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마종석은 아까부터 묘한 표정으로 있는 춘식을 보며 퉁명스레 물었다.
“왜 자꾸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쳐다보는 거지?”
“귀엽게 봐주시는군요.”
“젠장.”
눈을 질끈 감은 마종석이 양팔을 들며 말했다.
“뭐가 됐든, 일단 성과가 있어서 다행이군. DS컴퍼니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니.”
만약 아무런 정보도 얻어 내지 못했다면, 이주혁은 악마의 아가리로 또 그를 갈궜을 것이다.
안 그래도 마침 이주혁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연락을 해 왔기에 그들은 자리를 옮겨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한참을 벤치에 가만히 앉은 채로 사람들만 쳐다보고 있자니, 행인들은 세 사람을 이상한 눈빛으로 힐끗힐끗 보며 지나갔다.
그렇게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시간을 보내던 중, 마종석이 영어로 조용히 물었다.
“너도 청부업자였나?”
“…….”
그 말에 춘식이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이로운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있었지만, 영어를 몰랐기에 눈치를 보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춘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죠?”
“그런가.”
“왜요. 비난하시렵니까?”
“비난은 무슨.”
마종석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똑같은 인간인데.”
“그건 맞죠.”
“……그렇게 바로 긍정하니 뭔가 아니꼽군.”
“로운 학생. 학생은 저 아저씨처럼 되면 안 됩니다.”
아는 언어로 하는 말에 이로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뭘 고개를 끄덕여?”
“아, 죄송합니다…….”
“또, 또. 어린애 괴롭히지.”
마종석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했다.
“이주혁……?”
짜증 나게 익숙한 얼굴이 이쪽을 보며 씩 웃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
우리는 근처의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감시는 확실히 없는 거죠?”
“네. 제가 단단히 일러 뒀습니다.”
“그런 요청을 들어줄 사이는 되나 봐요?”
내 물음에 춘식이 머쓱한 얼굴로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예전에 좀 친하긴 했는데……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닙니다.”
“무슨 생각이요. 내통? 배신?”
“에헤이! 무서운 말씀을.”
춘식이 손사래를 쳤다.
나도 녀석이 갑자기 내 뒤통수를 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작업에 이용당할 순 있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생각했다.
‘H, 그 새끼가 역시 살아 있긴 했네.’
부하들을 끌고 와 고상미를 생포하려 했던 놈.
춘식이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었지.
바다에 던져 버린 민지훈이 살아났을 때, 난 H가 놈을 끌고 빠져나간 건 아닐까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다.
민지훈과 H는 현재 한패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 미심쩍은 점이 하나 생긴다.
‘J, 그놈은 왜 시설을 공격한 거지?’
만약 민지훈과 DS컴퍼니가 협력 관계라면, 경호대는 J가 관리하는 한국지부를 칠 이유가 없다.
‘설마.’
나는 춘식을 향해 물었다.
“DS컴퍼니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했죠?”
“네. 대표는 사망한 걸로 추정되고, 아마 H의 성격상 다른 간부들도 대거 숙청당했을 겁니다.”
“음.”
이러면 두 가지 정도로 가설이 나온다.
첫 번째, J도 축출 대상이다.
J의 모가지가 아직은 붙어 있다지만, 조만간 제거하기 위해 세력을 줄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춘식의 말로는, 반란군의 수괴 H와 J는 예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H가 J에게 직접 손을 쓰진 않았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다음 가설이 더 확률이 높지.’
두 번째, 민지훈이 DS컴퍼니 몰래 뭔가 장난질을 하는 중인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춘식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도 그쪽이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래요?”
“H, 그놈도 아마 선생을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겁니다. 음흉하지만 똑똑한 놈이거든요.”
민지훈은 DS컴퍼니를 접수하려는 건가?
놈의 다음 스텝을 확실히 알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일단 이 자리에서 고민해 봤자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DS컴퍼니를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겠지.
“내부 구조는 알고 있어요?”
“예. 자주 왔다 갔다 해서 머릿속에 대강 있습니다. 그려 드릴게요.”
사각.
춘식이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종이에 건물을 그렸다.
지상에는 건물이 5층 정도 높이로 지어져 있었고, 지하로는 지상층의 세 배 정도 되는 깊이로 공간이 존재했다.
“누가 음흉한 놈들 아니랄까 봐 무슨 땅굴을 파고 사네.”
“그만큼 외부에서 침입하기도 힘든 구조죠.”
“그, DS바이오테크도 이렇게 만들어 놨어요?”
DS컴퍼니에 속한 회사 중 하나로, 이윤종 박사가 세미나에 참여한 탓에 DS컴퍼니와 선생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었다.
“아뇨. 바이오테크는 일반적인 연구소 형태의 구좁니다. 그곳도 보안이 철통같은 건 마찬가지지만요.”
그 말에 나는 춘식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예전에 좀 친했다고 했죠?”
“네. 하지만 외부인을 들이는 건 무립니다.”
춘식이는 내가 무슨 요청을 할지 눈치챘는지 미리 난색을 보였다.
“흐음…….”
“……안 그래도 H, 그 녀석이 저한테 돌아오라고 하더군요.”
“돌아오라고요?”
“자기 밑에 들어오라는 거죠. 지금은 이래도, 제가 현역일 땐 꽤 실력이 괜찮았거든요.”
“잠입은 가능해요?”
“솔직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놈이 눈치 못 챌 리가 없어요.”
미국으로 오긴 했는데, 막상 놈들을 족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대놓고 쳐들어가기엔 우리 무장 상태가 영 아니고, 숨어서 들어갈 방법도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그때, 우재성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우웅-. 달칵.
“여보세요?”
-……대표님.
“얘기는 잘 됐어요?”
-투자 건은 잘 해결됐습니다만…….
나는 이어지는 우재성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큰일이 생겼습니다.
“큰일이요?”
-그때 그 갱단이 나타났습니다.
***
“그래도 잘 풀린 거지?”
“그렇죠.”
우재성과 라세흠은 미팅을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
“이제 바로 주혁이한테 가면 되는…….”
저벅.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앞을 가로막는 남자들에 의해 멈췄다.
대놓고 적대적인 눈빛에, 라세흠은 우재성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슬쩍 당겼다.
“뭐야? 이 껄렁한 새끼들은…….”
라세흠은 빠르게 상대를 훑었다.
그리고 품 안에 들어 있는 총기를 확인한 즉시 우재성을 들쳐멨다.
“어엇!”
평소 드는 무게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우재성을 들고 라세흠은 남자들을 피해 골목길로 달려갔다.
“저 새끼들 뭐야!”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씨…….”
턱!
라세흠은 우재성을 먼저 담벼락 너머로 넘기고, 자신도 훌쩍 뛰어넘었다.
우재성은 휘청거리며 일어나다 한 가지 가정에 생각이 닿았다.
“설마……?”
SA시큐리티에게 합류하기 전, 우재성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납치와 협박을 불사하던 갱단.
이주혁이 말한 대로 정말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일단 주혁이한테 연락해.”
“네.”
우재성이 핸드폰을 꺼내는 사이, 라세흠은 담벼락을 밟고 섰다.
그러자 담을 타고 오르려던 남자들이 움찔했다.
그들 사이로 라세흠이 뛰어들었다.
탓!
“이런 미친!”
“죽……!”
퍽! 퍼억! 콰직!
얼굴, 턱, 목, 중요 부위.
라세흠은 순식간에 주먹과 발을 이용해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을 공격했다.
“꺽……!”
“크악!”
“끄으읍……!”
갱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을 제압한 라세흠은 다시 담벼락을 타 넘었다.
“연락했어?”
“네. 이쪽으로 오신답니다.”
우재성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총은 안 쏜다니까 알아서 도망쳐 보라는데요. 사람 많은 곳으로.”
“오케이. 숨어들자고.”
사사삭.
두 사람은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다.
“저번에 그놈들이야?”
“네. 예전에 미국 오셨을 때 상대한 갱인 것 같습니다.”
“맞지? 근데, 그때 보스는 병신 되고, 떨거지들도 다 잡혀간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합니다만, 그쪽이 아니면 저희를 노릴 이유가 없어요.”
“그것도 맞지.”
일행은 오늘 미국에 도착했다.
그런 그들을 생면부지의 인간들이 다짜고짜 쫓아 올리가 없었다.
“우릴 어떻게 알아본 거야? 외국인들은 우리 얼굴 잘 구분 못 하지 않나?”
“……정보가 샜을지도 모르죠.”
“샜다고?”
“네. 얼굴 사진과 출국 기록을 전해 받았다면 충분히 저희를 추적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말에 라세흠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대체 어떤 새끼가…….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자.”
둘은 낮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진 후, 얼굴이 시뻘게진 갱들이 달려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X발……. 어디로 갔지?”
“멍하게 있지 말고 빨리 찾아!”
“X발! 찾고 있잖아!”
“놓친 걸 알면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멍청한 새끼야! 빨리 뛰어!”
갱들은 서로 험악하게 소리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걸 본 행인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옆으로 피했다.
남자들은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미친놈들……. 쯧쯧.’
아파트의 계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그 모습을 살피던 라세흠은 우재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쪽에는 별일 없대? 우리만 습격당한 건가?”
“그런 것 같네요.”
“하, 짜증 나네…….”
기약 없이 몸을 숨기고 있던 그때, 갑자기 주변을 수색하던 갱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리고 뭐라 자기들끼리 숙덕대더니, 이내 씩씩대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지?”
“그냥 가네요.”
어리둥절하던 그때, 이주혁에게 연락이 왔다.
“어. 오고 있냐?”
-네.
“얘네 갑자기 되돌아가는데?”
-……그래요?
“어떻게 할까. 일단 접선해? 아니면 따라가 볼까.”
그 물음에 이주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소 불러 드릴 테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엉?”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뚝.
라세흠은 끊겨 버린 전화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
부장님과의 통화를 종료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 끝이 살짝 떨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만큼 이놈을 여기서 마주칠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는데.”
조금 전, 부장님을 도우러 가려다 카페로 들어가는 한 사람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홀린 듯이 따라갔고, 이내 내가 그 실루엣을 익숙하게 느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민지훈.”
내 말에, 맞은편에 여유롭게 앉아 있던 놈, 민지훈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눈으로 보기 전까진 이놈이 살아 있다는 것도 확신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로써 확실해졌다.
‘역시, 그때 살아 나간 게 맞았어.’
그 일에 관해 물어볼까 했지만, 곱게 대답해 줄 놈이 아니었기에 마음을 접었다.
그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갱단, 네 수하들이냐?”
“네. 정확히는 고용한 거지만요.”
내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민지훈이 부장님을 쫓던 갱단을 철수시켰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왜 그놈들을 이용한 거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그 조건으로 나도 내 일행을 물리고 혼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궁금하기도 하고.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내가 이 자리에서 저번에 못한 마무리를 할 수도 있는데.”
내 말에 민지훈은 예의 그 재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죽도록 두들겨 맞고 바닷물에 빠지기까지 했는데도 바른 청년 같은 외모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 여전했다.
보통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은 사람을 다시 마주하면 겁에 질릴 만도 한데 말이다.
“한 가지, 이주혁 씨에게도 구미가 당길 만한 제안을 하러 왔거든요.”
“제안이라고?”
“네.”
민지훈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한 마디를 뱉었다.
“저와 손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새끼가 드디어 미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