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나는 같은 부대 출신 팀원들만 불러 회의실로 모았다.
풍원한정식에 있던 정태섭과 광철이 아저씨를 경호하던 윤건한까지.
그리고 초창기 멤버인 덩치, 돼지, 난쟁이도 데리고 왔다.
“행님. 표정이 영 안 좋으신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꺼?”
덩치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두드려 줬다.
“일단 앉아.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아, 예.”
그렇게 팀원들이 기다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래서, 뭔 일이길래 이렇게 다 부른 거냐?”
배상훈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은 좀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다.”
내 말에 팀원들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그래.”
“앞으로의 방향성에 관해서. 뭐 물어볼 것도 있고.”
우선, 나는 현재 상황에 대해 팀원들에게 설명해 줬다.
듣는 동안 녀석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마지막에 가선 배상훈은 거의 경악한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거 제대로 미친놈이네?”
“뭐가.”
“대체 적이 몇 명이냐? 삼합회에, 미국 킬러들에, 아주 지랄 났다. 이 정도면 집 가는 길에 총 맞아도 할 말 없지.”
과묵하게 있던 정태섭도 한 마디 얹었다.
“주혁아.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벌이는 거야?”
“내 개인적인 신념이지. 그래서 너희들을 불러 모은 거기도 하고.”
후. 한숨을 내쉬고 애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까지도 위험한 일을 하고 다녔지만, 앞으로는 더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빠질 사람은 지금 빠져.”
“뭐?”
“올해 연봉까지는 챙겨 줄게. 너희들도 가족이 있고 인생이 있으니 이런 일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혹시 빠지는 녀석이 있으면 조금 뼈아픈 손실이겠지만, 내가 멋대로 선택한 길 때문에 날 믿고 와 준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는 건 원하지 않는다.
나는 후배 녀석들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너희들도 마찬가지. 클럽 하나 구해 줄 테니까 그거 굴려도 되고, 아니면 고향으로 내려가.”
“해, 행님…….”
냉정해 보일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솔직히 전력 외 취급이다.
싸움을 좀 한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뿐이고, 아직 군대를 간 것도 아니라 총기를 다룰 줄도 모른다.
거기다 아직 어린애들이다.
이런 애들까지 데리고 서클과 대립할 생각은 없었다.
“행님! 저희는 행님 끝까지……!”
“그러다 잘못되면, 너희 부모님은 어떡하게?”
“…….”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따라오고 싶으면 날 설득할 거리를 가져와. 말로든, 몸으로든.”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팀원 중 한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다. 주혁아.”
“음.”
녀석의 이름은 김석준.
말수는 적지만 그래도 맡은 일은 잘해 내곤 했지.
“이해한다. 너무 미안해하지도 말고. 너 동생만 셋인 거 내가 다 아니까.”
“…….”
김석준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몇 명이 더 빠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까 영 입맛이 썼다.
“퇴사하겠다는 배신자는 총 다섯. 맞냐?”
농담의 반응이 시원찮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야. 상관없다니까. 각자의 삶이 있는 거지. 뭐 퇴사한다고 앞으로 연락도 안 할 거 아니잖아? 퇴직금은 넉넉하게 챙겨 줄 테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라.”
“고맙다.”
다들 사정이 있는 만큼 미련 없이 보내 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자주 만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또 보자.”
우리 회사를 감시하는 놈들이 있을 테니 바깥에서 보는 건 힘들겠지.
와락.
떠나는 팀원들과 포옹을 나누고, 퇴직 처리를 위해 우재성에게 보냈다.
그러자 남은 팀원들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야. 그럼 이제 딱 열 명만 남았네?”
배상훈의 말에 나는 눈을 흘겼다.
“무슨 생각이야?”
“뭐.”
“너는 왜 남아 있냐고?”
“허, 참 나. 갔으면 좋겠냐?”
“아니, 제일 안 남을 것 같은 놈이 남아 있으니까 이상해서 그런다.”
뺀질거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집안 형편도 괜찮은 녀석이라 당연히 빠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녀석이 같이 목숨을 걸어 준다는 게 의아했다.
“어차피 가족이랑은 연 끊었다.”
“뭐? 왜.”
“남한테 얘기할 건 아냐. 그리고 인마. 내가 왜 안 남는다는 거야?”
“빠질 수 있으면 최대한 빠지는 주의 아니었어?”
내 말에 배상훈이 피식 웃었다.
“네가 하는데, 내가 안 하겠냐?”
“허.”
“그리고 너 혼자 정의의 사도 노릇 하게 놔둘 순 없지.”
배상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 분명 나한테 도움이 되려고 하는 건데 왜 이렇게 아니꼽냐.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정태섭과 윤건한을 돌아봤다.
얘네가 우직한 성격이긴 한데, 그렇다고 호구는 아니거든.
혹시라도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떠나지 못하는 거라면 다시 결정하게 해 줘야겠지.
“얘들아. 너희는 생각에 변함없냐?”
“어. 네가 하는 일이 완전히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마찬가지.”
“그래. 고맙다.”
백기준을 돌아보니, 녀석은 말없이 입꼬리만 비죽 올리고 있었다.
얘는 굳이 이유를 안 물어봐도 될 것 같은 느낌.
나머지 녀석들도 다들 결정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이제 문제는 후배 녀석들인데.
“니들은 어떡할 거야?”
“…….”
잠시 침묵하던 덩치가 말했다.
“저는 남겠십니더. 행님 말씀대로 위험하겠지만서도, 안 까불고 안전한 데서 돕고 싶어예.”
“이유가 뭐야? 정말 단순히 내가 너희 선배라서 이러는 거냐?”
그 물음에 녀석들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저희가 좀 방황하던 시절이 있긴 했는데…… 말씀을 안 드려서 그렇지 행님 하시는 거 보면서 느낀 게 많십니더. 지도 행님 따라 나쁜 놈들 때려잡고 싶어예. 제 꿈이 또 경찰이었다 아입니꺼.”
“그러려면 자기 몸은 지킬 수 있어야 된다. 가능하겠어?”
“솔직히 임마들은 무리겠지만…… 저는 가능하지 않겠십니꺼. 더 열심히 수련하겠십니더.”
슥.
다른 녀석들을 돌아보자, 돼지와 난쟁이가 말했다.
“저랑 동철이는 쌈 말고 다른 방법으로 도울게예. 뭐 잡일도 괜찮고예.”
“그래. 알았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진심으로 나오면 나도 더 이상 거절할 순 없겠지.
“감사합니더, 행님!”
“감사는 무슨. 내가 고마워해야지.”
“야.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왜 안 물어보냐?”
배상훈이 궁금한 듯 옆에서 물었다.
“다른 사람 누구.”
“왜, 그 용병 아저씨랑 깡패, 우재성도 있잖아.”
“아, 그 사람들은 결정권 없다. 너희들이니까 물어보는 거야.”
내 말에 배상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이거, 악덕 사장이네.”
“참나.”
피식.
“남기로 한 이상, 너희들도 이제 마찬가지다.”
“어?”
나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선언했다.
“다들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 둬.”
앞으로 존나게 구를 테니까.
* *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외진 곳에 위치한 건물 내부.
흑색 코트와 중절모를 쓴 거한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
“솜씨 한번 좋군.”
안쪽까지 들어오며 발견된 시체는 모두 머리나 가슴팍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치명적인 곳만 골라서 한두 발 내에 사살했다는 의미였다.
‘이 작업 방식은…… 레이븐인가.’
거한은 한숨을 내쉬며 복도를 걸었다.
피가 흩뿌려진 복도가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가장 안쪽의 사장실로 들어섰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피 냄새가 짙게 풍겼다.
남자는 책상 뒤 공간에 한 사람이 대자로 뻗어 있는 걸 발견했다.
자신의 의뢰인이자 마피아 ‘드라콘’의 보스, 드미트리였다.
“쯧.”
선수금을 받긴 했지만, 이러면 보수를 받아 낼 사람이 없어졌다.
남자는 불만스럽게 혀를 차며 방을 뒤졌다.
그러나 값이 나갈 만한 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볼 것도 없겠어.”
다시 바깥으로 나온 남자는 곧장 어디론가 연락했다.
그러자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지잉-
내려간 차창 너머로 선글라스를 낀 노인이 물었다.
“다 죽었나?”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허. 낭패군.”
노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떤 놈이 작업한 건지는 몰라도, 전혀 다른 사람 눈치는 안 보는구만.”
“그리고 상당한 실력잡니다. 한두 발로 급소만 노렸습니다. 다만 드미트리는 방탄복 위로 여러 발을 맞고, 머리에 한 발 맞았습니다.”
“고문의 흔적인가. 뭔가 알아낼 거라도 있던 모양이군.”
“아마 레이븐의 소행일 겁니다. 급소만 노리는 사격 실력 하며, 귀중품도 다 쓸어갔습니다.”
그 말에 노인이 미간을 좁혔다.
“하여튼, 그놈은 사사건건 말썽이란 말이야.”
“항의하시지요. 이번 일로 입은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대로 좌시할 순 없습니다.”
“흐음…….”
노인은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드미트리와 한 계약과 앞으로의 계획이 무산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의 원흉에게 따지기엔, 그의 뒤에 있는 자들이 거슬렸다.
“일단 둔다.”
“예?”
어차피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죽은 드미트리가 살아나 어그러진 거래를 다시 해 줄 것도 아니다.
그럴 바엔 일단 덮어 두는 게 낫다.
“미하일 님의 체면이 상할 겁니다.”
“좀 상하면 어때. 어차피 아는 놈들은 다 죽었는데.”
“으음.”
“그리고 빚은 나중에 받아 낼 방법이 있다. 일단 타지.”
“알겠습니다.”
탁.
남자가 차에 타자 미하일이라 불린 노인이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
“돌아가자고. 출발해.”
“예.”
부웅-
미하일은 입매를 굳히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미하일에게 중요한 건 드미트리의 거래 따위가 아니었다.
고작 돈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일이 있었다.
‘어차피 이 나라 안에서 우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 당연히 나라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게 맞을 터.
미하일은 몸을 뒤로 기대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 * *
탁.
바텐더가 레이븐의 앞에 블랙 러시안을 내려놨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이내 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달짝지근한 커피 향이 스치고, 알싸한 알코올이 코와 목을 때렸다.
“……오늘도 맛있네.”
“고맙군.”
바텐더는 흐뭇한 미소로 잔을 닦았다.
그러다 레이븐의 묘한 표정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
“말하고 싶다면 들어줄 테니, 얼마든지 말하라고.”
거의 매일을 뚱한 얼굴로 있던 레이븐이었기에, 바텐더도 크게 신경을 두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칵테일을 즐기던 레이븐이 입을 열었다.
“너, 한국에 가 본 적 있나?”
“아니. 없다만. 네 고향 아냐? 레이븐.”
끄덕.
“왜. 의뢰라도 받았어? 아니면, 누구 만날 사람이라도?”
“…….”
레이븐이 다시 입을 다물자, 바텐더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저 잔을 정리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으론, 한국에서 꽤 큰 일이 있었다던데.”
“……큰일?”
“역시 자기 일 아니면 관심이 없군 그래. 듣기로는 한국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누군가가 서울을 정리했다더라고.”
“서울을?”
“응. 다만 전면으로 나서질 않아서 제대로 밝혀진 건 없어.”
“혹시 여자였나?”
그 물음에 바텐더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건 나도 잘. 아마 아니지 않을까.”
“…….”
레이븐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여자라면 충분히 서울을 먹을 수 있겠지만, 성격상 그런 번거로운 짓은 할 가능성은 작았다.
“좀 알아봐 줘?”
레이븐은 고개를 젓고서 말했다.
“아니, 내가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