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결국 경호원 놈은 잔뜩 처맞기만 하고 별 소득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날 위험에 처하게 한 게 미안한지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사과하는 민수진을 적당히 위로하고 호텔을 나섰다.
‘박광훈…….’
호정기획의 사장, 박광훈.
재계 9위의 대기업인 호정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로, 겉으로는 건실한 기업인이다.
하지만 뒤로는 선생과 결탁해 불법으로 자금을 융통하는 놈이고.
나도 자세히 박광훈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진 아직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을 협박해 불러내는 놈이라면 안 봐도 비디오지.
‘이 새끼, 가만히 놔두니까 기어오르네.’
그동안 잠잠하길래 섣불리 건드리지 않은 건데, 나한테 이따위로 나오는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어떻게 조질까.”
머릿속에 박광훈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72가지의 방법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박광훈의 아버지는 굴지의 대기업 회장.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유효한 피해를 주지 못할 거다.
“쯧.”
DS컴퍼니에, 선생에, 이제는 이상한 놈까지 자꾸 눈에 밟힌다.
몇 주 좀 쉬었다고 분리수거할 게 이렇게 많이 쌓일 줄이야.
나는 앞으로 할 일을 정리했다.
일단 박광훈은 내버려 둔다.
필요하면 알아서 접근해 올 거고, 굳이 지금 우선순위로 둘 이유는 없었다.
선생도 마찬가지.
놈의 따까리 하나를 붙잡긴 했지만, 입을 열지를 않으니 크게 의미는 없었다.
우재성이 민지훈이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별장에 관해 알아보고 있긴 한데, 아직 유의미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남은 곳은 DS컴퍼니의 한국지사 동성유통.
‘지금쯤 정신을 못 차리고 있겠지.’
켕기는 게 많으니 탈세, 뇌물수수와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느라 바쁠 거다.
그 틈을 타 그쪽을 덮친다.
돌아갈 곳이 사라지면 녀석도 이쪽에 붙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거기다 위에서 군림하던 놈들이 개박살 나는 걸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겠지.
‘탐난단 말이야.’
말로는 미련 없는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 나도 녀석의 재능이 욕심이 났다.
사람 죽이는 킬러보단, 그래도 경호업체 직원이 더 낫지 않겠어?
물론 복지는 부족함 없이 해 줄 거다. 안 그러면 내가 그놈들이랑 다를 게 없으니까.
‘원하면 학교도 보내 주고 해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랐다.
탁.
그리고 시동을 걸며 팀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씨익.
작전 개시다.
***
동성유통.
겉으로는 단순히 공산품 수출을 중개하는 회사다.
하지만 실상은 DS컴퍼니의 살인 청부를 담당하는 부서인 DS클린의 한국지부.
“X발. 대체 어떤 새끼야!”
콰작!
동성유통의 사장, 오주찬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집어 벽에 내던졌다.
그걸 잠자코 지켜보던 비서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자료를 폐기하고 있긴 하나, 들려오는 말로는 검사 측에서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있다고…….”
“정철기. 그 새끼는 지금 뭐 하고 있대?”
오주찬에게 뇌물을 받아먹던 시청의 공무원 정철기.
문제 해결을 위해 연락하니, 자신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동안 찔러준 게 얼만데, 설마 입 싹 닦으려는 건 아니겠지?”
“지금 검찰이 압수수색 중이랍니다.”
“하, X발…….”
오주찬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동성유통이 정말 보통 회사라면 실형이라도 받으면 된다.
그러나 이 회사는 DS클린의 유일한 한국지부다.
날려 먹으면 단순히 감방행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된다.’
거기다 이곳엔 더 키운 뒤 암살자로 써먹을 고아들까지 존재한다.
상부가 직접 지시해 만든 이 시설이 공개되거나 어그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오주찬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은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X발. 대체 왜 일개 회사의 비리를 고검이 나서서 수사하는 거야?”
동성유통이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외부에는 적당한 중소기업으로 알려져 있기에 더더욱 의문이었다.
‘분명히 어떤 새끼가 찌른 거다. 날 노리고!’
그때, 책상 서랍 안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삐- 삐-
이 핸드폰은 본사 쪽 번호만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에 오주찬은 황급히 서랍을 열어 서툰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예. 이사님.”
-……어떻게 된 건가.
“그, 시설 은폐를 위해 매수한 공무원이 있는데…… 그놈한테서 정보가 샌 건지…….”
-해결. 할 수 있나.
오주찬은 그 말을 듣고 자세를 바로 하며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예!”
뚝.
섬뜩한 한마디와 함께 통화가 종료됐다.
어느새 오주찬의 등판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꿀꺽.
버러지같이 살던 깡패 인생에서 여기까지 겨우 올라왔다.
‘몇 년을 죽어라 영어 공부까지 해 가면서 이 자리까지 왔단 말이다.’
그 국장 놈이 아니더라도 오주찬의 뒤를 봐줄 사람은 남아 있었다.
‘의뢰인’들은 남아 있는 의뢰 기록 탓에 동성유통을 팽할 수 없을 테니까.
꾹. 꾹.
오주찬은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살피며 비서에게 말했다.
“김 비서. 5년만 살다 나와.”
“예?”
“자네가 회삿돈을 횡령한 거고, 뇌물을 준 것도 자네인 걸로 하자고.”
비서의 표정이 굳었다.
“나오면 섭섭하지 않게 챙겨 주지. 10억이면 되겠나?”
흔들리는 비서의 눈빛을 본 오주찬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상부에서 직접 오더를 받는 자신과는 달리, 동성유통의 진짜 업무에 관해선 알지 못한다.
그 말인즉슨, 감옥 안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상관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고마워. 김 비서.”
비서는 몸을 돌려 사장실을 떠났다.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한 작업을 하러 가는 것이다.
설령 디지털 포렌식을 한다 하더라도 이미 중요한 자료는 전부 폐기됐다.
그리고 애초에 본업과 관련된 건은 전부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에, 검사들도 오주찬의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
‘김 비서 한 놈 잡아가는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더 있나.’
오주찬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생각대로만 되면, 이번 해프닝은 자신의 신변과 자리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생각대로만 된다면 말이다.
“…….”
한편, 그런 오주찬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J의 개, 오주찬…….”
동성유통 건물 뒤편의 산 정상.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상한 남자가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렸다.
그리고 무전기를 꺼내 누군가에게 보고했다.
치직.
“현재 타깃은 아직 사장실에 있습니다.”
-그런가. 계속 지켜보면서 보고하도록.
“예. 대장님.”
칙.
무전기에서 섬뜩한 말이 흘러나왔다.
-내일, 우리는 저곳을 친다.
***
다음 날, 오주찬의 비서 김명주가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김명주는 그동안 강릉시청의 행정국장에게 뇌물을 증여했고, 정철기 국장은 그 대가로 각종 편의를 봐준 혐의였다.
두 사람 다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으며, 벌을 달게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용의자들의 자수로 사건은 빠르게 종결되었다.
‘재밌네.’
여기까지가 뉴스 기사의 내용이었다.
동성유통의 사장 오주찬.
그놈이 꼬리를 제대로 자른 거다.
계속 진행할 건더기도 없이 깔끔하게 범인과 증거가 나왔다.
서해결 검사가 말하길, 검찰 내부에선 더 볼 거 없이 끝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 검사님들도 그쪽 서비스를 애용하셨나. 참.”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지만, 위에서 급하게 종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애초에 오주찬을 뇌물수수로 잡아넣을 생각은 아니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고세운을 통해 오주찬을 좀 털어 봤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개 조폭 행동대장이었다더라고.
그런 놈이 어떻게 청부업체의 해외지부까지 맡게 됐을까.
스윽.
나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보이는 동성유통 건물을 쳐다봤다.
그리고 핸드폰에 대고 고세운에게 물었다.
“내 앞에 저기 맞지?”
-어. 좌표상으론 맞다.
“오케이. 다시 연락할게.”
-그러던지.
뚝.
통화를 종료하고, 한쪽 손을 들어 신호했다.
끄덕.
내 뒤에서 대기하던 몇 명의 팀원들이 각자 약속된 방향으로 향했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일부러 인원을 전부 다 데려오진 않았다.
일부는 혹시 모를 지원을 대비하기 위해 동성유통에서 이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한다.
그리고 나와 부장님 정도만 본진에 잠입한다.
사사삭.
나는 산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오늘 우리의 목표는 동성유통을 치는 게 아니다. 오주찬도 마찬가지.
위성 사진을 통해 확인해 보니, 이곳 근처에 2층 정도 되는 다른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물론 신고되지 않은 불법 증축이다.
팀원들이 멀리서 정찰해 본 결과, 그곳을 들락거리는 사람 몇 명을 봤다고 한다.
‘아마 거기에서 예비 킬러들을 키우는 거겠지.’
자기네들끼리 뭐라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는데.
뭐, 그건 직접 가서 들어 보면 되는 일이고.
건물 바깥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나이프를 슬쩍 꺼내 들고 달렸다.
타다닷!
나는 어느새 와이어를 걸어 놓은 부장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장님은 창문을 열려는 듯 손을 뻗더니, 이내 잠겨 있다는 걸 알고 그냥 뜯어내 버렸다.
콰득!
그걸 본 나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책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놈과 눈이 마주쳤다.
“……?”
당황한 표정을 짓는 놈의 험악한 얼굴을 향해 들고 있던 나이프를 던졌다.
휘릭!
“씹!”
놈은 황급히 몸을 젖혀 피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놈의 눈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퍼억-!
땅을 박차고 얼굴에 무릎을 꽂았는데, 느껴지는 감촉이 영 아니었다.
“큭!”
손바닥을 들어서 막은 모양이었지만, 충격을 피하진 못했는지 놈의 코에선 피가 줄줄 샜다.
“이 개새끼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놈에게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단단한 재떨이는 놈이 막기 위해 뻗은 팔뚝에 적중했다.
딱!
“끄악! 이 X발……!”
“입이 험하네.”
놈은 꼴에 킬러랍시고 칼을 꺼내 저항했다.
“으아!”
내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칼.
나는 손을 들어 놈의 팔을 막은 뒤, 상체를 돌리며 펴져 있는 팔꿈치를 바깥쪽에서 후려쳤다.
우득-!
살벌한 소리와 함께, 놈의 팔이 꺾이면 안 되는 각도로 꺾였다.
“끄으아아악-!”
이어 허벅지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마지막으로 턱을 돌렸다.
쩍! 퍼억! 콱!
일방적인 구타였다.
“끄에에…….”
놈은 만신창이가 된 채 앞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쿵!
발을 들어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놈의 뒤통수를 밟았다.
콰직!
어차피 여기 있는 놈들은 다 악질이다.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없겠지.
‘저쪽인가.’
정면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내 생각대로라면 저기가 이놈들의 본진일 거다.
어쩌면 꼬맹이 같은 어린놈들과 칼을 맞대며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나이프를 챙기고 계단 아래로 이동했다.
끼익. 끼익.
낡은 나무 계단이 한 발짝마다 큰 소리를 내며 나를 맞이했다.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애초에 위층에서 일어난 교전으로 침입자가 있다는 건 눈치챘을 테니까.
삐걱.
나는 마지막 계단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몸을 낮춘 뒤, 모퉁이를 돌며 칼을 휘둘렀다.
쓰걱!
“윽!”
아니나 다를까, 대기하고 있던 놈이 있었다.
덩치 큰 대머리가 허벅지가 깊게 베인 채 칼날이 팔뚝 길이 정도 되는 중단도를 휘둘렀다.
나는 몸을 숙여 피한 뒤, 놈의 손을 붙잡고 겨드랑이를 그었다.
그리고 붙잡은 손을 확 당겨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며 양쪽 오금을 썰었다.
쿵.
“끄아아악!”
무릎이 꿇린 채 비명을 지르는 놈의 목에 칼날을 갖다 댔다.
그렇게 놈을 제압하고 고개를 들자, 눈앞의 일자 복도에 무기를 든 놈들이 늘어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스크린 속에서 본 듯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상대 중 꼬맹이는 없었다.
스윽.
나는 빼앗은 중단도를 치켜들며 말했다.
“들어와. 이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