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2
031화
“미끼는? 물은 거 같아?”
“물었어. 확실해. 눈이 아주 번쩍 뜨이는 게, 사기당하는 놈들이 짓는 그 얼굴이 그대로 나오더라고. 내가 국민학교 때부터 사기 쳐서 사기 경력만 20년이 넘는다. 한 변호사. 확실히 걸려들었어.”
사발아. 국민학교 때부터 사기 친 게 자랑은 아니잖아?
뭐, 어쨌든 걸려들었으면 된 거긴 하지만.
“어떻게 꼬셨어?”
“법조계 모임 가서 중앙지검에 있는 사법연수원 후배라고 나발 좀 풀었지. 수사하고 있는 거 접어야겠다는 식으로 들릴 듯 말 듯 알려 주고. 이게 내 비법 중에 하나거든. 호기심 자극하게 어렴풋이 들리게 하는 거야. 램 가격이 올라가고 있네. 이거 수사해도 잡을 방법이 없네. 이런 식으로.”
사기 치는 데, 비법까지 쓰냐?
요리 비법을 그렇게 만들었으면, 백종원 뺨쳤겠다.
아. 아직 백종원이 유명할 때는 아니구나.
“분명히 걸려든다. 한 변호사가 주철수를 사업에 끼워 넣을 테니까. 한 변호사, 그 새끼도 빠꼼이더라고. 이게 노다지인 걸, 확신하는 얼굴이었어.”
그림의 밑바탕이 훌륭하게 그려졌다는 말이다.
“근데, 이거 얼마나 해 먹을 거야?”
“1,400억.”
“어?”
“1,400억에 팔아넘길 거야.”
내 자금 700억이 들어갔다.
두 배는 남겨 먹어야 하지 않겠어?
이 고생을 하는데, 700억은 남겨 먹어야지.
“두 배에 살까?”
“살 거야. 네 말대로 노다지가 눈앞에 보이니까.”
내 계획은 램(메모리)을 700억 원치 사서 주철수에게 넘기는 거다.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램 가격.
이 그래프를 보면, 주철수도 구미가 당기겠지.
이미 나한테 당해서 3,000억 넘는 손해가 난 상황이다.
그것 때문에 강북을 치려던 계획을 멈추고 서울광목파의 손을 잡는 변수도 일으켰고.
내가 주철수의 재산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많다고 해도 1조 언저리일 것이다.
거기서 3,000억이 넘는 손해가 발생했는데, 당연히 메꿔야지.
이번 램 사업에 들어와서 가격을 무한정으로 올리고 팔아먹으려고 할 거다.
난 그 점을 이용해, 주철수에게 빅엿을 날리는 거고.
“주철수가 램을 사가고 나면, 계획 실행이냐?”
“그렇지. 대량으로 물량을 풀 거야. 램 가격이 급락하게.”
이게 핵심 포인트다.
난 소비자들을 등쳐먹으려는 게 아니다.
주철수에게 경제적 치명타를 먹이려고 하는 거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국내에 유통되는 램 물량을 주철수에게 줘 버리는데, 어떻게 주철수에게 엿을 먹일 수 있냐고.
내가 확보한 물량은 국내 1위인 선양전자와 수입 램 1위인 인테르 제품이다.
현재 한국 램 시장은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품이지.
미래에야 선양전자와 파이닉스가 D램(메모리) 시장을 꽉 잡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야흐로 반도체 회사 범람의 시대.
전 세계에 수많은 반도체 제조회사가 있고, 난 그들에게 물꼬를 터 주었다.
“해외 물량은 한 번에 들어오는 거야?”
“이미 들어와 있어. 인천항 컨테이너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대기하고 있다.”
이 작전의 또 다른 핵심 멤버는 난쟁이였다.
난쟁이가 램을 유통하는 총판들에게 로비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고, 해외 여러 램 제조사에서 램을 수입할 수 있게 밑바탕을 깔아 놨다.
여기서 필요한 건, 물류를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중계업체.
우린 땡땡물산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중계업체를 만들었고, 그 회사를 통해서 한국으로 엄청난 양의 램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놨다.
그렇게 인천항에 잠들어있는 128, 256, 512Mb의 램이 수십 컨테이너는 된다.
마이크론, 브로드컴, 퀄컴, 텍사스 인스투르먼트, NXP 등등.
전세계에서 알아주는 램 제조사들의 메모리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조만간 총판 쪽으로 한 변호사가 접근해 올 거야. 난쟁인가 하는 그놈이 상대할 거야?”
“아니. 내가.”
“네가? 직접?”
“이런 즐거운 일에 내가 빠질 수가 있나?”
뒤통수를 때리는 즐거운 일에 내가 빠질 수야 없지.
어차피 한 변호사는 내 얼굴을 모르니, 내 신분만 위장하면 될 일이다.
***
‘미끼를 물어 버린 것이여!’란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딱 하루 만에 한 변호사는 사발에게 전화를 걸었다.
램 유통만 조사 중에 핵심 총판이 누구냐고.
그때, 사발은 내 이름과 연락처를 가르쳐 줬다.
물론, 가명에 대포폰이다.
“하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조 사장님이 없으면, 용산전자상가가 돌아가질 않는다고요?”
“어휴. 뭘 그렇게까지…….”
“한인석 변호삽니다.”
“조이팔입니다.”
난 위장용으로 쓴 뿔테 안경을 들어 올리며 악수를 나눴다.
조이팔이란 가명은 유례가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피라미드 사기를 치는 인간.
5조 원의 피해액과 7만명의 피해자를 만들어 내며, 30여 명이 스스로 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씹어 죽일 놈이다.
내 기억으론 2008년 말에 경찰이 수배를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말인즉슨, 피라미드 사기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말이다.
‘조이팔한테 당한 걸로 알아야지.’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
주철수에게 엿을 먹이는 건 물론이고.
조이팔이 자기를 엿 먹였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주철수가 조이팔을 잡게 만드는 거다.
악이 악을 잡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가?
서로 오해하고 잡아먹는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벌써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네.
주철수 그 인간한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돌고 돌아서 얘기는 들었습니다. 한 변호사님이 모시는 분이 램 유통사업에 관심이 있으시다 고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건 내게 잘 보이기 위함이다.
한 변호사는 용산에 공급되는 램 대부분을 내가 유통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창고에 램을 매입해 쌓아 두기도 했고.
지금 내 앞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는 이놈은 그 많은 램을 사 가야 한다.
그래야, 램 가격을 마음대로 조율해서 이득을 볼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한 변호사의 아첨은 계속되었다.
“역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인물이 좋으십니다. 혹시, 따로 관리라도 받으시는 겁니까?”
“강남에 있는 곳 갑니다.”
“아! 그래요? 거기가 어딘지 알려 주시죠. 저도 당장 회원권을 끊어야겠습니다.”
“거래가 잘 마무리되면 알려 드리죠.”
대충 입바른 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램은 얼마나 사고 싶으신 겁니까?”
“조 사장님이 가진 물량 전부를 가져오고 싶습니다.”
“전부요? 사이즈가 제법 큰데요.”
“하하하. 모름지기 사업을 하려면 크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소하게 이것저것 만지는 것보다, 한 방에 제대로 키워 보려고 합니다.”
한 방 좋아하지 마라. 그러다 한 방에 간다.
“제가 들고 있는 물량이 제법 되기는 한데……. 이걸 전부 드리기에는 좀…….”
“금액은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확보하신 램 물량만 저희한테 넘겨 주십시오.”
“그게 좀 어렵습니다. 제가 용산의 시세를 거의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서요. 제가 가진 걸 다 넘기면, 시세가 어떻게 형성될지 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에이. 제가 시세 올려서 덤핑할 놈으로 보입니까? 그럴 일 없습니다.”
한인석 변호사. 당신은 변호사를 할 게 아니라, 사기꾼이 돼야 했었네.
어떻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구라를 뱉어 내냐?
“흠……. 그래도 시장 경제라는 게 있는데…….”
“저희가 시세에 1.2배까지 쳐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20% 더 줄 테니, 넘겨라?
내가 빙다리핫바지로 보이냐?
“그럼, 더 안 되겠네요. 고작 20프로 먹으려고 제가 가진 700억치 물량을 드릴 수는 없죠.”
“7……. 700억치나 가지고 있습니까?”
“512Mb 기준으로 170만 개 정도 있으니……. 뭐, 얼추 그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일부러 처음엔 알리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임팩트를 주기 위함이다.
700억치의 램.
이걸로 시세를 조종하면, 얼마나 큰 이득이 나올지 내 앞에서 짱구를 굴리도록.
“이거 제가 물량만 꽉 잡고 있으면, 20프로는 거저먹습니다. 근데, 이걸 한 변호사님한테 드릴 이유가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창고에 놔두기만 해도 2, 30프로 수익은 보장인데 말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
한 변호사가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며 입을 다물고 있다.
짱구 돌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머릿속으로 주판 아무리 굴려 봤자, 넌 내 손바닥 안이다.
내가 말하는 금액에 줄 수밖에 없어.
네 머릿속에 있는 주판을 내가 튕겨 줄 거거든.
“이게 약간의 시장 간섭이긴 한데……. 사실 작정하고 램으로 수익을 내려고 하면, 두 배, 세 배는 그냥 가져올 수 있습니다. 램이라는 게 워낙 시세 변동에 민감한 상품이고 제가 그 상품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
“그런데, 그런 짓을 하면, 전 이 바닥에서 완전히 아웃이죠. 도매상이 물량을 안 풀어서 가격을 올리고, 소매상과 소비자를 우롱한다고 소문나면, 다시는 용산 바닥에 발을 못 디딜 거 같아서 안 하고 있는 겁니다.”
“……!!”
내 말은 상대에게 힌트를 주는 거다.
난 할 수 없지만, 당신들은 할 수 있다.
나는 용산전자상가의 한 축이지만, 너희들은 아니니 한탕 해 먹고 나갈 수 있다.
이런 힌트를 한 변호사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한 변호사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하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다.
밑밥을 충분히 깔아 둬서 그런가?
그의 고민은 짧았다.
“그러면……. 얼마나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말씀해 주시죠. 제가 사장님한테 말해서 최대한 맞추겠습니다.”
“하……. 계속 고집을 부리시는군요.”
“말씀만 해 주십시오.”
“음…….”
일부러 시간을 좀 끌어 주고.
“거의 반독점인데, 두 배는 받아야지요.”
“두, 두 배요?”
“왜 놀라십니까? 한국 램 시장을 잡으면, 두 배는 우습습니다. 원도우XP가 깔리면서 전국적으로 램 수요량이 늘어나고 있어요. 동네 PC방에서도 램 달라고 난리죠. 이런 상황에 제가 노른자인 램을 넘기는 건데, 두 배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고민이 되나 보네.
임팩트 좀 넣어 줘야겠다.
“자신만만하시더니, 고민이 길어지시네요. 뭐, 됐습니다. 거래는 없었던 걸로 하죠.”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할 때.
한 변호사가 내 손을 잡았다.
“좋습니다. 두 배. 1,400억에 매입하겠습니다.”
그렇지. 이런 대답이 나와야지.
“우리 장사가 현금 장사인 건 아시죠?”
“……네.”
“1,400억. 빳빳한 현찰 아니면, 취급 안 합니다.”
“물론입니다.”
완전히 걸려들었네.
시장을 독점해 램 가격을 내가 부른 두 배보다, 훨씬 더 많이 올려서 이윤을 볼 거라는 희망 회로 때문이겠지.
근데, 그 회로는 조만간 망가질 거야.
난 자리에 앉아, 품에 있던 메모지를 꺼내서 주소 5개를 적었다.
램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 주소였다.
“거래는 확실하게 합시다. 이 메모지에 램을 보관한 창고 주소가 있습니다. 창고 열쇠는 한 변호사님이 현금을 가져오면, 그때 드릴 거고요.”
“아……. 예.”
“마지막으로 묻죠. 이 메모지 받으시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공손히 두 손을 내밀며 메모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가지고 싶다면, 드려야지.
이 메모지가 당신 인생에 가장 큰 덫이 되겠지만.
“그럼, 시원한 거래 부탁합니다.”
“믿어 주십시오.”
메모지를 건네주고 난 곧장 밖으로 나갔다.
‘자. 이제 피날레를 찍어 볼까?’
약속 장소에서 멀찍이 떨어지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난쟁아.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내일 램 넘기는 대로 인천항에 있는 물량 풀어라.”
-예! 행님.
미끼를 물었으니, 잡아 올릴 일만 남았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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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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