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나는 곧장 인천으로 향했다.
새 ‘모임’의 인원들에게 뿌릴 돈을 마련하는 건 우재성에게 일임했다.
“이야……. 대표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그런 내 옆, 조수석에는 사발이 앉아 떠들고 있었다.
“저도 한때는 난다 긴다 했지만, 대표님처럼 이런 범세계적인 구라는 엄두도 못 냈단 말이죠.”
“구라라니. 갑자기 수준을 확 떨어뜨리네.”
“아니 뭐, 어쨌든 엄청 위험한 일 아닙니까. 저 같은 잡범이 보기엔 그렇다는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씩 웃는 사발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다른 게 아니라, 저 같은 소시민의 심장에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
“물론 빠지겠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하하.”
내 눈빛을 봤는지 사발이 빠르게 덧붙였다.
“빨리 퇴직하고 싶으면 더 열심히 하라고.”
“그래야지요.”
사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우리는 미우라가 주소를 찍어 준 병원 앞에 차를 대고 내렸다.
병실로 올라갔는데, 복도부터 정장을 입은 야쿠자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다들 죽상인 데다 개중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놈도 보였다.
내가 그리로 걸어가자,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미우라가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예. 상태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미우라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삑삑대는 의료 장비와 연결된 스가와라가 눈에 들어왔다.
호흡기를 단 채 환자복을 입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정확히 상태가 어떻습니까?”
“내부 장기는 봉합을 마쳤지만, 수술하기 전까지 피를 많이 흘렸답니다.”
“죽는 건 아니라는 거죠.”
“……예.”
참담한 표정으로 침상을 내려다보던 미우라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놈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었다고 하셨죠.”
“네. 짐작 가는 게 하나 있어서요. 당연히 미우라 씨한테도 알려 드릴 겁니다.”
미우라는 뭐라 말하려다 이내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그자를 잡아 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
스가와라의 상태도 확인했겠다, 다시 병실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이주혁 씨.”
“음?”
“의식을 잃기 전 이런 말씀을 남기셨답니다. 그놈들의 씨를 말리라고.”
미우라가 살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기신 말씀대로, 우리는 지금부터 인천에서 삼합회 놈들의 씨를 말릴 겁니다.”
넓은 인천 바닥은 스가와라의 야쿠자 패거리와 기타 중소 조폭들이 먹고 있다.
그중엔 야쿠자들이 막기 전 미리 넘어와 있던 중국 놈들이 뭉친 조직도 존재했다.
규모가 큰 건 아니지만, 그래도 2~30명은 되는 인원수를 가지고 있어 스가와라도 굳이 건드리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주변에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하지 말라기엔 미우라 이 새끼가 이미 눈이 돌아간 것 같았다.
‘말려도 절대 안 듣겠네.’
그에 나는 발상을 바꿨다.
막을 수 없다면 이용하자.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복수한다는 말 아닙니까. 도와주겠다고요.”
내 말을 들은 미우라가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의도입니까?”
“의도라니. 당연히 돕는 게 도리죠. 스가와라 씨와는 어찌 됐든 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 아닙니까.”
안타깝다는 표정을 얼굴 위로 만들어 내며 선언했다.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 저렇게 됐습니다. 저도 그놈들에게 복수할 겁니다.”
“이주혁 씨…….”
미우라는 내 진심을 느꼈는지, 살짝 감격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SA시큐리티의 실력은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희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빚은 잊지 않겠습니다.”
허리를 깊게 숙이는 미우라.
나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턱.
“빚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쇼.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크흑.”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게 슬쩍 미소 지었다.
역시, 의리를 중시하는 놈들 답게 예상대로 반응이 나와 주네.
‘그래. 그렇게 마음의 빚을 담아 두라고.’
그래야 써먹기 편하니까.
.
.
.
그렇게 나와 사발은 미우라의 안내를 따라 한 폐건물로 이동했다.
스가와라를 습격한 이들 중 살아남은 한 놈이 붙잡혀 있는 곳이었다.
그나저나, 스가와라도 대단하네.
혼자 있을 때 습격당했다면서 한 명 빼고 다 처리하다니.
괜히 야쿠자 세계에서 유명한 게 아니었다는 건가.
“이 안에 있습니다. 부하들에게는 미리 말해 뒀으니 편하게 심문하시면 됩니다.”
미우라의 태도는 전보다 확실히 부드러워져 있었다.
지금은 내가 간단한 부탁을 해도 들어줄 것 같은 느낌.
“고맙습니다. 아, 미우라 씨도 참관하시죠.”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그놈이 뭐라고 지껄였는지 설명해 줘야 할 텐데, 그냥 바로 듣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우리 셋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봄의 끝물이라 습하진 않았지만, 오래된 곳 특유의 꿉꿉한 공기가 느껴졌다.
“저놈입니까.”
“예.”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공간 한복판에, 엉망진창이 된 남자가 축 늘어져 있었다.
양쪽 팔은 벽에 연결된 쇠사슬로 단단하게 묶인 채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죽은 것 같은데.
“원래 이 상태였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희 애들이 잡는 과정에서 조금…….”
“아하.”
자기 보스를 칼로 쑤신 놈이다.
당연히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을 좀 봐줬겠지.
어떻게든 뜯어말려서 목숨줄은 붙여 놨나 보다.
척.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통역해 줘.”
“네.”
사발을 옆에 데려온 뒤 물었다.
“누가 보냈지?”
사발이 내 말을 통역해 주자, 눈가를 떨던 놈이 발작하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 $^@#$!!”
“뭐라는 거야?”
“음. 살려 달라네요. 맛이 갔나 본데요.”
“패닉인가.”
손을 휘둘러 놈의 뺨을 후려쳤다.
짝!
“윽!”
“정신 차려 인마.”
놈은 내 눈을 마주 보더니, 이내 덜덜 떨며 바닥으로 얼굴을 숙였다.
아까보단 멀쩡해진 듯한 모양새에, 나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 놈이냐?”
“어떻게 넘어왔지?”
“누가 시켰어?”
사발이 내 질문을 통역해 전달하자, 놈은 완전히 꺾여 버렸는지 술술 불었다.
심문을 통해 알아낸 건 이랬다.
이놈 패거리는 중국에서 밀항 브로커를 통해 넘어왔다.
새벽에 부두로 들어온 탓에 바로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브로커가 전달한 대로 스가와라의 구역에서 깽판을 놨다.
듣기론 높으신 분의 명령이라는데, 자기도 정확한 건 모른단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실력자인 스가와라가 이런 잔챙이들에게 중상을 입은 이유.
그건 바로 수상한 약물 때문이었다.
밀항 브로커가 이상한 주사 같은 걸 나눠 주며 싸우기 전에 쓰라고 했고, 부랑자 출신인 놈들은 별생각 없이 주사를 놨다.
그러자 느껴지는 고통이 줄었으며, 기분 좋은 고양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선생의 그 약물과 관련이 있을 거야.’
예전에 성자를 족치러 갔을 때, 그놈의 수하가 비슷한 약물을 맞고 미친 듯이 날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효과가 있는 약물을 이런 놈들한테까지 뿌릴 사람은 내가 생각하기에 몇 되지 않았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이놈이 말했던 ‘높으신 분’의 정체가 선생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 중국…… 삼합회…….’
수상하다. 아주 수상해.
하지만 더 이상 물어봐도 얻을 건 없겠지.
“여기까지 합시다. 고문은 할 필요도 없었네.”
살짝 협박한 것만으로도 있는 거 없는 거 전부 불 줄은 몰랐다.
미우라는 잠자코 내 옆에 서 있으면서 들은 말 탓인지 복잡한 표정이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십니다.”
“예……. 좋지 못한 상상을 했습니다.”
“무슨 상상이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하긴, 인천을 호시탐탐 노리던 삼합회로선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일 거다.
인천 야쿠자들의 수장인 스가와라가 의식불명 상태니까.
“어쩌면, 복수할 게 아니라 전쟁을 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근심 가득한 미우라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할 거 없습니다.”
“……?”
“돕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삼합회 놈들한테는 저도 받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유나 씨를 위협한 데다, 서해결 검사를 납치하려고도 했다.
거기다 고광목의 손목을 잘랐을뿐더러 그 부하들을 죽였다.
‘높으신 분’이 누군지도 알아내야 했기에, 일단은 미우라의 호의를 살 필요가 있었다.
‘좋은 고기 방패가 되어 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미우라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큭. 이런 분인 줄도 모르고……! 그동안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고개 드세요. 부담스러우니까.”
가까이 지낼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거 액션이 과한 놈이네.
아니면 그만큼 간절하다는 건지.
“우린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아쉽지만 일이 바빠서요. 이놈은 이제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쇠사슬에 묶여 있는 놈을 가리키며 묻자, 미우라가 사나운 눈빛으로 말했다.
“우선은 부하들에게 던져 주고, 그 뒤에 시체는 개먹이로 던져 줄 겁니다.”
음. 살벌하네.
“그럼, 마무리 잘하세요.”
“예. 필요한 게 있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나와 사발은 미우라를 뒤로하고 나왔다.
저벅.
내 차로 향하는 길, 뒤를 슬쩍 돌아본 사발이 조용히 물었다.
“대표님. 진짜로 도와주실 겁니까? 야쿠자들 도와줄 정도로 의리남은 아니시잖아요.”
“도와주긴 할 거야. 어디까지나 필요해서긴 하지만.”
“그렇군요……. 그런데 너무 일을 많이 벌이시는 거 아닙니까? DS컴퍼니도 그렇고, 그 무슨 모임도 그렇고. 지금 인원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사발의 의문은 당연했다.
언뜻 보면 대책 없이 막 벌리고 있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모임은 박광훈이 알아서 조율할 테고, DS컴퍼니도 당장 급한 건 아니다.
선생의 경호대도 잠잠한 지금, 갑자기 치고 들어온 삼합회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어쩌면 선생과 삼합회가 접촉해 힘을 합친다는, 그런 최악의 상황일지도 모르니까.
“지금 인원이 부족하긴 하지.”
아무리 우리 직원들의 실력이 뛰어나다지만, 사발의 말대로 확실히 이 많은 일에 투입하기엔 적은 수다.
내가 미우라의 호의를 산 것도 그 이유다.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야쿠자들 외에도 사람이 더 필요하다.
그쪽은 어디까지나 협력 관계지, 내 편이 아니거든.
“또 면접 보시려고요?”
“글쎄.”
머릿속으로 몇몇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 주철수가 속해 있던 환성파.
그곳 출신의 조폭들이 전국에 퍼져있었다.
각자 그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 잘 나가고 있던데.
‘모임’의 이름으로 돈 좀 찔러 주면 넘어오지 않을까.
그놈들도 권력에 욕심은 있겠지.
‘아, 그 녀석도 있다.’
용병 출신에, 선생도 의뢰를 맡겼던 마종석.
강남파에 몸담고 있던 터라 잡혀 와서 험한 꼴을 당하긴 했지만, 어쨌든 용병이라 내가 돈으로 설득해 도움을 꽤 받았다.
실력도 부장님의 팔뚝에 칼을 꽂을 정도는 되니까, 다시 고용할 수 있다면 큰 전력이 될 거다.
우재성이나 고세운한테 수소문 좀 해 보라고 말해 둬야겠어.
분명 계약을 종료할 때 다시는 보는 일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히죽.
어디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나는 바로 고세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바쁘냐?”
-또 뭐야?
씨익.
“사람 한 명만 찾아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