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71
#371화
중국의 수도, 베이징.
라세흠 일행은 그곳의 공항에서 고상미와 합류했다.
로비로 나온 라세흠이 목을 돌리며 투덜댔다.
“요즘 들어 평생 탈 비행기를 다 타는 기분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라세흠은 가방을 둘러메는 춘식과 마종석에게 조용히 물었다.
“근데 너희들은 어째 검문에서 잘 넘어갔다? 용병에 전직 킬런데.”
“내가 그걸로 먹고살면서 비행기를 한두 번 탔겠나. 당연히 여권이 따로 있지.”
“저도 마찬가집니다.”
춘식이 씩 웃으며 자기 여권을 보여줬다.
“체이스 킴? 이건 또 누구야?”
여권에는 낯선 이름과 함께, 순박하게 미소 짓는 남자의 사진이 있었다.
“너 이렇게 생겼었냐?”
“웃으니까 인상이 만만해 보이죠?”
“어. 이런 말 하긴 그런데, 좀 호구 같이 생겼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일할 땐 이거 안 벗어요.”
춘식이 자신의 선글라스를 가리켰다.
“왜 맨날 그거 쓰고 다니나 했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이 흐르고, 잠자코 있던 마종석이 전광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곧 도착이다.”
“음? 아.”
라세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곧 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고 몇 분 뒤, 로비로 인파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틈을 살피니,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한 남자와 같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서 데려올게.”
라세흠은 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기!”
손을 들며 말하자, 고상미가 라세흠을 보고 마주 손을 흔들었다.
“중국에서 보니 또 반갑네. 옆에는…….”
유현을 확인한 라세흠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한국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주먹을 쥐었다 펴던 라세흠은 고상미가 눈치를 살피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잘 끝났어?”
“응. 목적은 이뤘지.”
“고생했다. 일단 가자.”
두 사람을 향해 손짓하던 라세흠은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하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경호대는?”
“사복 입고 같이 들어왔어.”
스윽.
주변을 슥 훑으니, 건장한 남자 몇 명이 인파에 섞여드는 게 보였다.
“따로 들은 말은 없고?”
“근처에 숙소 잡고 대기하래.”
그 말에 라세흠이 코웃음을 쳤다.
“참나. 누가 들으면 우리 상관인 줄 알겠구만.”
일행이 있는 곳으로 두 사람을 데려오자, 춘식이 반가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미 누님!”
“어. 춘식이.”
“별일 없으셨죠?”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경호대랑 같이 다 죽인 거예요?”
고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없던 놈들은 모르겠는데, 윗대가리들은 전부 골로 갔다.”
“이거, 파티라도 해야겠네요.”
춘식도 그녀가 글라자에 원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축하를 건넸다.
그때, 마종석이 다가와 물었다.
“경호대에게 들은 건 없나?”
“숙소 잡고 대기하란다.”
“언제까지 대기해야 하지? 무작정 기다릴 순 없잖나.”
라세흠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삼합회 앞마당이니까 섣불리 움직이는 건 좋지 않아. 놈들이 말한 대로 오늘까지는 기다려 보자고.”
“내일까지 대기하라고 하면?”
“주혁이랑 연락해서 따로 움직여야지. 경호대가 신뢰할 수 있는 놈들도 아니니까.”
이미 그들과 경호대는 충돌한 전적이 꽤 있었다.
그러니 앙심을 품고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일단 숙소부터 잡자. 마종석. 베이징은 잘 아냐?”
“아니. 이쪽 지방은 와본 적 없다.”
“그럼 머물 만한 곳을 찾아보자고.”
라세흠이 일행을 데리고 이동하려는데, 마종석이 한쪽을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이놈도 같이 움직이는 건가?”
그의 삿대질을 받은 유현이 살며시 미간을 좁혔다.
“그럼 뭐, 여기 버리고 가리?”
“저놈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얼마 전까지 적대했잖아.”
했던 짓이 있으니 잠자코 있던 유현도 눈을 가늘게 뜨며 마종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에 라세흠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야. 그렇게 따지면 너도 마찬가지지. 나랑 죽일 듯이 싸웠던 거 기억 안 나냐?”
“그건 내 의뢰였고, 지금은…!”
뭐라 하려던 마종석이 손을 내저었다.
“됐다. 알아서 해.”
“삐졌냐?”
“더 설명할 이유가 없는 거다.”
뒤돌아 걸음을 옮기는 마종석의 뒷모습을 보고 고상미가 조용히 속삭였다.
“삐졌네.”
* * *
쓰촨四川성, 광안시.
한 관광 가이드 업체의 건물 창문으로 어렴풋이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의 사장, 왕줘페이는 책상에 발을 올린 채로 돈을 셌다.
팔랑. 팔랑.
액수를 확인한 그가 혀를 찼다.
“쯧. 더 줄었구만.”
겉으로는 관광업체의 사장이지만, 실은 이 근방의 상인들에게 착취하는 보호비로 버는 돈이 더 많았다.
“제기랄. 더 쪼아야 하나?”
왕줘페이가 악질적인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
-……아악!
-…죽여!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왕줘페이가 소리쳤다.
“거기 무슨 일이야!”
벌컥!
그의 수하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 사장님…!”
“뭐야. 뭔데?”
“두정방 놈들이 습격을……!”
쿵!
뭐라 말하려던 수하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이내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의 등에 꽂힌 칼자루를 본 왕줘페이는 욕지거리를 뱉은 뒤, 책상 서랍을 열었다.
드르륵-!
그는 서랍 안에 고이 보관해 둔 권총 한 자루를 꺼내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문 쪽에 가까이 붙어 바깥을 내다보니, 비명과 둔탁한 소리가 복도 너머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에 왕줘페이는 살금살금 어디론가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뒷문이었다.
평소에 자주 다니지도 않은 터라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X발. 밤중에 이게 대체 무슨……!’
수하가 죽기 전 언급한 두정방.
옆 동네에서 활동하던 왈패들로, 구역이 맞붙어 있는 탓에 몇 번 충돌이 일어났었다.
머릿수 자체는 비등비등했기에 굳이 건드릴 생각은 없었지만, 상대 쪽에서 먼저 이런 기습을 한 것이다.
‘이 개새끼들이, 뒤통수를 쳐?’
왕줘페이는 이를 갈며 뒷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 여기! 왕가다!”
“썅!”
소스라치게 놀란 왕줘페이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그는 필사적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참 앉아있던 그의 다리가 꼬여버렸다.
“억!”
쿠당탕!
왕줘페이가 땅바닥을 데구르르 구르자, 그의 뒤를 쫓던 남자가 커다란 정글도를 들고 내리치려 했다.
“죽어라!”
타앙-!
하지만 총구가 불을 뿜는 것이 더 빨랐다.
털썩.
왕줘페이는 상대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걸 보며 몸을 일으켰다.
“X발, X발!”
총소리를 들었는지, 연장을 든 남자들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자 왕줘페이는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크아악!”
“아악!”
남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에서 접근하던 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대화를 나눴다.
“썅! 총이 있다는 소리는 없었잖아!”
“그냥 덮쳐! 어차피 총알은 떨어지게 돼 있어!”
탕-! 탕-!
총을 맞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탄창에 든 총알보다 그를 습격한 이들의 수가 더 많았다.
찰칵!
“이런 개 같은……!”
결국 왕줘페이에게 접근한 남자가 도끼로 그를 내리찍었다.
퍼억!
“끄악!”
그가 어깨를 붙잡고 휘청이자, 그 틈을 노린 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아악-!”
단말마와 함께 난도질을 당한 왕줘페이가 머리를 툭 떨궜다.
“후우….”
얼굴에 피가 잔뜩 튄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숨을 고르고 있자니, 머리를 짧게 깎은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그리로 다가갔다.
왕줘페이를 습격한, 두정방의 두목이었다.
“형님.”
“왕가 놈은?”
“죽였습니다.”
슬쩍 시신을 확인한 두목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몇 명 죽었냐?”
“한… 일고여덟 명은 당한 것 같습니다.”
“쯧. 애들 수습해라. 돌아가자.”
수하가 뒤돌아서는 두목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형님. 근데 아무리 돈을 받았다지만,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겁니까? 왕가 놈 뒷배가 누군지 아시잖아요.”
왕줘페이가 삼합회의 거물, 류비엔의 휘하에 있다는 건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두정방이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수하의 걱정 섞인 말에, 두목은 피식 웃었다.
조직원 여럿을 잃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예?”
두목은 자신에게 이번 일을 의뢰한 사람을 떠올리며 말했다.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 * *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가정보원.
국정원의 주요 업무는 국내외의 간첩을 색출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첩을 제외하고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만한 조직의 감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의 뒷세계를 꽉 잡고 있던 강남파를 비롯해 중국의 삼합회와 일본의 야쿠자.
심지어 러시아의 킬러 조직에까지 요원을 투입할 정도였다.
“…….”
국정원장, 차영규는 러시아에 보냈던 요원에게서 한 음성 메시지를 받았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다시 한번 메시지를 재생했다.
꾹.
[김덕배입니다. 글라자가 와해됐습니다. 수뇌부들이 모여있을 때 무장 인원이 습격했습니다. 현장에서 스무 명 가까이 사망했고… 수뇌부도 전원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분간 연락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메시지의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차영규는 김덕배와 관련된 서류를 꺼내 살폈다.
국정원의 요원인 그는 러시아의 킬러 조직, 글라자의 정보원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직책은 아니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그 탓에 사실상 러시아의 동향을 살피며 무기한으로 대기하는 게 역할의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 한국에서 러시아 킬러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전부 체포되긴 했지만, 그들이 한국으로 넘어온 이유가 있을 터.
‘그걸 알아내기 위해 지시를 내리려고 했지만…….’
돌아온 음성 메시지에 차영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그쪽과 관련되어 있던 요원과 연락이 두절된 이상 뭔가를 알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팔랑.
차영규는 지금까지 김덕배가 보내왔던 보고서들을 살폈다.
다른 일이 바빠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레이븐’이라는 킬러가 한국으로 향했고,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에게 수배가 떨어졌다는 정보까지.
문서상으로 봐서 그런지 곧바로 이해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 레이븐이라는 자도 최근 일어난 사건과 관련이 없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김우천이 살해당한 것도…….’
상념을 이어 나가던 차영규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수화기를 들었다.
-네. 원장님.
“그놈 아직 있지? 올려보내.”
-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끔한 얼굴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였다.
“부르셨습니까.”
“어. 우리 에이스, 홍길동이.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홍기동입니다.”
“홍길동이. 네가 장기 임무 갔다가 온 지 얼마나 됐지?”
잠시 고민하던 홍기동이 답했다.
“한 3개월 됐습니다.”
“그래? 쉴 만큼 쉬었겠네. 이번에 자네가 가줘야 할 곳이 있어.”
“어딥니까?”
“중국. 그쪽 정보원이 말하길, 최근 삼합회 놈들 동향이 심상치가 않다더라고.”
차영규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기동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좀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