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SA시큐리티의 훈련실.
그곳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읍!”
배상훈은 꼬맹이의 주먹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머리를 밀었다.
퍽!
꼬맹이의 머리통이 뒤로 홱 젖혀졌다.
하지만 녀석은 다시 달려들었다.
그걸 보며 팀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근성 하나는 좋네.”
“싹수가 보여.”
“킬러 연습생이랬나? 이름이 뭐야?”
“몰라.”
“나이는?”
“그것도 모르는데.”
꼬맹이는 팀원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버티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녀석은 애들이 알아서 교육하게 둘 거다.
좀 처맞다 보면 대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겠지.
아직 어린애고,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세뇌당했을 가능성이 크니 고문실에 처넣을 순 없었다.
‘괜찮은 재목이야.’
될 수 있으면 설득과 교화를 거쳐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다.
내부 사정도 꽤 잘 알 테고, 어린 만큼 가치관을 흔들기도 쉬울 테니까.
만약 저 녀석이 실제로 사람을 여럿 죽인 놈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졌겠지만, 실력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살인 경험은 아직 없는 것 같았다.
‘일단 쟤는 잠시 저렇게 두고…….’
상황이 바뀌었으니 원래 여기서 일하던 놈들도 다시 데려와야겠지.
우선, 그 녀석부터 모시러 가야겠다.
.
.
.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철컥.
“어? 대, 대표님?”
“뭘 그렇게 못 볼 사람 봤다는 듯이 굴어?”
전생에선 강남파의 간부이자 선생의 첩자였던 황성빈.
현생도 비슷한 신세였던 놈을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우리 SA시큐리티의 인턴으로 만들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십쇼.”
“내가 구해 준 집인데 누추해?”
“앗. 죄송합니다.”
“커피나 한잔.”
나는 마치 내 집처럼 걸음을 옮겨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파도 하나 장만했네?”
내 말에 커피믹스를 뜯던 황성빈이 머쓱하게 웃었다.
“동생이 소파는 꼭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아, 그래? 얼만데.”
“한 30만 원 정도 했습니다.”
“더 갖고 싶은 건 없대?”
“어……. 컴퓨터 하나 필요하긴 합니다.”
“어디 쓰게.”
황성빈이 커피를 탁 놓으며 입을 열었다.
“노트북이 하나 있긴 한데, 그건 동생이 쓰고 있어서요.”
“네가 쓸 거면 안 사주지. 이 새끼야. 월급도 꼬박꼬박 쳐 줬구만. 동생이 필요한 거 없냐고.”
“아, 동생이요.”
“얼마 전에 고등학교 들어갔댔나?”
“예. 맞습니다.”
“공부할 때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해. 사 줄 테니까.”
커피를 홀짝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직원 복지 엄청나지?”
“예.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김에, 다시 매일 출근해라.”
“예?”
“그 바퀴벌레 같은 새끼, 살아 있더라고.”
내 말을 이해한 황성빈의 표정이 굳었다.
“사, 살아 있다고요? 그놈 시체를 봤다고 하셨잖습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그냥 내일부터 나와. 몸 굳은 건 애들한테 얘기해서 풀어 놓고.”
“음.”
황성빈은 난감하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게…….”
“왜? 동생이 걱정하냐?”
“그렇습니다.”
나는 선생을 박살 냈던 날, 치료를 마친 황성빈을 집에 데려다줬다.
그걸 본 녀석의 동생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그동안 황성빈이 다쳐서 들어간 적이 없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날은 내가 봐도 좀 심하게 다쳤으니 그럴 만했다.
나도 미안한 마음에 동생에게 이것저것 사 주고 있는 거고.
황성빈은 착잡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어떻게 둘러댄다고 둘러대 봤는데…… 알 건 다 알더라고요. 새로 취직한 거기 그만두고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랍니다.”
“쓰읍…….”
하긴, 나 같아도 하나 남은 가족이 칼을 잔뜩 맞고 돌아오면 기겁할 것 같긴 하다.
“좋아. 그럼 위장 취업을 하자.”
“위장 취업요?”
“그래. SA인베스트먼트라고, 내가 만든 투자 회사가 하나 있거든.”
대표 이사는 우재성으로, 녀석에게 일임해 알아서 굴리고 있는 걸로 안다.
“오늘부터 금융 관련 공부 시작해라.”
“고, 공부라니.”
“취업하려면 공부하는 척은 해야지. 정장도 하나 깔끔하게 맞추고. 넌 지금부터 인텔리 비즈니스맨 황성빈이다.”
“……옙.”
“내일 말고, 내가 부를 때 회사로 와.”
“알겠습니다.”
툭툭.
황성빈의 축 처진 어깨를 두드려 주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번호 하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기본 컬러링이 몇 번 울리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 청로건강식품 대표 이현수입니다. 어떤 용무로 전화 주셨죠?
“건강식품은 지랄.”
-……대표님?
내가 연락한 사람은 추현국.
일명 ‘사발’로, 사기 전문가다.
전생에선 주철수 밑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현혹하는 인간이었고.
그 전에 내가 낚아채서 협박으로 지금까지 부려 먹고 있다.
-어쩐 일로…….
“내 번호 저장 안 했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영업 멘트죠.
“지랄. 지금 어디야?”
전화 너머로 마이크를 통해 울리는 노랫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설마 또 한약 팔아 처먹고 있냐?”
-아유, 아닙니다. 저 이제 손 털었습니다. 하하. 지금 공연장 지나고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치? 아니지?”
-당연하죠. 저 이제 건실한 사업갑니다.
“선생, 안 죽었다.”
내 말에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대표님이 허튼소리를 하실 리 없으니 사실이겠고…… 제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당분간 일정 비워 놔.”
-쓰으읍……. 알겠습니다.
탁.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나를 공격한 적은 세계적인 청부회사.
그놈들을 지금 있는 전력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조금 무리가 있다.
이럴 때 마종석 같은 용병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단 말이지.
‘아무래도 세력을 키워야겠어.’
내 덕에 서울 바닥을 먹은 고광목과 수하들도 어디까지나 조폭 출신.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디가 좋을까.’
머릿속을 스치는 조직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리스크가 있다.
일단 내실부터 다지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다.
‘DS컴퍼니의 한국 지사.’
고세운을 통해 알아본 결과, DS컴퍼니는 여러 분야에 손을 뻗친 다목적 기업이었다.
한국에도 유통업체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겉으로는 그저 DS컴퍼니의 자회사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겠지.
“작업을 어떻게 쳐야 하나…….”
방치할 수는 없다.
그놈들이 노인이랑 꼬맹이를 파견했을 확률이 높으니까.
나는 대충 결정을 내리고 차로 향했다.
털어서 나오지 않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 법.
‘우선, 뒷조사부터 시작해 볼까?’
***
전前 국회의원이자 현재는 이주혁의 조력자, 한광철.
그는 그동안 후배 변호사들을 위해 힘썼다.
실형을 살다 나왔으니 다시 변호사로 먹고사는 건 힘들다고 생각했다.
경상도 지역에는 아직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지만, 한광철은 더 이상 정치에 뜻이 없었다.
선생과 붙어먹은 정치인들을 보며 환멸을 느꼈고, 그가 몰락한 지금은 이주혁을 돕기 위해 정계에 남아 있을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광철은 새로 큰 사무실 하나를 구해 어려운 후배 변호사들에게 공짜로 업무 공간을 제공해 줬다.
끼익-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자 업무를 보던 젊은 변호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선배님!”
“이제 선배 아니라니까, 참.”
너털웃음을 짓는 한광철에게 한 변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저, 선배님. 손님이 한 분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선배님 지인이라고 하시던데…… 인상이 조금 험악하십니다.”
“흠.”
한광철은 내심 미심쩍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접실에 있나?”
“네.”
“알았어. 일 봐.”
저벅.
응접실로 향하며 한광철은 미간을 좁혔다.
‘누구지? 이런 대낮에 날 해치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철컥.
한광철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뒷모습에 의아한 소리를 냈다.
“음? 설마, 내가 아는 그놈이신가?”
스윽.
그의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광철이 형님. 오랜만이오. 얼굴 보기 힘들어.”
그 말을 들은 한광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응접실의 문을 닫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왜 네 형님이냐, 이 새끼야.”
“섭하게 구시네.”
“국적도 버리고 일본 야쿠자가 돼 버린 놈이 섭섭해하는 것도 신경 써 줘야 하나?”
선생과 협력하던 한인 야쿠자이자, 은퇴한 전 민정수석 김우천의 조카.
가네무라가 피식거리며 손짓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앉아서 얘기합시다.”
“고운 말 나갈 때 꺼져라. 김용수. 아니, 이젠 김용수도 아니지. 가나키치? 가리봉동? 뭐였냐. 아무튼.”
“이런 X팔. 가네무라요.”
“그래. 알겠으니까 나가라.”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할 텐데.”
한광철은 가네무라의 으름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대꾸했다.
“너 지금 협박하냐? 이 사무실에 나 빼고 법조인만 5명이다.”
“삼촌한테 작업 쳤지? 민정수석이랑 놀지 말라고.”
“…….”
그런 적이 있다.
정치인들이 선생의 아버지, 민기형의 편으로 붙지 않도록 해 달라고 김우천을 찾아가 부탁했었다.
“설마, 어르신 찾아갔냐?”
“어. 형님 어딨나 물어봤지.”
“양심이 없구만. 감히 어디라고 거길 찾아가?”
“아아, 됐고. 나 마주하기 싫은 것 같으니까, 본론만 얘기할 테니 잘 들으쇼.”
가네무라가 능글맞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이주혁이한테 말 좀 전해 주쇼.”
“뭐?”
그 입에서 나온 이름에 한광철이 정색했다.
“무슨 말을?”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고.”
“제안?”
“그건 비밀. 여기 내 번호요.”
가네무라는 메모지를 꺼내 자신의 번호를 휘갈겨 적었다.
“내가 왜 그걸 전달해야 하지?”
“비즈니스.”
“주혁이를 불법적인 일에 끌어들일 생각이라면 전해 줄 생각 없다.”
“에이, 뭘 이제 와서 대쪽 같은 척이요? 뇌물 받아먹고 감방까지 갔다 온 양반이.”
꿈틀.
한광철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뇌물수수는 선생의 농간이었지만, 굳이 그걸 해명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 가네무라가 고개를 까딱했다.
“부탁 좀 합시다. 그 친구한테도 도움이 되는 제안일 테니까.”
“너 같은 범죄자가 하는 제안이 정상적일 리는 없을 것 같은데.”
“편견이요. 또 봅시다.”
가네무라는 히죽 웃고선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려 응접실을 떠났다.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가네무라를 보던 한광철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음 같아선 그냥 무시하고 싶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이걸 전해 줘, 말아…….’
***
-X발.
“소식은 들었지?”
내 물음에 화면 속의 해커, 고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이제 가면을 쓰지 않았다.
-그래. 그 개새끼가 살아 있다며. 확실한 거냐?
“90% 이상 확신한다.”
고세운은 고상미에게 민지훈이 살아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뒤로 놈의 흔적을 찾았다고 말했다.
-전혀 놈의 행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못 믿겠나?”
-그럴 리가. 가능성이 1%라도 있는 한 끝까지 찾아낸다.
그동안 고세운은 부모님의 원수인 선생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누군지 정체를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신상이 드러났다.
어딘가에 얼굴을 비추면 녀석의 해킹 능력으로 어떻게든 꼬리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뭘 해 달라고 연락한 거야?
“누가 들으면 부탁할 게 있을 때만 연락하는 줄 알겠네.”
-맞잖아.
“뭐, 그건 그렇지. 이번엔 회사 하나를 털어 주면 된다.”
-알았다.
그 말과 함께 화면에서 놈의 얼굴이 사라졌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이번 사건에 관해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의 연락처를 찾았다.
분당 신도시 투자 비리 수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공으로, 차장검사 자리는 당연히 꿰찰 거라 평가받는 양반.
‘우리 서해결 검사님.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