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30
229화
회사로 돌아가던 길. 원래 흥신소를 맡았던 최용달에게 연락이 왔다.
“어. 웬일이에요?”
-한 가지 전달할 게 있다. 아무래도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뭡니까?”
-정광제가 부산을 벗어났어.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정광제가? 부산 경찰들이 찾고 있을 텐데요.”
-그놈 은신처를 몇 곳 추려서 조사 중이었는데, 거기서 정광제가 차를 타고 나가서 고속도로를 타는 걸 확인했다고 한다.
“흠…….”
얌전히 찌그러져 있던 놈이 왜 갑자기 움직인 거지?
밖에 나돌아다녀 봤자 좋을 거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웅크려있던 정광제가 몸을 일으킨 걸까.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 못 했고?”
-그것까진 아직. 애들이 따라붙고 있긴 하다.
“일단 알겠습니다. 계속 알아봐 줘요.”
-그래.
뚝.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정광제는 선생의 오더를 받아 러시아 마피아들을 통해 마약과 무기를 밀수하던 깡패 놈이다.
주철수와 같이 곽환성 밑에 있던 깡패이기도 하고.
그런 놈이 갑자기 부산을 떠났다는 건…….
‘선생이 부른 거겠지.’
정광제 입장에선 수배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선 선생 밑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거다.
일을 좀 말아먹긴 했지만, 그래도 하청을 맡아 일한 전적이 있으니까.
오갈 데 없어진 정광제가 붙을 구석이 그쪽밖에 더 있나.
“흠…….”
그렇게 나는 이윤종 박사가 들어간 빌딩에서 누가 튀어나올까 싶어 차 안에서 대기했다.
어떤 놈들이 저길 출입하는지 알면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몸을 숨기기 위해 시트를 살짝 뒤로 눕히려는데.
똑똑.
“음?”
웬 남자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지잉-
“누구십니까?”
내 물음에 남자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주차하시면 안 됩니다.”
“잠깐만 있다 갈 겁니다. 근데 누구시길래 이러세요?”
“여기 직원입니다. 죄송하지만 빌딩 앞은 차를 대실 수 없습니다.”
단호한 남자의 말을 듣고 손가락으로 빌딩을 가리켰다.
“아니. 대체 뭐 하는 데길래 길 건너까지 차를 못 대게 합니까? 국정원이라도 돼요?”
일부러 아니꼬운 태도를 보이자 남자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빼시라고. 더러운 꼴 보기 전에.”
“어어? 말을 막 놓네?”
이 새끼 상판부터 그쪽 업계에서 굴러먹던 놈인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가, 초면에 말이 영 짧네.
탁.
나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 당당한 태도에 남자가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목을 뚜둑 꺾으며 다가왔다.
“가랄 때 갈 것이지…….”
다가오는 놈 뒤로 혹시 누가 있나 살폈다.
다행히 나와 이놈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표정을 바꿔 손짓했다.
“야. 들어와 봐.”
“이 새끼가 돌았……!”
콱!
험악한 표정을 짓는 놈의 턱을 돌린 뒤,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지는 몸뚱이를 콱 붙잡았다.
“어이쿠. 이 친구가 취했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뒷자리 문을 열어 축 늘어진 놈을 눕혔다.
“크흠.”
주변을 살피며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이놈이 어떤 역할인지는 몰라도, 일단 데려가 보면 뭐라도 알아낼 수 있겠지.
부릉-
나는 다시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잔챙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네.
* * *
그 시각, 인천.
스미요시카이의 부두목이자 과거 선생과 인연이 있던 야쿠자, 스가와라 켄타는 업장 관리 겸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부웅-
“양동철은 좀 어떤가.”
스가와라의 질문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미우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습니다.”
“그래?”
“예.”
“그렇게 박살이 나고도 용케 마음을 잡은 모양이군.”
가진바 무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사람을 다룰 줄 알고 사업 수완도 나쁘지 않은 자다.
인천을 접수하고 나서도 굳이 양동철의 조직을 남겨놓은 이유기도 하다.
미우라는 단 4명으로 양동철의 사무실을 휘저어놓은 그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정도 무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인천은 물론, 본토에 돌아가서도 큰 도움이 될 터. 우리 회의 휘하로 들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누군가의 밑에 있을 자들은 아니란 거겠지.”
스가와라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애초에 나도 그런 놈을 조직에 들일 생각은 없다.”
“어째섭니까?”
이주혁의 목표를 떠올린 스가와라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들려는 남자다. 거기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그렇군요……. 그럼 그 남자를 돕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글쎄……. 응원하고 싶긴 하다만…….”
괜히 도왔다간 녀석의 보복을 당할 수도 있을뿐더러, 본토에 있는 식구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우선 지켜보는 수밖에.
지금까진 운이든 요행이든 선생을 잘 상대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정말 그 거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는 미지수니 말이다.
“미우라. 넌 그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지?”
“그 남자 말입니까.”
미우라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강하고 배짱이 있습니다. 조직을 꾸린다면 단숨에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만한 능력을 갖춘 듯 보였습니다.”
“그 점은 나도 동감이다. 시간만 있다면 용의 머리까지 노려볼 법한 녀석이지.”
“평가가 후하십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거기까지가 한계다.”
단호한 투로 스가와라가 말을 이었다.
“이쪽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할 수 있겠나?”
“그럼, 그 남자는 결국 그에게 닿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미우라의 물음에 스가와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조용히 입을 뗐다.
“그건 또 모르겠군.”
“예?”
“담배 하나만 주겠나.”
“끊으셨잖습니까.”
“하나만 줘.”
칙.
미우라는 더 이상 만류하지 않고 얌전히 담배에 불을 붙여 줬다.
“쓰읍…….”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스가와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반백 년이 넘도록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며 나름 사람 보는 법을 통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
“그런 생각도 든다.”
스가와라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거대한 흐름의 시작을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야.”
* * *
“이놈이냐?”
나는 히죽거리는 백기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신입이네. 얘는 뭐 하던 놈인데?”
“알잖냐. 내가 요새 교수 하나 쫓아다니는 거. 그놈이 어떤 빌딩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 경빈지 직원인지 갑자기 와서 차 빼라면서 협박을 하더라고.”
“주차 요원이야? 이 새끼.”
붙잡아온 놈은 핏발이 선 눈으로 우리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손발이 의자에 묶이고 입에는 청테이프가 발린 탓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으읍!”
“떼 봐.”
찌익!
“이 X발 놈들! 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칵!”
퍼억!
명치를 발로 차주니 놈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백기준은 쓰러지는 의자를 턱 붙잡고 다시 세웠다.
“초장부터 비협조적이네. 뭐, 다들 그랬지만.”
아직도 거꾸로 매달려 있는 강 권사 쪽을 힐끗 쳐다본 백기준이 아직도 컥컥대는 녀석에게 물었다.
“이름.”
“크윽…….”
“이름. 새끼야.”
딱!
“악! 김, 김진수.”
“어디 소속이냐?”
백기준의 물음에 김진수가 독기에 찬 표정을 지었다.
“개새끼들. 이런 짓을 한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나?”
“아, 됐고.”
진부한 소리는 사절이다.
적당히 백기준에게 눈짓하고 지하실을 떠났다.
내 예상으론…… 딱 5분이지 않을까.
.
.
.
저벅.
나는 인원이 늘어 확장한 대련실을 구경하다 다시 내려왔다.
그러자 고분고분해진 채 묶여 있는 김진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대충 작업해 놨으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고맙다.”
턱.
입에서 침을 뚝뚝 흘리는 김진수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그 빌딩, 뭐 하는 곳이냐?”
“비, 빌딩 말입니까?”
“네가 주차 단속하던 거기.”
“아. 그, 호정기획 건물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내가 지금 그런 걸 묻는 것 같나?”
“…….”
내 말에 김진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영락없이 기밀을 불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혹시 그곳에서 비밀 회담이라도 하는 건가?”
추측한 걸 말해주자 김진수가 정곡을 찔린 듯 흠칫했다.
맞나 보네. 괜히 이윤종 박사가 그리로 들어간 게 아니었어.
콱.
나는 김진수의 멱살을 잡고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했다.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그래야 내가 널 살려 줄지 말지 고민이라도 해 볼 수 있으니까.”
김진수는 조금 전에 보여 줬던 충성심 가득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다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높으신 분들이 모, 모이는 곳입니다.”
“자주 모이나?”
“아뇨. 그건 아니고…… 별일 없으면 한 달 주기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멤버들 리스트, 불러 봐.”
“그건 저도 잘…….”
“모른다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지긋이 노려봐 주자, 녀석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듯 눈이 이리저리 돌아갔다.
“애초에 얼굴도 보여 주지 않는 양반들입니다. 선팅 빡세게 한 차로 그냥 들어가 버리는데 말단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믿어 주십쇼.”
“이 새끼……. 그래도 뭐 아는 게 있을 거 아냐?”
잠시 고민하던 김진수가 헐레벌떡 답했다.
“그, 그러고 보니까 이번엔 들어오는 차가 저번보다 줄었던 것 같습니다.”
“줄었다고?”
“예. 원래는 주기마다 일고여덟 대는 넘게 들어왔었는데, 이번엔 한 네다섯 대……? 그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흠.”
나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대충 선생과 관련된 놈들이 모이는 걸 ‘모임’이라고 부른다 쳤을 때.
이 녀석의 말대로면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최소 7, 8명 정도는 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모임에는 서넛이 빠진 인원만 참석했다는 거고.
‘설마?’
짚이는 게 없진 않았다.
주철수부터 시작해 서길석, 민기형까지 저세상으로 가 버렸으니, 만약 이놈들이 그 모임의 일원이었다면 당연히 머릿수가 줄 수밖에 없을 거다.
내가 예상한 대로 그 모임이 선생이 주최하는 거라면…….
그 모임에 참석한 놈들만 족치면 된다는 소리네.
희망적인 관측을 하던 내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밀고 들어갈 순 없어.’
선생 놈과 주기적으로 회담을 가질 정도라면 분명 건드리기 쉽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게 권력이든, 재력이든, 무력이든 간에.
게다가 내가 다짜고짜 두들겨 패서 경찰에 넘겨도 경찰은 날 폭행죄로 잡아넣겠지.
그리고 하나하나 일일이 작업을 쳐서 무너뜨린다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시간과 힘을 들여 그것들을 쳐낸다고 해도 분명 다른 나쁜 놈들이 새로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구심점을 없애는 것.’
선생은 뒤 세계의 거물이자, 겉으로는 고인이 된 민정수석의 아들이다.
그 위세를 업고 정계의 인사들과도 연을 맺어 놨을 거고, 휘하에 무력 집단도 존재할 터.
저 모임의 중심이 되는 선생 놈만 무너뜨릴 수 있다면.
꽈악.
선생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것도 꿈이 아니다.
“기준아. 정리하고 올라와라.”
“그래.”
나는 굳은 표정으로 지하실 계단을 올랐다.
민지훈. 언제부터 이런 짓을 꾸민 건지는 모르겠지만…….
씨익.
네가 쌓아 올린 금자탑은 내 손으로 직접 무너뜨려 주마.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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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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