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조병철은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저번에 일대일로 대담을 나누긴 했지만, 사실 만나고 싶다고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실상 행정부 2인자급의 권력을 가졌으니 당연한 거겠지.
거기다 내가 먼저 연락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병철의 수행원처럼 서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민정수석과 민지훈의 따까리였던 김정우, 그놈을 먼저 찾아보든가 해야겠다.
조병철이 먼저 접촉해 오면 더 좋고.
끼익.
“6천 원입니다.”
“감사합니다.”
탁.
택시에서 내리며 핸드폰을 꺼내 해커 고세운에게 연락해 김정우의 신상 명세를 알려 줬다.
-……야.
“엉?”
-슬슬 날 흥신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냐?
“기분 탓이야.”
-흠. 그나저나 선생이랑 일시적인 동맹을 맺었다고 들었다.
고세운이 살짝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부모님 살해의 배후에 선생이 있는 걸 너도 알 텐데.
“……알지.”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지?
그 말에 나는 바로 사과했다.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내 독단적인 결정에 실망했겠지. 미안하다.”
-…….
“하지만 분명히 너는 부모님을 살해한 집단이 따로 있다고 했었지. 맞나?”
-그래. 누나가 몇 놈을 직접 심문해서 알아낸 사실이다.
“선생만 처리하고 치울 건가? 그놈들은 그대로 두고?”
고세운은 머리가 복잡한 듯 한참을 침묵했다.
고상미도 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기색이었어도 일단 상황을 납득했다.
하지만 고세운은 나와 비슷하게 의심이 많아서 그런지 날카로운 태도를 보였다.
나였어도 그럴 것이다.
‘애초에 고세운은 내가 왜 선생을 적대하는지도 잘 모르지.’
전생에 내 죽음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시작된 일이다.
사실을 말해줄 순 없으니 내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혹시 이놈이 진짜로 선생에게 붙은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다.
자기 부모님의 죽음에 관련된 일이라 당연히 의심이 끝도 없이 뻗어 나가는 건 당연하다.
“날 의심하는 건 이해해. 다만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다.”
-…….
“언젠가 선생은 내 손에 죽는다.”
전화 너머로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후……. 좋아.
고세운은 생각을 정리했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사람은 아무도 안 믿는다는 주의지만, 일단은 넘어가지.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맙다. 그놈 위치는 3시까지 주고.”
-이 와중에……. 알았다.
뚝.
전화를 끊고 나도 한숨을 푹 내뱉었다.
확실히 민지훈을 이용하는 방법은 리스크가 있긴 하다.
어쨌든 설득은 했으니 한시름 덜었다.
사실상 우재성이 관리하는 흥신소 직원들로는 정보망이 조금 부족하거든.
최고의 정보원 역할을 해 주는 고세운은 어떻게든 내 편에 남겨 둬야지.
저벅.
그렇게 회사로 들어가려는데.
우웅-.
인천의 야쿠자 스가와라의 오른팔, 미우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스가와라가 칼에 찔려 의식불명에 빠졌기에, 녀석에게는 혹시 인천에 특이사항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연락을 했다는 건…….
‘나쁜 소식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달칵.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미우라가 평소에는 잘 보여 주지 않던 격양된 말투로 다급하게 말했다.
-이주혁 씨. 큰일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삼합회 놈들이 동네를 들쑤시고 있습니다.
“인천에 있던 삼합회는 전부 처리했다고 했잖습니까. 혹시 미우라 씨가 해결하지 못할 정도의 문제입니까?”
스가와라의 조직은 약하지 않다.
인천을 먹고 있던 조폭을 밀어내고 상권을 빼앗았으니까.
그래서 의아한 듯 묻자, 미우라가 분노한 듯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카시라……. 스가와라 님이 계신 병원을 찾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거길 찾고 있다고요?”
스가와라가 살아남은 게 알려진 건가?
아무래도 확인 사살을 위해 병원을 쏘다니는 걸 텐데.
“…….”
순간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삼합회 놈들은 왜 이렇게 스가와라의 죽음에 집착하는 거지?
“그리로 가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뚝.
전화를 끊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악물고 스가와라를 죽여서 생기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우선 인천 야쿠자들의 구심점이 사라진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는 오야붕의 복수를 위해 오히려 더 결속력 있게 뭉칠 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삼합회와의 전쟁.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칠 것이고, 결국 수에 밀려 야쿠자들이 패배할 확률이 높다.
‘부자연스러워.’
스가와라가 죽지 않고 병원 신세라는 정보가 흘러 나간 것도 그렇고, 삼합회가 무리하게 인천까지 들어온 일도 사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박살 난 인천 지부의 복수?
일리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렇게 대책 없이 밀고 들어오진 않는다.
해상경비대도 존재할뿐더러, 올해 초에 있었던 삼합회 조직원의 살인 및 상해 사건으로 밀입국 단속이 더 강화된 상태다.
저벅.
나는 팀원들을 찾아 건물로 들어가며 미간을 좁혔다.
‘개입이 있었다.’
언더커버 경력 15년으로써 느끼는 일종의 감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
.
.
간단하게 채비한 우리는 밴을 타고 곧바로 인천을 향해 이동했다.
부웅-
밴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배상훈이 옆에 앉은 나한테 물었다.
“야. 근데 진짜로 대판 싸우는 거냐? 그 야쿠자들이랑 삼합회가?”
“지금 상황으론 그렇지.”
“참나. 무슨 국가 대항전도 아니고.”
그 말에 부장님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는 건 그렇다 치는데, 그걸 왜 우리나라에서 하냔 말이야.”
“그러게요.”
“근데 나는 지금 가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솔직히 그놈들이 잘한 게 뭐가 있다고 도와주냐?”
“그래도 얘네는 말이 통하잖아요.”
스가와라에게 듣기론, 야쿠자들 대부분은 선생을 적대하고 있다.
선생과 협력한 사실이 있는 삼합회보다는 내가 이용해 먹기 좋은 놈들이지.
그리고 스가와라가 깨어나면 이걸 빌미로 많은 걸 뜯어낼 수도 있다.
‘어째, 요즘 들어 나쁜 놈들이랑 자주 어울리는 것 같네.’
그렇게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다 보니 인천에 도착했다.
우리의 인원은 SA시큐리티 작전팀과 고상미.
미국에 다녀온 사람들은 서울에 남겨뒀다.
끼익.
스가와라와 만날 때마다 들렀던 주점으로 향하자, 미우라가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야쿠자들이 눈에 독기가 담긴 살벌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주혁 씨.”
“예. 상황 설명부터 듣죠. 삼합회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겁니까? 인원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
“그게…… 성남에 있다가 밀려난 놈들이 여기로 다 들어온 것 같습니다.”
“성남이라.”
그래. 사실 원래 한국 내에 있던 삼합회 거점 중 가장 큰 곳이 성남이다.
하지만 왕후성이라는 다른 지부의 인간 백정이 와서 성남 삼합회의 지부장을 담가 버렸다.
그 때문에 거기 있던 조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 병원만 찾아다니는 겁니까?”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디서 났는지 약을 가지고 와서 시장에 풀고 있습니다.”
“약이요? 그렇게 무작정 풀면 단속에 걸릴 텐데요.”
마약을 가지고 있다 해서 바로 판매해 돈을 버는 건 힘들다.
유통망과 고객을 우선 확보해야 할 테니까.
거기다 뒷배 없이 그러고 다녔다간 금방 쇠고랑을 차게 된다.
이런 내 의문에 미우라가 착잡한 듯 설명했다.
“삼합회와 양동철 사장이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양동철?”
그게 누군가하고 기억을 더듬어 봤다.
주철수와 과거 같은 조직에서 활동했던 깡패가 인천으로 넘어와 만든 양동이파.
그 두목이 양동철이었다.
지금은 스가와라의 야쿠자 무리에게 세력 다툼에서 패배하고 빌빌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쪽은 당신들 측에서 통제하던 거 아니었습니까?”
“……아무래도 스가와라 님의 변고를 알아챈 듯합니다.”
“으음.”
이때다 싶어서 야쿠자들을 몰아내려고 한 건가?
“양동철 사장은 십수 년간 이 지역의 공무원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그런 그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삼합회를 쉽사리 칠 수 없는 겁니다.”
“그렇군요. 일단 상황은 파악했습니다.”
공권력으로 탄압하기 어려울 땐 직접 발로 뛰어야지.
스가와라 그 양반만 멀쩡했어도 양동철이 허튼 생각은 못 했을 텐데 말이야.
“차도는 있습니까.”
“스가와라 님 말씀이라면…… 고비는 넘겼지만 깨어나시려면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그럼 이번 일은 우리끼리 해결해야겠네요.”
나는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내 말을 기다리던 미우라에게 지시했다.
“그쪽 인원은 스가와라 씨의 신변만 확실히 보호하십시오. 그리고 미우라 씨는 우리와 함께 갑니다.”
“예. 알겠습니다.”
미우라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나에 대한 신뢰가 꽤 많이 올라간 듯한 모습이었다.
애초에 미우라 이 녀석은 충직한 오른팔 타입.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는 게 더 익숙할 거다.
그런데 자기 보스가 병상에 누워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을 터.
‘이놈의 호감을 사서 나쁠 거 없지.’
뒤에 있던 수하들에게 일본어로 뭐라 지시한 미우라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이주혁 씨는 어디로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한 곳밖에 없죠.”
씨익.
“겁대가리 없이 삼합회를 여기로 들여온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않겠어요?”
* * *
양동이파의 보스, 양동철은 자꾸만 마르는 입술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
추레한 거지꼴이었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킨 양동철이 남자를 향해 물었다.
“저기, 정말 그 야쿠자 놈이 한참은 못 깨어나는 거 맞지요?”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중년이 그 말을 중국어로 통역해 줬다.
양동철이 한국어를 모르는 그와의 대화를 위해 급하게 데려온 수하였다.
“@%#$?”
그러자 남루한 남자가 듬성듬성 난 수염을 긁적이며 뭐라 대꾸했다.
“저, 뭐라는 거냐?”
“이미 말하지 않았냐고 하는데요?”
“X발…….”
다짜고짜 찾아와서 부하 몇을 두들겨 패질 않나, 그러고 약을 쥐여 주며 양동이파에서 사용하던 루트로 팔라고 하질 않나.
이득이 되는 바가 없진 않아서 일단 곧이곧대로 따르고 있긴 하지만, 뭐라도 알아야 계획을 세우든지 할 텐데 말이다.
다행인 건 이 거지를 필두로 한 삼합회가 인천을 노리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쿠자 놈만 콱 뒈져 버리고, 이 거지 놈이 도와주면 남은 떨거지들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럼 인천을 다시 찾을 수 있어.’
양동철은 입맛을 다시며 통역 담당 부하에게 손짓했다.
“이제 또 뭘 하면 되냐고 물어봐 봐.”
“예.”
말을 전달하자, 남자가 살벌한 눈빛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뭐라는 거냐?”
“그, 시선을 끌어 달라는데요?”
“시선? 야쿠자 놈들?”
“잠시만요.”
부하가 다시 남자와 대화를 나눴다.
그걸 듣던 양동철의 귀에 중국어 속 한 가지 익숙한 단어가 스쳤다.
“혀, 형님.”
“왜.”
“혹시 그놈 이름 기억나십니까?”
“그놈?”
“왜, 네댓이 사무실 쳐들어와서 애들 다 때려눕힌 그놈들 말입니다.”
부하의 말에 양동철은 표정을 굳혔다.
그때의 일은 그에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야쿠자 놈의 앞에서 개처럼 처맞은 굴욕적인 사건.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오곤 했다.
“……그건 왜 묻냐?”
“그 뺀질뺀질하게 생긴 놈. 혹시 그놈 이름이 이주혁입니까?”
“……!”
화들짝 놀란 양동철이 고개를 들어 부하를 쳐다봤다.
“설마…… 아니지? 그 새끼 시선을 끌어 달라는 건 아닌 거지?”
“아무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형님…….”
울상을 짓는 부하를 본 양동철이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이런 X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