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83
#383화
“아우, 어떡해…. 많이 아프죠?”
“이 정도는 괜찮아요. 멀쩡하죠.”
“멀쩡하긴 무슨. 칼에 베였는데 어떻게 괜찮아요?”
나는 유나 씨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계속 퇴원하겠다고 우겼다면서요?”
“아니, 그건….”
“의사 선생님 말은 들어야죠.”
유나 씨가 병문안을 온 이후로, 약 30분 동안 반복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됐냐, 왜 위험하게 혼자 다니고 그러냐….
물론 날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었다.
“아이고, 사장님.”
결국 옆에서 지켜보던 부장님이 한마디 했다.
“주혁이가 얼마나 튼튼한데. 너무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안 하긴 뭘 안 해요?”
“으, 응?”
“사람이 칼을 맞았는데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죠.”
나는 단호하게 얘기하는 유나 씨를 보며 실실 웃었다.
괜히 입을 열었다 핀잔만 들으셨네.
“어쨌든, 당분간은 저도 여기 있을 거예요.”
“그럼 가게는요?”
“매니저한테 잠시 맡겼어요.”
이거 난감하구만.
이 정도 상처는 진짜 금방 낫는데….
뭐, 유나 씨가 이렇게 걱정해 주니 나야 좋긴 하다만.
“범인들은 어떻게 됐어요?”
“일단 경찰에 넘겼습니다.”
정확히는 특수수사국에.
괜히 다른 데 넘겼다가 이상한 찌라시가 도는 것보단, 처음부터 우리 쪽에서 관리하는 게 나았다.
남들에게 알리기 곤란한 사정이 얽혀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망치지 않고 달려든 걸 보면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거고, 그러면 감방에 넣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미국을 직접 찾아가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한국에서도 이 모양인데, 총기 소지가 합법인 미국에 가서 안전할 거란 보장이 없었으니까.
기관총에 벌집이 되면 됐지, 대비하고 있을 놈을 잡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암살자들을 계속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떠올린 계획이 두 개 정도 있었다.
“주혁 씨.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요?”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유나 씨의 부름에 깨어났다.
“아…. 별건 아니고, 범인들에 관해서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말에 유나 씨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주혁 씨. 주혁 씨를 정말 믿지만… 위험한 일은 최대한 피했으면 좋겠어요.”
“….”
“물론, 어쩔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아요. 피하기만 해선 안 되는 일이니까 주혁 씨도 계속하는 거겠죠.”
유나 씨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주혁 씨가 신념을 가지고 하는 행동을 막을 생각은 없어요. 대신….”
꾸욱.
“다 끝나고, 무사하기만 해줘요. 알았죠?”
나는 유나 씨의 당부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비록 지금은 어쩌다 보니 거악과 싸우고 있긴 하지만, 서해결 검사처럼 정말 정의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나도 소중한 사람이 있고, 지켜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다만 그놈들이 있는 한,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었다.
언제 누가 날 해치러 올지 모르니 발 뻗고 지낼 수도 없겠지.
그런 이유로 놈들을 다 없애려고 하는 거다.
‘사실 난 그렇다 쳐도, 유나 씨가 걱정이야.’
풍원한정식은 부장님이나 정태섭이 지키고 있지만, 솔직히 지금도 불안하다.
어디서 온 누군가가 작정하고 유나 씨를 공격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어디 안전한 곳에서 보호하고 싶지만, 아버지가 물려받은 가게를 방치하고 숨어 지내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일이 다 끝나면, 어디 안전 가옥이라도 사서 지낼까요?”
내 말에 유나 씨가 얼굴을 붉혔다.
“부장님도 계신데….”
“그래서, 싫어요?”
절레절레.
그 반응에 씩 웃자, 팔짱을 끼고 있던 부장님도 헛웃음을 지었다.
“아주 깨가 쏟아지는구만. 유나야. 주혁이는 걱정하지 마라.”
척.
부장님이 엄지로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혁이는 내가 꼭 지켜줄 테니까. 너도 마찬가지고.”
“그건 위험한 클리셴데.”
“클, 뭐?”
“아닙니다.”
어디 가서 죽을 인간도 아니고, 부장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드륵-.
“엇, 선객이 있었군요.”
“들어오세요. 과장님.”
날 찾아온 사람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광수대 팀장이자 특수수사국의 특수과장, 박건이 손에 뭔가를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여기,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사 왔습니다.”
“아이고,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박건은 옆에 놓인 협탁에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은 뒤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뭐,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알려드릴 게 있는데….”
박건이 유나 씨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예. 일단 범인은 계장님이 말한 대로 단단히 구속해서 유치장에 넣어뒀습니다. 외국인이라 영어 할 줄 아는 친구가 심문을 맡았는데, 한마디도 안 하더군요.”
역시. 입을 열지 않을 줄 알았다.
“쉽지 않겠네요.”
“그래도 윤현오 검사가 말하길, 카메라 영상에 범행 장면이 다 찍혔고 변호도 거부하고 있으니 최소 5년은 때릴 수 있을 거랍니다.”
“5년이라.”
놈들의 신상 정보도 없고, 증언도 받을 수가 없으니 일단은 감옥에 보내버리는 게 베스트다.
“뭐, 용건은 이게 답니다.”
“그래요? 그럼 문자로 알려주셨어도 됐을 텐데.”
“병문안도 할 겸, 겸사겸사 왔습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푹 쉬십쇼.”
“네. 감사합니다. 과장님.”
박건은 용건을 마치자 미련 없이 병실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던 부장님이 물었다.
“근데, 직급상 저 사람이 네 위 아니냐? 근데 어째 너한테 되게 깍듯한 것 같다?”
“상호 존중, 그런 거죠.”
“그래? 하긴, 네가 진짜 저 사람 밑에 있는 경찰도 아니고.”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셨구나….”
“조금 무섭게 생겼죠?”
내 장난스러운 물음에 유나 씨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고… 덩치가 워낙 크셔서요.”
“그렇긴 하죠.”
박건의 키는 190이 넘는다.
또 몸무게도 100kg은 가볍게 넘을 만한 덩치인 데다, 솔직히 인상도 좋은 편은 아니다.
솔직히 내가 봐도 강남파 사이에 껴 있으면 못 알아볼 것 같긴 해.
뭐 어쨌든.
다시 DS컴퍼니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생각한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간단하게, 민지훈에게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 방법을 선택하는 건 별로 좋지 못했다.
민지훈에겐 내게 미리 경고해줬다는 명분도 있고, 애초에 DS 쪽에 얼굴이 노출된다는 리스크를 선택한 것도 나다.
민지훈이 뒤에서 암약하는 동안, 내가 ‘서클’의 주의를 끈다는 조건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민지훈을 정보 셔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거기도 하고.’
그러니 이번 사건으로 민지훈을 압박해봤자, 내 선택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두 번째 방법인데, 바로 DS의 표적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을 파견하는 것이었다.
‘과연 누가 좋을까.’
하지만 마땅한 인선이 딱히 없었다.
나와 부장님, 고상미는 진작 노출됐고.
DS 출신인 춘식이도 지난번에 헨리의 머리에 총을 쐈을뿐더러, 회유도 거절해서 곤란했다.
또 우리 팀원들을 보내기엔 그만한 위험을 감수시킨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고민하던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 그 녀석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전직 강남파이자,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
그리고 위험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투입되던 녀석.
인성은 몰라도, 실력은 확실한 놈이었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마종석.’
* * *
중국, 베이징.
삼합회의 본단으로 사용하는 건물.
그곳의 회의실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일 것 같나?”
“글쎄….”
그들의 정체는 바로 삼합회의 원로들이었다.
삼합회의 간부로 지내며 조직에 오래간 충성한 이는 ‘원로회’라는 곳에서 원로직을 맡을 수 있다.
이렇다 할 실권이 있는 직책은 아니나, 조직의 대소사에 한 마디 정도 얹을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이번 산주를 추대할 때에 한정해 중요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덜컥.
노인들이 모인 회의실로, 그들과 마찬가지로 백발 중노년이 들어왔다.
다만 다른 점은, 은퇴한 원로들과는 달리 그는 현역이라는 것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홍콩지부의 지부장이자 명운제약의 사장, 장쉬안이 좌중을 둘러보며 인사했다.
“다들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각종 뇌물로 로비를 받았으니 혈색이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장쉬안의 비아냥을 알아채는 이는 몇 없었다.
그에 포함되지 않는 한 원로가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왜 부른 거요?”
“여러분에게 소개할 것이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까딱.
장쉬안이 신호하자, 그의 수하가 바퀴 달린 이동식 선반을 밀고 왔다.
거기엔 작은 상자 몇 개가 올려져 있었다.
그걸 본 원로 중 한 명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약회사 차리더니, 이젠 약 장수라도 된 모양이군.”
그러자 류비엔을 지지하기로 한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장쉬안은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릴 것은 이겁니다.”
달칵.
장쉬안이 상자를 열자, 무색의 액체가 들어있는 작은 유리병이 드러났다.
“이건, 우리 명운제약에서 개발한 각성젭니다.”
“각성제?”
“예. 사고의 속도를 높여주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해줍니다.”
그 말에 원로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진통제 같은 거란 말인가?”
“고작 그런 것과는 급이 다르지요.”
저벅.
장쉬안은 원로들이 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설명했다.
“한 사람이, 능히 열 명을 상대할 수 있게 만드는 물건입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전사는 두려울 게 없지요.”
그러자 안경을 쓴 원로가 물었다.
“그 약물이 삼합회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겠나?”
“무력, 금력, 권력. 뭐든지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설명을 들은 원로들은 각자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저울질했다.
원래 장쉬안을 지지하던 이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그 반대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빠졌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있던 원로들이 장쉬안의 세력에 붙으면, 기세는 그의 쪽으로 넘어갈 게 분명했다.
잠시 고민하던 안경을 쓴 원로가 장쉬안을 향해 물었다.
“자네가 허풍선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알고 싶어서 말일세. 혹시 그 효과를 직접 볼 수 있겠나?”
“원한다면 얼마든지요. 다만, 이곳에는 실험실이 없는지라 전부 보여드릴 순 없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확인만 하면 되네.”
그 말에 장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직접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그렇게 원로들을 데리고 회의실을 빠져나가던 장쉬안에게, 그의 수하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저, 사장님.”
“바쁘니 간단히 하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장쉬안은 미간을 좁히며 수하를 쏘아봤다.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나?”
“그, 그것이 자기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 보낸 손님이라고….”
“누구?”
불쾌한 눈빛을 보내던 장쉬안은, 이내 수하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선생… 이라는 사람이 보내서 왔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