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해커, 고세운은 이주혁이 보낸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차림의 남자가 나왔다.
‘이놈이 그놈일 수도 있다고……?’
유현. 러시아에 있던 시절에 누나가 거둬 키우던 녀석이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녀석 혼자 놓고 러시아를 떠나게 됐으니, 당연히 그들 남매를 원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실루엣만 봐선 전혀 모르겠네.”
애초에 마지막으로 본 지 5년은 넘었다.
게다가 이렇게 모자와 마스크로 꽁꽁 싸매고 있으니 알아보려고 해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아직 들어오려면 멀었겠지?”
고상미. 그의 누나는 유현에게 아직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말도 없이 러시아에 버리고 왔다고 생각하는 건지, 최근 들어 기분이 가라앉은 게 대놓고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상태이니만큼, 이 영상에 관해선 굳이 얘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타닥. 타다닥.
고세운은 엄청난 속도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저택 근처에 있는 CCTV 영상이 여러 개의 모니터에 떠올라 재생되기 시작했다.
고세운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며 화면을 훑었다.
그리고 빠르게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검은 남자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딸깍.
놈이 집에서 나온 시간과 이동 시간, 방향을 고려해 어디로 가는지 추측했다.
중간에 어디로 샜는지 모습이 사라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경로를 알고 있으니 다른 영상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
그렇게 5시간이 지났다.
고세운은 피로해진 눈을 비볐다.
“후우…….”
승부욕이 생겨서 자신도 모르게 끝까지 해버렸다.
그래도 결국 이 시커먼 놈이 어디로 갔는진 알아낼 수 있었다.
덜컹.
그때, 아지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왔다~.”
팟.
고세운은 화면에서 CCTV 영상을 내렸다.
그리고 특정한 좌표를 이주혁에게 전송한 뒤, 하나를 제외한 모니터 화면을 껐다.
그와 동시에 고상미가 들어왔다.
“뭐 하고 있었어?”
“별거 안 했어.”
“그래?”
고세운은 눈을 슬쩍 돌려 땀을 닦은 고상미를 쳐다봤다.
‘굳이 안 만났으면 좋겠는데…….’
마음의 빚이 있는 누나가 유현, 그놈과 만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걱정이다, 걱정.”
“뭐가?”
“그냥.”
고상미가 싱겁다는 듯 웃었다.
고세운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의자 뒤로 기댔다.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죽을 것 같단 말이야.’
* * *
“왔네.”
고세운에게서 지도와 좌표가 첨부된 메일이 도착했다.
나는 훨씬 더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금방 끝났네.
“흠.”
범인이 향한 곳은 강서구의 개화동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일대를 수색하면 놈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꽤 범위가 넓다 보니, 아무래도 경찰 인력을 기용해야 할 것 같았다.
그놈이 눈치채기 전에 포위망을 쳐놓는 게 좋겠지.
꾹.
나는 핸드폰을 들고 박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박 과장님?”
-예. 이주혁 씨. 아, 이젠 계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군요. 어쩐 일이십니까?
“이번에 일어난 사건 말입니다. 김우천 살인사건.”
-아, 예.
“그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위치를 특정했습니다.”
그 말에 박건이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CCTV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허, 대단하십니다. 장소는 어딥니까?
“강서구 개화동이요. 혹시 지금 몇 명 정도 동원할 수 있습니까? 참고로 상당한 위험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박건이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음. 계장님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최소 30명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들 이번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30명이라.
거기에 우리 쪽 인원까지 더하면 적당히 포위망 정도는 만들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범인이 유현 그놈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그럼 경찰이 둘러싼다 해도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게 문제란 말이지.
“쓰읍…….”
뭐, 뚫고 나가건 어쨌건.
한번 은신처가 들킨 이상 끝까지 도망칠 순 없을 거다.
“그 근처에 모인 뒤에 구역을 포위하고, 놈이 대처할 틈 없이 최대한 빠르게 덮쳐야 합니다.”
-예. 우선 위치를 보내주시면, 특수국과 강서서에서 인원을 차출해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럼 거기서 뵙죠.”
나는 연락을 끊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한번 모두가 모일 시간이었다.
* * *
“…….”
방에서 혼자 수련하던 유현은 팔다리를 우뚝 멈췄다.
갑자기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든 탓이었다.
유현은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살짝 젖혔다.
바깥은 여전히 조용했으나, 평소보다 주변의 생활 소음이 줄어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저녁 시간대였음에도 말이다.
‘…뭐지?’
이런 쪽엔 예민했기에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에 유현은 방을 나서 경호대원을 찾았다.
“이봐.”
“예.”
“여길 아는 사람이 그쪽 말고 더 있나?”
“없을 겁니다.”
유현은 미간을 좁힌 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설마… 꼬리를 잡혔나?’
슥.
커튼 너머로 창밖을 내다본 유현이 눈을 크게 떴다.
“제기랄.”
경찰차 여러 대가 길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복경찰로 보이는 남자들이 근처의 건물로 들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 은신처의 대략적인 위치가 노출된 게 아닐까 싶었다.
본인의 장비를 다급하게 챙긴 유현이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경찰이다.”
“예?”
“당장 빠져나가야 된다고!”
그 말에 서류를 확인하고 있던 경호대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단 흩어진다. 꼬리를 떼면 그때 그 항구에서 만나지.”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불태우려는 건지, 작은 드럼통에 서류들을 집어넣던 경호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닷!
유현은 그들이 숨어 지내던 아지트를 빠져나왔다.
아직 경찰들이 여기까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조용히 이 지역을 벗어나려는데.
“거기, 잠시만요!”
저 멀리서 누군가 유현을 불렀다.
저벅.
유현은 빠르게 걸음을 옮기다, 이내 달음박질을 쳤다.
“어어! 저기요!”
“일단 잡아!”
“젠장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뒤로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파바밧!
유현은 황급히 방향을 전환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어 담벼락 하나를 뛰어넘고, 담장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벽에 기대진 자전거를 밟고 벽을 넘어가는 순간.
“어.”
“……!”
“역시 너였구나?”
매일같이 상상으로만 만들어 내던 그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야. 어떻게 이렇게 딱 마주치냐?”
“이주혁….”
“그때는 결판을 못 냈지? 네가 도망가서.”
스윽.
유현은 말없이 나이프를 꺼냈다.
그에 이주혁도 삼단봉을 펼쳤다.
촤락!
“얌전히 잡혀서 죗값 치러라.”
“오늘은 죽여주마.”
유현은 눈을 부라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 * *
그 시각, 유현과 함께 있던 경호대원도 아지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정보가 될 수 있는 서류는 전부 소각한 뒤였다.
좌우를 살펴보니, 아직 그들의 은신처가 이곳이라는 걸 들키진 않은 듯했다.
그렇게 그는 기척을 숨기며 조용히 골목으로 들어갔다.
캉! 캉!
저 멀리서 어렴풋이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레이븐이 경찰 쪽과 충돌한 모양이었다.
경호대원은 소리가 나는 곳의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다 보니 길목을 막고 있는 경찰차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이미 여긴 훑고 갔는지 경찰은 두 명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건물 뒤에 숨은 채로 경찰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많이 올 필요가 있나? 강남서에서도 왔다는데.”
“나야 모르지. 듣기론 범인이 위험한 놈이라더라고.”
“뭐 특전사 출신이라도 된다냐?”
경찰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웃는 순간, 경호대원이 순식간에 튀어 나갔다.
타닷!
“음?”
발소리에 고개를 들던 경찰의 턱에 주먹이 꽂혔다.
빡!
“뭐야!?”
경호대원은 허리춤을 더듬는 경찰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쿵!
“컥!”
그리고 그들이 일어나지 못하게 머리를 한 번씩 발로 걷어찼다.
빠르게 둘을 제압한 경호대원이 자리를 뜨려던 그때.
“어이. 거기 스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험악한 인상의 한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누군지 알아본 경호대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X발….’
이주혁의 SA시큐리티 소속이자, 1급으로 추정되는 위험도를 가지고 있는 인물.
“이리 와봐.”
남자의 정체는 라세흠이었다.
‘도망가긴 글렀군.’
경호대원은 보이지 않게 조용히 단검을 꺼내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물론 저 남자를 따돌리고 도망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여차하면 총까지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척.
라세흠이 경호대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이번 사건 범인이냐?”
“…….”
그가 대답하지 않자, 입맛을 쩝 다신 라세흠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다가왔다.
“뭐,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다 알아낼 방법이 있으니까.”
탓!
라세흠이 땅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경호대원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앙-!
라세흠의 발차기에, 경찰차의 문짝이 찌그러졌다.
경호대원은 그의 다리를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쇄액!
그에 다리를 빠르게 회수한 라세흠이 씩 웃었다.
“너, 군인이냐?”
경호대원은 이를 악물고 칼을 찔러넣었다.
그러나 쉽게 맞아줄 라세흠이 아니었다.
휙! 휙!
“러시아 킬러인가? 내가 아는 얼굴은 아닌데.”
“흐읍!”
파박!
“칼도 미제네. 어디서 많이 본 거란 말이지.”
“핫!”
경호대원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만 끌어도 되는 상대와는 달리, 그는 이 장소를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아, 이제 기억났다.”
얄밉게 공격을 피하기만 하던 라세흠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 경호대구나?”
이로운이 훈련받던 DS컴퍼니의 한국지부.
그곳을 쳤을 때 마주친 경호대원이 저것과 똑같은 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유사한 군용 무술을 사용했다.
“……!”
정곡을 찔린 경호대원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라세흠은 표정을 굳히고 칼날을 피해냈다.
여유로운 듯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긴 했지만, 상대의 기량이 예상보다 뛰어났다.
애초에 경호대는 선생을 지키기 위해 선발된 정예 중 최정예다.
쉽게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진짜로 나이가 들었나…. 예전만큼 안 되네.’
혀를 내두른 라세흠은 결국 허리춤에서 삼단봉을 펼쳐 들었다.
촤라락!
그리고 날아드는 단검을 향해 휘둘렀다.
카앙-!
“큽!”
찌르르-.
경호대원이 손에서 단검을 놓쳤다.
이내 반대 손으로 다시 칼을 잡은 그가 허리를 숙였다.
휘익!
삼단봉이 그의 뒤통수를 스쳐 지나갔다.
경호대원은 섬뜩한 감각을 느끼며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라세흠의 발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퍼억-!
“크읍!”
팔로 겨우 막긴 했지만, 자기 손으로 턱을 얻어맞은 경호대원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라세흠은 그가 흐트러진 틈을 타 삼단봉을 내리쳤다.
으직!
“끄아악…!”
쇄골이 그대로 부서진 경호대원이 비명을 질렀다.
라세흠은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른 뒤, 경호대원의 가슴팍을 뻥 걷어찼다.
그걸 맞고 날아간 그는, 경찰차의 창문을 깨며 처박혔다.
결국 경호대원은 상체만 차 안으로 들어간 채 축 늘어졌다.
그의 허리춤을 본 라세흠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총이 있으면 진작 꺼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