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다음에 또 올게요.”
“네. 몸조심해요!”
작별 인사를 나누고 풍원한정식을 나섰다.
웃으며 손을 흔들던 나는 유나 씨가 안으로 들어가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조병철…….’
그 속을 알 수 없는 놈이 유나 씨에게 접근했다.
거기다 유나 씨 아버지랑도 관련이 있는 사이라니.
이대로 아무 대처 없이 넘어가기엔 마음이 불안했다.
‘설마 도와주겠다고 해 놓고 장난질을 치진 않겠지만…….’
아무리 믿을 사람이 없어도 구를 대로 굴러먹은 정치인을 믿을 수야 있나.
팀원들에게 신경 써 달라고 단단히 이야기해 놔야겠어.
끼익.
그렇게 찝찝함을 가득 안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사람을 찾아 휴게실로 향했다.
끼익-
문을 열자 중학생 정도 됐을까 싶은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신체의 발육은 남다른 놈이었다.
“오, 오셨어요.”
이로운은 날 보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날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아무래도 나한테 처맞고 잡혀 온 거다 보니 아직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다.
“뭐 하고 있었어?”
“아, 그냥 커피를 좀…….”
그 말에 테이블로 시선을 돌리니, 녀석의 앞에 빈 믹스 커피 봉지만 세 개가 있었다.
“커피는 달다고 막 먹으면 안 돼. 밤에 잠 못 잔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뭘 또 죄송해. 그리고 대표님은 너무 정 없잖아. 그냥 형이라고 불러.”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말이야.
그래도 지금 몸은 20대 초반인데, 이런 애한테도 대표님 소리 들으면 너무 나이 든 것 같잖아?
이로운은 잠시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형.”
“좋아. 말도 좀 편하게 하고. 혹시 며칠 안으로 누구 만날 일 있어? 약속이라든가.”
“약속이요? 딱히 없습니다.”
“그럼,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디요?”
씨익.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미국.”
그러자 이로운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
“……미국이 어디예요?”
“아.”
뭐야? 이놈……. 거기부터 설명해야 하는 거야?
.
.
.
나와 이로운은 해외여행을 위해 여권을 만들려고 구청으로 향했다.
물론 여권을 발급하기 위해선 이로운의 신분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용산구청장이 모임의 일원이었기에 해결은 빨랐다.
이로운은 자기 여권을 받아 들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
참고로 이로운은 현재 마땅한 후견인을 구하지 못해서 고아로 등록됐다.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서 내가 양친 자격으로 입양할 수도 없고 말이다.
‘뭐, 지금으로선 굳이 필요하진 않겠지.’
이로운도 갑자기 누군가의 자식으로 호적에 들어가는 건 썩 달갑지 않을 거다.
“갈까?”
“넵. 정말 감사합니다.”
“진작 해 줬어야 하는 거야.”
필요한 건 다 준비했으니, 이제 비행기 표를 예매해야겠구만.
나는 이로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캐리어랑 가서 입을 옷이나 사러 가자.”
“네.”
이제 정말 미국으로 날아갈 시간이다.
***
넓고 긴 복도.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비서관이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서관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래. 무슨 일인가?”
비서관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물음에 앞으로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넸다.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은 그걸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이게 뭔가?”
“말씀하신 대로 이주혁을 조사하던 중 특이상황이 발생해서 말입니다.”
“한번 보지.”
스윽.
서류를 꺼내 든 조병철에게 비서관이 설명을 이어 갔다.
“이주혁이 항공편을 끊었습니다.”
“오호. 목적지가…… 미국이군?”
조병철은 턱을 쓰다듬으며 이주혁이 예매한 비행기의 좌석표를 빤히 쳐다봤다.
“미국에는 무슨 볼일인가…….”
“그것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냐, 그것까진 됐어.”
이주혁도 자신이 출국한다는 사실이 흘러나가는 것까진 당연히 노출될 걸 상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까지 캐내는 건 선을 넘는 행위다.
이주혁이 불쾌해할 것은 명약관화였기에, 조병철은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실장님. 괜찮을까요?”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해외에서 무슨 계획을 꾸밀지 모르잖습니까.”
조병철이 피식 웃었으며 대꾸했다.
“물 건너가서 고작 나 하나 담글 계획을 세운다고? 그럴 리가 없지. 칼 한 자루만 들고 와도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을 텐데.”
그 말에 비서관이 살짝 발끈했다.
“실장님. 저희가 지키는 이상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 사람아. 내가 자네들 말고는 믿을 사람이 어딨나?”
툭.
서류를 내려놓은 조병철이 표정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SA시큐리티 쪽에 얼씬도 하지 마.”
“감시를 거두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주혁이가 자리를 비운 동안은 절대로 가까이 접근하지 말란 소리야.”
“……알겠습니다.”
“가 봐.”
꾸벅.
비서관은 깊게 허리를 숙인 뒤 떠났다.
그가 나간 곳을 바라보던 조병철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서관에게는 별로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도 이주혁이 미국에서 무슨 일을 할지 내심 불안했다.
‘연락을 해 봐야겠어.’
다행히 미국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병철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번호를 찾으며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반가운 목소리를 듣겠군.’
***
DS컴퍼니의 이사, 헨리 가필드.
일명 H라 불리는 그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한 장소로 들어섰다.
끼익-
H는 2층으로 된 목조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익숙한 듯 계단을 올라가 서재로 향했다.
노크를 하려던 H는 문이 열려 있다는 걸 보고 안을 향해 말했다.
“올 줄 알았나 보지?”
“앉으시죠. 차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H는 서재에 다기를 둔 그의 센스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커피면 고맙겠군.”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전문적인 솜씨로 커피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하던 H는 그런 남자를 보며 말했다.
“반란은 성공적으로 끝났어.”
“그렇겠죠. 그게 아니었다면 당신이 내 커피를 마실 일은 없었을 테니.”
남자는 커피를 달이느라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다른 임원들은 잘 통제가 됩니까?”
“뭐, 겁은 먹었어도 큰 불만은 없는 모양이야.”
H가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조소했다.
“파이를 나눠 먹던 인간들이 죽어서 제 몫이 늘었는데, 그걸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렇군요.”
탁.
커피를 H의 앞에 놓아준 남자가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아직은.”
짧게 대답한 H가 눈앞의 남자와 눈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선생.”
“말씀하시죠.”
“제이콥은 왜 건드린 거야?”
그 말에 선생, 민지훈은 뜨거운 커피를 살짝 입에 댔다.
얼마 전, J의 관리하에 있던 한국지부를 선생의 경호대가 친 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H에게 따로 전달하지 않았었다.
“무슨 말씀인지.”
“빙빙 돌아가지 말자고. 나도 눈과 귀가 있으니까.”
“그럼,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탁.
잔을 내려놓은 민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건드리면 안 됩니까?”
“……뭐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DS컴퍼니는 이제 살인 청부를 하지 않을 거라고.”
“……그랬었지.”
“그러려면 J 이사 또한 축출해야 합니다.”
H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꼭 그래야 하는 건가?”
“J 이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청부업자들이 그를 중심으로 규합할 가능성이 있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습니다.”
“나도 두고 볼 수는 없겠는데. 제이콥은 내 친구다.”
“그를 제거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H.”
민지훈은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그럼 무슨 뜻이지?”
“J는 살려 놓되, 그의 세력은 축소해야 한다는 겁니다.”
“…….”
H도 바보는 아니었다.
구세대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선, 그들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해선 안 된다.
과거에 반란이 일어나면 선왕의 일가친척을 전부 제거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제가 알기로, J 이사는 내부적으로 큰 신뢰를 받던 인물입니다.”
“……그건 맞지.”
J는 DS컴퍼니의 어두운 면을 담당하던 인물.
용병 출신인 그는 킬러를 파견하는 업무를 도맡았고, 자연히 그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DS컴퍼니보다 J를 더 신뢰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H가 고민에 빠졌다는 걸 확인한 선생이 말을 이었다.
“말도 없이 공격하자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본인을 먼저 설득해야죠.”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잠시나마 축출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예전부터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으니, 어쩌면 격하게 반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 아니, 헨리. 당신이라면 DS컴퍼니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잘 알 거라 믿습니다.”
“…….”
H는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처음 선생과 계획을 세울 땐 즐거웠다.
세상의 중심인 것 같은 인물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거기다 연마다 막대한 수익을 내는 DS컴퍼니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선생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H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대놓고 그를 거스르는 건 불가능했다.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잘 설득해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
조용히 이를 간 H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엔 한 입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선생.”
“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H는 속에 있는 말을 꾹 눌러 삼키고 몸을 돌렸다.
“다음에 뵙죠.”
끼익-
민지훈은 나무 계단에서 나는 발소리를 들으며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
DS컴퍼니에서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이용하긴 했으나, 목적을 이룬 건 H도 마찬가지.
민지훈이 H를 이용하는 것처럼 H도 그를 이용하고 있다.
피차 더 써먹을 부분이 있기에 아직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후룩.
민지훈은 커피를 음미하며 생각을 돌렸다.
‘모재욱 부대장이 붙잡힐 줄이야.’
인천의 야쿠자, 스가와라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파견한 그가 이주혁에게 당했다.
경호대의 주요 전력 중 하나였기에 꽤 뼈아픈 손실이었다.
거기다 DS 한국지부를 담당하는 오주찬 사장의 입을 막기 위해 보낸 대원 두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았지만, 어쩐지 유쾌한 기분이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아.”
민지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예.
씨익.
입꼬리를 올린 민지훈이 전화 너머의 상대를 향해 말했다.
“그럼 갑시다. 손님맞이 하러.”
***
댈러스 주의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
우리는 그곳의 로비에서 짐을 챙기고 걸음을 옮겼다.
총 멤버는 부장님, 우재성, 마종석, 춘식이, 이로운.
거기에 한 사람이 더 추가됐다.
“이야. 여기도 오랜만이네.”
광철이 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창문 너머로 비치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 미국 간다고? 나도 데려가!
-네?
-내 애들 미국 살잖냐. 이참에 얼굴이나 보러 가야겠다.
-아, 그래요?
-설마 몰랐어?
그 뒤로 어떻게 그걸 모르냐면서 잔소리를 퍼부으셨다.
‘말을 해 줘야 알지…….’
전생, 현생을 통틀어도 광철이 아저씨는 본인 자식에 관해선 말을 아끼셨다.
“간만에 보려니까 긴장되네. 참.”
“허.”
“너도 같이 가자. 소개해 줄게.”
“좋죠.”
아저씨는 어울리지 않게 긴장한 얼굴로 손을 싹싹 비볐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짓했다.
“그럼, 가 볼까요?”
아저씨의 가족을 만나러.
그리고.
히죽.
DS컴퍼니 놈들을 족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