 한복판에 있을뿐더러 정확한 위치도 파악되지 않았으니…….”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정보가 샐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광신도처럼 자신을 따르던 충직한 사람을 내치겠다니.
게다가 강유찬이라면 설령 심문을 당하더라도 민지훈의 정보를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지훈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것처럼 무심하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해요. 그리고 이제 이쪽으로는 찾아오지 마시고요.”
“예? 어째 섭니까?”
“음.”
잠시 생각하던 민지훈이 눈썹을 까딱였다.
“혹시 모르니까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문자로 해요. 문자로.”
“예.”
“가 봐요.”
달칵.
김 실장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바깥으로 나갔다.
“후…….”
페이를 잘 쳐 주니 민지훈 밑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부품처럼 갈아치워 버리는 걸 보고 있자면 마음 한구석이 영 걸렸다.
‘돈은 많이 주는데…… 고용불안이 너무 심하단 말이지.’
그렇다고 또 중간에 직장을 옮길 수도 없다.
물론 어떤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여기에 발을 들인 것이긴 하나,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나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거기다 상사가 제거하려는 사람이 자신이 조교로 있던 부대 출신이라니 더더욱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저 지독한 놈한테 찍힌 건지.
김 실장은 이런저런 상념을 접고 증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민지훈은 김 실장이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김정우 실장…….’
일처리도 빠릿빠릿하고 특수부대 출신이라 실력도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며 너무 많은 걸 보고 들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처리하는 게 나으려나.’
일단 써먹을 수 있는 데까지 써먹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게다가 그 부대 출신이기도 하니까.
그리 생각한 민지훈은 책상 서랍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뭐야?
“정광제 사장님? 어떻게, 요새는 좀 지낼 만하십니까?”
부산에서 밀수를 통해 선생에게 물자를 넘기던 국제파의 두목, 정광제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선생이요?
“부탁드릴 게 하나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갑자기 무슨 부탁? 지금 내 꼬라지는 알고 얘기하는 거요? 누구 때문에 내가 지금 이런 신세가 됐는데.
“일을 제대로 처리 못 한 건 정 사장님인데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
“정 사장님이 드라콘과의 관계를 대차게 말아드시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민지훈의 말에 정광제는 순간 혹했다.
그를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게 한 원이기도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도망자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요.
“간단합니다.”
씨익.
민지훈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딱 한 사람만 죽여 주시면 됩니다.”
* * *
부웅-
“그래서 유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겁니까?”
-예. 지금은 그쪽 서에서만 확인한 상황이라, 나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차를 몰며 송태석 과장과 전화로 정보를 공유했다.
민지훈이 의심된다고 말하니 송태석은 서길석의 사망 소식을 알려 왔다.
“……서길석이 말입니까?”
-예.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웠습니다.
“자살입니까?”
-그건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일단 보기엔 외부 침입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대신 의심이 가는 점이 하나 있다면, 서길석의 부인이 말하길 민기형을 만나러 간다면서 옷을 입고 나갔답니다.
“그럼 자살이 아닐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정황상 그렇긴 합니다. 아내의 증언도 있으니……. 대신 누군가 개입했다는 흔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없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서길석 같은 수전노가 모든 걸 버리고 자살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민기형을 만난다고 해 놓고 갑자기 죽었다는 건, 분명 누군가 작업을 친 거다.
그게 아니고서야 서길석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알아내는 대로 바로 연락해 주세요.”
-예.
꾹.
전화를 끊고 눈앞에 보이는 건물 정문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전에 민수진을 감기 위해 찾아왔던 서명대학교. 알고 보니 민지훈도 여기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더라고.
끼익.
나는 자연계열 학과들이 위치한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탁.
차에서 내린 뒤, 트렁크를 열어 금속이 박힌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그리고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렸다.
민수진이 있는 회화과는 방학이라 사람이 없었지만, 여기 대학원 건물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돌아다녔다.
좋은 일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굳이 내 얼굴을 까고 다닐 필요는 없겠지.
저벅.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금세 시선을 돌렸다.
다들 얼굴에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는 게, 남한테 신경 쓸 여력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연구복을 입은 사람들을 지나 그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교수 이윤종]이윤종 교수.
알아본 바로는 화학계에선 나름 유명한 논문도 내고 꽤 잘 나가는 사람이던데.
민지훈과 어느 정도로 관계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론 서명대학교에서 이윤종의 연구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게다가 마약을 주로 다루는 선생과 화학과라니. 두 단어에서 뭔가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똑똑.
일단 주저하지 않고 이윤종의 교수실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안에서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은 강의가 없을 텐데.’
혹시 자리에 없을까 봐 이윤종의 강의 시간까지 알아보고 찾아온 건데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교수님 찾으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리니, 그나마 상태가 좀 좋아 보이는 학생 하나가 손가락으로 복도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자리에 안 계실 거예요.”
“아, 예. 감사합니다. 혹시 언제 돌아오시는진 아세요?”
“저야 모르죠. 원래 자주 나가세요.”
이윤종의 위치를 알려준 학생은 고개를 까딱하곤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갔다.
“쯧.”
기껏 찾아왔는데 자리를 비웠다니.
언제 복귀할지도 모르니 만나려면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고민하던 그때, 품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누군가 보니 우재성이었다.
“여보세요?”
-대표님. 혹시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예. 무슨 일입니까?”
-이윤종 교수 말입니다. 제가 논문 몇 개를 찾아봤는데……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걸 발견해서 말입니다.
“단서요?”
논문에 뭐가 있었다고?
자세히 읽어 보지는 않았는데, 내가 알기론 아마 약에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논문에 하나같이 신약 개발과 관련된 내용이 있더군요.
“신약 개발이라면…….”
-저도 그 분야에 조예가 있는 건 아니라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윤종 교수는 신약을 개발하는데 욕심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흠……. 이윤종이 민지훈과 함께하는 이유가 신약 개발일 수도 있단 겁니까?”
-추측일 뿐이지만요.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으로부터 3년 뒤,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바이러스가 나타난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그때가 왔을 때 선생 놈은 건드릴 수 없을 만큼의 부를 쌓게 된다.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나왔던 치료제, 타미플루.
선생은 분명 이걸 이용해 뭔가를 꾸미려고 할 거다.
우선 이윤종 교수의 행방부터 알아봐야겠어.
휙.
나는 굳은 표정으로 교수실 앞에서 몸을 돌렸다.
‘절대 네 뜻대로 되게 두진 않는다. 민지훈.’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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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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