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31
230화
회의가 파한 뒤, 호정기획의 사장실.
“…….”
두 사람이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둘 중 더 나이가 든 남자, 정광제가 거만한 자세로 다리를 꼬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박광훈 부회장을 또 이렇게 보네예.”
정광제의 가슴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처음에는 선생이 부르길래 마음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보니 그가 자신을 왜 서울로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주철수, 그놈 후임으로 정한 거야.’
서울의 뒤 세계를 장악했던 강남파의 수장.
그가 알기론 주철수는 선생을 도와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조직의 기업화를 준비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주철수의 강남파는 웬 애송이 집단에 의해 무너졌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 많은 인원을 통솔할 수 있는 주철수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그로 인해 그 위세 높던 강남파는 조각조각 찢어져 공중분해 되어 버렸지 않은가.
그렇다면 선생으로선 강남파를 대체할 만한 조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 국제파겠지.’
서울은 주철수가 먹었어도,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 경남 일대는 국제파의 관리하에 있다.
어떻게 보면 전국에서 강남파 다음가는 게 국제파란 소리다.
그래서 선생이 정광제가 수배자임에도 불구하고 불러들인 게 분명하다.
정광제의 머릿속은 야망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박광훈. 이 어린놈을 이용하면 러시아와의 트러블로 줄어든 자금줄을 다시 이어붙일 수 있을 터.
‘주철수. 그 재수 없는 새끼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거다.’
지금은 선생 밑에서 납작 엎드리고 있겠지만, 언젠가는 분명…….
“정광제 씨?”
망상을 이어 가던 정광제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예.”
“하나 확실히 하고 갑시다.”
“어떤 걸…….”
스윽.
박광훈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호 간의 예의는 지킵시다.”
“예?”
“다리도 푸시고.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갑자기 훅 들어온 말에 정광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미안합니더. 내가 배움이 부족해가.”
“쯧.”
박광훈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척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제스처에 정광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뭐라 입을 뗄 순 없었다. 지금은 철저히 두 사람 중 박광훈이 위에 있었으니 말이다.
정광제가 연신 굽신대자 박광훈이 손짓했다.
“일단 오늘은 초면이니 안면만 트는 걸로 하고…… 다음에 제 쪽에서 먼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예. 편하신 대로 하이소.”
“가 보세요.”
“그냥 가라고예?”
“뭐 볼일이라도 더 있으십니까?”
굴욕감을 숨긴 정광제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더. 그라믄 먼저 일어나 볼께예.”
“멀리 안 나갑니다.”
끼익.
정광제는 문을 닫고 나오며 주먹을 꽉 쥐었다.
‘건방진 애새끼.’
선생도 그렇고, 저놈도 그렇고.
끽해봤자 30년 정도밖에 안 산 놈들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뻗대니 열이 치밀었다.
“후.”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그놈들 밑에서 몸을 사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위로 올라설 날이 올 것이다.
저벅.
정광제가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고 보자.’
* * *
“우리가 공리회라고 부르는 게 혹시 그 모임은 아닐까?”
나는 광철이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내 설명을 들은 아저씨의 추측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어떻게 말이냐?”
“공리회는 선생 놈의 파벌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엄밀히 말하면 민기형을 위시한 정계의 인사들이죠.”
“민기형의 계파가 공리회라는 건가?”
“확실하진 않지만요.”
아저씨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완전히 선생의 편에 선 사람만 그 천칭자리 표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렇죠. 일단 최우선으로 그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캐 볼 생각이에요.”
내 말을 들은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혼자선 위험하다.”
“혼자도 아닌데요, 뭐. 저희 직원들이 어디 출신인지 잊으셨어요?”
“그래도 인마.”
“괜찮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생각 없이 움직이진 않거든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아저씨도 더 말리긴 글렀다고 생각하셨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대신 무조건 네 안전부터 챙겨야 한다.”
“알았어요. 저도 벌어 놓은 돈 다 쓰기 전엔 죽어도 죽을 생각 없습니다.”
피식 웃은 아저씨가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나저나, 내가 할 말 있다고 했잖냐.”
“그러셨죠.”
만나자고 연락을 드렸을 때, 분명 아저씨가 말해 줄 게 있다고 하셨지.
“안 그래도 내가 따로 판교 투자자 리스트에 있던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들어 나랑 만나는 걸 꺼리는 느낌이 들더라고.”
“꺼린다고요?”
“어. 원래는 시간 곧잘 내주고 했었는데, 온갖 핑계를 대면서 은근히 피하는 것 같달까.”
“이유는 모르시고요?”
광철이 아저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마 선생이 언질한 게 아닐까 싶다. 너랑 내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음?”
“아저씨와 만난 건 몇 달 전이죠. 그럼, 선생도 그때 아저씨의 존재를 알아채지 않았을까요?”
“그렇겠지. 어디 숨어서 몰래 접선한 것도 아니니까.”
그동안 아저씨는 민기형에게 붙은 정계 인사들을 만나며 이런저런 정보를 빼내셨다.
내가 의문스러운 점도 이거다.
왜 진작에 아저씨가 접촉하는 걸 막지 않은 거지?
그럴 이유도, 힘도 있는데 말이야.
이런 점을 설명하니, 아저씨도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인상을 구겼다.
“그러게. 왜 그런 거지? 무슨 의도로?”
“글쎄요…….”
의심스럽긴 하지만,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 아저씨는 당분간 몸조심하세요. 그쪽 사람들 만나지도 마시고.”
“어차피 만나 주지도 않는데, 뭐. 알았다.”
곧바로 수긍한 아저씨가 덧붙였다.
“대신,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나한테 말해라. 하는 일 없이 숨어 있기만 할 순 없잖냐.”
“알았어요.”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저씨의 뒷자리에 앉아있는 녀석을 불렀다.
“야. 건한아.”
“음?”
우직하게 보초를 서던 윤건한이 슬쩍 다가왔다.
녀석의 자리를 보니 음료를 시키지도 않은 건지 테이블이 깨끗했다.
“뭐라도 시켜 놓고 기다리지. 월급도 많이 받는 놈이…….”
“어머니한테 다 줬다.”
“하여튼 효자 새끼. 아저씨 사무실에는 또 무슨 일 없었어?”
“근처에 수상한 사람들이 몇 번 돌아다니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았어.”
“다행이네.”
혹시 또 테러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나 보다.
“잘 챙겨 드리고.”
“알았다.”
“아저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건한이가 항상 붙어 있는데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래도요.”
자리에서 일어난 광철이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배웅은 됐다. 너도 바쁠 테니 일 봐라.”
“들어가세요.”
나는 성큼성큼 카페를 떠나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한결 팀장이 그렇게 된 후로 계속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우리 팀원들이 경호를 맡아 주니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요인들을 지키는 데만 신경을 써야 했을 거다.
꿀꺽.
나도 남은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고 몸을 일으켰다.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우웅-.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온 통화를 받자, 전화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알아봤냐?”
-그래.
해커, 고세운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시켜 먹는 거 아냐? 날 편할 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하는 느낌인데.
“그럴 리가. 내가 소중한 직원을 그렇게 생각하겠어? 정말 중요한 정보라서 너한테 부탁한 거다.”
-애초에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잖아.
뭐, 그렇긴 한데.
이 녀석한테 시키면 잡다한 정보가 더 딸려 나오니 보기가 좋단 말이지.
“그래서, 뭐 시키지 말란 말이냐?”
-그래. 나도 개인적으로 하던 일이 있는데, 이런 자잘한 것까지…….
“고상미 씨가 지금 회사에 있던가.”
-메일로 보내 놨다. 확인해 봐.
고세운은 누나를 언급하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진작 이러면 얼마나 좋아?
“고맙다.”
-……끼.
뚝.
뭐라 중얼거린 고세운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탁.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차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꺼내 책상에 올렸다.
딸깍. 딸깍.
메일함을 열어 고세운에게 부탁한 정보를 확인했다.
[박광훈]내용을 훑어보니, 이윤종 박사가 들어갔던 그 빌딩은 호정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호정기획의 소유였다.
이 박광훈이라는 놈은 기획사의 사장이자 호정그룹의 부회장이고.
“호정그룹이라…….”
모를 수가 없는 이름에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회귀하기 전, 주철수의 DG그룹은 재계 3위였다.
그리고 그 위, 폭발적인 성장세로 확고한 재계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던 기업이 존재했다.
그 기업이 바로 이 호정그룹. 지금은 부회장인 박광훈이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이룬 일이다.
‘설마, 호정그룹도 선생 놈과 한패였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선생 그놈은 배후에서 두 그룹을 재계 1위와 3위 기업으로 만들었다는 소리다.
국내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꽤 잡음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겠네.
탁.
노트북을 덮으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알아낸 일명 ‘모임’의 참석자들은 대략 둘. 선생과 박광훈이다.
이외에 민기형이나 서길석, 마테오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이건 확실하지 않으니 넘겨 두고.
모임의 나머지도 알아내면 좋을 텐데…… 무슨 방법이 없으려나.
딸랑-.
그렇게 카페를 나서는데.
“어?”
길 건너 어디서 본 듯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얼굴을 봤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었다.
“아!”
떠올랐다.
강 권사의 함정 의뢰를 받고 부산에 내려갔을 때 마주쳤던 놈이다.
정광제의 부하였는데, 그땐 횟집 사장으로 일하고 있었지.
나는 반가운 얼굴로 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너갔다.
“어이!”
“음?”
이름을 들었는지도 기억 안 나는 횟집 사장을 부르자, 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이내 사색이 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너, 너, 너는……!”
“오랜만이다?”
“니가 왜 여기에…….”
“서울 사니까 서울에 있지. 조용히 따라와.”
“컥.”
나는 횟집 사장의 뒷덜미를 붙잡고 바로 옆 상가 건물로 끌고 들어갔다.
안에 사람도 없고, 딱 대화하기 좋은 분위기네.
“와, 와 이라십니꺼?”
“닥쳐. 조용히 해.”
“…….”
이놈이 서울에 있다는 건, 정광제와 국제파 조직원들까지 위로 올라왔다는 뜻이겠지.
나는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어서 횟집 사장에게 물었다.
“정광제 어딨어?”
“그, 그건…….”
“잠시 어디 간다면서 자리 비우지 않았나?”
“그란 적 없십니더.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예.”
“어디 간 거 맞잖아. 아니야?”
잠시 망설이던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긴 한데…….”
역시. 정광제도 그 ‘모임’의 일원이었나?
아마 나 때문에 주철수부터 이런저런 놈들이 나가떨어지면서 인원이 준 탓에 추가된 모양이다.
“오케이.”
목표를 정했다.
민지훈? 동선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을뿐더러, 정·재계에 깊숙이 얽혀 있어 쉽사리 건드릴 수 없다.
박광훈은 아직 정보도 부족하고, 겉으로는 단순 기업인이기에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건 어불성설.
그럼 남은 건 하나.
깡패 놈이라 두들겨 패도 문제가 없으며, 경찰에 던져 줘도 이미 혐의가 있어 순식간에 처리가 가능한 놈.
이놈을 먼저 조져야겠다.
‘정광제.’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찾아갈 테니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