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66
#366화
사무실을 나선 나는 사발을 찾아갔다.
녀석은 1층 로비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발.”
“아이고, 예. 대표님.”
자리에서 일어난 사발이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를 숙였다.
“백수가 된 저를 어쩐 일로 찾으셨는지요.”
“까분다.”
SA시큐리티의 영업이사였던 사발은, 사실상의 폐업으로 인해 자리를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인베스트먼트에 꽂아줬잖아.”
“대표님 속셈을 모를 줄 아십니까. 우재성 그 양반 보조하라고 꽂은 거잖아요. 서류 작업하고.”
사발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전 그런 일이랑 안 맞습니다. 차라리 현장을 뛰면 뛰었지, 재미도 없는 책상놀음은 싫단 말이죠.”
“참나.”
스윽.
“옛날 생각 나게 해줘?”
꽉 쥔 주먹을 들어 올리자, 사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하는 게 옳게 된 사회인의 자세겠지요. 하하하…….”
“됐고, 청도에서 만났던 네 친구 있잖아.”
“아, 남소영이요?”
“그래. 그 사람 연락처 좀 줘봐.”
그 말에 사발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취향이 그런 쪽일 줄은 몰랐는데요. 연상에, 싹퉁머리 없는…….”
“닥치고 내놔.”
“예에.”
나는 사발에게서 전화번호를 받았다.
“근데, 걔한테는 무슨 일로 연락하시려는 겁니까?”
의아한 듯한 녀석의 물음에 혀를 차며 답했다.
“아무래도, 현지 상황을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서.”
.
.
.
“아이고.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다?”
부장님이 의자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어쩐 일로 부른 거냐? 멤버들이 심상치 않은데.”
부장님 말대로였다.
내가 회의실로 불러 모은 이들은 전부 전투원이었다.
부장님을 필두로 마종석, 춘식이.
전부 확실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뚱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던 마종석이 날 향해 말했다.
“그래. 용건부터 말해줬으면 좋겠군.”
“왜. 바쁘냐? 너 백수잖아.”
“하. 정당한 보수를 받고 고용된 용병으로서 의뢰 내용을 묻는 거다.”
그에 피식 웃은 부장님이 고개를 돌렸다.
“마 인턴. 오늘 좀 까칠하네?”
“그 웃기는 인턴 놀이도 적당히 하지.”
“오호.”
부장님의 눈빛에 흥미가 담겼다.
가만히 둬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건 명약관화였다.
“자자. 그만하시고,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이겁니다.”
스윽.
내가 종이 한 장을 내밀자, 시선도 같이 몰렸다.
시선의 끝에는 냉정해 보이는 인상의 노인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누구야? 되게 성격 나쁠 것 같이 생겼는데.”
“삼합회의 수장입니다.”
부장님이 눈썹을 까딱였다.
“이 영감이?”
“네.”
삼합회의 우두머리이자 정점.
일명 산주山主, 또는 용두龍頭라고 불리는 사람이 바로 이 노인이었다.
사진은 뉴스 기사를 뒤지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거물은 왜. 잡아 족치려고?”
“아뇨. 그건 아니고…….”
“죽었나 보군.”
마종석이 끼어들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들은 게 병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이었지. 안 그런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정보통이 있으니까.”
이 새끼. 그런 게 있으면서 얘길 안 했어?
“뭐 어쨌든, 이 양반이 최근에 죽었답니다. 병으로.”
“흠.”
“제가 굳이 이걸 왜 얘기하느냐.”
탁.
“삼합회의 다음 수장 문제 때문입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나는 딴지를 거는 마종석을 향해 턱짓했다.
“마종석. 너는 수장이 사라진 삼합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을 거다.”
어깨를 으쓱인 마종석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후계자 선정에 있어 분쟁이 있겠지.”
“그래. 우린 그 틈을 노릴 예정이고.”
내 말에 마종석은 인상을 잔뜩 구겼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정확히 들었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삼합회를 굳이 왜 건드려?”
“우리가 당장 그놈들을 칠 건 아니다.”
“그럼 틈은 왜 노린다는 거지?”
나는 그런 마종석에게 설명했다.
“삼합회는 선생의 다음 타깃이다.거기에 관한 정보가 필요해.”
지금껏 가만히 있던 춘식이가 입을 열었다.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뭘 해야 한다는 소립니까?”
“가서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선생이 나한테 모든 걸 알려줬을 리가 없으니까.
“출장이란 말이지? 근데 정보를 캐내는 거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 말입니다.”
우리 영향력이 닿지 않는 타국인 데다가, 범죄 조직인 삼합회에 관해 조사하는 일이다.
담도 커야 하고, 자기 몸은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실력도 필요했다.
“그럼, 우리 셋이 가는 거냐?”
“저는 갈지 말지 고민 중입니다.”
“왜? 가면 되지.”
나도 마음 같아선 같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싶긴 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황을 조율할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
그리 설명하자 부장님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일단, 제가 청도 쪽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 뒀습니다. 그쪽으로 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줄 겁니다.”
“그래. 알았다. 언제 출발하면 돼?”
“잠깐.”
마종석이 손을 슬쩍 들었다.
“나도 꼭 가야 하는 건가? 전투원이라면 그 여자도 있잖나.”
“고상미는 지금 한국에 없다.”
“뭐?”
“러시아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더라고.”
그에 녀석은 좌우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나만 몰랐나 보군.”
“정 가기 싫다면 빠져라. 나도 다른 사람을 구해볼 테니까.”
“아니다. 가지.”
마종석이 묘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나도 거기서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
“좋네. 다들 불만 없으면 바로 출발하는 걸로 합시다.”
“바로?”
마종석이 흠칫 놀랐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부장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쯤 되면 알 만하지 않냐? 우리 방식.”
* * *
중국, 베이징.
삼합회의 우두머리, 산주가 지내던 건물의 상층.
“이야….”
그곳에 있는 방 안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
상석을 제외하고 빼곡히 자리에 앉은 이들이 서로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지부장들이 다 같이 모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려.”
꽁지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청년이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 다 온 것 같진 않소?”
“목소리 낮추지.”
그의 건너편에 있던 차가운 인상의 중년이 날카로운 투로 말했다.
“분위기 파악 안 되나?”
그 말에 꽁지머리 청년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내가 폐관 수련을 하느라 바깥 정세엔 어두워서 말이오.”
“지랄맞은 무협지 놀이도 적당히 해라.”
“…지금 놀이라 했소.”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던 그때.
“정숙.”
상석에 가장 가까이 자리하고 있던 한 노인이 나지막이 목소리를 냈다.
“우리가 어떤 연유로 모였는지 잊은 겐가.”
“…….”
“…….”
홍콩지부의 지부장, 장쉬안이 무표정하게 두 사람 쪽을 향해 경고했다.
“자중하게.”
“…….”
“실례했소. 장형.”
후.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쉰 장쉬안이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말했다.
“류비엔. 담배는 집어넣지.”
“음?”
담배를 입에 물던 사천지부장, 류비엔이 눈썹을 까딱였다.
그는 흉터로 가득한 얼굴로 짐짓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여기가 금연구역이었던가? 재떨이도 놓여있소만.”
“…….”
“뭐, 정 불편하시다니 피우진 않겠소.”
류비엔은 손에 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조심스럽게 재떨이에 세우기 시작했다.
“오오. 됐군. 어떻소. 어르신을 향한 내 분향이.”
대충 묶어 넘긴 머리를 흔들며 마치 마술사 같은 제스처를 취하는 류비엔.
장쉬안은 그를 보며 미간을 좁혔지만, 조금 전의 이들처럼 대놓고 핀잔을 줄 순 없었다.
진중하지 못한 겉모습과는 달리, 류비엔은 그와 같이 차기 산주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 속 침묵이 계속되려던 때.
덜컹.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그러자 장내에 있던 모든 지부장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서류 여러 장을 들고 들어온 중년은 좌중들을 둘러보며 인사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천주위 어르신의 비서, 차이진리입니다.”
쓰고 있던 안경을 추켜올린 그가 빈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지부장 두 분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허베이지부의 리신페이, 칭다오지부의 루성.”
류비엔은 슬쩍 손을 들었다.
“예. 류비엔. 말씀하시죠.”
“루성 그놈 소식은 들었고, 리신페이는 왜 불참인 건가?”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드륵-!
자리를 박치고 일어난 류비엔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대체 어떤 놈 짓이지?”
그 물음에 산주의 비서가 난감한 투로 대답했다.
“그게, 흉수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뭐라고?”
“본단의 조사팀이 현장을 확인하긴 했으나…… 흉수의 외형에 관한 몇 가지 단서만 얻었을 뿐, 이렇다 할 정보는 찾지 못했습니다.”
비서는 혀를 차는 류비엔을 보며 설명을 더했다.
“그의 사무실 책상에서 러시아 킬러 집단에 관한 서류가 발견되긴 했습니다만, 정확히 이번 일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진…….”
적당히 얼버무린 비서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찌 됐든, 제가 여러분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지부장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어렸다.
“어르신의 장례 때문입니다.”
“아…….”
비서의 입에서 나온 건 그들이 원하는 내용은 아니었으나, 지금까지 삼합회를 이끌어 온 사내에 대한 존중에 관한 문제였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어르신의 영정을 들고 행렬 가장 앞에 설 분을 선정해야 합니다, 만…….”
스윽.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린 그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건, 다음 산주 자리에 앉을 사람의 몫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지부장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 이곳에서 차기 산주를 결정할 방법에 관해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팔랑-.
서류를 한 장 넘긴 비서가 말을 이었다.
“우선, 원로님들이 찬반으로 결정할 겁니다. 이 사람이 삼합회를 이끌어 나갈 자질이 있는지.”
삼합회에는, 산주와 지부장들을 제외한 원로들이 존재한다.
직접 무언가 행동하는 이들은 아니지만, 회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데 의견을 보태는 역할이었다.
보통 지부장이나 본단에서 조직 생활을 하다 나이가 든 이들이 원로 역할을 맡는다.
척.
비서가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말했다.
“일정 이상의 사업적 수완과 세력이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그 말에 약소한 편의 지부장 몇은 미련 없이 산주 자리를 포기했다.
어차피 일말의 희망이었을 뿐, 최종 후보까지 올라갈 자들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홍콩지부장이자, 명운제약의 사장으로 뛰어난 제약 기술을 이용해 높은 수완을 보여준 장쉬안이 그 첫 번째.
높은 인망과 리더십으로 가장 많은 인원수를 자랑하는 사천지부장, 류비엔이 그 두 번째.
카지노를 위시한 고수익의 사업체로, 막대한 자금력과 인맥을 가진 리신페이가 세 번째였다.
‘지금부터는 수 싸움이겠군.’
눈을 감고 있던 장쉬안이 생각했다.
차기 산주로 유력하게 꼽히는 이들은 각자 장단점이 있었다.
그 말인즉슨, 이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원로와 지부장들을 포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지해 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테니 말이다.
장쉬안은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려봤다.
스윽.
눈을 뜬 장쉬안이 옅게 웃으며 비서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나?”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람은 바로 그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