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동성유통의 로비에 도착한 나와 부장님은 살짝 당황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떤 일로 방문하셨나요?”
생각보다 분위기가 평화로운 탓이었다.
비서가 폭탄을 다 떠안고 나가서 그런가, 상황에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아…… 투자 관련 건으로 오주찬 사장님을 뵙고 싶어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지금 손님이 와 계시거든요.”
선객이 있다고?
그 말에 불안감을 느끼고 되물었다.
“사장실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까?”
“네.”
이 와중에 만나는 사람이라.
오주찬과 한통속인 놈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입막음이겠지.’
어쩌면 오주찬을 제거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일 수도 있었다.
허가도 없이 막무가내로 올라가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스윽.
조용히 눈빛을 보내자,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비상계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타닥!
“자, 잠시만요! 저기요?!”
그렇게 우리는 계단을 서너 개씩 뛰어넘으며 사장실이 있는 최상층으로 향했다.
이 건물엔 다행히 15층까지밖에 없었다.
벌컥!
꼭대기에 도착해 비상계단의 문을 열고 사장실을 찾았다.
“저쪽!”
앞서 달려간 부장님이 펄쩍 뛰어 사장실 명패가 달린 문을 걷어찼다.
쾅-!
그러자 사장실 안에 있던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목을 졸리며 켁켁대는 오주찬.
그리고 놈을 붙잡고 있는 두 놈이 있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푹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딱 봐도 오주찬을 담그러 온 놈들이었다.
“부장님!”
철컥!
한 놈이 이쪽으로 총을 겨누는 걸 보고 소파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총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남자가 제지한 탓이었다.
“흔적이 남는다.”
그 말에 총을 들고 있던 놈이 품에 다시 권총을 집어넣었다.
나는 그걸 보며 소파 너머로 물었다.
“어디서 보낸 놈들이냐?”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DS? 아니면 니들도 경호대?”
슬쩍.
고개를 들고 다른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부장님에게 눈짓했다.
‘내가 왼쪽. 부장님이 오른쪽.’
끄덕.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소파를 뛰어넘고 달려갔다.
괴한들의 손에는 어느새 칼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나는 익숙한 형태의 그 단검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저거, 미군들이 쓰던 건데?’
선생은 미국과 관련이 있고, DS컴퍼니는 아예 본사가 거기 있다.
턱.
놈과 대치한 상태로 입을 열었다.
“인천에 숨어서 작업 치던 놈. 너희 동료냐?”
“…….”
“그놈이랑 연락되나? 혹시 돌아가면 전해 줘.”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놈에게 입꼬리를 올려줬다.
“이제 그놈은 없는 셈 치라고.”
뿌득.
내 조롱을 듣던 놈이 이빨을 꽉 깨물었다.
아무래도, 이놈들은 선생의 경호대가 맞나 보네.
“아마추어 새끼. 감정 하나도 제대로 조절 못 하나?”
“이 새끼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놈을 향해, 부장님과 격하게 수를 나누던 괴한이 말했다.
“철수한다.”
“예? 사장은 어떻게 합니까?”
“일단…… 큭!”
퍼억-!
뭐라 말하려던 놈이 부장님의 발차기를 막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여유롭나 보다?”
부장님이 다리를 들어 도끼처럼 내리찍었다.
콰악!
겨우 피해 낸 상대가 황급히 출구 쪽을 향해 달렸다.
“저놈은 내가 잡는다!”
그렇게 외친 부장님이 놈을 따라 뛰쳐나갔다.
결국 사장실엔 둘만 남게 됐다.
아니, 셋인가.
“컥, 커헉…….”
나는 목을 붙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는 오주찬을 슬쩍 쳐다봤다.
다행히 아직 심각한 외상은 없는 것 같다.
“염병할…….”
인상을 찌푸리던 놈이 오주찬을 슬쩍 돌아봤다.
그에 걸음을 옮겨 오주찬 쪽을 슬쩍 가로막았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DS컴퍼니 한국지부를 관리하던 놈이니만큼 내부 사정을 알긴 할 거다.
그리고 이 마스크남들의 목적이 오주찬의 죽음이라면 더더욱 고춧가루를 뿌려 줘야지.
“어이, 오주찬 사장.”
내 말에 정신을 못 차리던 오주찬이 아직 멍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누, 누구…… 어? 이, 이, 이주혁……?”
“우리는 나중에 얘기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어디 책상 밑에라도 숨어.”
오주찬은 내가 자기 동아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시킨 대로 데스크 아래를 향해 기어갔다.
그러자 나와 대치하고 있던 놈이 자세를 잡았다.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스윽.
“아킬레스건 하나 정도는 잘라도 되겠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미친놈. 누가 자르게 놔둔대?”
내 히죽거리는 표정을 본 놈이 달려들었다.
쇅!
칼날이 공기를 찢으며 내 급소를 노려왔다.
팍! 파바박!
상대와 나의 손이 격하게 맞붙었다.
놈은 내 손이나 손목, 팔을 긋기 위해 이리저리 칼날을 찌르고 베어 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오주찬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을 집어 던졌다.
휙! 쨍그랑! 퍽!
재떨이, 전화기, 화분, 모니터까지.
“이 개새끼가!”
온갖 걸 얻어맞은 놈이 살기가 담긴 눈빛으로 돌진하길래, 그냥 몸을 돌려 도망갔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놈의 얼굴을 향해 손에 집히는 물건을 날렸다.
그러면서도 놈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보통 화기를 이용한 전술과 사격훈련을 주로 하는 다른 특수부대와는 달리, 우리 반은 교관이었던 부장님의 주도로 맨손 대련을 추가로 진행했다.
한마디로.
퍽-!
“큭……!”
얼굴 맞대고 싸우면 내가 절대 안 진다는 소리다.
내 팔꿈치에 얼굴을 맞은 놈이 움찔했다.
나는 그대로 파고들며 공격을 이어 나갔다.
칼을 쥔 손을 붙잡고 손목을 내리쳤다.
쨍그랑!
“X발!”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몸을 숙여 피한 뒤, 그대로 놈의 허리를 붙잡아 태클을 걸었다.
“윽!”
뒤로 주저앉은 놈의 하체를 내 다리로 엮었다.
내 눈앞에 튀어나온 발을 내 겨드랑이에 끼우고, 그대로 상체를 바깥쪽으로 눕히며 꺾었다.
뿌득!
“끄아악-!”
허리를 튕긴 반동을 이용해 놈의 다리를 당기며 몸을 일으켰다.
이어 바닥에 누워 있는 놈의 몸통과 머리를 마구 밟았다.
퍽! 퍽! 퍽!
“컥! 끅!”
그렇게 한참을 밟히던 놈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후…….”
겉옷을 벗어 의식을 잃은 놈을 묶고, 난장판이 된 데스크를 향해 다가갔다.
“으, 으으…….”
“오주찬 사장.”
그 아래로 고개를 숙이자, 오주찬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나와.”
***
DS컴퍼니의 이사, J는 한 노인과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10%로 하지.
“하지만, 10%는 닥터 리의 요구에 비하면 너무…….”
-애당초 우리가 생각한 선은 7%였네. DS의 지분 10%면 거래의 대가론 충분한 것 같은데.
그 말에 J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씹어 삼켰다.
‘망할 늙은이.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가?’
이윤종 박사가 가지고 있는 생화학 무기.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위력은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제공한다고 한 ‘성수’.
일종의 각성제인 그것만 손에 넣기만 한다면, 각 지부에 있는 훈련생들을 더 쉽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이 아집으로 가득한 늙은이의 욕심 때문에 J의 큰 그림은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표님.”
잠시 침묵하던 J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한선을 넘어가는 만큼은 제 개인 지분으로 충당하겠습니다. 그러면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
J의 제안을 들은 DS컴퍼니의 대표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그렇게까지 한다면야. 알겠네. 조만간 닥터 리를 데려오도록.
“……본사로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그가 부름에 응할지는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당연히 와야지. 어차피 선생도 뭣도 없는 일개 과학자 아닌가.
J는 대표의 태도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윤종 박사. 원래는 몰랐지만,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미루어 봤을 때 그는 에고가 상당히 강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라도 ‘성수’를 납품받아야 하는 J로선, 이윤종 박사가 대표의 오만한 태도에 수틀리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음.
고개를 끄덕인 대표가 화상통신을 종료했다.
뚝.
“후…….”
검은색으로 변한 모니터를 보며 J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의 저 독선적이고 오만한 성격.
그 덕분에 DS컴퍼니라는 커다란 조직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회사 내부의 결속력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사실상 현재 이사 자리에 있는 인간들은 전부 DS컴퍼니를 본인이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지.’
대표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간신히 이어 붙여져 있긴 하나, 그가 사라지는 순간 DS컴퍼니는 구심점을 잃고 갈기갈기 찢어질 게 분명했다.
그때가 되면 ‘서클’에서 DS컴퍼니의 자리는 공석이 된다.
별개의 조직으로 나누어진 이사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그걸 대비하기 위해 이사들은 이미 각자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J가 부모 잃은 아이들을 선별해 킬러로 키우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한국지부에서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던데.’
이주혁을 감시하기 위해 보낸 인원의 연락이 끊겼다는 보고를 들었다.
아마 놈에게 발각돼서 제거됐으리라.
그리고 검찰 측에서 수사가 들어온 건 희생양을 만들어 해결했다.
그가 꽤 투자한 한국지부에 문제가 생겼으면 난감할 뻔했지만, 별 탈 없이 넘어가 다행이었다.
J는 이후의 상황을 보고받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꾹.
수신 버튼을 누르자 신호가 갔다.
“상황은 어떻게 됐나?”
J의 말에 상대가 영어로 대답했다.
-……아, 예. 잘 해결했습니다.
“그런가. 한 가지……?”
J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전화 상대의 목소리가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잠깐, 누구지?”
-음질이 구려서 바로 못 알아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귀가 좋네.
“누구냐고 물었다. 핸드폰 주인은 어디 있나?”
그러자 전화 너머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 DS컴퍼니 쪽 사람이냐?
“…….”
-네가 시킨 거지? 나 감시하라고.
그 말에 J는 상대가 누군지 파악했다.
“설마, 이주혁?”
-그래. 나다.
J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주혁이 자신을 먼저 밝힐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네가 누군진 모르겠는데, 경고한다. 나 건드리지 마라.
“뭐?”
-나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까진 괜찮은데, 칼잡이를 붙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아니면 싸우자는 건가?
J는 상황을 파악했다.
“오 사장이 내 지시를 받고 있긴 하지만, 히트맨을 보낸 건 내가 아니다. 그의 독단적인 판단이다. 그로 인해 불편했다면 사과하겠다.”
-빠른 인정과 사과. 리더의 덕목이지.
숨겨진 내막을 파헤치는 건 별개의 문제고, 이주혁은 어쩌면 나중에 협력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게 반감을 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러나 이미 반감을 살 대로 사 버렸다는 사실을 J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소개는 언제 해 줄 건가.
“이런. 실례했군.”
J는 이주혁의 배짱에 내심 감탄하며 말했다.
“J라고 불러라.”
-J라. 그럼 J. 너, 혹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킬러로 키우고 있나?
“음? 그렇다만.”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사람 구실 하게 해 주는 대가로 노동력을 받는다.
J의 사고회로에선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주혁이 지금 있는 곳은 아마 DS클린의 한국지부.
그리고 그 근처에는 킬러를 양성하는 ‘시설’이 존재했다.
“설마…… 건드린 건 아니겠지? 만약 그랬다면 피차 유쾌하지 않을 텐데.”
-나는 안 건드렸어.
의미심장한 말에 J가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냐.”
-선생의 경호대, 알고 있나?
경호대. 그들에 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공리회니 뭐니 하며 세력을 키웠으나, 사실상 선생을 지탱하는 주요 세력은 경호대라는 말이 있었다.
구성원 전부가 특수부대나 베테랑 용병 출신에, 최신식 군사 장비까지 갖춰 무력으로는 거의 러시아 놈들과 맞먹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전면으로 나선 적은 없어 증명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경호대는 왜 언급하는 거지?”
-아. 별건 아니고, 경호대가 그 시설에 있던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거든.
툭 뱉은 그의 한마디에, J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