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철컥. 끼익-
사회자 겸 심판이 케이지를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풀고 들어왔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커페이의 목에 손을 대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선언했다.
“참가자 커페이의 사망으로, 초신성- 킴이 우승을 차지합니다!”
사회자의 선언에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하던 VIP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에라, 저 멍청한 놈.”
“저놈 왜 저렇게 약해?”
“좋았어!”
유현이 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도와준 뚱뚱한 중년도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쪽에 걸었나 보군.’
질질.
링 안으로 들어온 남자들이 사망한 커페이의 시신을 끌고 나갔다.
몇몇 VIP들도 자리를 떠났다.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케이지 밖으로 나서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우승 상금 지급이 있을 예정입니다.”
유현은 그를 따라 이동했다.
사회자가 있던 곳 쪽에 연단이 하나 있었다.
거기로 향하자, 한 인상 좋은 남자가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오며 손을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참가자 킴. 저는 이 카지노의 관리인입니다.”
“예.”
카지노 관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손을 맞잡은 유현에게 슈트케이스처럼 생긴 가방을 건넸다.
“우승 상금, 100만 위안입니다.”
100만 위안.
한화로 1억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큰돈이었다.
‘추적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놨군.’
기축통화인 달러와는 다르게, 위안화는 환전하지 않으면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환전소에 들르면 흔적이 남는다.
애물단지를 받아 든 유현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이제 고용주에게 가 보셔도 됩니다.”
물론 그 살찐 남자에게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
.
.
“후…….”
유현은 우승 보상을 수령한 뒤 참가자 대기실로 향했다.
‘돈이라.’
돈은 사실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동안 의뢰를 수행하며 벌어 놓은 재산이 꽤 됐다.
“쯧. 귀찮게…….”
그동안 투기장에 참가해 상금을 받은 사람 중, 과연 이 도시를 벗어난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었다.
베팅한 돈을 날린 VIP 중 다른 마음을 먹은 사람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특히나 유현처럼 단순히 용병 참가자라면, 무사히 여길 빠져나갈 수 있도록 뒤를 봐줄 이도 없을 것이다.
유현은 유희 거리로 소비되는 그런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고상한 척이라도 하는 이곳과는 달랐지.’
첫 번째.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로 발견된다.
그래서 보통 지하격투클럽에서 큰돈을 쥐고 나가는 사람은 곧바로 모든 돈을 탕진한다.
두 번째. 스카우트를 받는다.
글라자와 마피아들은 항상 격투클럽에 조직원을 상주시킨다.
싸움 실력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람을 조직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다.
지하격투클럽에서 낭중지추였던 유현도 두 번째 케이스였다.
‘여기도 마찬가지이려나.’
VIP들은 아마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두를 쓰러뜨리고 우승한 유현을 탐낼 것이다.
자기 경호원이나 수하로 거두기 위해 접촉할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철컥.
대기실의 문고리를 잡은 유현은 멈칫했다.
공간 안쪽에 인기척이 있었다.
하지만 몰래 숨어 있는 기색은 아니었다.
“…….”
안에 소지품이 있긴 했으나, 무기 같이 수상하게 여겨질 만한 것들은 미리 다른 장소에 숨겨 뒀다.
끼익.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금 전 상금을 건넸던 카지노의 관리인이 수행원 둘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유현의 질문에,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던 관리인이 말했다.
“감사 인사를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킴, 당신의 실력 덕분에 VIP들께서 이번 투기장을 즐겁게 보셨거든요.”
“그게 용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예. 뭐,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윽.
관리인은 유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제안했다.
“저와 같이 일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참가자 킴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보수는 섭섭하지 않게 드릴 겁니다.”
유현이 미간을 좁히자, 관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명을 사용한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욕심이 나서 말입니다.”
유현은 살짝 놀란 상태였다.
접촉해 올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 빠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잘됐군.’
어차피 삼합회 허베이지부장이자 부모님의 죽음을 사주한 자를 만나기 위해서 그들 사이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물론 그들도 유현이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유현은 그의 목표, 리신페이만 눈앞에서 마주하면 그만이었다.
“……잠시 고민할 시간을 주십시오.”
“예. 얼마든지요.”
조용히 눈빛을 가라앉힌 유현이 머릿속으로 다짐했다.
일주일 안에, 모든 걸 끝내고 돌아가겠다고.
* * *
“그러니까, 수도권에는 지금 너 하나밖에 없다는 거지?”
“그렇다고 몇 번을…… 아니, 맞습니다. 맞아요.”
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라자의 정보원, 데릭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흑…….”
“얘한테 달걀이라도 몇 개 갖다 줘라. 보기 흉하다.”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잖습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다 말했는데 때리긴 왜 때립니까!”
데릭은 억울함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라세흠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 얘기가 사실인지 어떻게 믿어? 증거도 없는데.”
“제가 거짓말했다는 증거도 없는데요!?”
“야. 맞은 게 불만이냐? 너 때문에 우리가 위험한 일을 당했어.”
콱.
라세흠의 손길에, 데릭의 몸이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크윽…….”
“우리가 네 팔다리를 붙여 두는 걸 감사해야지. 이 새끼야.”
“자, 잠깐…….”
휙. 쿵!
“윽!”
라세흠은 데릭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놨다.
“당분간 넌 여기 있어 줘야겠다.”
“예, 예?”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데릭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하실에 넣어 놔라. 친구들 많으니 심심하진 않겠지.”
“예.”
질질…….
힘없이 끌려가는 데릭을 바라보던 라세흠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 좋게도 한 놈을 잡아서 심문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별로 얻어 낸 게 없었다.
조직의 지시로 한국에 넘어왔고, 평소에는 정보를 수집하다가 이 나라로 파견 오는 킬러들을 돕는다.
당장 알아낼 수 있던 건 이 정도뿐이었다.
데릭이 잡다한 것들도 털어놨지만, 지금 당장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흐음.”
대신 좋은 소식 하나는 있었다.
덩치와 돼지, 난쟁이를 습격했던 시커먼 놈.
그놈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상부에서 호출이 있었단다.
꾹. 꾹.
라세흠은 출장 간 이주혁에게 알아낸 정보를 전송했다.
도움이 될진 몰라도 마음은 놓일 것이다.
“언제쯤 돌아오려나.”
이주혁이라면 얻어 낸 정보로 뭔가를 추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세흠은 전투나 전술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첩보 쪽은 솔직히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다.
“후.”
아직 군인으로서의 생활이 더 익숙한 모양이다.
누군가 지시하면 따른다. 그게 더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라세흠은 지금 자리를 비운 이주혁을 대신해 누굴 찾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우재성은 한동안 완전히 경영과 투자에 집중하고 있어서 바쁠 터.
안 그래도 서류 작업으로 머리 아플 텐데 이런 일까지 들고 가는 건 조금 그랬다.
저벅.
아무래도 그동안 대표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항상 전면에 나선 것도, 계획을 주도한 것도 이주혁이었다.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권력자들을 무너뜨린다는 미친 짓을 돕기로 하긴 했다.
나쁜 놈들을 두고 보기도 싫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하자는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이주혁에게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에이. 나이를 먹으니까 별 생각이 다 드네.’
이렇게 궁상떨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낫다.
그렇게 라세흠은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라세흠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철컥.
얼마 전 유현이 올라갔던 SA시큐리티의 맞은편 건물 옥상.
그곳에서 한 남자가 저격총의 스코프를 통해 내부를 살피는 중이었다.
끼릭.
남자는 소음기를 장착한 뒤, 옆에 놓여 있던 종이를 넘겨 확인했다.
조금 전 스코프를 통해 확인한 남자와 거의 흡사한 얼굴의 사진이 있었다.
그럼 저 남자가 ‘최우선 제거 대상’에 포함된 사람 중 하나일 텐데, 동양인이라 그런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이내 확신을 내리고 복도를 걸어가는 남자를 조준했다.
스으-
조준점이 라세흠의 헤드라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천천히 목표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숨을 참았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끼릭.
그 순간, 라세흠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 * *
“그래. 이번에 꽤 괜찮은 놈이 우승했다고?”
“예.”
카지노의 관리인이 한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떻던가.”
“괜찮은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전 우승자가 아무것도 못 하고 당했습니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였습니다.”
“그 정도라고? 어디서 온 놈이지?”
“홍콩이라고 하긴 하던데, 확인중입니다.”
“쯧. 철저하게 확인해. 그만한 놈이 이유 없이 여기 있을 리는 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카지노의 주인이자, 삼합회 허베이지부장.
리신페이가 어깨까지 닿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관리인에게 물었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
“아, 그게…… 정동의 조 사장이 고용한 투기장 참가자가 전날 갑자기 사라졌답니다.”
“조 사장이면 그 멍청한 돼지 말인가. 그런데 사라졌다고?”
“예. 그래서 대신으로 킴을 내보냈다고 전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며…….”
그 말을 들은 리신페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흠……. 뭔가 미심쩍긴 하군.”
상황이 너무 공교로웠다.
리신페이는 의심이 많고 뭐든지 확실히 처리하고 넘어가는 성격이었다.
그러지 않았다가 처참하게 죽음을 맞은 형을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리신페이는 관리인을 향해 말했다.
“그 일, 자세히 알아봐. 확실한 정황이 나올 때까지 철저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관리인이 허리를 숙인 뒤 물러났다.
혼자 남은 리신페이는 걸음을 옮겨 테이블에 있던 위스키를 집었다.
그리고 잔에 따라 마시며 미간을 좁혔다.
‘유…….’
과거에 마주했던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리신페이가 성인이 되기 전, 형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날 형은 난입한 킬러에게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유라는 킬러가 한 짓이었다.
그 후로 리신페이는 매사에 조심하고 경계했다.
형처럼 될 생각은 없었다.
탁.
잔을 내려놓은 리신페이가 방 안을 천천히 돌며 고민했다.
‘갑자기 사라진 참가자.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차지한 놈.’
심지어 듣기론 상당한 실력자다.
그런 자가 우연히 조 사장의 사정을 알고 접근했다?
그것보단 차라리 그자가 조 사장이 고용한 참가자를 없앴다는 게 더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가능성.
‘냄새가 난단 말이지…….’
리신페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직접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