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74
#374화
“꼬우면 여기서 한판 해보든지.”
라세흠의 그 말에, 경호대원은 고개를 들며 표정을 싹 굳혔다.
춘식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마종석이 이마를 짚었다.
“…본 적이 있다. 위험도 1급, 라세흠.”
“날 안다니, 이거 영광인데.”
경호대원은 너스레를 떠는 라세흠을 노려보며 말했다.
“궁금하긴 했지. 대체 뭘 믿고 이렇게 뻗대나.”
“그래?”
뚜둑.
목을 좌우로 꺾은 라세흠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한번 알아볼래?”
“그거 좋…….”
“거기까지.”
앞으로 나서려던 경호대원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걸음을 우뚝 멈췄다.
이마와 턱까지 긴 흉터가 있는 남자가 인상을 구긴 채 핀잔을 줬다.
“지금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죄송합니다.”
라세흠은 바로 몸을 돌리는 경호대원을 보며 남자를 향해 물었다.
“네가 상급자인가 봐? 새로운 부대장이라도 되나?”
그 말에 남자가 미간을 꿈틀했다.
인천에서 활동하다 이주혁 일당에게 붙잡힌 것으로 추정되는 모재욱 부대장이 생각난 탓이었다.
그러나 이성적인 그의 머리는 여기서 그걸 언급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타닥-.
남자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드럼통으로 시선을 돌렸다.
넣어뒀던 옷가지가 거의 다 타들어 간 걸 확인한 그가 라세흠 일행에게 말했다.
“돌아가지.”
“뭐, 그러자고.”
라세흠은 싱겁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이 차로 이동하는 뒷모습을 노려보던 경호대원이 남자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놈들, 이대로 보내주실 겁니까?”
“그럼 이 자리에서 죽이기라도 하리? 임시지만 그분과 동맹 중인 사람의 수하를?”
“…….”
“그리고, 기습한다고 될 놈들이 아니다.”
실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라세흠을 차치하더라도, 나머지 네 사람도 위험했다.
킬러, 용병 출신에 뭐 하는지도 모를 선글라스.
먼저 뒤통수를 친다 해도 승산이 100%는 아니었다.
탁.
모두가 차에 오르자, 남자는 자신의 술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부릉-.
* * *
일행은 별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가, 쫓아오는 사람 하나 없네.”
그리 중얼거린 라세흠이 남자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정말 카메라는 해결한 거 맞지?”
“그래.”
일행의 얼굴이 녹화되었을 호텔 내부의 CCTV.
그 영상은 전부 경호대 측에서 삭제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긴 했지만, 라세흠은 고상미의 동생을 떠올렸다.
‘얘네 쪽에서 컴퓨터 잘 만지는 놈이 있나 보네.’
라세흠은 가지고 있던 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볼일도 끝났으니 간다.”
애초에 라세흠 일행이 경호대와 같이 움직인 건 명분을 위해서였다.
이들의 일을 도우면 나중에 선생에게도 정당하게 요구사항을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이유뿐 아니라, 경호대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점도 있었다.
턱.
일행은 장비를 벗어두고 술집을 나섰다.
“후.”
바깥으로 나온 고상미가 기지개를 켜며 투덜댔다.
“에이 씨…. 뭐 제대로 한 것도 없이 끝났네.”
“그러게.”
“쟤네라도 죽여버릴까?”
고상미가 술집을 턱짓하며 물었다.
그에 라세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구미가 당기는 의견이긴 한데, 그러면 주혁이 입장이 난감해지겠지.”
“쩝.”
고상미도 진심으로 한 소리는 아니었는지 화제를 돌렸다.
“그럼 우린 이대로 돌아가면 되나? 뭔가 허무한 느낌인데.”
실제로 그러했다.
실전 감각도 올릴 겸 삼합회 놈들이나 때려잡을 생각이었으나, 막상 한 일은 요인 한 명을 암살하는 것뿐이었다.
그에 마종석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불만이면, 삼합회 아지트 습격이라도 하고 가지 그래.”
“음?”
고상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좋은데?”
그 반응에, 마종석은 괜히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예. 슬슬 돌아가야죠. 저희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춘식도 웬일로 마종석을 거들었다.
라세흠은 그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래. 주혁이가 말하지 않은 건 굳이 하지 말자고.”
마종석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춘식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고맙다.’
‘별말씀을.’
그리고 속으로 이를 갈며 생각했다.
‘아오. 이 새끼들…. 돌아가면 이주혁한테 다 말해버려야지.’
기분파들 사이에서 고충을 느끼는 마종석이었다.
* * *
호정기획의 최상층.
그곳에 위치한 넓은 회의실.
‘높으신 분’들을 불러 모은 나는 목소리를 높이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드륵-!
“아니, 이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잘 묻혀있던 사건들이 갑자기 연속으로 터진다니요.”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누군가 일부러 공격한 거란 소립니다. 기사 쓴 연놈들 보면 전부 1년 차, 2년 차 애송이들입니다. 민 사장.”
“예.”
열변을 토하던 민생당의 당 대표가 대형 언론사인 대원일보의 사장, 민재형에게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저야 모르지요. 같은 언론사라고 서로 다 기삿거리를 공유하는 줄 아십니까?”
“그게 지금 할 소리요?”
“그만, 그만. 확실하지도 않은 걸로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닙니다.”
“확실하지 않긴 무슨!”
당 대표는 야당의 의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신. 당신이 다른 곳이랑 손잡고 꾸민 일 아니야?”
“뭣, 당신? 얻다 대고 당신이야?”
“검찰 쪽이랑 손잡고 뒤로 한 짓 아니냐고!”
그 말에 중앙지검장이 발끈했다.
“뭐요? 갑자기 우리는 왜 건드립니까?”
“검찰이 찌르고, 법관이 허가를 내렸으니 영장이 나온 거 아뇨!”
“그럼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오는데, 그걸 그냥 덮어버립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이번엔 또 검찰 측과 언쟁을 벌이는 당 대표.
여기가 무슨 국회의사당도 아니고, 자칫하면 싸움이라도 벌어질 기세다.
‘이대로 두면 온종일 이러겠네.’
나는 그 꼴을 잠자코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봐. 당신네 총장이 내 동기…!”
“여러분!”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이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말싸움은 거기까지 하시지요. 우리끼리 논의한다고 명명백백히 밝혀질 건 없습니다.”
“뭐? 지금 이 상황을 네가…….”
“그만, 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내가 강세를 주어 말하니, 당 대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전에 몇 번 적당히 미래 정보를 흘려준 탓이었다.
물론 진짜는 아니었다. 적당히 꾸며낸 이야기였으니까.
5년 후라고 했으니 딱히 확인할 방법도 없다.
-오오, 그게 정말이냐?!
저 양반이 무당이나 미신에 빠져있어서 그런가, 적당히 분위기만 잡아줘도 잘 먹히더라고.
나는 조용해진 분위기를 느끼곤 말을 이었다.
“이번 일에 관해선 제가 따로 ‘보았’습니다.”
“……!”
당 대표와 몇몇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이번 일의 진정한 배후를 알아냈죠.”
“그, 그게 누군가?”
당 대표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사람. 바로 조병철 비서실장입니다.”
그 말에 모여있던 이들의 표정이 바싹 굳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모임’ 내에서 가장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던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조 실장님이……?”
“정말 화, 확실한 소린가?”
거의 대통령 다음가는 권력자가 벌인 짓이라는 말을 들은 당 대표가 잔뜩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조병철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날 이용하려면 얼마든지 이용해 보게. 최대한 협조해 주지.
놈이 나한테 정확히 뭘 원하는진 몰라도, 일단 적대적으로 나오고 있진 않았다.
그럼 나도 이왕 써먹을 거, 최대한 알차게 이용해줘야지.
그렇게 조병철의 이름을 까발려버린 난 혼란에 빠진 좌중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봐라.’
* * *
미국, 댈러스 주의 한 높은 빌딩.
그곳의 최상층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젠장!”
쾅!
DS컴퍼니의 이사이자 실질적인 수장, 헨리가 자신의 책상을 내리쳤다.
“망할 소비에트 새끼들!”
몇 주 전, 헨리는 ‘서클’의 화상 회의에서 이주혁을 제거 대상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었다.
자신의 친구 제이콥을 죽였으며, 서클의 중추였던 선생을 실종시킨 자였으니 합당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섣불리 움직이지 말자는 여론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에 헨리는 DS컴퍼니의 이름으로 따로 의뢰를 내걸었다.
그 누구든, 이주혁 패거리의 부고 소식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막대한 보상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의뢰를 받겠다고 한 건 러시아의 킬러 집단, 글라자의 간부 중 하나였다.
“제기랄…….”
그리고 며칠 뒤, 총격 사건으로 한국이 잠시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암살을 시도한 거겠지. 결과는 실패였고.’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한국 내의 킬러들이 순차적으로 체포됐다.
그것까진 괜찮았으나, 문제는 다음 날 날아온 글라자의 메일이었다.
[의뢰 진행은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일방적인 의뢰 포기.
1차로 헨리를 분노하게 만든 것이었고, 이어 강화된 대한민국의 총기 규제가 2차로 그의 이성을 흔들리게 했다.
맡겨놓은 의뢰를 실패한 것도 모자라, DS의 암살자들이 건너갈 다리도 막아버렸다.
“하.”
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선 글라자에게 보복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바로 어제, 글라자의 간부 하나가 서클에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의 ‘경호대’가 자신들을 습격했고, 큰 피해를 입었으니 그들에게 제재를 가해달라.
그러나 서클은 그녀의 요청을 묵살했다.
마피아들이 은근히 눈치를 주기도 했고 가해자가 경호대라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다.
‘무력을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
돈도 권력도 없으니, 힘을 들여 살려봤자 떨어지는 게 없는 것이다.
결국 아무도 글라자를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물론 헨리도 마찬가지였다.
“이주혁. 이 개자식을 어떻게 죽여야 하지?”
글라자의 상황은 그의 알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주혁, 그자에게 어떻게 복수하느냐였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
선생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만한 능력이 있었고, 한국이 본거지였던 만큼 헨리보다 일 처리가 쉬울 터.
하지만 쉽사리 부탁하긴 힘들었다.
안 그래도 선생은 DS컴퍼니 운영에 관여하려고 하는데, 이런 명분을 줘버리면 더욱 심한 간섭이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헨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자에게 손을 빌리는 것보단…… 내가 알아서 하는 게 낫겠지.’
결국 헨리는 혼자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주혁이 죽으면 서클 놈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그가 했다는 증거만 남기지 않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의자 뒤로 기댄 헨리는 한국으로 누구를 보내야 하나 고민했다.
헨리가 이토록 이주혁에게 보복하려고 하는 이유는 제이콥의 죽음뿐만은 아니었다.
그는 선생과 함께 일으켰던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뒤 정치권에 발을 걸칠 생각이었다.
높으신 분들은 트러블이 생길 때 DS의 비밀 서비스를 이용하곤 했고, 그걸 통하면 한자리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계획은 이주혁 때문에 망가져 버렸다.
더러운 일을 한다며 무시하던 다른 임원들에 비해, 제이콥은 현장 요원을 잘 챙겨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을 통제하던 제이콥이 사라진 탓에, 요원들은 잠적하거나 타국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뚝.
‘누가 좋을까.’
물론 모든 현장 요원이 떠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개인적으로 데리고 있는 실력 좋은 이들이 꽤 남아있었다.
그 녀석들을 보내면 어떻게든 이주혁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헨리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꼬리를 올렸다.
‘반드시 죽여주마. 이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