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43
242화
SA시큐리티에서 모임이 있고 며칠 후.
한 남자가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신의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하…….”
남자의 정체는 김정우.
HID의 전 조교이자, 현재는 민지훈의 청소부이다.
그는 조만간 몰려올 라세흠과 다른 녀석들을 상상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처음부터 갈기면 되지…….”
민지훈은 최대한 이주혁 일행을 안쪽으로 끌어들이라고 당부했다.
발견하자마자 저격으로 머리를 날려 버리는 짓은 불가능하단 소리다.
그러면 민지훈이 불러 모은 인원들과 그놈들을 상대해야 한단 말이었다.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이쪽으로 흡수할 생각이었으면 그런 도발을 해선 안 됐고, 죽일 생각이었다면 발견 즉시 사살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지시였지만, 김정우는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고용주는 민지훈이었으니까.
‘대체 이주혁 그놈은 뭘 믿고 이 지랄을 하는 걸까.’
이주혁은 민지훈의 결투 신청에 응했다.
무장한 경찰이나 군인을 데려오려는 계획인가 싶은 생각도 들 만큼 무모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본인이 선택한 건데.
김정우는 그저 함정 속으로 몸을 던진 이주혁을 제거하면 된다.
그래도 얼굴 마주하고 지내던 부대원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는 건 조금 걸리긴 하나, 말했다시피 까라면 까는 거다.
스윽.
김정우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저 멀리 육지가 보일 뿐, 사방이 바다였다.
그가 있는 곳은 강화도. 김포시 옆에 있는 커다란 섬의 항구였다.
촤악-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우는 항구에 정박한 대형 화물선에서 새사람 교회의 정예 신자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안에는 민지훈이 직접 탄 상태.
설령 적이 배로 침투해 바로 민지훈에게로 달려가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상황은 종료다.
‘킹’이 잡히는 순간 대국은 종료니까.
끼릭.
김정우는 잘 닦은 총구에 소음기를 돌려 끼우며 생각했다.
중국 가는 호송선에서 빼돌린 용병들이 있긴 하지만, 적에게 패배한 전적이 있는 놈들이다.
이 전쟁의 승패는, 이쪽에서 얼마나 빠르게 이주혁의 모가지를 따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녀석이 바깥에서 화물선을 지키는 인원을 쓰러뜨린 다음에 말이다.
그래야 마지막으로 대화할 때 편하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놈과 관련된 일은 왜 자꾸 빙빙 돌아가는 건지.’
육 대장의 무장 경호대만 동원해도 이주혁 무리는 벌집이 될 텐데, 정작 그 무서운 놈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뭐, 내가 자세히 알 바는 아니지.’
군인 출신인 김정우의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저 시킨 대로, 확실하게.
그의 좌우명대로만 처리하면 될 일이다.
‘언제 오려나…….’
애초에 여긴 섬이다.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루트는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길목마다 인원을 배치하면 이주혁 일행이 어디로 오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지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결정엔 김정우도 동의했다.
그 귀신 같은 라세흠이 누군가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테니.
‘대신 정찰 정도는 내가 해야겠지.’
놈들 눈에 띄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같은 전술을 배운 김정우 정도를 제외하면.
타닥.
김정우는 발걸음을 옮기며 한곳에 수상하게 모여있는 시커먼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서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놈들이다.
대강 짐작 가는 단체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정말 그놈들이면…… 굳이 내가 나설 것까지 없을지도.’
그리 생각한 김정우가 속도를 높여 뛰쳐나갔다.
이제, 그들이 올 시간이었다.
* * *
우르르-
정장을 차려입은 입은 수십 명이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정태섭과 윤건한을 필두로 SA시큐리티의 팀원들, 고광목과 그 수하들.
그리고 고상미의 동생들과 춘식의 부하들까지.
그들은 적진으로 들어가면서도 표정 변화 없이 발걸음만 옮길 뿐이었다.
저벅. 저벅.
그 무리 안에서 같이 움직이던 황성빈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적의 수를 확인했다.
‘미친……. 우리 네다섯 배는 되겠는데?’
대체 어디서 긁어모은 건지, 험상궂게 생긴 깡패들이 흉기를 만지작대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달려들진 않았다.
황성빈은 내심 긴장한 상태로 침을 꿀꺽 삼켰다.
여러 명을 상대로 붙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백 명은 될 법한 깡패들을 마주하니 간담이 서늘했다.
저놈들이 사시미를 한 방씩만 쑤셔도 그대로 다짐육행일 것이다.
“많네.”
“그러게.”
황성빈은 옆에서 긴장한 기색도 없이 도란도란 떠드는 팀원들을 쳐다봤다.
‘이 인간들은 신경이 쇠심줄인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때, 롱코트로 큰 덩치를 감싼 고광목이 황성빈의 옆을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저놈들이 상대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후……. 오랜만에 피가 끓는구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윤건한의 물음에, 고광목은 자신의 사라져 버린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한쪽이 나가리긴 해도…… 어쭙잖은 놈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이어 고광목은 뒤에 도열한 서울광목파 조직원들 쪽을 향해 돌아섰다.
의리와 호기로 따라오긴 했지만, 상대의 수를 보고 다들 조금 위축된 모양새였다.
“아우들아.”
“예, 형님!”
“쫄리면 집에 가라!”
그 말에 조직원들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아닙니다!”
“그런 정신 상태면 여기서 죽는다. 각오가 안 된 놈들은 돌아가!”
고광목의 단호한 표정을 본 조직원들의 얼굴이 결연하게 바뀌었다.
“끝까지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끌어 주십쇼!”
그걸 지켜보던 황성빈은 어디 전쟁터라도 나가는 건가 했지만, 생각해 보니 정말로 곧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후, X바…….”
황성빈은 조용히 쌍욕을 뇌까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앞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적 무리에서 유독 인상이 험악한 남자가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옆에 있던 고광목이 으르렁대며 남자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렸다.
“윤필도……!”
윤필도. 과거 주철수, 정광제와 함께 환성파에 몸을 담았던 조폭이다.
지금은 강릉의 보스로 군림하며 그 일대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윤필도!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과거 그와 악연이 있던 고광목이 윤필도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에 윤필도는 귀를 후비적대며 여유롭게 이쪽을 둘러봤다.
“어이. 고광목이. 데려온 건 이게 다야? 종로 김두한이라는 별명이 아깝다.”
“이 새끼…….”
“오른팔한테 뒤통수 맞았다며? 쯧쯧. 평소에 얼마나 개차반이었으면 배신을 당해?”
“닥쳐라! 네놈이 왜 여기 있는지나 말해!”
서울광목파 몰락의 시발점이었던 사건을 후벼파자 고광목이 발끈했다.
“왜 있냐니. 당연히 돈 벌러 온 거지.”
“단순히 그것만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고.”
윤필도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내 고용주가 서울 땅을 약속했거든. 주철수 뒈지고 나서 빈 땅이잖냐? 알다시피 내가 서울 토박이라 욕심이 좀 나서 말이야.”
“이런…….”
“그런데 서울 땅은 그 재수 없는 주철수랑 멍청한 네가 나눠 먹었지. 그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씨익.
“오늘 네놈을 포함해 부하들까지 싹 다 쳐 죽이고 서울을 먹을 거다.”
뿌득!
고광목이 성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에.
삐리리-.
갑자기 튀어나온 핸드폰 벨소리가 팽팽한 상황을 끊었다.
“아, 잠깐.”
윤필도는 전화를 받고 누군가와 뭐라 대화했다.
그리고 이내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더니, 싸늘한 웃음과 함께 손을 번쩍 들었다.
“얘들아.”
그의 손이 고광목을 향했다.
“죽여라.”
그와 동시에, 윤필도의 뒤에 서 있던 조직원들이 땅을 박차고 달렸다.
와아-!
* * *
조폭 치료 전문, 뒷세계의 거물 의사 신 닥터.
그의 의료 트럭은 지금 SA시큐리티와 윤필도의 패싸움이 보이는 곳에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주혁이 거금을 들여 고용한 탓이었다.
온갖 최신 의료 장비로 가득한 트럭 안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음. 꽤 소질이 있구만. 독학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소.”
“말이 영 짧구만.”
그중 나이가 더 많은 준 백발의 신 닥터가 마주 앉은 고상미의 부하, ‘의사’를 노려봤다.
둘은 이주혁의 지시로 전투 도중 발생하는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여기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쯧. 거기, 밖에!”
신 닥터의 목소리에 트럭 짐칸을 개조한 치료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예! 먼 일 있십니꺼?”
이주혁이 신 닥터의 호위를 맡긴 덩치와 돼지, 난쟁이가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거기 덩치 큰 놈. 여기 지키는 사람은 너희들밖에 없어?”
“예. 그런데예.”
“하……. 기껏 이런 곳까지 왔는데, 경호가 너무 허술한 거 아냐?”
신 닥터의 중얼거림에 덩치가 발끈했다.
“영감님! 저희 무시하는 겁니꺼!”
“그래. 무시한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아.”
“이이…….”
노인네의 말에 열받았지만, 이주혁의 철저히 이 트럭을 지키라는 명령이 있었다.
“후. 씰데없는 소리할 거믄 자꾸 부르지 마소.”
“야. 이 멍청한 놈아. 그럼, 여기 가만히 죽치고 있지 말고 주변이나 좀 둘러보란 말이야.”
“주변은 와예?”
“뒤에 딱 봐도 이런 지원조가 있는데, 너 같으면 안 붙잡고 배기겠냐? 나였으면 바로 총 들고 달려와서 의료진부터 쏴 죽였다 이놈아.”
“아, 예.”
“조심하란 말이야.”
신 닥터의 잔소리에 덩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래 걱정이 많은지…… 저 우에 저격수도 있다 아입니꺼.”
“수류탄이라도 까면 어쩔래?”
“하이고, 참 내.”
덩치는 설마 했지만, 사실 정말로 그런 짓을 하기 위해 트럭을 지켜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지키는 인원은 셋뿐인가. 아니, 어쩌면 트럭 안에 더 있을 수도 있겠어.’
민지훈의 해결사, 김정우는 혹시 모를 지원이나 보급을 끊기 위해 이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뒤지는 중이었다.
그때 마침 항구를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주차해 놓은 트럭을 발견한 것이다.
김정우는 숲속의 나무들 사이에서 화물선과 항구, 트럭을 순서대로 살폈다.
‘특이사항은 없고.’
아직 라세흠이나 이주혁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김정우는 변수부터 제거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꺼내 들며 한발 내딛던 순간.
흠칫.
김정우의 본능적인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엄폐할 만한 구조가 없는 곳에 위치한 트럭.
그리고 600미터 정도 거리의 등대.
‘X팔. 저격이군.’
없는 게 이상하다.
‘등대를 점거할 생각을 못 했어.’
아마 총기가 있을 것이다.
민지훈의 보급품을 몇 번이고 털어먹었는데, 저격총 하나쯤은 있겠지.
고무탄으로 강 권사 쪽을 박살 낸 건 김정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고작 고무탄 정도는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겠으나, 만약 등대에서 50구경쯤 되는 실탄이 날아온다면…….
퍼석!
김정우는 자신의 뒤통수가 수박처럼 터져 나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어쩔 수 없나.’
혼자 저 트럭을 제압하는 건 무리다.
위치부터 보고해 상황을 알리고, 지금은 원래 위치로 복귀하는 게 맞는 판단이다.
물론 등대가 비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김정우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엔 몸을 내던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삭.
결국 김정우는 큰 소득 없이 화물선을 향해 몸을 돌렸다.
* * *
그 시각, 등대 위.
스윽.
저격총의 스코프에서 눈을 뗀 마종석이 피식 웃었다.
“감이 좋은 놈이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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