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64
#364화
미하일은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를 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레이븐이 돌아옴과 동시에 경호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둘이 손을 잡은 건 확실했고, 레이븐은 미하일을 향해 적대감을 표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그의 뒤통수를 친 게 미하일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것이었다.
“…….”
눈동자를 좌우로 굴린 미하일이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단단히 작정한 모양이군.”
그리고 이내 천천히 시선을 돌려 경호대장, 육진모를 향해 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미하일은 의문이었다.
단순히 글라자를 치기 위해서였다면 진작 쳤어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수뇌부들이 모여 있을 때 습격한 걸 보니,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글라자를 집어삼킬 계획이었던 건가.”
그 물음에 육진모는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고작 쓰레기 집단을 집어삼키는 게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
“…….”
자신의 손으로 글라자를 일구어 온 미하일은 울컥할 뻔했으나, 이내 머리를 차갑게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글라자를 접수한다 하더라도 수입이 생기지도 않는다.
이 조직은 결국 용병 중개소와 비슷한 역할이니 말이다.
“그럼 왜 이러는 건지 말해줄 수 있겠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다른 이였다.
“이건 대답해줄 수 있겠군.”
레이븐, 유현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미하일. 당신은 이곳에서 살아 나가지 못할 거다.”
“레이븐.”
“내 아버지의 위치를 알려준 게 당신이었다지.”
미하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누구한테 들었는진 몰라도,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아니라고?”
“그래. 자네가 저들 편에 붙은 이유는 알겠지만,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그때, 갑작스럽게 총성이 터져 나왔다.
타앙-!
“크흑…….”
다들 그쪽을 돌아보니, 한 여자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수뇌부 중 하나, 마리아가 비틀대다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에 바람을 분 니콜라이가 피식 웃었다.
“대화는 무슨. 잡설은 집어치우자고.”
그 광경을 본 미하일과 알렉산더가 경악했다.
“……!”
“니콜라이! 네놈이 배신자였나!”
니콜라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육진모를 향해 묻는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이것도 지긋지긋한데.”
“마침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까딱.
육진모가 고갯짓을 하자, 경호대원들이 미하일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자 그의 수하인 레프가 나서려 했지만.
타다당-!
“크악…!”
쏟아지는 총알에 몸을 허물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방아쇠를 당긴 경호대원이 차갑게 조소했다.
“병신.”
미하일은 바닥에서 꿈틀대는 오른팔 격의 수하를 보며 눈가를 떨었다.
몇 년간 그를 보필하던 수하가 중상을 입었으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미하일은 경호대원들에게 붙잡힌 채 비밀 통로로 향했다.
“젠장할…….”
알렉산더는 이를 악물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우직한 실력자라고 알려진 레프였지만, 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해버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저 두 사람처럼 죽고 말 것이다.
“이봐. 경호대장.”
“음?”
“원하는 게 뭐지?”
알렉산더가 다급하게 말했다.
“레이븐의 복수든 뭐든, 날 굳이 죽일 이유는 없잖아. 안 그런가?”
그는 자신에게도 겨눠지는 총구를 의식하며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이전에 자네 요청도 들어줬었지. 내가 괜히 그랬겠나?”
“…….”
“러시아의 뒷세계는 잘 알고 있다. 자네의 경호대와 내…….”
타앙!
니콜라이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쿵.
그는 앞으로 넘어간 알렉산더를 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마피아 놈이 짖어대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현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미친놈이군.”
가볍고 건조한 남자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조직원들에게 총알을 박아넣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겨누고 있던 총을 내린 유현은 미하일을 데려간 비밀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회의장에선 적막만이 흘렀다.
마리아와 알렉산더는 총을 맞았고, 미하일은 어디론가 끌려갔다.
니콜라이는 바깥에서 들려오던 총성이 점차 잦아드는 걸 느끼고 물었다.
“후. 그 악명 높던 글라자가 이렇게 쉽게 몰락하는군.”
“조직원 간의 유대감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수뇌부들을 따르던 킬러들은 절반 이상이 뿔뿔이 흩어졌다.
나머지 절반은 경호대와 니콜라이의 수하들과 맞서다 죽었다.
치직.
무전기로 통신하던 육진모가 말했다.
“상황이 거의 종료됐다.”
“좋아. 그럼 가자고.”
니콜라이는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에게 육진모가 나지막이 물었다.
“후환을 남기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만.”
그 말에 니콜라이가 뒤를 힐끗 돌아봤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니콜라이가 비밀 통로로 들어섰다.
“…돌아간다.”
“예.”
육진모의 손짓에 경호대원들이 몸을 돌렸다.
그렇게, 글라자라는 킬러 조직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 * *
교외의 한 빈집.
털썩.
“윽.”
미하일은 강제로 의자에 앉혀졌다.
“노인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레이븐.”
“입 다물어라.”
육진모는 유현과 미하일이 독대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
아니, 정확히 독대는 아니었다.
“미하일. 오랜만이지?”
“……배신자 마녀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미하일이 팔짱을 끼고 있는 고상미를 향해 말했다.
그에 고상미는 코웃음을 쳤다.
“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러면 살려주는 건가?”
“글쎄다.”
고상미가 유현 쪽을 턱짓했다.
“그건 얘 결정에 달린 거고.”
잠자코 생각을 정리하던 유현이 입을 열었다.
“리신페이에게 들었다. 내 아버지의 집 위치를 알려준 게 당신이라더군.”
“명백한 오해일세. 내가 자네 아버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건 사실이었지만, 정보를 흘린 건 내가 아니네.”
미하일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그가 한 말을 믿는 건가? 자네 아버지를 죽인 자의 말을?”
“…….”
유현이 침묵하자, 고상미가 이빨을 드러내며 추궁했다.
“내가 보리스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그 인간의 책상에 거기 관련된 서류가 있었어. 그땐 생각 못 했는데, 다시 돌이켜 보니까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
“뭐가 말인가.”
“굳이 그 서류를 책상에 둘 이유가 있었을까? 나를 사무실로 불러놓고?”
미하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나도 알 수 없지.”
“나는 그걸 누군가가 일부러 놔뒀다고 생각하거든? 나더러 보라고 말이야.”
“그래. 그걸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인상을 구긴 고상미를 향해 미하일이 담담하게 물었다.
“확실히 알고 말하는 건가? 증거는 있고?”
고상미의 말문이 막혔다.
그의 반론대로 증거는 없었다.
보리스의 반응을 토대로 한 추측일 뿐이었다.
그때, 유현은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들었다.
“미하일.”
“뭔가.”
“그날, 당신은 내가 오자마자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유현이 차가운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그 위치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위험인물인 마녀의 거주지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럼 나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겠군.”
“저 여자 이외에도 두 명이 더 있다는 것 정도는.”
삐걱.
유현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럼, 나는 왜 살려뒀나.”
“…….”
“왜 나를 글라자의 킬러로 만들었지?”
“레이븐.”
“왜. 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거냐.”
콱!
멱살을 붙잡힌 미하일이 작게 신음했다.
“윽.”
“대답해라. 정말 이 모든 게 우연인가?”
“큭. 흐흐…….”
미하일이 실소를 흘렸다.
“이미 넌 확신하고 있군. 레이븐.”
“대답해!”
“아니라고 한다면. 믿을 텐가?”
철컥.
미하일의 턱 아래에 총을 겨눈 유현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뇌까렸다.
“내 인생을 망가뜨리고, 그동안 날 이용했던 거냐.”
“레이븐…. 유의 아들. 자기 아버지를 죽게 만든 게 누군지도 모르고 살던 불쌍한 어린아이.”
“닥쳐.”
유현이 손으로 미하일의 목을 붙잡았다.
미하일은 그의 눈동자에 들어찬 살의를 느끼곤 이죽거렸다.
“그래. 내가 그랬다. 그 건방진 놈의 아들을 킬러로 만들어 이용하는 게 어찌나 즐겁던지.”
“닥치라고-!”
“이제 와서 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이 있나? 레이븐.”
반쯤 실성한 듯한 미하일이 유현을 노려보며 조롱했다.
“네 부모님은 죽었고, 네 인생은 피와 살인으로 얼룩졌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건 변하지 않아.”
“……!”
“넌 네가 죽인 사람들의 핏물 속에 잠겨 끝을 맞이할 거다. 레이븐.”
고상미는 요동치는 유현의 감정을 느끼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현아. 더 들을 필요 없어.”
“…….”
유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꾸드득.
눈에 핏발이 섬에도, 미하일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어차피 살려줄 생각은 없는 마당.
최대한 유현의 심리를 긁어버릴 생각이었다.
총을 쥐고 있던 손을 덜덜 떨던 유현이 팔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대로 편하게 끝낼 순 없지.”
스릉.
유현은 허리춤에서 꺼낸 칼을 그대로 미하일의 허벅지에 박아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갑자기 모든 게 허탈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미하일의 말대로였다.
이미 죄로 얼룩진 삶. 이런 분풀이를 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었다.
“미하일.”
“…왜. 갑자기 마음이 물러지기라도 했나.”
“당신도 계획이 있었겠지.”
“…….”
“글라자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를 더 해보려고 했을 거다.”
유현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하지만 미하일, 당신은 여기서 끝이다. 뭘 하려고 했든 말이야.”
그 말에 미하일의 표정이 균열이 일었다.
정곡이었다.
삼합회와 접촉해 곧 무너질 글라자를 대비한 계획을 세워놨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경호대와 니콜라이의 반란 때문에 망가져 버렸다.
반쯤 포기한 탓에 태연하게 굴고 있긴 하지만, 실은 그도 곧 다가올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철컥.
몸을 일으킨 유현이 미하일에게 총을 겨눴다.
미하일은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마른 입술을 뗐다.
“그래. 네가….”
“항상 한 발 앞을 생각하고 살던 당신이 이렇게 끝날 거라곤 생각해본 적 없겠지.”
“…….”
“그럼 지금부터 고민해 봐. 지옥에 떨어지고 나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할 테니.”
“레이븐.”
어느새 등이 축축해진 미하일이 고개를 들었다.
“궁금하지 않나? 리신페이의 지시를 받고 네 아버지를 죽인 자들이 누군지.”
“글쎄.”
“삼합회에서 지금 무슨 일이……!”
“삼합회?”
유현이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내 알 바인가?”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
“…….”
몸을 부르르 떨던 미하일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어째서인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선을 올리자, 자신을 겨누고 있던 총구가 옆으로 빗겨나가 있는 게 보였다.
“무슨…….”
“미하일. 당신도 죽음 앞에선 평범한 인간이군.”
그제야 유현은 자신을 이 길로 이끈 남자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날…!”
탕!
미하일이 앉아있던 의자가 들썩였다.
이내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무감정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가자.”
그에 고상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