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45
244화
김정우와 둘이 남은 라세흠은 반대 손으로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제압용 고무탄이라 저지력이 좋긴 하지만, 탄속이 느릴뿐더러 방탄복을 뚫는 것도 힘들다.
게다가 기습에 능한 상대의 특성상 갑작스럽게 근접전에 돌입할 수도 있었다.
스윽.
라세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김정우가 먼저 간 이주혁을 쫓아가게 둘 순 없었다.
철컥.
숨어 있던 벽 너머로 총구를 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퉁. 퉁!
날아간 고무탄이 벽에 맞는 소리가 났다.
그 틈을 타 라세흠은 복도로 진입했다.
“뭐야. 설마 여기 오는데 비살상탄을 갖고 온 거냐?”
복도 너머에서 김정우의 비아냥이 들렸다.
“실탄을 가지고 올 걸 그랬네. 네 머리통을 날려 버릴 줄 알았으면.”
“야. 라세흠아.”
벽에 기댄 김정우가 작은 거울을 슬쩍 내밀며 말했다.
“그냥 이쪽으로 넘어와.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 왜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거야?”
팡!
그와 동시에 김정우가 들고 있던 거울이 고무탄에 맞아 튕겨 나갔다.
“내가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전역한 거다. 사리사욕 때문에 뭐가 중요한 건지 잊은 새끼들 말이야.”
“……그러냐.”
김정우는 얼얼한 손을 털며 씁쓸하게 웃었다.
“악감정은 없다.”
“난 있어. 개새끼야.”
사납게 쏘아붙인 라세흠이 김정우가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달려왔다.
바람 소리에 김정우는 손을 내밀며 방아쇠를 당겼다.
퓽! 퓽!
라세흠은 튀어나오는 총구를 보고 빠르게 몸을 낮추려다 멈칫했다.
김정우라면 항상 총을 든 상대로 몸을 낮추는 자신의 습관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탓!
그에 오히려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밑으로 꺾인 총구에서 나온 총알이 라세흠이 있던 곳에 맞고 불꽃을 튀겼다.
덥석.
점프한 라세흠은 천장 아래를 지나는 관을 철봉처럼 붙잡고 김정우가 있는 곳으로 총을 겨누며 손을 놨다.
라세흠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짐과 동시에 방아쇠를 여러 번 당겼다.
퉁! 퉁! 퉁!
그러자 불을 뿜던 총구가 벽 뒤로 쏙 들어갔다.
‘원거리에서 붙으면 내가 못 이긴다.’
고무탄인 이쪽에 비해 상대는 실탄이다.
스치기라도 하면 바로 중상.
탁.
땅에 착지한 라세흠은 곧장 김정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라세흠이 그가 있던 복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땐, 거기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라세흠은 이를 갈며 과거의 김정우를 떠올렸다.
원래도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는 실리를 중시하긴 했으나, 이런 악당들 편에 붙을 만큼 막돼먹은 놈은 아니었다.
그는 같이 북한으로 임무도 떠나고, 부대 내에서도 나름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전우였다.
꾸욱.
라세흠은 각오를 굳혔다.
비록 생사를 함께한 동료지만, 계속 앞길을 가로막게 두진 않을 것이다.
설령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빼앗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래. 더 죄짓기 전에 지옥 가서 받을 형량 줄여 주는 셈 치지, 뭐.’
그렇게 다짐하던 순간.
“!”
파캉! 파캉!
뒤에서 귀를 때리는 총성이 들렸다.
푸확!
그와 동시에, 라세흠에게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 * *
으직!
“끄악!”
무릎이 밟혀 옆으로 꺾인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흡!”
그 옆에서 무장한 남자가 나이프를 역수로 쥐고 찔러 왔다.
고상미는 그대로 칼을 쥔 손목을 붙잡고 꺾었다.
우득!
“악!”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이프를 낚아챈 뒤, 손목이 붙잡힌 남자의 겨드랑이를 그었다.
촤악!
고상미는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게 다인가?’
화물선의 선미 쪽은 대강 정리된 모양이었다.
반대편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주혁 쪽 인원이 한창 싸우고 있으리라.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고상미는 그쪽을 도우러 가야 하나, 아니면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저 멀리 컨테이너 사이로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휙!
“바바 야가. 그렇게 불린다지.”
“……?”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의 주인을 살폈다.
하지만 상대는 방탄모 아래로 복면을 쓰고 있는 터라 얼굴을 확인이 불가능했다.
역광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눈과 콧대,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점을 통해 외국인 남자라는 사실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
상대는 왜인지 바로 공격하지 않고 양손을 슬며시 들며 말을 걸어왔다.
“아. 기습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그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니까.”
입꼬리를 올린 고상미도 영어로 대꾸했다.
“이 와중에 여유롭네? 대화도 막 나누고 싶고.”
“용병계의 전설로 불린다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당연히 한 번쯤은 이야기해 보고 싶지 않겠어?”
그 말에 고상미는 긴장을 놓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러시아 놈들이 부르던 별명도 알고 있는 걸 보니 내 소문을 좀 들었나 본데, 그럼 그쪽도 자기소개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래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나서 기쁜 나머지 예의에 어긋나 버렸군. 이해해 주겠나.”
기쁘다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단어 선택에 고상미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DS컴퍼니의 이사, H라고 한다.”
“지랄. 그게 자기소개인가?”
“양해 부탁하지. 대외적인 신분은 밝힐 수 없는 처지라.”
“용건이나 말해. 빨리 쳐 죽이고 싶어서 달아오르려고 하니까.”
“이런. 공격적이시군. 좋아.”
자신을 H라고 소개한 남자가 본론이라고 할 만한 내용을 입에 담았다.
“바바 야가. 이쪽으로 넘어와.”
“내가 왜?”
“Lee가 선수를 치긴 했지만, 당신에게 어울리는 일은 그런 게 아니야. 훨씬 나은 대우를 보장하지. DS컴퍼니에서…….”
고상미가 인상을 쓰며 말을 끊었다.
“DS고 지랄이고, 목적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놈 말만 듣고 내가 설득되길 바라는 거야? 뻔뻔하네.”
“이런.”
교활한 짐승이라…… 길들이는 맛이 있겠어.
조용히 중얼거린 H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생각보다 아는 게 별로 없는 아가씨였군.”
“그렇게 쭉 개소리만 할 거면 그냥 싸우자. 답답해 돌아가시겠어.”
“레이디를 신사답게 모시려고 했건만…… 성의를 무시한 건 당신이라는 것만 알아 둬.”
스윽.
H의 말에 고상미는 말없이 중지를 올렸다.
그걸 본 H는 픽 웃고선 손을 까딱했다.
그와 동시에, 컨테이너 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구가 튀어나왔다.
“큿!”
고상미는 몸을 숙이며 뒤로 달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H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고상미의 행동에 눈썹을 치켜떴다.
타닷!
도망가는 게 아닌, 컨테이너를 교차로 밟으며 오히려 위로 올라온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엽총을 들고 있던 H와 비슷한 복장의 남자가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그러나 상대는 그런 공격에 당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고상미는 팔꿈치로 상대의 팔을 쳐올린 뒤, 비어 버린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쿠욱.”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남자의 뒤로,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총구가 이쪽으로 겨눠지는 게 보였다.
퓨욱!
총구에서 발사된 무언가가 고상미 대신 남자의 등짝에 박혔다.
“윽!”
“이런 썅…….”
그건 마치 곰을 잡을 때나 쓸 법한 마취총이었다.
고상미는 그제야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첫발이 허탕으로 돌아가자, 아래에서 지켜보던 H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제대로 하라고. 제대로.”
“X발.”
고상미가 이빨을 드러내며 분을 삭였다.
저 남자가 원하는 건 고상미. 그녀의 생포인 것 같았다.
‘곱게 당해 줄 순 없지.’
숙녀의 몸을 탐하다니,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그리 생각한 고상미가 마취총을 대신 맞은 남자의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뽑으며 눈을 굴렸다.
마취총을 든 사람은 셋.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다.
휙!
고상미는 들고 있던 남자를 앞으로 던지며 몸을 던졌다.
“큭!”
마취총을 겨누고 있던 남자는 갑자기 눈앞을 메우는 몸뚱이에 다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리고 다시 조준하려던 순간, 어느새 자신의 아래까지 다가온 고상미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5m 정도는 되는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 것이다.
“이……!”
써걱!
남자의 경동맥을 고상미의 칼이 가르고 지나갔다.
“꺼억……!”
목을 붙잡고 쓰러지는 남자에게서 몸을 돌리려는데.
“브라보.”
바로 옆에서 H의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도끼날이 고상미를 향해 날아왔다.
까앙-!
“크읍!”
어느새 컨테이너 위로 올라온 H가 토마호크를 휘둘러 고상미를 날려 버렸다.
텅. 터덩-!
뒤로 몇 바퀴 구르던 고상미가 몸을 바로 세웠다.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H가 음험한 눈빛으로 덧붙였다.
“마녀를 상대로 방심할 만큼 멍청하진 않거든.”
“후…….”
고상미는 양손에 토마호크를 쥔 채 이쪽으로 다가오는 H를 살폈다.
DC인지 DS인지 거기 이사에다, 척 봐도 기세가 보통 놈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뒤로 겨눠지는 마취총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상미에게선 좌절 대신 희열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씨익.
“그럼 일대일로 붙자. 뒤에 저놈들 빼고.”
고상미의 당당한 제안에 H는 고민된다는 듯 턱을 긁적였다.
“글쎄. 내가 왜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지?”
“네가 이기면 반항 없이 깔끔하게 같이 가 줄게. 어때?”
“흠…….”
H는 잠시 숙고하다 고개를 들었다.
“거절한다. 이미 나한테 유리한데, 뭐 하러?”
“이런 쪼다 새……!”
단호하게 거절한 H의 뒤에서 마취총이 겨눠지던 그때.
퍽!
총을 겨누던 둘 중에 한 놈이 피를 쏟아 내며 휘청거리더니, 이내 컨테이너 아래로 떨어졌다.
“무슨?”
누군가의 개입에 H가 뒤를 돌아봤다.
고상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캉! 캉!
“방심 안 한다면서! 방심했네?”
“이 망할 마녀가……!”
이를 악문 H가 고상미의 칼질을 피했다.
피할 수 없는 건 토마호크로 막았고, 다리를 노린 발차기는 무릎을 들어 충격을 줄였다.
그러면서도 기회를 봤다. 아직까지 생포를 포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쇅!
H는 고상미가 내리긋는 나이프를 자루로 막아냈다.
이어 팔꿈치를 돌리며 휘어진 도끼날 아래에 나이프를 걸었다.
그리고 손목을 비틀자, 고상미가 들고 있던 칼이 비틀리며 그녀의 팔이 꺾일 뻔했다.
“큭!”
고상미는 그전에 칼을 먼저 놓은 뒤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H는 이미 그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촤악!
토마호크가 고상미의 오른팔을 길게 그었다.
“읏.”
“후.”
한 방 먹인 H가 다시 눈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성공이군.”
“뭐?”
피잉-.
고상미는 순간 치미는 어지러움에 휘청거렸다.
그 와중에도 H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짐승 사냥이 그렇게 좋더라고.”
퍼벅-!
“끄윽!”
달빛을 받은 도끼날이 휘둘러지며 고상미의 살을 여러 번 더 갈랐다.
비틀.
‘얼마나 독한 걸……!’
고상미는 흐려지려는 시야를 간신히 붙잡았다.
무슨 코끼리라도 사냥하러 온 건지, 토마호크에 바른 마취제가 여간 독한 게 아니었다.
휘청대는 고상미를 보며 H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생각보다 큰 걸 건졌어. 의뢰를 받길 잘했…….”
중얼대던 H는 순간 철렁하는 감각에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퍽! 퍽!
“크학……!”
날아온 두 발의 총알이 H의 어깨와 가슴에 명중했다.
고상미는 컨테이너 너머에서 총을 쏜 남자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춘식이?”
“누님. 꼴이 그게 뭡니까?”
지금은 SA시큐리티의 산하 조직인, 필리핀의 한인 갱의 리더.
춘식이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슥 올리며 고개를 까딱했다.
H가 비틀대며 일어났다.
방탄복을 입고 있었기에 가슴은 무사했지만, 어깨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망할 원숭이들이……!”
그 말에 춘식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 냅두고 도끼 휘두르는 게 원숭이지. 병신아.”
날아간 총알이 H의 머리에 명중했다.
퍼억!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