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삼합회 홍콩지부장이자 명운제약의 사장, 장쉬안은 회사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명운제약은 선생과 협약을 맺고 서로 기술과 자금을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장쉬안은 몇 가지 기술을 받아 냈다.
턱.
계단을 밟고 내려간 그의 눈에 쭉 늘어선 수술대들이 보였다.
그 위에는 잠든 것처럼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그래. 상황은 좀 어떤가?”
장쉬안의 물음에, 수술복을 입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분석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생에게서 받아 낸 기술 중 하나, 각성제.
특출나지 않은 사람도 일순간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삼합회에서 생활하며 온갖 마약은 다 봤지만, 이 정도로 괜찮은 물건은 처음이었다.
“구현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50% 이상은 충분합니다.”
“좋군.”
선생이 넘겨준 건 프로토타입.
원본의 효과에는 못 미치나, 충분히 뛰어난 것이었다.
명운제약은 이 프로토타입을 연구하여 절반 이상의 효과를 가진 약물을 양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은 넘쳐나고, 그 사람들에게 이 약을 하나씩만 쥐여 준다면.
“아주 좋아.”
장쉬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수술대 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한국으로 보내진 이들이 임상 실험체 역할을 해 줄 터.
이걸 잘만 이용한다면, 고작 지부장의 자리가 아닌 더 큰 권력을 쥘 수 있으리라.
‘거기다 선생까지 나를 찾아왔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다.’
마치 제갈량을 얻은 유비처럼, 언젠가는 이 중국 땅을 집어삼킬 것이다.
“수고하게.”
그리 생각한 장쉬안은 발걸음을 돌렸다.
“예.”
수술복을 입은 남자도 짧게 대답하곤 하던 일을 이어 했다.
누워 있는 남자의 팔과 연결된 관에 주사기가 꽂혔다.
쿡.
***
턱.
달려드는 남자의 얼굴을 붙잡은 스가와라가 그대로 다리를 걸며 허리를 틀었다.
쿠웅!
“컥!”
그렇게 하나를 땅에 처박은 그를 향해 칼을 든 나머지 둘이 공격해 왔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발을 놀리며 가볍게 한 명을 제친 후, 뒤에 있던 남자의 손목 깃을 붙잡아 훅 당겼다.
중심을 잃고 무너지는 머리통을 그대로 무릎으로 올려 쳤다.
쩍!
좋지 못한 소리와 함께 남자는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스가와라는 처음과는 반대가 된 자리에서 남은 둘과 대치했다.
“나가요.”
“네, 네!”
가게 주인이 뒷문으로 빠져나가고, 스가와라가 나머지를 처리하려던 그때.
“@$^@!”
남자가 바깥을 향해 뭐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에 스가와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이놈들이 끝이 아닌 건가?’
아무리 그라도 수가 많아지면 곤란하다.
그에 뒷문으로 도망갈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벌컥!
“이런.”
하지만 이내 뒷문으로도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스가와라는 시선을 앞뒤로 돌리며 표정을 굳혔다.
포위당하면 좋을 건 없었다.
‘미우라를 기다릴 걸 그랬나.’
속으로 후회한 그는 한숨을 내쉬며 20년 동안 항상 품 안에 넣고 다니던 회칼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몇 년 만에 피를 봐야 할 것 같았다.
.
.
.
콰직!
목을 밟자,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꿈틀대던 남자의 움직임이 멎었다.
“크. 후우…….”
스가와라는 화끈한 통증이 올라오는 옆구리를 붙잡았다.
손 틈 사이로 뜨거운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가게 바닥엔 피투성이의 남자들이 쓰러진 채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분명히 관절을 꺾거나 기절시켰는데, 이들 모두 쉽게 제압당하지 않았다.
자기 팔다리가 부러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그 탓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옆구리엔 칼이 여러 번 들어갔고, 칼을 쳐내거나 막은 손과 팔에는 이리저리 베인 상처들이 잔뜩 났다.
스가와라는 인상을 찌푸린 채 상처를 지혈하며 가게를 벗어났다.
절뚝.
다리도 두어 번 베였기에 걷는 게 쉽지 않았다.
“스가와라님!”
피로 흥건한 스가와라를 봤는지, 저 멀리서 조직원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소란이 있다기에 와 봤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괘, 괜찮으신 겁니까?”
“척 보면 모르겠나.”
스가와라는 긴장이 탁 풀리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셔츠와 바지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나 좀 병원에 데려다주고…… 미우라에게 연락해라.”
“예!”
뿌득.
중국 놈들의 건방진 행태에 이가 갈렸다.
다시는 자신의 구역을 넘보지 못하게 밟아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다.
스가와라는 인상을 사납게 구긴 채 한 마디를 뱉었다.
“……그놈들 씨를 말려 놓으라고.”
툭.
“스가와라 님!”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의식을 잃었다.
***
“정말 그냥 가도 되나?”
“가라니까.”
나는 미심쩍은 듯 묻는 가네무라에게 휘적휘적 손짓했다.
“큼.”
가네무라는 결국 경호원들이 열어 주는 문으로 나갔다.
“둘만 남았군요.”
호정그룹 사장, 박광훈의 말에 주변을 둘러봤다.
기다란 테이블에 죽 늘어서 앉아 있던 사람들은 전부 퇴장한 상태였다.
‘다들 꿍쳐둔 돈 있으시죠? 지원금이 필요해서요.’
예전에 서울에서 대대적으로 마약 조직을 소탕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적절한 협박과 회유로 지원을 받아 만든 게 바로 국민건강재단이다.
이름은 저렇긴 한데, 실은 이 근방에 마약이 도는지 내 직원들이 단속하는 곳이다.
가끔 심하다 싶으면 사적 제재도 들어가고 말이다.
‘10억씩만 투자하시죠.’
모인 사람들은 내 말에 다들 떨떠름한 눈치였지만, 두 배로 불려서 돌려준다는 말에 일단 수긍하는 눈치였다.
난 실제로 그만큼 불릴 자신이 있었고, 가시적인 이득을 손에 쥐여 주면 나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거다.
신뢰하진 못하더라도 돈은 되는구나. 이렇게 느끼겠지.
현재 진행 중인 투자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자금엔 문제없다.
“그래서, 첫 ‘모임’을 가진 소감은 어떠십니까?”
박광훈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개판이야. 어중이떠중이에다, 구심점이고 뭣도 없지.”
“역시 그런가요.”
“뭐, 처음부터 바로 거물이 찾아올 거라곤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준비 단계이니만큼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기다리다 보면 차차 더 높으신 분들이 낚여 줄 거다.
드륵.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광훈이 제안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죠.”
“바빠.”
단칼에 거절했다.
뭐 예쁘다고 이놈이랑 티타임까지 가져?
나는 설렁설렁 손을 저으며 몸을 돌렸다.
“다음에 연락할 때까지 얌전히 있어. 그놈들한테 약은 계속 치고.”
“그러죠.”
그 말과 함께 문 쪽으로 향하는데, 거길 지키고 서 있던 경호원들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그걸 눈치챈 부장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눈깔이 불순하네. 똑바로 안 뜨냐?”
“…….”
경호원은 대꾸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이 새끼 봐라?”
“그냥 가지.”
190은 넘을 듯한 경호원이 무심한 표정으로 턱짓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박광훈을 돌아봤다.
무언의 의사 표시에 박광훈이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묵인하겠다는 뜻이었다.
부장님도 그걸 확인하곤 바로 경호원의 조인트를 까 버렸다.
뻑!
“크악!”
방심한 건지 경호원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뭐……!”
“새끼가.”
다리를 번쩍 든 부장님이 그대로 도끼처럼 발을 내리찍었다.
경호원은 팔을 들어 막았지만.
콰직!
“끄으윽-!”
좋지 못한 소리와 함께 경호원은 축 늘어진 팔을 붙잡고 이를 악물었다.
그에 잠시 침묵하던 박광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름 실력이 있던 분이었는데, 아쉽게 됐군요.”
“그래. 쟤는 잘라야겠다. 갑자기 저분이 눈이 돌아서 너 모가지 따겠다고 덤볐으면.”
“…….”
“진작 요단강 건넜어.”
“그렇겠네요. 저런 분이 곁에 계신다니 부럽습니다.”
나는 쓰러진 놈의 옆에서 진땀을 흘리는 다른 경호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옆을 지나쳤다.
“산재 처리해 줘.”
“당연한 말씀을.”
그렇게 나와 부장님, 고상미는 자리를 떠났다.
복도를 걷던 중 궁금하던 걸 물어봤다.
“근데 부장님.”
“엉?”
“왜 갑자기 나선 거예요? 눈깔 이상하게 떴다고 막 패진 않았잖습니까.”
내 물음에 부장님이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쟤, 우리 부대 출신이다.”
“예? 진짭니까?”
“그래. 다른 반에 있던 놈인데, 마지막에 사고 치고 전역했던 걸로 기억한다. 얼굴 보니까 기억나더라고.”
“허.”
경호원들을 거의 다 특수부대 출신으로 채웠다더니, 우리 부대 나온 놈까지 있을 줄은 몰랐네.
하긴, 부장님 동기도 선생 밑에서 일하고 있었지.
“저런 놈이 우리 부대 출신이라고 거들먹대는 모습을 생각하니까 열이 뻗쳐서. 이름에 먹칠하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하네요.”
부장님이 급발진한 이유가 뭔가 했더니 이거였구만?
고개를 끄덕이자 가만히 있던 고상미가 입을 열었다.
“하. 근데 대표. 저것들은 언제까지 두고 봐야 돼? 눈빛도 마음에 안 들고 짜증 나 죽겠는데.”
“조금만 참아 주세요. 관계를 확실히 할 때까진 만나야 될 것 같습니다.”
선생이 주도하던 ‘모임’엔 확실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알았어. 아, 그리고 할 말이 있는데.”
“뭔데요?”
“내 동생들도 같이 움직이게 해 줘.”
“걔네도요?”
위험한 일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부장님이나 고상미처럼 자기 의지로 뛰어드는 거면 몰라도.
“본인들의 의사는요?”
“하겠대. 어차피 가족도 뭣도 없는 애들이야. 그리고 그걸 내 마음대로 정했겠어? 날 뭐로 보고.”
그럴 것 같은데. 아니면 말고.
고상미 밑에 있는 녀석들도 우리 팀원들과 비견될 정도로 실력은 괜찮다.
그 녀석들이 합류해 준다면 나야 땡큐지.
띵.
“바로 회사로 돌아갈 거냐?”
“아마도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호정기획 건물의 로비를 지나 바깥으로 나오는 길.
우웅-
갑자기 품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서 확인해 보니 스가와라의 오른팔, 미우라의 전화였다.
‘얘가 나한테 연락할 일이 있나?’
이쪽에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을 텐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주혁 씨?
“무슨 일입니까?”
그리 대수롭지 않게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그렇지 않았다.
-……스가와라 님이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뭐요?”
스가와라가 다쳤다고?
“어떻게 된 겁니까?”
-중국 놈들이 혼자 있을 때 덮친 것 같습니다.
“상태는?”
-의식이 돌아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생명에 큰 지장은 없다지만, 언제 깨어날지는…….
“하, 씨.”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부장님이 내 표정을 보곤 의아한 듯 물었다.
“또 뭔데?”
“인천에 그 야쿠자 있잖습니까.”
“어.”
“중국 놈들한테 당했답니다. 아직 죽진 않은 것 같고요.”
-아직이라니!
내 말을 들었는지 미우라가 전화 너머로 소리쳤다.
‘하…….’
하필 이 타이밍이라니.
아예 관계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어쨌든 나한테 도움이 되는 인간이라 모르는 척할 순 없었다.
‘아니, 잠깐.’
중국 놈들이면 삼합회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을 텐데.
그놈들이 이 시점에 인천에서 분탕을 친 게 우연일까?
순간 민지훈이 움직인 삼합회 놈들이 유나 씨를 위협했던 게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머릿속에서 맞춰지는 퍼즐에 나는 핸드폰을 향해 말했다.
“미우라 씨.”
-예.
“범인 중에 아직 살아 있는 놈 있습니까?”
-치료해 둔 자가 하나 있긴 합니다. 다들 찢어 죽이려는 걸 간신히 말리고 있습니다만, 설마 이번에도 가로채시겠다는 겁니까?
“뭐, 그건 아니고. 몇 가지만 좀 물어보려고.”
아마 사발이 중국어를 할 줄 알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