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
나는 김용수에게 그날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들었다.
우리가 가자마자 누군가 부하 둘을 죽였고, 총을 꺼내니 도망쳤단다.
그것만 들어선 나도 누구 짓인지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난 아닌 것 같으니까 도와달라고 불렀단 거지?”
“염치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습니다.”
김용수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어린 나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이런 부탁을 한다는 건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건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놈이라고 했나?”
“예.”
그런 놈이 한둘이 아니어야 말이지.
순식간에 두 명을 제거할 정도의 실력자라고 범위를 좁혀도, 워낙 숨겨진 강자들이 많아서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한번 알아보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후보는 몇 없었다.
내가 대비하고 있는 유현. 그놈이 아니면 야쿠자 쪽일 거다.
어쩌면 모임에 속한 인간 중 누군가가 나 몰래 저지른 것일 수도 있고.
그건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이다.
‘알아본다고 해서 알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스윽.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광훈이 나를 향해 물었다.
“내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일은 모임 안에서의 내부 분열이냐.
그런 뜻이 담긴 질문인 것 같았다.
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
“그럼 다음 회의는 언제 진행하시려고요?”
“늘 하던 때 하면 되겠지.”
“저… 저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김용수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한번 실패했으니 곧바로 다시 노리진 않을 거다. 그래도 정 불안하면 일본으로 돌아가든지 해.”
내 무심한 대답에 김용수가 난감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탁.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사장실을 떠났다.
“흐음…….”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더 큰 일로 번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선생의 뒤를 이은 나’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한 일이었으니까.
근데 그런 간 부은 놈이 있을까 싶긴 하다.
‘모임 외부에서 건드린 거라 생각하는 게 맞겠지.’
어쨌든 누군가 우리 쪽 인원을 건드렸다 이건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물갈이를 해버려?’
선생이 김용수를 데리고 있던 건, 놈이 야쿠자 소속이니만큼 그쪽의 정보를 캐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 3대 야쿠자 중 하나라고 불리는 스미요시카이의 회장을 만나고 온 참이다.
그 말인즉슨, 이제 김용수의 이용가치는 없다는 뜻이었다.
피식.
나는 냉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정리해야겠어.’
.
.
.
오늘 저녁 뉴스에선 충격적인 보도가 흘러나왔다.
한국에 있던 러시아의 킬러들이 체포됐다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을 거다.
타국의 킬러가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불안한 일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와 동시에 한 가지 기사를 더 냈다.
[경찰, 폭력단 소탕을 위한 조직 ‘특수수사국’ 출범.] [특수수사국,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신설된 기관인 특수수사국을 드디어 정식으로 공개했다.
대놓고 조폭들을 겨냥한 기관이 등장하면, 놈들도 알아서 사릴 테니 절로 치안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흉흉해진 민심도 가라앉힐 겸 경고를 하기 위한 조치였다.
우웅-.
뉴스와 함께 기사가 나가자마자 인천의 야쿠자, 스가와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뉴스, 봤나?
“봤지.”
-알고 있던 건가?
그 물음에 나는 여유롭게 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지. 내가 주도해서 만든 거니까.”
-뭐라고?
스가와라가 화나기 전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당신네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거야.”
-……?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기에, 자세한 설명을 더해줬다.
‘태평양 연합’에 들어가기 위해 고위층과의 커넥션을 만들었고, 특수수사국은 폭력 조직을 선별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라고.
그걸 들은 스가와라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그 살생부에 내 이름은 없다는 뜻인가?
“물론이지.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인가.”
-믿어도 되는 거겠지.
“믿어. 아직 너희 회장한테 답을 들려주지도 못했는데 먼저 뒤통수를 치겠나?”
-으음….
스가와라는 여전히 내가 미심쩍은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더 캐물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수긍했다.
-그래. 일단 알았다. 내가 따로 해야 하는 건 있나?
“우선은 없다. 혹시 해서 말하는 건데, 불법적인 뭔가를 하고 있다면 당장 접어. 증거까지 싹 다 말소하고.”
-그런 뭔가는 없긴 하지만, 만약을 위해 확인은 해두지.
스가와라네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그에 맞는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하다.
그러니 책잡힐 만한 걸 최대한 없애둬야 했다.
지난번에 보니까 아직까지 불법 쪽에 손댄 것 같진 않더라고.
머리가 돌아가는 양반이라, 굳이 내가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관리해놓을 거다.
이러면 당부할 건 다 했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되겠네.
“아, 또 내가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는데.”
-제안?
“우리 ‘모임’에 합류할 생각 없나? 조만간에 자리가 하나 날 듯해서.”
-난 어디까지나 스미요시카이 소속으로 널 돕고 있는 거다. 이주혁.
스가와라가 정색하는 말투로 대꾸했다.
아무래도 살짝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전화로 얘기해선 전달이 잘 안 되겠어.
“당신 편을 바꾸라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야.”
-그럼 뭔가?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이야기하지. 그편이 낫겠어.”
추가로 설명을 덧붙이자, 그제야 스가와라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내가 오해했나 보군. 언제 만나는 게 좋겠나?
“빠르면 빠를수록. 내일이나 모레 저녁은 어때?”
-둘 중 괜찮은 날이 생기면 연락하지.
“오케이. 그럼 그때 보는 걸로.”
전화를 끊은 나는 피식 웃었다.
스가와라. 머리도 좋고 부하들이 목숨을 바칠 만큼 인망도 있는 남자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좀 써먹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건수가 생겨줬다.
그리고 스가와라를 설득할 확실한 패도 가지고 있다.
‘안 통할 수가 없지.’
머릿속으로 계획이 구상되기 시작했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놈을 습격한 게 누군진 몰라도, 고맙다.’
* * *
인천, 인적 드문 곳의 한 건물.
레이븐, 유현은 경호대가 마련해준 그곳의 작은 방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어둡고 음침하긴 해도, 침대나 책상 등 기본적인 건 갖추고 있었기에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사락.
그는 서류 여러 장을 넘기며 타깃들을 확인했다.
‘가네무라 아키라…. 이자는 일단 보류라고 했지.’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이 남자의 죽음은 미뤄졌다.
유현은 다음 서류로 시선을 넘겼다.
‘그럼 김우천, 이 노인인가.’
역시 경호대가 유현을 살려둔 이유는 이런 일에 써먹기 위해서였다.
몇 명의 목숨을 앗아가야 제 원수를 같을 수 있게 도와줄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그로선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크게 어렵진 않겠군.’
김우천.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막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던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곳에서 혼자 거주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김우천 본인과 가사도우미 한 명 정도.
조용히 침입해서, 조용히 처리하고 나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스윽.
유현은 옷을 들춰 상처를 확인했다.
배에 난 시퍼런 멍 자국 옆, 구멍이 뚫렸던 옆구리에 피 묻은 거즈가 붙어있었다.
찌익!
거즈를 뜯어보자, 옆구리의 총상은 적당히 아문 상태였다.
왼쪽 어깨에도 총을 맞긴 했지만, 총알이 스친 부분이 조금 패였을 뿐 그리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유현은 붕대와 거즈를 간 뒤 겉옷을 챙겼다.
밖은 어느새 해가 떨어져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레이븐의 시간이었다.
* * *
전前 민정수석, 김우천은 매일 자기 전까지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늘 하던 것처럼 독서를 마치고 일어나던 참이었다.
탁.
김우천은 책을 덮고 자리에서 나섰다.
9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으나, 굳이 더 깨어있을 이유도 없었다.
지팡이를 짚으며 계단을 내려가자, 가사도우미가 다가오며 물었다.
“주무실 거예요?”
“그래.”
“들어가셔요. 정리는 제가 할게요.”
“늘 고맙네.”
고개를 끄덕인 김우천이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딸깍.
불을 끈 그는 침대에 몸을 누였다.
그때, 위층에서 쿵 소리가 났다.
“음?”
김우천은 의아한 듯 천장을 쳐다봤지만, 이내 뭘 떨어뜨렸겠거니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을 청하려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벌컥!
가사도우미는 방에 들어올 땐 항상 노크를 하기에, 김우천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누군가 문가에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역광 탓에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적어도 그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김우천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구요. 당신.”
어둠에 감싸진 남자는 침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누가 보냈어.”
“…….”
“니 뭐냐고, 인마!”
끙 소리를 낸 김우천이 지팡이를 짚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순자는. 순자는 우쨌노. 서재에 있던 여자 말이다.”
그 물음에, 침묵하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죽었다.”
“뭐?”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김우천의 목에 핏대가 섰다.
“이, 이……!”
김우천은 휘청거리다 침대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에게 다가간 남자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시오.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
“닥치라! 이 새끼야…!”
김우천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텁.
그러나 그 공격은 남자의 손에 가볍게 붙잡혔다.
침입자, 유현은 손에 지팡이를 쥔 채로 칼을 찔러넣었다.
푸욱!
날카로운 칼날이 살을 가르고 들어가는 익숙한 느낌과 함께, 김우천이 단말마의 신음을 뱉었다.
“커어…….”
김우천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털썩.
유현은 쓰러진 노인을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과, 광철… 광철이…. 오지…….”
손가락을 까딱이며 읊조리던 김우천의 동공이 풀렸다.
꽉.
그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유현은 꽂혀있던 칼을 뽑았다.
이내 늘 하던 것처럼, 아마추어의 강도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
그리고 서랍을 적당히 뒤지며 값이 나갈 만한 물건들을 챙겼다.
‘……기분이 이상하군. 이런 적은 없었는데.’
과거엔 기계처럼 타깃을 제거했다.
의뢰받고, 죽이고, 보수를 받고.
그게 유현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글라자에서 벗어나고 나니, 이런 행위들이 어딘가 불편하게 다가왔다.
‘물러진 건가.’
부모의 원수 중 하나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거기에서 온 충격과 입었던 부상이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날카롭게 벼려뒀던 칼의 이가 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후.”
작업을 끝낸 유현은 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쓸데없는 고민이 지금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유현이 자리를 뜨려는데, 협탁에 놓여있던 김우천의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우웅-.
문자인 것 같아, 유현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다.
[아들 – 아버지. 잘 지내시죠? 다음 주 중으로 아버지 생신 겸해서 한번 찾아뵐 생각인데, 시간 괜찮으세요?] [아들 – 문자 확인하시는 대로 연락주세요. 요즘 무릎도 안 좋으시니까 약도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요.]문자를 읽고 잠시 얼어있던 유현이 핸드폰을 내려놨다.
“…….”
그리고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눈빛은 숨길 수 없이 동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