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우리는 장비와 함께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의외네.’
당연히 민지훈이 내가 붙잡은 경호대원들에 관해 언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놈들보다 나와의 거래가 더 우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나한테 악감정이 있든 없든 당분간 이득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 써먹을 수 있을 때 열심히 써먹어야겠지.
탁. 철컥.
룸미러로 이로운이 능숙하게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총 다루는 것도 거기서 배운 거야?”
“네. 실전에서 써 본 적은 없지만요.”
“잘됐네.”
아예 만질 줄 모르면 가르치는 데 좀 고생했을 텐데.
방탄복을 입은 우리는 차 안에서 각자 탄창을 가슴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하, 이렇게 제대로 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감회가 새로운지 춘식이가 히죽 웃었다.
“다들 준비됐어요?”
“그래.”
“네.”
그럼 가 볼까.
“참고로 그놈들이랑 합동 작전입니다.”
“하.”
부장님이 불편한 표정으로 시트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이해는 하는데, 그놈들이랑 같이 움직인다는 게 마음에 안 드네.”
“저도 그래요.”
이전에 몇 번 맞붙기도 했고, 사사건건 거슬리던 녀석들이니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참에 본전을 뽑기 위해선 인내도 필요한 법.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전이 뭔지 아세요?”
“음? 뭔데.”
“이이제이.”
“아, 그랬지?”
전생에서 날 죽였던 정 상무를 포함해 많은 놈들을 내 손을 쓰지 않고 보내 버렸다.
굳이 손을 쓰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알아서 싸워 주니까 나와 내 사람들도 안전할 수 있거든.
그래서 민지훈과도 잠시 협력하는 거다.
한국처럼 주먹이나 칼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놈들은 한 발만 맞아도 숨이 넘어가는 총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들 몸조심합시다.”
“그래야지.”
“몸조심.”
“좋습니다. 그럼…….”
DS컴퍼니의 J 이사.
갈 곳 없는 고아들을 모아 킬러로 키우는 개새끼다.
이로운도 그놈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순 없겠지.
“출발합시다.”
오늘, J는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
.
.
끼익-.
약속 장소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J가 있는 장소는 DS컴퍼니 본사처럼 지하로 지어진 곳은 아니었다.
살인 청부를 담당하고 있다길래 어디 음침한 데서 지낼 줄 알았는데, 놈은 생각보다 멀쩡하게 지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한 10층짜리 회사 건물 느낌이랄까.
외벽은 또 통유리로 되어 있는 데다가, 노을이 지는 시간대라 그런가 괜찮은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민지훈에게 받은 핸드폰을 꺼내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도착하셨습니까?
“어. 여기서 대기하면 되는 건가?”
-네. 해가 지고 난 후에 진입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그놈이 퇴근 안 하는 건 확실하고?”
-최근 매일 같이 자신의 회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너희 인원은 어디 있는 거야? 같이 진입한다고 하지 않았나?”
주변을 둘러봐도 이 시가지엔 경호대로 보이는 놈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디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우선 만나야 작전을 진행할 수 있는데 말이야.
이런 내 생각을 안다는 듯 민지훈이 대답했다.
-이주혁 씨 일행을 총알받이로 세울 생각은 없습니다.
“말로는 쉽지.”
애초에 민지훈이 나한테 바라는 게 ‘서클’ 놈들의 표적 역할 아닌가?
그러니 지금도 함부로 마음을 놓을 순 없다.
-말씀드렸다시피, 나는 지금 당신의 존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런 불필요한 짓을 할 이유가 없죠.
“흠.”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인지 배배 꽈서 듣게 되네.
내가 필요 없어지는 순간 바로 뒤통수 칠 거란 소린가?
“그럼 네 쪽 인원은 어디 있는데?”
-한 블록 직진해서 오른쪽으로 틀면 바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서 대기 중입니다.
“그래? 알았다.”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단단히 전해 뒀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걱정?”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은 너희 쪽에서 해야지.”
-……그럼,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리죠.
“그래라.”
뚝.
전화를 끊고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시죠.”
“오케이.”
우리는 천천히 차를 몰고 집결 장소로 이동했다.
어떤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 * *
한편, 민지훈이 말한 바에는 무장한 10명의 경호대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호대의 대장, 육진모는 전화를 끊고 나머지 9명의 대원을 살폈다.
“대장님. 위에선 뭐라십니까?”
“이주혁이 이쪽으로 온다신다.”
“예?”
그 말에 대원들이 각자 인상을 구겼다.
그들의 이주혁에 대한 인식은 최악에 가까웠다.
대원 둘이 그의 손에 당했고, 심지어 부대장조차 돌아오지 못했다.
무엇보다 고용주인 민지훈의 앞길을 계속 가로막던 인물이니만큼, 당연히 대원들은 이주혁을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긴 왜 온답니까?”
“도착하면 알겠지.”
“하……. 안 그래도 그놈들이 우리 뒤꽁무니에 따라붙는 것도 짜증 나는데.”
대원의 불만스러운 말에 육진모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고로 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하셨다. 다들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다들 불편한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육진모도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심정은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모재욱 부대장은 몇 년 전부터 동고동락하며 같이 움직이던 사이.
그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며칠 동안 밥이 넘어가지 않았었다.
지금도 이주혁을 생각하면 모래를 한 움큼 털어 넣은 것처럼 입안이 텁텁했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던 때, 바의 문이 열렸다.
삐걱-.
도어 벨 소리도 없이 열린 문 너머로 다섯 명의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육진모는 팔짱을 낀 채 유심이 그들을 살폈다.
앞장선 남자는 익히 알던 얼굴이었다.
“왔군. 이주혁.”
“어. 왔다.”
“…….”
“왜. 말 놓고 싶은 거 아니었나?”
고작 한 마디를 던졌는데도 속을 박박 긁는 대꾸가 돌아왔다.
울컥하는 감정을 눌러 삼킨 육진모는 그를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남자가 그 라세흠인가.’
척 봐도 단단해 보이는 강인한 인상의 남자.
이주혁의 세력에서 가장 근접전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수려한 외모의 남자 또한 체격과 자세로 보아 무도를 수련한 걸로 보였다.
‘……저 껄렁한 놈은 뭐지?’
그런 그의 뒤, 어깨에 닿는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바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남자는 잘 정리된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필리핀에 있던 데보다 별로네.”
저자도 이주혁이 데려왔으니 실력은 있겠지만, 가벼운 태도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구경은 끝났어?”
육진모는 이주혁의 말에 탐색의 눈빛을 거뒀다.
어울리지 않게 장비를 챙겨 입은 앳된 소년이 눈에 밟혔으나, 굳이 신경 쓸 것까진 없어 보였다.
“실례했군.”
“뭘. 한번 재 보는 건 당연한 거지.”
“육진모라고 한다.”
“성이 특이하네. 이주혁이다.”
두 사람 다 손을 먼저 내밀진 않았다.
그렇게 건조한 자기소개를 마친 육진모는 바 한구석에 놓인 원탁을 가리켰다.
“일단 앉아서 기다리지.”
“그럴까?”
저벅.
이주혁과 일행은 선뜻 걸음을 옮겨 원탁에 자리를 잡았다.
털썩.
“흠.”
주변을 휘휘 살피던 이주혁이 손을 들며 말했다.
“뭐, 마실 건 없나?”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 먹도록.”
“서비스가 영 별로네.”
아까부터 신경을 살살 건드리는 언행에 대원들의 표정이 굳어 가는 것이 마스크 너머로도 선히 보였다.
“…….”
그렇게 금방이라도 총을 뽑을 듯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육진모는 복잡한 눈빛으로 이주혁을 지긋이 쳐다봤다.
아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주혁의 태도는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아무리 대원들이 자신을 절대로 공격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다 해도, 실제로 이렇게 완전무장한 이들을 마주하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배짱 하나는 인정할 만하군.’
괜히 그가 이주혁을 포섭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순간, 육진모는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이주혁과 따로 앉아 있는 멀끔하게 생긴 남자.
자세히 살피니 이름 하나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종석?”
그 말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남자가 흠칫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육진모를 돌아봤다.
“왜.”
“……역시 맞았군.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육진모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마종석. 일명 블랙맘바.
특수부대 출신으로, 업계에선 뛰어난 실력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강남파로 들어가 적당히 그를 도우며 동향을 보고하라는 임무를 맡겼으나, 어느새 실종되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 이쪽에 접촉해 왔었다.
하지만 결국엔 뒤통수를 치고 이주혁의 편에 붙어 버렸다.
‘아,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마종석은 이 자리가 불편할 따름이었다.
그때, 바 테이블에 앉은 채 줄곧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대원이 입을 열었다.
“이래서 용병 출신은 안 돼. 신뢰가 없다니까.”
바 내부에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 조직의 수장인 이주혁에게는 차마 뭐라 하지 못한다.
그 탓에 배경이라곤 용병밖에 없는 데다 실제로 뒤통수까지 친 마종석에게 화풀이 격으로 핀잔을 준 것이었다.
말을 꺼낸 팀원은 몰리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왜? 맞잖아?”
이어 이주혁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당신도 조심하라고. 저 용병이 언제 뒤에서 칼로 찌를지 모르니까.”
대놓고 조롱하는 대원을 보며 이주혁 일행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주혁은 마종석을 보며 낄낄 웃었다.
“하긴, 네가 돈이면 다 되는 속물이긴 하지.”
“……꼭 그런 건 아니다만.”
“그래도 네가 낫다.”
스윽.
손가락으로 대원을 가리킨 이주혁이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
“쟤네들보다 실력은 좋잖아?”
그의 말을 들은 대원이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륵-.
“……그건 그냥 넘어갈 수 없겠는데.”
“그만.”
육진모가 갑작스럽게 과열되려는 분위기를 중재했다.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분란은 일으키지 말라고.”
“하지만 대장.”
“거기까지 해라.”
“……예.”
대원은 육진모의 실력과 리더십을 존중했기에 다시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주혁의 한마디에 얼굴이 붉어졌다.
“왜? 계속해 봐. 재밌는데.”
“이…….”
“맨손 대련 정도면 괜찮지 않나? 안 그래?”
명백한 도발에 대원이 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육진모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만약 마종석과 대원이 맞붙어서 이쪽이 진다면, 경호대의 사기는 바닥을 칠 것이다.
이기는 경우엔 통쾌할 수도 있겠지만, 패배하는 상황에 비해 실질적인 이득은 없었다.
거기다 마종석은 그가 직접 스카우트할 만큼 실력은 입증된 인물.
그러나 대원은 그와 견주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어떻게 잘 파훼한다면 이길 수도 있지만…… 저렇게 격양된 상태로 임하면 확률은 6대 4. 불필요한 대련은 할 필요 없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육진모가 대원을 설득하려던 찰나.
“근데 말이야.”
이주혁이 쐐기를 박았다.
“가끔 주인을 무는 사냥개보단, 사냥하기도 전에 꼬리를 마는 개가 더 쓸모없는 거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육진모는 속으로 탄식을 뱉었다.
‘이 망할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