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
“크아아악-!”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손에는 이미 뽑힌 머리카락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강화유리로 된 실험실 바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년이 마이크를 통해 내부로 음성을 전했다.
“이봐. 정신 차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잖나.”
“크으……. 으윽…!”
남자는 핏발이 잔뜩 선 채 침을 질질 흘리다, 그 말을 듣고 비틀거리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래. 좋아. 이제 눈앞에 있는 놈과 싸워.”
실험실 안에는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맞은편엔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은 강화유리 너머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 전에 말했듯, 보수는 둘 중 살아남는 사람에게만 줄 거다. 시작해.”
그와 동시에, 슬슬 눈치를 보던 청년이 상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콰악!
“죽어!”
“크으….”
청년에게 목이 졸리던 남자의 몸이 흐느적거렸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청년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윽?”
꾸구국.
남자가 힘을 주자 청년의 팔이 벌어졌다.
그에 청년은 손을 확 뺀 뒤,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남자의 머리가 뒤로 홱 젖혀졌다.
하지만 그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고개를 들고선, 괴성을 지르며 청년의 머리를 붙잡았다.
깡말랐던 그의 몸은 부풀어 오른 근육 때문에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크아아아!”
“아악! 이런 미친…!”
쿠당탕!
바닥에 쓰러진 청년은 자신을 덮치는 남자의 가슴팍을 걷어찼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밀고 들어왔다.
덥석!
이내 그는 청년의 얼굴을 잡고 손아귀에 힘을 줬다.
“끄으읍!”
탁! 탁!
청년은 고통에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남자는 그대로 무게를 실어 손을 앞으로 밀었다.
우득!
목이 90도로 돌아간 청년의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후…. 후우….”
남자는 덥수룩한 머리가 산발이 된 채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실험실 외부에서 그를 지켜보던 중년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모, 몸은 어떤가. 아픈 곳은 없나?”
그 물음에 남자는 붉어진 눈으로 자신의 신체를 살폈다.
“아, 아프진 않고…… 심장이 빨리 뜁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중년이 환희에 찬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성공했다. 성공했어…!”
그는 곧바로 테이블로 달려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무슨 일인가.
“성공했습니다!”
-…실험이 성공했다고?
“예!”
명운제약의 사장이자 삼합회의 홍콩지부장, 장쉬안이 기대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내려가지.
* * *
왕근철은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됐다.
아마 가선 내가 시킨 대로 증언하겠지.
허튼 생각은 못 하게 잘 타일러놨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이번에도 별거 없었네.”
“잔챙이들 잡으러 가는 건 알고 따라오셨잖습니까.”
“뭐 그건 그렇긴 한데, 거기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쩝 소리를 낸 부장님이 목을 좌우로 돌리며 말했다.
“나도 사서 고생하고 싶단 건 아니지만, 살벌한 놈들이랑 싸우다가 동네 깡패들 상대하려니 뭔가 김빠진단 소리지. 이왕이면 상대가 되는 놈이랑 붙어야 감을 안 잃잖냐.”
말은 저렇게 해도, 그냥 센 놈이랑 붙고 싶단 소리다.
부장님이 저 주제로 투덜대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나는 적당히 대꾸하며 돌아갈 채비를 했다.
서울로 올라가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삼합회나 마피아 같은 해외 폭력 조직들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도 만들고.
그러려면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고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많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진행해야 할 일이었다.
‘우선 만나기로 한 그 양반부터 봐야겠지.’
광수대의 팀장, 박건.
과거 개인적으로 선생을 조사하던 인물로, 아직 그놈을 잡고 싶다는 열망이 있을 거다.
그를 적당히 구슬려서 내 편으로 만들면, 앞으로 할 일이 조금 더 편해진단 말이지.
꾹.
나는 연락처 목록에서 박건의 이름을 찾은 뒤 전화를 걸었다.
-광수대 박건 경위입니다.
“경위님. 제가 출장이 끝나서요. 혹시 언제 시간 되십니까?”
-아, 오늘은 시간을 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일 괜찮으십니까?
“예. 뭐, 식사라도 같이할까요?”
-좋습니다.
박건은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풍원한정식 아십니까?”
-예. 그리로 가면 되겠습니까?
“네. 7시에 거기서 뵙죠.”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무리하고, 예약을 위해 풍원한정식 가게 번호를 입력했다.
본격적으로 영업을 재개한 후엔 평일 저녁이어도 항상 손님으로 붐비는 탓이었다.
-네. 풍원한정식입니다~.
“예약 좀 하려는데요.”
-몇 시에… 혹시 주혁이야?
누가 받았나 했더니 강예원이었구만.
“7시에 두 명. 조용한 데로 부탁해.”
-알았어. 올 때 선물…….
또 쓸데없는 소리로 시동을 걸려고 하길래, 바로 핸드폰을 접었다.
탁.
.
.
.
나는 회사에 들렀다가 혼자 풍원한정식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자기들 빼고 맛있는 거 먹는다며, 배상훈이 주도한 소소한 반란이 있었다.
결국 진압을 위해 법인카드를 넘기고 올 수밖에 없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몇 번 봤던 남자 직원이 날 보고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하셨습니까?”
“이주혁 이름으로, 두 명 예약했습니다.”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구석진 방에 들어갔다.
테이블 위엔 밑반찬들이 미리 놓여 있었다.
그보다 놀란 건, 박건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일찍 오셨네요?”
시간을 보니 6시 반이었다.
“원래 조금 일찍 다니는 편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건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텁.
박건은 여전히 강인해 보이는 얼굴로 나와 악수했다.
사실 말이 강인인지, 사람에 따라선 험악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인상이었다.
“앉읍시다. 식사부터 할까요?”
“좋습니다.”
“요새 힘드신 건 없으십니까?”
“늘 비슷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별일은 없습니까?”
“별일이라면….”
“강력범죄 같은 거 말입니다.”
“조직폭력배들의 범죄는 줄긴 했지만, 그들끼리의 분쟁이 늘었습니다. 경찰 측은 강남파의 몰락에 의한 변화로 봅니다만… 이주혁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군요.”
“으음.”
박건은 내가 뭔가 다른 말을 꺼내길 바란 듯했지만, 나도 딱히 이견은 없었다.
“그나저나, 선생의 흔적이 사라졌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죠.”
박건에게는 선생이 없어졌다고만 이야기했지, 죽음을 가장해 해외로 도망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정체도 굳이 말해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못 믿을 인간까진 아니지만, 만약 민지훈이라는 이름을 말해주면 박건은 곧바로 윗선에 보고할 확률이 높다.
괜히 그런 정보를 흘렸다가 상황이 꼬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이렇다 할 움직임도 없고, 사건도 일어나지 않으니 단서를 찾는 것도 진행이 되질 않습니다.”
난감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박건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이주혁 씨는 아직도 그를 추적하고 계십니까?”
“…오늘 경위님을 부른 것도, 그것과 관련된 걸 말씀드리기 위해섭니다.”
내 말에 박건이 눈을 빛냈다.
“정말입니까?”
“예. 이번에 부산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일당을 잡아 경찰에 넘겼습니다.”
“소식은 들었는데, 이주혁 씨가 엮인 일이었습니까?”
“제가 엮인 것까진 아니고, 어쩌다 관련 정보를 입수해서 신고만 한 겁니다.”
깡패 놈들을 두들겨 팼다는 걸 알려줘 봤자 좋을 건 없지.
물론 박건이 알게 됐을 때를 대비해 걸릴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약 만들던 놈들 손이랑 혀 자르라는 것도 겁주려고 한 말이었으니까.
“지금 조사 중이라고 하던데, 혹시 다른 게 있는 겁니까?”
“네. 제가 알아보니, 이게 단순히 마약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후. 말하자면 복잡하군요. 천천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얼마든지요.”
나는 차로 입을 가신 뒤 목을 가다듬었다.
지금부터는 이야기에 조미료를 잔뜩 쳐야 했기에 집중해야 했다.
“우선, 포항에서 활동하던 왕근철 말입니다.”
“예.”
“삼합회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내 말에 박건이 표정을 굳혔다.
“삼합회…. 뿌리뽑히질 않는군요. 지난번에도 패싸움을 일으키더니.”
마종석과 춘식이가 스가와라의 복수를 돕기 위해 인천에 찾아갔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예. 왕근철이 삼합회에서 필로폰 제조법을 배운 놈들을 데리고 부산에서 마약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음…….”
고개를 끄덕이던 박건이 살짝 머뭇거리며 말했다.
“수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지만, 사실 지금으로선 삼합회의 위치를 파악할 여력이 부족합니다. 사실 최근 서울 내에서 떠오르는 신흥 조직폭력배 때문에 인력이 그쪽 우선으로 배정되는 상황입니다.”
한 마디로, 삼합회와 왕근철이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론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좋아. 그럼 떡밥을 더 던져줘야겠지.
“그리고 제 회사에서 일어났던 저격 사건. 그 일의 범인은 아마 러시아에서 온 마피아일 겁니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얼마 전, 이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척.
핸드폰을 꺼내 문자 내용을 박건에게 보여줬다.
거기엔 나도 알아볼 수 없는 러시아어로 한 문장이 쓰여있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네가 한 짓을 잊지 않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일전에 말씀드렸듯, 부산 항구에서 국제파와 마피아들이 밀거래하는 걸 저희 측에서 막았잖습니까.”
그 일을 나한테 들은 적이 있는 박건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럼, 이 문자를 마피아들이 보냈다는 겁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받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저격이 일어났으니까요.”
탁.
나는 들고 있던 잔을 테이블에 강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삼합회, 마피아, 야쿠자. 조폭들로 모자라 외국 깡패들까지 우리나라에서 설치고 있습니다. 가만히 두고 보실 생각입니까?”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던 박건이 침울한 투로 말했다.
“저도 마음 같아선 싹 다 잡아들이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무리입니다. 윗선에서 쉽게 허가가 내려오지도 않을 테고, 온갖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놈들을 체포하는 것도 위험이 따릅니다. 저 혼자 다치는 거라면 몰라도, 절 믿고 따르는 팀원들이 해코지를 당하는 건…….”
“그래서 경위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한 겁니다.”
“예?”
“세상에는 경위님처럼 범죄를 혐오하고, 악을 뿌리 뽑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찰, 검사, 국회의원.
기타 여러 기관의 공직자들.
개인적인 친분이든, 이해관계에 입각한 설득을 통해서든 불러 모을 자신이 있다.
척.
의아한 듯한 표정의 박건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는 경위님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산재한 범죄자들을 붙잡기 위한 특수팀을 창설할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박건이 황당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이주혁 씨가 말입니까? 대체 어떻게요?”
“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호언장담했다.
비록 박건,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팀을 만드는 건 아니겠지만.
“경위님. 제 계획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원래, 과정보단 결과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