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호정그룹의 계열사, 호정기획의 사장 박광훈은 원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한 명, 한 명이 각계에서 알아주는 사람들로, 어지간한 사람은 만나 보기도 힘든 자들이다.
물론 박광훈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론 압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단 소리다.
“박 사장. 그 친구는 언제 오나?”
“곧 올 겁니다.”
박광훈은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실은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 조병철도 이미 선생이 있던 때부터 모임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조병철은 박광훈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이전에는 예의는 있으나 차갑고 무뚝뚝한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요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예?”
“인상이 달라진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물음에 박광훈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가 사라진 후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거든요. 대체할 사람이 나타나서 그런가 봅니다.”
“흠. 그렇구만. 그럼 자네는 이주혁이 정말 그 친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침묵하던 박광훈은 역으로 질문했다.
“조 실장님은 본인이 그 자리를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 되지.”
조병철이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있긴 하나, 다른 이들의 견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 원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른 만큼,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중 하나가 중심에 서게 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게 된다.
그 탓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 이주혁이라는 젊은이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지켜보자는 태도였다.
“그래서 궁금한 걸세. 이주혁이 대체 뭘 가지고 있길래 그 친구가 자기 자리를 맡긴 건지.”
그 말을 들은 국정원장, 차영규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특임대에서 복무한 걸 제외하면 특이사항은 딱히 없었습니다만, 저도 이유가 궁금하군요.”
“으음. 자네도 모른다면 정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다른 것이 있다는 소린데.”
덜컹.
그때, 문이 열렸다.
“…….”
“……왔나.”
이어 그들이 기다리던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국정원장 차영규는 이주혁을 유심히 살폈다.
아무리 높게 봐도 20대 초중반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외모였지만, 어쩐지 인상은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듯했다.
‘부대 내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자라고 했었나.’
기도라고 해야 하나. 일종의 분위기가 확실히 보통은 아니었다.
조병철은 좌중을 둘러보는 이주혁의 살짝 긴장한 눈빛이, 이내 자신감 있게 변하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이 ‘모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선생의 뒤를 이어 모임을 주최하게 된, 이주혁입니다.”
그 인사말에도 사람들은 뭐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주혁에게 압박을 주려는 심산이었으나, 그는 별다른 동요 없이 선 채로 자신이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의문인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스윽.
“아마 저 젊은 놈이 뭐라고 선생을 대신한답시고 나섰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죠.”
모인 이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는 말에, 국정원장 차인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다. 선생은 태평양 연합이라는 거대한 카르텔의 주축이라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 모임의 장으로 인정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넌 뭐지?”
“…….”
“이렇게 뜬금없이 나타나 선생의 자리를 이어받는다고 하면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줄 알았나?”
이주혁은 표정을 굳혔다.
다름이 아니라, 차인규가 언급한 ‘태평양 연합’이 서클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탓이었다.
‘이건 따로 조사해 봐야겠어.’
생각을 마친 이주혁이 말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뭘 말이지?”
“증거가 있으면 인정하실 겁니까?”
“…….”
정적이 흘렀다.
사실 여기 모인 이들은 이주혁을 인정하긴 할 생각이었다.
자신들이 먹기엔 부담스러운 자리에 쥐고 휘두르기 좋은 젊은 놈을 앉힌다.
그리고 계속 밀어붙여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 것이지만, 선생이 이주혁에게 전권을 일임했다는 증거가 나와 버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내 이주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사실 증거가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자기 밥그릇에 뭐가 떨어지느냐가 가장 중요할 텐데 말이죠.”
그 말에 몇몇 사람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언사가 과하군.”
“쓸데없는 인사치레를 좋아하신다면 존중하긴 하겠지만, 우리가 그러자고 여기 모인 건 아니잖습니까?”
“크흠…….”
이주혁은 불만을 가볍게 무시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국정원장님이 말한 태평양 연합. 그 안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위치가 어느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을 들은 사람들이 각자 생각에 잠겼다.
선생에게 전해 듣긴 했어도, 사실 그들은 태평양 연합에 관해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각국의 권력자들이 모여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그걸 통해 이득을 취한다는 것 정도만 파악하고 있었다.
모두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조병철이 말했다.
“글쎄. 정확히는 몰라도…… 선생이 자리를 비웠으니 조금 난감한 상황일 것 같은데. 내 말이 맞나?”
“그렇습니다. 연합에서 중요한 역할이던 선생은 어디론가 증발했고, 그 때문에 연합의 주도권은 다른 나라로 넘어갔습니다.”
이주혁도 내부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수는 어떻게든 생각해낼 수 있었다.
“선생이 연합 내에서 뭐라고 불렸는지 아십니까?”
“……예언자라고 알고 있네만.”
“그렇습니다. 그 이유도 아십니까?”
조병철은 두 번째 질문에 답했다.
“뛰어난 통찰력과 분석 능력으로 시류를 빠르게 파악해서 그런 거 아닌가?”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미래를 본다는 소문도 있다지.”
그 비현실적인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이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연합의 사람들은 선생의 빈자리를 채워 줄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선생은 지금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전면에 나설 수 없죠.”
“자네가 선생의 대리인으로 나서겠다?”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의 인정이 필요한 겁니다. 연합에서 힘을 키우기 위해선 지원이 필요하니까요.”
“흐음.”
몇몇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걸 본 이주혁은 쐐기를 박기로 했다.
“중국의 삼합회가 그 규모만큼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답니다.”
“…….”
“그리고 공리회라는 선생의 세력이 없어져서 그런지, 대신 야쿠자들에게 접촉을 고민 중이랍니다.”
그 말에 그들의 표정이 굳었다.
“미국의 기업 중 하나도 이번에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주춤하고 있다던데…….”
척.
이주혁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미국보다 높은 위치로 올라갈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걸 들은 조병철이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허, 참. 이 사람들이 어떤 점에 구미가 당길지 제대로 아는구만.’
평소엔 아무리 서로를 견제하곤 한다지만,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선 똘똘 뭉치는 게 또 이 나라의 국민성 중 하나다.
물론 여기 모인 이들의 힘이 한국 내에서 통한다는 이유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위에 설 수 있다’는 건 그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말로 다가왔다.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양진그룹의 회장이 입을 열었다.
“이주혁이라고 했나.”
“예. 양진원 회장님.”
“미국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그 말, 책임질 수 있는 건가?”
양진원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열망이 있었다.
양진그룹의 기술력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의 위로 올라설 순 없었다.
그래서 양진원의 마음속에는 항상 그러한 목표가 존재했다.
이주혁은 그런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여러분은 그냥, 저를 믿고 힘을 보태 주시면 됩니다.”
* * *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돌아갔다.
일단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어차피 저들은 내 존재를 용인한다 해서 손해 볼 것도 없을 테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거다.
아마 돌아가는 대로 나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을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담으며 그들이 나가는 걸 지켜봤다.
그중 국정원장 차영규는 자리를 뜨면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
그러고 보니 국정원과는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엮였었지.
예전에 삼합회에서 나온 왕후성이라는 놈이 종로에서 칼 들고 설치다가 뒈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놈을 죽인 범인이 나로 지목됐고, 그 때문에 국정원 측에서 외교 문제랍시고 찾아와서 염병을 했었다.
물론 SA시큐리티를 해체시키기 위한 민지훈의 장난질이었지만.
‘그럼 그때 지시를 내린 사람도 저 양반인가?’
나는 차영규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는데, 조병철이 가만히 앉은 채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조병철이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야기나 좀 하자고 했지? 바깥에서 기다리겠네.”
“그러시죠.”
그렇게 조병철까지 자리를 비웠다.
그에 뒤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박광훈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다. 네가 보내 준 게 도움이 됐어.”
“별말씀을요.”
박광훈은 나한테 오늘 참석한 인원들의 개인 정보와 성향을 정리한 자료를 보내 줬었다.
그걸 토대로 해서 그 인간들을 마저 설득할 방법을 고민 중이고.
“가네무라, 그 사람에게는 오늘의 일을 제가 따로 전달하겠습니다.”
“난 여기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자리에 야쿠자가 끼면 그들이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요.”
“하긴, 그건 그렇지.”
무표정하게 있던 박광훈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이번엔 중국에 다녀오셨더군요.”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또 어딜 다녀오실 생각이니까?”
“글쎄.”
슬슬 DS컴퍼니 쪽에서 입질이 올 때가 되긴 했다.
선생의 경호대와 함께 습격했던 J의 건물에 내 얼굴이 찍혀 있을 테니까.
일단 조병철이랑 담판을 좀 짓고, 그 뒤에 민지훈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다.
지금은 내가 어쩔 수 없이 선생의 하수인 같은 역할을 맡고 있지만, 어쨌든 그러니만큼 나는 민지훈을 이용해 먹어야 한다.
“일단 세력을 키워야겠지.”
“흠. 세력이라면 어떤?”
“뭐, 사회적인 지위는 사실 의미 없고. 우선은 전투원이 필요해.”
“전투원이라. 경호대의 지원은 받지 못하시는 겁니까?”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경호대의 전투력 하나만큼은 진짜배기다.
숙련된 근접 전투 체계를 가지고 있고, 장비 또한 빵빵하다.
하지만 그놈들은 민지훈과 붙어 다녀야 하니 막 빼서 쓸 수 없는 상황.
물론 현재 있는 SA시큐리티의 팀원들도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이제부터 상대할 놈들은 일개 조폭이나 갱단 이상으로 위험할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의사를 물어봐야겠지.’
일시적으로 민지훈과 손을 잡아 악당들 사이로 들어간다.
이런 내 결정에 내부적으로 불만을 가진 녀석들이 몇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목숨이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솔직히 한 명, 한 명이 아쉽긴 해도, 만약 떠난다면 녀석들의 의사를 존중해 줄 생각이다.
부장님은 그래도 남아 줄 것 같긴 한데, 나머지는 확신이 없네.
‘그렇다고 억지로 붙잡아두는 건 못 할 짓이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론은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스윽.
박광훈을 돌아보자, 녀석이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예전에 네가 보낸 경호원, 좀 하는 것 같던데.”
씨익.
“좀 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