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중국에 도착하고 다음 날.
라세흠은 공항 근처의 한 모텔 방에서 일어났다.
호텔로 숙소를 잡을까 했지만, 여기 얼마나 더 체류할지 모르니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온 것이다.
뚜둑.
자느라 굳은 몸을 푼 라세흠이 중얼거렸다.
“진짜 나이가 들었나, 몸이 영 예전 같지가 않네….”
그 특급이랑 붙을 땐 아드레날린 때문에 몰랐는데, 다음 날이 되니까 근육통이 몰려왔다.
라세흠은 소파에서 자고 있던 마종석에게 베개를 던졌다.
퍽.
베개를 맞은 마종석이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라세흠은 겉옷을 챙겨입고 복도로 나갔다.
달칵.
그리고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바깥으로 나온 건 춘식이었다.
라세흠은 열린 문 안쪽을 보며 물었다.
“별일 없었지?”
춘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냥 조용히 자던데요?”
“그래?”
킬러 출신이라 혹시 밤에 뭔 짓을 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같은 킬러 출신이라 그런가…….”
“예?”
“아니다. 그놈은 깼어?”
“새벽부터 일어나서 혼자 주먹질하던데요.”
“휘적휘적?”
춘식이 주먹을 뻗으며 설명했다.
“네. 뭐 상상 속에 누군가라도 상대하는 건지, 발차기를 날리고 피하고 막 열심히 하더라고요.”
“하이고. 일단 챙길 거 있으면 미리 챙겨놓으라고 해.”
라세흠은 그 옆방으로 이동해 문을 두들겼다.
똑똑. 벌컥!
그러니 기다렸다는 듯 겉옷까지 입은 고상미가 나왔다.
“애들 다 깨웠어?”
“어. 연락온 거 있냐?”
고상미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간결하게 시간과 장소, 지도가 첨부된 문자가 와 있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신세구만.”
“어쩌겠어. 중국은 걔네가 더 잘 알 텐데.”
“그것도 그렇지. 일단 가자.”
라세흠과 고상미 일행은 같이 모여 문자로 받은 장소로 이동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을 한 여자가 이끌고 걸어가자, 주변 행인들의 시선이 쏠렸다.
“여긴 것 같은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 술집이었다.
아침인지라 간판에도 불이 꺼져있었지만, 라세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끼익-.
안으로 들어선 라세흠은 좌우를 살피며 경계했다.
경호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술집 내부에는 어두운 조명 몇 개만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나?”
라세흠은 일행들에게 경계하라고 수신호를 보낸 뒤, 천천히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우리 왔다고. 안에서 뭐 하냐?”
그때, 카운터 뒤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이마부터 턱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흉터를 가진, 험악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그를 본 라세흠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미묘해졌다.
일반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체격에, 눈빛에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경호대냐?”
그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턱짓했다.
“그래. 따라와라.”
그를 따라가자, 남자는 창고로 보이는 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하나씩 챙겨라.”
남자가 가리키는 나무 상자 안에는, M1911 권총과 탄창이 들어있었다.
라세흠을 비롯한 일행은 자연스럽게 장비를 챙겼다.
“너희들도 일을 거든다고 들었다.”
남자의 말에 라세흠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래. 삼합회를 친다길래 꼈다. 계획은 있나?”
척.
팔짱을 낀 남자가 설명했다.
“지금 북경에는 삼합회의 거의 모든 지부장들이 모여있다. 얼마 전 삼합회의 보스가 죽어서 후계를 정하기 위해서지.”
“그건 들었다.”
“그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우린 지부장 한 놈 제거할 계획이다.”
“왜지?”
슥.
라세흠은 남자가 꺼낸 사진을 보며 물었다.
“그냥 제거하면 끝인가?”
“간단하진 않을 거다. 삼합회는 다른 조직들과는 머릿수의 단위가 다르니까.”
남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곤 고개를 들었다.
“곧 다른 대원들이 온다. 그러면 인원을 나눠 놈이 묵는 호텔의 객실을 습격한다.”
“호텔의 호수는 원래 비밀 아닌가?”
“방법이 있다.”
“그것참 무섭네.”
평범한 중년처럼 보이는 남자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라세흠이 의문을 던졌다.
“근데, 굳이 타겟을 이 사람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
그의 물음에 남자가 간단하게 말했다.
“중립 파벌에 속해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어제 다음 보스 후보를 만나 대화를 나눴지.”
라세흠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보란 놈이 저지른 일로 꾸미겠다, 이 말이냐?”
“정답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정황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후보가 지부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리를 가졌지만, 협상이 결렬된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후보가 지부장의 암살을 사주.
뻔한 레퍼토리였으나, 그건 그만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남자는 일행을 향해 물었다.
“나이프는 저기 있다. 그리고, 겉옷이 있는 사람은 가슴띠를 챙겨도 된다.”
라세흠은 외투를 벗고 칼집과 총집이 달린 벨트를 가슴팍에 둘러맸다.
옷을 다시 입고 지퍼를 쭉 올리자, 무기가 적당히 숨겨졌다.
그에 라세흠은 장비를 점검하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자.”
* * *
후난湖南시 삼합회의 지부장, 두샤오는 호텔 객실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할 수하들을 많이 데려오지 못했다.
거리가 있기에 한꺼번에 많이 데려오기 어려운 것도 있고, 본단으로 오면서 수하를 너무 많이 끌고 오는 건 그림이 좋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심기가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류비엔…….”
쓰촨四川성의 삼합회를 관리하는 지부장인 그가 두샤오와 독대를 요청한 것이었다.
목적은 뻔했다.
이쪽 편에 서라. 그러면 이러한 것들을 제공해 주겠다.
그래서 어제 그와 만났다.
류비엔의 입에선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두샤오는 그 제안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류비엔에게 붙었다가, 만약 장쉬안이 차기 산주 자리에 오른다면?
대놓고 차별하진 않아도, 정적의 편이었던 두샤오에게 고운 눈길을 보낼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중립으로 계속 남아있을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다면 모를까, 두샤오는 리신페이의 파벌에 속해있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놈이 갑자기 그리되지만 않았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이에 의해 의식불명에 빠진 리신페이.
두샤오가 그를 지지했던 이유는 하나. 바로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금력金力이었다.
의리를 아무리 따진다 해도, 삼합회라는 조직을 유지하는 건 돈이다.
괜히 본단이 지부의 돈을 쥐어짜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카지노를 통해 현금을 쌓고 있는 리신페이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녀석은 재기불능이다. 설령 뒤늦게 깨어난다 해도 의미 없어.’
이미 늙은 원로들이 카지노 경영에 한 발 걸치기 위해 혈안이 된 채로 나도는 중이었다.
그리고 리신페이의 파벌에 있던 지부도 속속들이 고개를 돌렸을 테니, 그가 의식을 되찾는다 한들 끈 떨어진 연 신세였다.
두샤오는 담뱃불을 붙이고 고민에 빠졌다.
‘확실한 명분과 노련함이냐, 남을 이끌 수 있는 젊은이냐…….’
깊은 갈등에 머리가 지끈거리려는 찰나, 누군가 객실의 문을 두들겼다.
똑똑똑.
-룸서비스입니다.
두샤오의 표정이 굳었다.
식사 따위의 이유로 직원이 찾아오면 수하들 선에서 해결하도록 지시해 뒀다.
그런 와중에 룸서비스라.
스륵.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두샤오가 협탁 위에 놓여있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저 가짜 직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객실 앞을 지키던 수하들을 쓰러뜨렸다는 건 확실했다.
-고객님? 룸서비스입니다.
똑똑똑.
천천히 출입구 쪽으로 다가간 두샤오는 문 가운데를 조준했다.
노크를 하고 있으니, 이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문을 관통해 상대에게 총알이 박힐 것이다.
두샤오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해머를 젖혔다.
찰칵.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면 쏜다.
두샤오가 그리 생각하던 순간, 누군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와 함께,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 *
10분 전, 여행객으로 위장해 호텔로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라세흠 일행 다섯과 경호대원 다섯.
총 열 명이 두셋씩 인원을 나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몇은 가명을 사용해 호텔에 체크인하고, 몇은 누굴 기다리는 것처럼 로비에 앉았다.
“상미야.”
“응?”
“우린 로비에 있는 거다.”
그 말에 고상미가 미간을 좁혔다.
“알았다니까.”
건장한 남자들 사이, 고상미가 끼어있으면 특정할 만한 특징이 생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두 사람은 로비에서 지원조로 남기로 한 것이다.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
마종석, 춘식, 유현은 체크인을 마쳤다.
그리고 적당히 채워 넣은 캐리어를 들고 객실로 올라갔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들은 복도 좌우를 살폈다.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엘리베이터를 지키기 위해 춘식이 남고, 마종석과 유현은 타깃의 객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서 잠시 대기하자, 그들이 타고 왔던 엘리베이터를 통해 경호대원들이 올라왔다.
그중 하나는 반대편 복도 끝으로 향했고, 하나는 비상계단으로 이동했다.
이어 나머지 셋은 타깃의 수하들이 머무는 양옆의 방문 앞에 섰다.
스윽.
이로써 퇴로를 모두 차단됐다.
캐리어를 내려놓은 그들은 품에서 복면을 꺼내 썼다.
그리고 품 안에 잘 넣어뒀던 권총을 꺼내 소음기를 장착했다.
끄덕.
옆에서 대기 중인 경호대원과 눈을 마주친 마종석이 객실의 문을 두드리고 중국어로 말했다.
똑똑똑.
“룸서비스입니다.”
타깃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안에 있는 거 맞나?’
마종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재차 직원인 척을 하며 노크했다.
“…….”
“…….”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에 마종석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가 객실 문에 귀를 가져다 대자,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찰칵.
그걸 들은 마종석은 천천히 몸을 바로 세운 뒤, 유현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신호하면 안으로 사격한다.’
그와 동시에, 총알이 객실의 문을 뚫고 나왔다.
타앙-!
귓전을 때리는 총성과 동시에, 신호를 받은 유현과 마종석이 총알이 날아온 위치를 짐작해 방아쇠를 당겼다.
퓩! 퓩!
억눌린 총성과 함께 문에 구멍이 여러 개 더 뚫렸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사격을 멈춘 사이, 타깃의 수하들이 있는 객실 안에서 소란이 일었다.
-……!
-…야!
벌컥!
문이 열리고, 다급하게 뛰쳐나오는 수하들을 향해 무자비한 총격이 가해졌다.
퓩! 퓩! 퓩!
“윽!”
“아악!”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그들은, 베테랑 경호대원에게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마종석은, 복면을 벗고 뚫린 구멍을 통해 타깃이 있는 객실 안을 들여다봤다.
꿈틀.
그러자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눈을 뗀 마종석은 문을 향해 몇 차례 더 총을 발사하곤 다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조금 전까지 움직이던 타깃의 아래에 피 웅덩이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수백 가까이의 수하를 거느리던 두샤오는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말았다.
“처리했다.”
마종석이 그 말을 하던 찰나,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철컥.
마종석은 말없이 탄창을 갈았다.
그리고 경호대원들을 향해 물었다.
“탈출 계획, 확실한 거겠지?”
“경찰은 우릴 잡지 못할 거다.”
그에 마종석이 복면을 뒤집어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