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서해결은 박건과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초인종을 한 번 더 눌렀다.
삐익-
박건이 조사할 건 다 조사했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직접 한번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네. 들어오세요.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해결은 대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러자 조금 초췌한 인상의 민수진이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세요?”
“중앙지방검찰청 서해결 검사입니다. 잠시 말씀 좀 여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얘기할 건 아까 그분한테 다 얘기했는데요.”
민수진은 날카로운 투로 대답했다.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다곤 했지만, 정말로 아빠와 할아버지 둘 다 목숨을 끊을 줄은 몰랐다.
마치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는 생각에 민수진은 최근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지쳐 버린 민수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가족들이 여러 가지로 잘못을 저지른 건 알아요. 대신 다들 죗값을 치렀잖아요. 또 뭐가 궁금하신 거예요?”
이주혁에게 듣기론, 민수진은 범죄 행위에 가담하진 않았다.
서해결은 가족들을 잃고 고통받는 민수진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연민은 연민. 법은 법이다.
그리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민수진 씨.”
“네?”
“민지훈 씨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지훈 오빠요?”
민수진은 생각지 못한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어봤자 할아버지의 마약 사건이나 아빠의 비리 청탁이거니 생각했기에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혹시 오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혹시 민지훈 씨가 민수진 씨에게 뭔가를 물어보거나 알려 준 적이 있습니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는데요. 설마 지훈 오빠한테서 혐의점을 찾는다거나, 이런 건 아니겠죠? 오빠는 어릴 때부터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어요. 범죄 같은 일에 엮일 일 없다구요.”
서해결은 민수진의 반응을 보고 착잡해졌다.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 가면을 쓰니, 뒤에서 무슨 짓거리를 해도 명백한 증거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선생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될 준비를 한 건지.
아니면 그런 인물이기에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건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여기서 민지훈은 어떤 사람이었나, 이런 것들을 물어보면 오히려 경계심만 사게 된다.
‘오늘은 돌아가야겠군.’
이주혁과 인연이 있다고 했으니, 나중에 그와 같이 오든지 해야겠다.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아? 아, 네.”
그리 생각한 서해결은 민수진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민수진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황당한 듯 중얼거렸다.
“뭐야. 고작 그거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뉴스에서 몇 번 본 검사 같은데,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 버렸다.
끼익.
민수진은 현관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지훈 오빠에 관한 걸 왜 물어본 거지?’
검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별 이유도 없이 질문을 던질 리는 없다.
“뭔가 이유가…….”
“무슨 이유?”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민수진이 고개를 들었다.
“배웅이 꽤 오래 걸렸네.”
차를 홀짝이는 민지훈의 물음에 민수진은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그건 아니고, 그분 가고 나서 검사라는 사람이 찾아왔거든.”
“검사?”
민지훈의 눈빛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들어와서 얘기하지 그랬어. 그리고, 그 검사가 뭐라고 했길래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그게…….”
검사와 나눈 대화 내용을 말해 주려던 민수진은 순간 멈칫했다.
왠지 모르게, 이쪽을 쳐다보는 민지훈의 눈빛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왜 그래. 괜찮아?”
“어어.”
“아버지 빈소 지킨다고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슬슬 들어가 쉬어. 나도 가 볼 테니까.”
“아냐. 안 그래도…….”
“쉬어.”
민지훈은 반론을 더 듣지 않고 민수진을 방에 집어넣었다.
탁.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검사라…….”
씨익.
민지훈이 하늘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서해결 검사. 아까운 사람이란 말이지.’
악인들에게는 법으로 정의의 심판을 내리겠다는 강한 신념. 서해결은 그 신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원래 신념이나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들은 그 방향을 조금만 바꿔 주면 쉽게 조종할 수 있다.
그게 새사람 교회로 각계의 높으신 분들을 끌어들이는 게 가능했던 이유다.
그중에선 청탁과 뇌물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정말로 ‘성자’를 위시한 이 교리에 빠진 사람도 존재했으니.
결론은, 사상과 신념이 확실한 사람이라도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인다면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냥 처리하기엔 미련이 남고. 설득을 통해 내 편으로 삼기엔 쉽게 넘어올 사람도 아니고.’
서해결. 여러모로 계륵 같은 사람이었다.
그 대쪽 같은 심성을 어떻게든 이쪽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러나 동생이 죽은 탓에 이쪽을 원망하고 있을 터.
만약 그가 유연한 자였다면 이리저리 구부릴 수 있었겠으나, 강직하고 딱딱한 사람이니 이쪽으로 옮기려면 땅에서 뿌리를 뽑아 새로 심어야 한다.
하지만 그 땅은 이주혁이라는 만만찮은 주인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을 것이다.
‘쉽게 죽지도 않고, 골칫거리란 말이야.’
처음에는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 생각해 호기심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이 자리를 언젠가 위협할 존재로 성장하고 있었다.
단순히 궁금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접근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주혁이 ‘선생’의 위험성을 깨닫기도 했을 거고, 이미 대화를 나누기엔 서로 난타전을 벌인 상황.
자신이면 몰라도, 이주혁은 이 링 위에서 한 명이 내려가기 전까진 여유롭게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주혁은 보통 독한 놈이 아니다.
무리하게 이주혁을 제압하려다 예상치 못한 카운터를 맞게 되면, 그동안 계획해 온 목표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
‘이제 정말 조만간이다.’
꾸욱.
주먹을 말아 쥔 민지훈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이주혁. 당분간은 내 계획대로만 움직여 주길 바란다.’
* * *
“어때? 신사답게 대화하는 게?”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괴한이 태연하게 제안을 꺼냈다.
조금 전 정광제와 강권사, 두 사람을 골로 보냈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태연한 태도였다.
그때, 소란에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배상훈이 멈칫하며 말했다.
“어? 저 사람은……?”
“?”
내가 잘 모르는 눈치자 배상훈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야. 설마 까먹었냐? 우리 부대에서 조교 하셨던 선임이시잖아. 부장님이랑 북에 파견도 같이 가던 사인데.”
“아!”
저 말을 들으니 기억났다.
김정우. 내가 신병이던 시절 조교로, HID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실력으로 이름이 난 사람이었다.
회귀를 하지 않았다면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 기억이 잘 났겠지만, 사실상 지금 내 입장에선 부대 시절은 얼추 20년 전 이야기다.
게다가 부장님과는 친했어도 우리와는 개인적인 친분은 그리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옆에서 근육을 꿈틀대는 부장님을 향해 물었다.
“부장님.”
“어?”
“부장님이 위죠?”
내 말에 부장님은 잠시 고민하다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당연하지. 현역 시절에도 내 발끝에 미치지도 못했던 놈이다.”
“뭐?”
가만히 듣고 있던 김정우가 발끈했다.
“이 미친놈. 너, 나 아니었으면 서너 번도 넘게 뒈졌을 거다.”
“어쩌라고. 허접한 새끼야. 그러는 너는 그렇게 잘나서 사람들 모가지나 따고 다니냐?”
“…….”
“뜬금없이 나타나서 우리가 잡아야 할 놈들을 싹 다 죽여 버린 걸 보아하니 대충 이 판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는 것 같은데, 나쁜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놈 밑에 붙어서 뒤나 닦아 주는 꼴이 참 보기 좋다. 오랜만에 보는데 이렇게 만나니 참 유쾌한 기분이라고.”
잘한다. 잘해.
부장님이 말을 쏟아 내자 김정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야. 김정우.”
“왜?”
“마지막 기회를 준다. 여기 애들 보이지?”
어느새 우르르 몰려온 우리 팀원들이 뒷골목 양아치처럼 김정우를 둘러싼 채 쳐다보고 있었다.
“물속으로 튀어도 쫓아가서 먼지 나게 패 줄 테니까.”
“아,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도망갈 거였으면 여기 이렇게 나타났겠냐?”
김정우는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이 두 사람 일은 미안하다. 사과할게. 나도 명령을 받은 입장이라 어쩔 수 없었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도 알잖아. 그놈, 수틀리면 자기 부하들도 순식간에 갈아치워 버리는 거.”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하던 김정우가 고개를 까딱했다.
“다 설명할 테니,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어때?”
그 말에 나는 개판이 된 부둣가를 둘러봤다.
“그럽시다, 그럼.”
고세운이 알아본 바론 여긴 방치된 부두.
여기 있는 배들도 가끔 시체를 처리할 때나 필요하지, 평소에는 사용하는 사람도 없다고 들었다.
공무원들이 서류 작성을 위해 드문드문 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 현장에 누군가 찾아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다.
그사이 미리 연락해둔 흥신소 직원들이 뒷정리를 할 테고, 그러면 여기서 있었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게 된다.
이런 일은 전문인 것 같으니, 아마 저번처럼 깔끔하게 정리해 주겠지.
‘그놈들 할 일이 좀 많아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근방 CCTV를 해킹해 자료를 날려 버리기도 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욘 없다.
슬슬 다시 돌아가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부장님이 으름장을 놓았다.
“너, 허튼짓하면 죽는다.”
“알았다. 난 단순히 협상을 원하는 거라고.”
김정우는 얌전히 우리가 타고 온 차를 향해 함께 이동했다.
중간에 도망갈 걱정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튈 거라면 정광제와 강 권사를 처리한 이후에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부장님도 있고 고상미도 있으니 가슴 한편이 든든했다.
스윽.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김정우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대체, 그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나 보자고.’
.
.
우리는 SA시큐리티로 돌아왔다.
고상미 일행은 혹시 몰라서, 일부러 시간 차를 두고 원래 지내던 곳에서 잠시 대기하기로 했다.
탁.
차 문을 닫고 내리며 부장님과 김정우가 있는 뒷좌석을 향해 말했다.
“내리시죠.”
김정우는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차에서 내렸다.
잠수복 그대로 가면 눈에 띄니, 내 트렁크에 있던 옷들을 대충 입힌 거다.
덜컹.
로비로 들어온 뒤, 바깥에서 보는 눈이 없는 걸 확인하며 물었다.
“그럼, 사무실에서 얘기할까요?”
“좋다. 대신, 협상은 너와 나 단둘이서만 진행하는 걸로 하지.”
그 말에 김정우를 철저히 지켜보고 있던 부장님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미친놈이. 네가 지금 그럴 처지냐?”
“내가 순순히 여기까지 따라와 줬는데, 그 정도 호의는 괜찮잖아? 이 대표. 괜찮지?”
“주혁아. 단둘이는 위험해. 아주 음흉한 새끼야.”
“음흉하다니.”
나는 걱정스런 표정의 부장님을 진정시켰다.
“괜찮아요. 저 혼자 있으면 되죠, 뭐.”
“너…….”
저벅.
인상을 찡그리는 부장님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이런 사소한 것보다 저 사람의 정보가 더 중요해요. 제 몸을 지킬 정도는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쯧. 알았다.”
다시 돌아보자 김정우가 물었다.
“얘기는 다 끝난 건가?”
“예. 가시죠.”
“시원시원하군. 좋아. 가자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사무실을 향해 앞장서 걸었다.
그러면서 눈을 살짝 돌리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음?”
“가지고 계신 패가 좋은 패였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별것도 아닌 정보 가지고 이 지랄을 떤 거라면…….
그땐 같은 부대 출신이고 나발이고 없다.
처맞고 시작하는 거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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