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53
#353화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자, 외국인이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팍!
그리고 이내 내 팔을 뿌리치고 달리려고 했다.
꽈악.
“안 되지.”
물론 그렇게 하도록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옷깃을 붙잡힌 외국인 놈은 낭패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선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 미친놈이?’
설마 총을 꺼내는 건가 싶어 황급히 상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놈은 빠르게 몸을 젖혀서 피했다.
그리고 황급히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내가 곧바로 뒤쫓아 달려가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꺄악!”
“무슨 일이야?”
놈은 인파를 마구잡이로 밀치며 달렸다.
“어이쿠!”
“아악!”
“거기서! 이 새끼야!”
일부러 그러는 건지, 사람들이 밀집된 곳으로만 이동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잠시만 비키세요!”
나도 억지로 밀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저놈이야?!”
멀리서 이쪽으로 뛰어오는 배상훈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새끼 맞아!”
킬러 놈은 앞에서 접근하는 배상훈을 보고선 황급히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개새끼가!”
달려오던 배상훈은 그걸 보고 땅을 박차며 펄쩍 뛰어올랐다.
제대로 들어가나 했지만, 발차기는 놈이 메고 있던 기타 가방에 적중했다.
퍼억!
땅바닥을 한 바퀴 구른 놈이 벌떡 일어났다.
그에 나는 허리춤에서 테이저 건을 꺼내 들었다.
송태석을 통해 몇 정 공수해 온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생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게 있으면 좋을 것 같더라고.
놈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따다다다!
“끄윽!”
테이저를 맞은 놈은 비틀거리며 손을 휘저어 전선을 떼어냈다.
하지만 순간 몸이 굳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결국 배상훈에게 일격을 허용했다.
뻐억-!
배상훈의 사커킥을 맞은 킬러가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나도 매타작을 위해 합류하려는데, 놈이 발목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나는 그걸 보고 허리춤에 있던 삼단봉을 잡아 펼쳤다.
촤락!
“곱게 가자!”
그리고 주변에서 구경 중인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공무 집행 중입니다! 위험하니 물러나세요!”
그러자 도망가긴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놈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조폭 수준이면 칼을 들고 있어도 두들겨 패버릴 수 있지만, 상대는 살인 전문가다.
쇄액!
나는 삼단봉의 긴 사거리를 이용해 놈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틈을 타 배상훈도 삼단봉을 꺼낸 채로 놈의 뒤를 점했다.
삼단봉과 방검복. 팀원들의 안전을 위해 하나씩 보급한 장비였다.
“…#@.”
우리가 슬금슬금 다가가자, 뭐라 중얼거린 놈이 배상훈을 향해 돌진했다.
“시간만 끌어!”
“걱정하지 마라.”
배상훈이 자세를 잡고 삼단봉을 내리쳤다.
그에 킬러도 마주 칼을 휘둘렀다.
캉! 캉! 카각!
둘의 무기가 격렬하게 맞부딪혔다.
놈은 아예 저쪽으로 뚫고 나가려는 건지 필사적으로 손발을 움직였다.
그사이에 나는 테이저 건의 카트리지를 교체했다.
딸깍.
그리고 어지럽게 싸우고 있는 놈의 등판을 조준했다.
하지만 놈은 등에 기타 가방을 메고 있었기에 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가까이 접근한 뒤, 엉덩이 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따다다닥!
“으윽!”
칼을 찔러넣으려던 킬러의 몸이 경직됐다.
이번엔 뒤에서 맞았으니 쉽게 떨쳐내기 힘들 거다.
“끄아악…!”
놈은 바짝 굳은 채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쿠웅!
나는 놈의 엉덩이에 꽂힌 바늘을 발로 빼낸 뒤,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철컥!
“후….”
“끝났냐?”
“어.”
배상훈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힘드네. 힘들어.”
“다친 데는?”
“몇 번 훅 들어오는 건 있었는데, 다행히 멀쩡하다.”
“크윽…!”
밑에 깔려있던 놈이 꿈틀거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이 안에는 뭘 넣고 다니는 거냐?”
지익-.
기타 가방을 열어보니, 소음기를 포함한 총기의 부품들이 들어있었다.
“역시.”
무기 같은 게 들어있을 줄은 알았는데, 이런 저격총일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그때, 무전기에서 백기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보원도 잡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킬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월척이네.”
.
.
.
붙잡은 킬러는 그 길로 박건을 통해 곧장 경찰에 넘겼다.
우리 쪽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워낙 목격자도 많고 해서 말이지.
또 다른 지역에서도 일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연락이 돌아왔다.
마종석과 팀원 하나가 약간 부상을 당하긴 했는데, 그것 외에는 별일 없었다.
‘생각보단 일이 쉽게 풀렸지.’
놈들의 연락 방식을 알고 있던 고상미와, 미리 정보원들의 통신 수단을 해킹해 놨던 고세운의 공이 컸다.
“이 팀장님.”
그때, 내 옆으로 다가온 박건이 말을 걸었다.
“박 경위님. 아니, 박 과장님이라고 해야 되나요?”
“박 과장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박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용의자들은 일단 유치장에 가둬뒀습니다.”
“그래요?”
“예. 그런데 그들의 혐의가 마땅치 않습니다. 불법 무기 소지 외에는 명확한 물증이 없어서, 법적으로 길게 억류해 둘 수가 없습니다.”
“으음…….”
틀린 소린 아니었다.
킬러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뭐, 그건 일단 생각해봅시다. 정 안 되면 증거는 만들면 되니까요.”
놈들을 러시아로 곱게 돌려보내지 않을 방법은 많았다.
박건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내 말에 박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담한 말투로 덧붙였다.
“또 이런 일을 진행하실 땐 경찰 인력을 기용하셔도 됩니다. 작전팀 분들 실력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다음부턴 그러겠습니다. 이번엔 아무래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거든요.”
“예. 꼭 그래 주십시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박건이 갑자기 떠오른 듯 물었다.
“아, 혹시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이요?”
“용문동 폐공장에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나는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 폐공장은 내가 김용수를 만나서 갈궜던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누군가 죽었다니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누구 시신인지는 확인됐습니까?”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한국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설마 김용수, 그놈이 죽은 건가?
아니지. 김용수라면 진작 신상 정보가 나왔을 거다.
국적을 바꿨다고 해도 정보는 남아있을 테니까.
“일단, 조사가 끝나면 결과만 좀 알려주십쇼.”
“알겠습니다.”
“다른 데서 잡은 놈들은 강남서로 배송될 겁니다.”
“배송이라. 하하….”
강남경찰서.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자, 특수수사국이 본부를 겸하는 기관이다.
강남파 때문에 시설 확충이 잦았기에 써먹을 수 있는 게 많아서 여기로 결정했다.
물론 강남서장이 경찰청장 직속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하기도 했고.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
발신인을 확인한 내 표정이 굳자, 박건은 눈치껏 손짓했다.
“볼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먼저 들어가 보십시오.”
“예, 그럼. 과장님도 수고하십쇼.”
나도 마다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설마, 박건이 말한 그 일 때문인가……?’
나는 내심 불안함을 안고 내 차로 이동했다.
* * *
습격을 당하고 다음 날, 김용수는 어디론가 다급히 향했다.
부웅-. 덜컹.
“쓰읍….”
“죄송합니다.”
차가 들썩거릴 때마다 칼이 박혔던 왼쪽 어깨가 쑤셨다.
김용수가 부상을 입고 돌아오자 수하들은 분개했었다.
당장 어디라도 쳐들어갈 듯한 기세였지만, 일단 수하들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공격하고 같이 갔던 녀석들을 죽인 그놈.
대체 누가 놈을 보낸 건지 알아내기 전엔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됐다.
‘대화가 잘 풀릴까 모르겠군…….’
그래서 김용수는 이주혁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짓기로 했다.
이주혁이 그놈을 보냈을 가능성은 적었다.
그리고 그라면 누가 제 죽음을 사주했는지 알아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니, 경호원들이 차를 멈춰 세웠다.
“창문 내려.”
지잉-.
경호원들이 다가오자, 김용수는 열린 창문을 통해 말했다.
“박 사장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무전기로 누군가와 연락한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대고, 김용수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탄 뒤 위로 올라갔다.
최상층에 도착하니 수행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오십시오.”
김용수는 그를 따라 사장실로 향했다.
“손님 도착하셨습니다.”
-들여보내.
끼익.
문이 열리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호정기획의 사장이자 재계 2위 호정그룹의 후계자로 꼽히는 인물.
박광훈이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탁.
수행원이 문을 닫고 나간 걸 확인한 김용수가 입을 뗐다.
“책 읽느라 바쁜 것 같으니, 바로 본론부터 얘기해야겠네.”
“그럼 좋죠.”
“습격당했다.”
그 말에 박광훈이 천천히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습격이라고요? 누구한테 말이죠?”
“나도 몰라. 갑자기 튀어나온 놈이 내 부하 둘을 죽이고, 내 팔에도 칼침을 놨어.”
“누가 보냈는지도 모릅니까?”
“어. 총을 들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맨손이었다면 무조건 죽었을 거다.”
탁.
책을 덮은 박광훈이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 짓이라고 생각하죠?”
“그걸 모르겠으니까 여기 온 거지.”
김용수가 박광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불러 모으는 높으신 분들이 날 처리하라고 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사주한 건지 좀 알아보려고.”
“만약 저희 쪽에서 지시한 거라면 어쩌려고요?”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이주혁이 그런 일을 지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 카르텔에 속한 사람이 자신을 담그려고 했다면, 모임을 주도하는 이주혁 몰래 행동한 거란 뜻이었다.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있나.’
그래서 김용수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그럼 당신네 일이겠죠.”
야쿠자끼리의 분쟁이 아니냐는 말에 김용수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있는 야쿠자라 해봤자 스가와라 놈 정도인데, 그놈이 갑자기 나를 칠 리 없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이주혁.”
그 이름을 들은 박광훈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자를 불러줬으면 한다.”
* * *
나는 박광훈의 연락을 받고 호정기획에 도착했다.
‘김용수. 그놈이 나를 왜 찾는 거지?’
다행인 건지, 김용수는 폐공장에서 발견된 시신의 주인이 아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고 싶다던데, 대체 뭔 소릴 하려는지 모르겠네.
“들어가시지요.”
수행원은 늘 가던 회의장이 아닌 사장실로 나를 안내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주 앉아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은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하나는 평온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오셨군요.”
“그래.”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김용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지?”
“그때, 그… 대화를 한 후에 말입니다. 누군가한테 습격을 당했습니다.”
“습격?”
“그놈 때문에 같이 갔던 수하 둘이 죽었습니다.”
발견된 시신은 김용수의 부하 둘이었나.
“그래서, 난 왜 부른 거냐?”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 주셨으면 합니다.”
“뭐?”
가만히 있던 박광훈이 한 마디를 얹었다.
“야쿠자끼리의 분쟁은 아닌 것 같답니다.”
“흠….”
뜬금없이 기습을 당했다라.
대체 누가 굳이 이런 짓을 한 거지?
그때, 하나의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놈인가?’
나는 얼굴을 굳히며 김용수에게 물었다.
“그놈, 어떻게 생겼는진 기억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