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중국의 한 빌딩의 최상층.
그곳에서 백발의 노인이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잘 지내셨습니까?
“허허……. 이거, 당황스럽구만.”
노인은 자신의 안부를 묻는 화면 속의 남자를 귀신 보는 듯한 눈빛으로 살폈다.
“자네가 살아 있을 줄이야.”
노인의 이름은 장쉬안. 삼합회의 홍콩지부장이었다.
과거 서울로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왕후성과 수하들을 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가 파견한 왕후성은 죽어 버렸고, 유능하던 수하를 잃은 왕쉬안은 강화된 공안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조용히 지내 왔다.
장쉬안은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다들 자네가 당했다고 알고 있던데.”
장쉬안도 ‘서클’과 연이 닿아 있었다.
자신의 수하, 왕후성을 침몰시킨 이주혁에게 선생도 당했다는 소식을 몇 달 전에 전해 들었다.
그 후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주소로 전자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메일엔 한 링크와 함께, 몇 사람 외엔 알지 못하는 명운제약의 비밀 중 하나를 언급했기에 무시할 순 없었다.
그래서 링크를 눌렀더니, 갑자기 이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한 것이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선생, 민지훈은 그 말과 함께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선생…….”
-네.
이주혁 무리에게 패배해 몰락했다는 소식과는 달리, 민지훈의 행색은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거기에서 오는 위화감에 장쉬안은 이상함을 느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법으로 연락할 줄은 몰랐군.”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남들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일인지라.
“크흠. 무슨 일이길래 그러나? 아니, 아니지. 그 전에 질문 하나만 하겠네.”
장쉬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다들 자네가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때 무사히 빠져나갔던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동안 살아 있다 알리지도 않고 지낸 이유가 대체 뭔가. 그것 때문에 한동안 분위기가 뒤숭숭했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렇게 따로 연락드린 겁니다.
“……비밀로 해 달라는 말인가?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선생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장쉬안에게 중요한 패가 되어 줄 것이다.
거기다 선생은 ‘예언자’라고 불리는 사람.
만약 혼자만 이 정보를 알고,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면서 도움을 준다면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원래 협력 관계이기도 했고, 선생은 신의가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그 많은 사람 중 나에게 연락을 한 이유가 있겠지.’
장쉬안이 옅은 미소를 짓자, 민지훈이 본론을 꺼냈다.
-최근 사업체가 많이 줄어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아무래도 그렇네. 밖을 나돌던 왕 이사가 당하고 말았으니.”
과격하고 급진적이긴 했으나, 어쨌든 삼합회 홍콩지부인 명운제약에게 많은 자금을 벌어다 주던 인물이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 벌여 놓은 사업의 자본을 충당하기 위해 고생했었다.
민지훈은 그런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여유 자본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명운제약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기술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장쉬안은 미간을 좁혔다.
“이 늙은이에게 대체 뭘 요구하려고 그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거는 건가?”
-제 요청은 하나입니다.
스윽.
민지훈이 화면에 얼굴을 조금 가까이하며 말했다.
-전쟁을 일으켜 주십시오.
“전쟁이라니?”
-인천에 세를 이룬 야쿠자. 아십니까?
“음……. 모를 리가 없지. 삼합회의 한국 진출을 막아서던 자들인데.”
원래 한국에 들어와 있던 조직원들은 성남에 지부를 만들어 지냈으나, 그 후로 인천에 터를 잡은 그들 때문에 추가로 세력을 확장하는 건 상당한 난관이었다.
“그 야쿠자와 전쟁을 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디까지나 시늉만이니.
“시늉이라. 정말 그것뿐인가?”
-물론 무력 충돌은 있어야 합니다.
“뭐, 그 정도야. 걱정하지 말게.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그런데 말이야…….”
뜸을 들이던 장쉬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배를 타자는 듯해 물어보네만, 혹시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뭔가?”
단순히 시선 돌리기인가.
아니면 또 한국에서 무언가를 할 셈인가.
머릿속으로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아무리 그라도 선생의 머릿속을 다 들여다볼 순 없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민지훈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인천. 항상 탐내시던 곳 아니었습니까.
“음. 그렇지.”
중국에서 항구를 통해 들어오기 용이한 곳이기도 하고, 서울과 멀지 않은 좋은 위치다.
민지훈은 인정하는 장쉬안을 보며 웃었다.
-그럼 그걸로 된 거 아니겠습니까?
더 묻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에, 장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선생 쪽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캐묻지는 못했다.
“그렇군. 맞는 말이야……. 시기는 언제가 좋겠나?”
-준비되시는 대로.
“알겠네. 자네에게 다시 연락하려면 어디로 해야 하는 건가?”
-연락은 제가 하겠습니다.
“크흠……. 그럼, 그렇게 하시게.”
-이만.
팟.
모니터에 있던 민지훈의 얼굴이 사라졌다.
“…….”
장쉬안은 검게 바뀐 화면을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
‘목적이 뭐지?’
사실 인천의 야쿠자와 전쟁을 벌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남아도는 게 인간이고, 그것만 하면 돈도 받을 수 있다.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한 느낌이었지만, 장쉬안은 이내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냈다.
현재 선생이 무사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냥 그걸 통해 이득을 취하면 되는 일이다.
‘내가 손해 볼 건 없으니…… 이유가 중요하진 않겠지.’
더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선생을 등에 업는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니.
장쉬안은 전화기의 버튼을 눌러 비서를 호출했다.
그리고 손깍지를 끼며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흠…….”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왔나.”
잠시 침묵하던 장쉬안은,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에게 말했다.
“돈을 뿌려 부랑자들을 모으게. 뭐든 하겠다는 놈들로.”
어차피 죽어 나자빠질 길바닥 놈들.
조금만 나가도 돈이라도 챙겨 주면 간이고 쓸개고 빼 줄 자들이 수많이 있다.
“태워 보낼 배도 구하고.”
“예. 사장님.”
그 말에 비서가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사장실을 나섰다.
장쉬안은 뿌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인천에 피바람이 몰아치겠군.’
***
“네 부하 죽인 놈들. 어딨는지 알려 줄까?”
-……뭐?
내 말에 전화 너머의 J가 동요했다.
-아니, 잠깐. 그 전에 하나만 묻겠다.
“허락할게.”
-……시설을 공격한 건 선생의 경호대가 맞나?
“그래.”
사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9할 이상은 맞다고 본다.
-이유가 뭐지? 그 잔당이 왜 내 쪽을 공격한 거냐?
“질문은 하나만 한다고 하지 않았나?”
어우, 영어로 막 쏘아대니까 어지럽네.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게 있으니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뭐지?
“손을 잡자.”
내 말에 전화 너머에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선생의 잔당을 처리해야 하고, 너도 네 시설을 박살 낸 놈들에게 보복하고 싶을 거 아냐. 안 그래?”
-…….
“내가 지금까지 조사한 놈들의 위치를 넘겨주지.”
J는 내 파격적인 제안에도 침묵했다.
“왜? 대가 없이 넘겨주는 게 수상해?”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네가 나에게 협조할 이유는 없을 텐데.
“그렇다고 적대할 이유도 없지 않나?”
내가 두들겨 팬 건 선생이지, DS컴퍼니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놈은 찔리는 게 있을 거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암살자를 붙여 감시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내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이렇게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이야.”
-그건…… 부하 직원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사과하겠다.
“그러시겠지. 그래서, 받아들일 건가?”
고민하던 J가 내 제안을 수락했다.
-좋다.
거절할 수 없을 거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J는 선생의 경호대가 자신을 건드릴 줄 몰랐던 모양이다.
나도 선생과 DS컴퍼니가 우호적인 관계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얼마 전 일은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뜬금없이 선생이 DS컴퍼니의 시설을 공격하는 건 내 예상 밖이었거든.
어쨌든, J도 체면이 있으니 본인의 세력을 친 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겠지.
‘나도 이 새끼가 대신 나서 주는 게 좋고.’
경호대. 요새 우리가 한두 명씩 때려잡아서 위상이 좀 낮아지긴 했지만, 놈들의 본대는 그리 만만치 않을 거다.
우리 SA시큐리티가 정면으로 쳐들어가면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단 소리다.
제대로 된 무기를 구하기 힘든 우리 입장에선 얼굴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리스크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J에게 협력을 요청한 것도 그와 같은 이유다.
‘고기 방패는 언제나 옳지.’
고세운이 툴툴대면서도 경호대가 있을 만한 곳을 몇 군데 추려 놨다.
전파가 평소보다 많이 잡히는 섬이라거나, 과거 민지훈이 자주 들렀던 장소들을 선으로 이어 가며 보여 주던데.
솔직히 복잡해서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고세운. 그 녀석도 정확하진 않다고 했지만, 어차피 뺑이 치는 건 J가 될 테니 상관은 없었다.
“좌표를 전송해 주지. 그 장소와 주변을 수색하면 될 거다.”
-알겠다.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부탁할게.”
-음?
나는 의아한 듯한 목소리를 내는 J에게 말했다.
“너희 쪽에, H라고 금발 머리 한 명 있지?”
-……네가 그를 어떻게 알지?
“모를 수가 있나. 우리 편한테 마취총을 쏘면서 곰처럼 포획하려던 놈인데.”
지금도 다시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자칫하면 우리 SA시큐리티의 큰 전력 중 하나인 고상미를 그대로 잃을 뻔했으니까.
“혹시 친하냐?”
-친분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말해 두고 싶군.
“그래? 그럼 내가 처리해도 상관없나?”
-……좋을 대로. 혹시 그의 행방을 묻는 거라면, 난 모른다. 선생과 함께 실종된 지 오래다.
“그래?”
아직 복귀하지 않은 건가?
선생과 함께 물밑에서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고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하나만 부탁하자. 놈의 행방이 확인되는 대로 나한테 연락해.”
-정보의 대가치곤 싸군. 알겠다.
뚝.
나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옆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오주찬을 돌아보며 물었다.
“오주찬 사장.”
“예, 예.”
“이제 어떡할래?”
“예……?”
“죽고 싶진 않지?”
대수롭지 않게 뱉은 말에 오주찬이 울상을 지었다.
“그, 그렇습니다…….”
“근데 왜 그런 일을 했냐? 의뢰받고, 높으신 분들한테 약 치고.”
“죄송합니다. 평생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이 새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네.
하지만 이런다고 약해질 내 마음이 아니지.
턱.
나는 오주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놈을 바로 내쳐 버릴 순 없었다.
오주찬은 정치인 같은 높으신 분들의 약점을 쥐고 있다.
청부업체에 의뢰를 넣었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사안이니까.
“회개하고 싶어?”
“예……!”
내 말에 오주찬은 어떻게든 살고 싶은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락 돌려. 네 고객님들한테.”
씨익.
“좀 도와주셔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