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5
034화
“아-악! 쪽팔려!”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집이 울릴 정도로 함성을 뱉었다.
쪽팔린다는 말이 절절히 실감되는 시간이다.
카드 한도를 안 올린 것도 창피하고, 체크 카드를 들고 가지 않은 것도 민망하다.
거기에, 은행 이체 한도까지 걸려서 계산을 못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내, 내가……. 외상을 하다니…….”
꼬꼬마 시절에 슈퍼에서도 외상은 안 했었다.
내 인생에 외상이란 단어는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트럭에 돈을 다발로 쌓아 두고, 비밀 창고에 현금과 금, 달러, 엔화까지 보유하고 있는 내가!
신분증을 맡기며 외상을 하는 치욕을 겪었다.
‘그 눈빛…….’
임유나의 당혹스러운 눈빛이 생생히 기억난다.
마치 눈으로 ‘이 사람 뭐지?’라고 물어보는 듯했다.
당당하게 직원들 데리고 가서, 3,800만 원어치나 먹어 놓고 외상이라니…….
“젠장…….”
임유나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계획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얼음공주에게서 고맙다는 말까지 들은 훈훈한 순간에 그런 모습을 보여 버리다니.
“진정……. 저한테 여복이란 건 없단 말입니까?!”
충분히 로맨스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도 초과가 내 앞길을 막았다.
모태솔로에서 벗어나, 미모의 여성과 연예를 꿈꿨던 그 시간은 진짜 꿈이 돼 버렸다.
‘회귀까지 해도 여복이 없는 거면……. 포기하자.’
과거로 회귀까지 했는데, 여복이 없다.
하늘이 근 40년 동안 외롭게 지낸 내게, 더 기다리라고 말하는 거 같다.
“……아니야.”
나 이주혁.
이대로 하늘에 굴복할 수는 없다.
새롭게 주어진 인생은 다시 써 보겠다.
모태솔로의 아픔은 이전 생으로 충분하다.
난 이번에 반드시!
“여자를 사귈 거야!”
임유나는 물 건너 같지만, 세상의 반은 여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중에 아직 내 짝을 못 찾았을 뿐이다.
반드시, 내 영혼의 동반자를 찾는다.
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사장님. 정리 다 했는데, 퇴근 안 하세요?”
“해야죠.”
임유나가 카운터에서 포스기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를 보며, 종업원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 일하면서 본 적이 없는 묘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3,800만 원 외상한 거 때문에 그러세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형의 친구의 친구가 변호사 하거든요. 그 사람한테 말해서 그……. 뭐더라? 구상권 청구인가? 아무튼, 그거 진행해 달라고 할게요.”
“괜찮아요. 그 사람, 내일이면 돈 가지고 올 거예요.”
그렇게 답하며,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다.
종업원은 임유나의 표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지금 웃고 계신 거예요?”
“아! 제가 그랬나요?”
“네. 방금 웃으신 거 같은데…….”
“훗. 귀여워서요.”
“예?”
“아, 아니에요. 어서 퇴근해요. 마무리는 제가 하고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임유나는 카운터 앞에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주혁의 행동이 기억났다.
핸드폰을 만지고, ATM기에 달려가고, 그래도 안 돼서 결국은 외상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던 이주혁.
덩치 큰 남자가 발을 동동 구르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귀여웠다.
‘재밌는 사람이야.’
온갖 폼은 혼자 다 잡고 있지만,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또래 남자들이 가진 허세와는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게 임유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내일 보겠네.’
내일은 정말 궁금했던 걸, 물어볼 참이다.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던 강북도끼파는 어떻게 된 건지.
그때 가게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난 뒤로 감쪽같이 사라진 게, 정말 이주혁 때문인지.
그리고…….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내일 만나면,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차근히 물어보려 한다.
***
“아니! 왜 돈을 다시 가져온 거야?”
다음 날, 난쟁이를 시켜 현금 뭉치로 4,000만 원을 가져다줬다.
외상값은 3,800만 원이지만, 미안함에 200만 원을 더 넣었다.
그런데, 돈이 든 가방을 난쟁이가 고스란히 들고 온 거다.
“행님. 여사장님이 그라던데예. 법적으로 신분증을 줄 사람한테만 돌려줄 수 있다꼬예.”
“그래서? 나보고 직접 오라고?”
“예. 그라네예. 여사장님이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예. 행님이 가서 돈 주고 신분증 받아 와야 될 거 같슴니더.”
아……. 젠장. 왜!
난 당신 얼굴 볼 자신이 없다고!
당사자한테 신분증을 돌려주는 건 맞지만, 어제 일행 중에 난쟁이가 있는 걸 봤잖아?
나한테 왜 그래?
나를 얼마나 더 창피하게 만들 생각인 거야?
“하…….”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다녀오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깊게 파여 있었기에, 외상값을 치르고 신분증을 받는 그 간단한 작업이 주철수를 무너트리는 것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지이잉.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며,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왔다.
[주혁아. 조이팔이 소재지 찾았다.]“훗. 후후훗.”
타이밍 좋게 잘 걸렸다. 이 새끼.
내가 지금 상당히 난감하고 곤란하며, 나 자신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이거든.
조이팔. 이 희대의 사기꾼 새끼야.
너에게 최악의 시간을 선사해 주마.
[상훈아. 네 똘마니들 뺑뺑이 돌릴 시간은 얼마나 있냐?] [3시간 정도. 그 정도는 뺑뺑이 돌리면서, 조이팔한테 접근 못 하게 할 수 있어.] [오케이. 조이팔이 있는 주소 보내라.] [어떻게 할 건데?] [대화 좀 나누고, 데려가기 좋게 의자에 묶어 놓을게. 3시간 뒤에 데리고 가.] [예압.]조이팔. 내 분노를…….
아, 아니다. 사회 정의 구현을 받아라!
“영업이사님.”
“……?”
“저랑 같이 나가시죠?”
“네? 아……. 네. 그러죠.”
영업이사직을 맡고 있는 사발과 동행하기로 했다.
사기꾼은 사기꾼이 제일 잘 알아보는 법이다.
조이팔의 입을 봉쇄하고, 영혼까지 탈탈 털어 줄 사람이 여기 있는 사발이다.
.
.
“하! 리브복지센터?”
이름을 이쁘게도 지어 놓으셨네.
여기가 조이팔이 사기 행각을 벌이는 수많은 지점 중의 하나란다.
하도 지방을 전전하고 다녀서 찾기가 힘들었는데, 서울에 얼굴을 비추자 바로 찾아냈다고 한다.
“들어가자.”
“그래.”
복지센터 안으로 들어가자, 그 흔한 안내원도 없다.
작은 회의실 같은 것들만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 누가 봐도 이건 복지센터의 건물이 아니었다.
‘여기서 회원들을 모았겠지.’
조이팔이 한 수법은 전형적인 폰지사기다.
의료기기를 사서 빌려 주고, 그걸로 수익이 나면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식으로 광고했는데, 이게 다 사기다.
처음부터 의료기기를 사지도 않았고, 투자금을 받아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배분해 줘야 할 때는 뒤에 들어온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줬다.
한마디로, 뒷사람에게 받은 돈을 앞사람에게 주는 방식이다.
이런 폰지사기에 말려든 피해자만 해도 7만 명.
피해액은 무려 5조 원이다.
물론, 이건 2008년에 드러나는 거고, 아직 그 정도 사이즈는 아닐 거다.
‘그러니, 빨리 뿌리 뽑아야지.’
지금 이 시간에도 피해자는 늘어나고 있다.
하루하루 벌어 힘들게 모은 돈을, 조이팔의 간교한 꼬임에 투자하고 있을 거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뻔히 보이는데, 놔둘 수 없지.
난 경찰이었다. 그리고 영웅의 아들이다.
더욱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를 발견한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
“상담받으러 오셨어요?”
“조이팔 회장님하고 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호호. 회장님은 2층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 사람도 피해자거든.
조이팔은 최측근 외에 모든 직원들까지 속였다.
그래서, 피해자가 그렇게 많은 거다.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도 조이팔이 제대로 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믿으며, 같이 폰지 사기에 말려드니까.
똑. 똑.
“회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네. 들여보내세요.”
회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널찍한 집무실이 나온다.
그 안에 앉아 있는 조이팔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170cm 정도 되는 키에 처진 눈썹과 훤히 드러난 이마.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이 내 앞에 있다.
“하하. 저를 직접 찾아오신 거 보니까, 임원분 소개로 왔나 보군요. 이리로 오시……. 끄윽……!”
웃으며 다가오는 그의 부랄을 잡았다.
어지간하면, 이런 잔혹한 방법은 쓰지 않지만, 이놈에겐 이래도 된다.
“앞으로 쓸 일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먼저 없애 줄게.”
“너……. 누, 누구야? 이거……. 안 놔?”
“어. 안 놔.”
놓기는? 터트릴 건데.
대답과 동시에 손에 힘을 꽉 줬다.
조이팔이 고통에 온몸을 배배 꼰다.
아직 멀었어. 안 터졌다.
“야. 너 저 새끼 부랄 터트리려고?”
“응. 왜?”
“그거 터지면 기절해. 내가 어떤 사기꾼 새끼 부랄 터지는 거 봤는데, 고통을 못 이기고 게거품을 물더라.”
“아……. 그래? 그럼, 나중에 터트리지. 뭐.”
사발의 만류에 조이팔의 무릎을 차며 꿇어 앉혔다.
무릎도 아플 텐데, 부랄이 더 아픈가 보네.
아직도 거기를 잡고 있는 거 보니.
“경호원! 경호원!”
아픈 와중에도 소리는 잘 지른다.
살고 싶어서 발악을 하네.
다다다닥!
조이팔이 소리를 지르자, 구두 소리가 거나하게 울리며 여섯 명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꼴랑 6명? 너무 작은 거 아냐?
한 트럭은 있어야지.
“회,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이 새끼들 쳐! 어서!”
“네!”
여섯 명이 동시에 달려든다.
내가 지금 기분이 안 좋아서 말이야.
무차별 난타가 뭔지 보여 줄게.
퍼퍼퍽! 퍽! 퍽!
달려드는 놈들을 피하며,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됐다.
어제의 쪽팔림을 풀어 줄 샌드백으로 이만한 게 없다.
주먹과 팔꿈치로 사정없이 놈들의 안면을 뭉개 줬고, 오랜만에 공중으로 뛰어 뒤돌려차기도 적중시켰다.
아……. 스트레스 풀린다.
이거야. 이 짜릿한 구타의 맛.
“비켜.”
세 놈이 쓰러지자, 중간에 있던 경호원이 넥타이를 풀며 다가온다.
이 자식이 대빵이구나.
음? 자세를 잡는 걸 보니, 유도 좀 한 친구 같은데?
“유도했냐?”
“닥쳐.”
놈이 잽싸게 다가와 내 옷깃을 잡고 바깥다리를 건다.
메치기라도 하려는가 본데, 쉽진 않을 거야.
탁! 쿵!
난 기울어지는 와중에 놈의 다리를 걸어 역으로 바닥에 냅다 꽂아 버렸다.
그러고는 팔을 잡고 그대로 꺾었다.
“으악-!”
“나도 유도했어.”
그것도 상당히 잘했지.
“음……. 이제 남은 놈들이……. 엥?”
남은 두 놈이 눈치를 슬슬 보더니, 잽싸게 도망가 버린다.
쯧. 저런 것들도 경호원이라고.
의뢰인을 목숨 바쳐 지키는 게 경호원이지.
너희는 최소한의 자격도 없네.
“야. 조이팔. 경호원을 쓰려면 제대로 된 곳을 이용해야지.”
우리, SA시큐리티처럼.
“당신…….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러긴, 사기꾼한테 왜 이러겠어?”
“뭐?”
“뭘 놀라고 그래? 사람 민망하게. 폰지 사기의 대가, 조이팔 씨께서.”
“너……. 실수하는 거야.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아?”
협박은 통하는 사람한테나 하는 거야.
“잘 알지.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 강동경찰서 정 경사, 서울고검에 김 검사, 금배지 찬 놈들까지. 다 알아.”
“……!!”
네가 중국으로 밀항한 후에 구속된 사람들이다.
그때 뉴스가 얼마나 크게 났는데, 내가 모르겠냐?
“그런데, 말이야. 네 뒤에 누가 있든 상관없어. 어차피 넌 오늘 죽을 거거든. 내 손에 죽는 건 아니지만.”
주철수 그 인간이 살려 둘 리가 없다.
이미 눈이 뒤집힌 상태라서, 넌 혹독한 벌을 받을 거야.
아! 그래도 혹시라도 살려 둘 수 있으니까, 고자는 만들어 놔야겠지?
난 조이팔의 불알을 다시 잡았다.
“자. 이제부터 묻는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답해라. 알겠냐?”
“이……. X바 새……. 어억! 악!”
“고자 되고 싶지 않으면, 성실히 답하는 게 좋을 거야.”
조이팔의 눈에 눈물이 맺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성실히 답해도 고자 되는 건 똑같은데…….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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