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장쉬안은 팔짱을 낀 채로 김정우에게 들은 것을 되뇌었다.
“그러니까, 선생이 잠적한 지금은 그 조병철이라는 자 밑에서 일한다 이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랬던 거로구만.”
이미 선생에게 원본을 건네받은 걸 듣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성수’를 빌미로 딜을 걸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인해 장쉬안은 선생과 김정우가 모든 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쉬안은 어쩐지 목이 타 잔에 남아있던 차를 남김없이 마셨다.
“어쨌든, 아까 했던 얘기를 마저 듣고 싶은데.”
선생의 ‘예언’에 관한 비밀.
대강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들어서 알았으나, 정확히 어떻게 그게 되는 건지는 몰랐다.
점을 치는지,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는지.
보통 사람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동안 궁금하긴 했었다.
그 기묘한 힘의 비밀을 알면 이용할 곳이 무궁무진하니까.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자리를 좀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김정우의 말에 장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어차피 여기서 볼일은 다 봤기에 상관없었다.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응접실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쉬안의 수하들이 다가왔다.
“이야기 끝나셨습니까?”
“아니. 자리 좀 옮기지.”
“어디로 모실까요?”
“늘 가던 곳으로.”
“예.”
그렇게 두 사람은,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
.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 주점이었다.
삼합회에서 운영하는 가게로, 조직원들이 은밀한 대화를 나눌 때 찾는 장소였다.
“이제 슬슬 말해보게.”
장쉬안은 몸이 달 지경이었다.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안다는 것은, 설명할 것도 없는 어마어마한 메리트였다.
그런 선생의 ‘예언’에 관한 정보였기에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혹시 해서 말하네만, ‘사실 예언 같은 건 전부 거짓말이었다’ 같은 거라면 상당히 실망할 것 같군.”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것참 다행일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말해보게.”
맨입으로 알려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윽.
김정우가 손가락을 들었다.
“제가 말씀드렸던 조병철 실장님과의 거래, 받아들여 주십시오.”
그 말에 장쉬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굳이 그 거래를 수락해서 얻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성수? 이미 적당한 수준의 물건을 양산할 수 있었다.
금전적인 것도 생산한 각성제를 팔면 얼마든지 벌어들이는 게 가능할 것이다.
김정우는 장쉬안의 떨떠름한 반응을 살피곤 말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거래를 독점한다는 조건은 빼겠습니다. 대신, 저희가 안전한 유통망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흠…. 그 쪽에게 도움을 받을 만큼 유통망이 필요하진 않네만.”
예언이 궁금하긴 하나, 그렇다고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알고 싶은 건 또 아니었다.
사실 그 비밀을 듣는다 해서 갑자기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제기랄. 망할 늙은이.’
김정우는 낭패감을 느꼈다.
아는 사이니까 무작정 가서 제안해보라는 조병철의 지시 때문에 장쉬안에게 자꾸 거래를 요청하는 건데, 대체 자신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거기다, 뭐라도 결과를 들고 가기 위해 예언의 비밀 같은 거창한 주제까지 꺼냈음에도 효과가 별로였다.
‘되지도 않는 건 집어치우고… 이 노인네의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머리를 굴리던 김정우의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십니까. 한국에서 삼합회가 일으킨 칼부림 사건.”
“…무슨 뜻인가?”
“거기서 안타깝게도 왕후성, 그 친구가 죽었다지요.”
“그랬지.”
과격하고 잔인하긴 했으나, 수완은 확실한 부하였다.
명운제약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왕후성이 인신매매의 판을 짠 덕이었다.
김정우는 그의 아쉽다는 표정을 보고 말했다.
“제가 그 친구를 죽게 만든 자들에 관해 아는 게 있습니다.”
그 말에 장쉬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게 정말인가?”
그걸 본 김정우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주혁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 *
“잠깐 나갔다 와야겠습니다.”
몸을 일으키며 그리 말하자, 춘식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나가신다고요? 이 시간에요?”
“예. 갑자기 볼일이 생겼네요.”
춘식이 같이 일어나며 말했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누굴요?”
“국정원장요.”
“예에?”
국정원장 차영규.
그 양반이 갑자기 나랑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예전에 나한테 한번 엿을 먹였던 적이 있어서 좀 껄끄럽긴 한데, 괜히 날 부르는 게 아니겠지.
국내외의 온갖 정보를 긁어모으는 국정원의 수장이라면 분명히 뭔가 중요한 일일 거다.
[정종라운지. 6시.]“가서 일 보세요.”
“아, 예. 몸조심하십쇼.”
나는 만날 장소와 시간이 담긴 문자를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무슨 용건인지 들어나 보자고.’
.
.
.
고급스러운 한정식집, 정종라운지.
한옥 느낌으로 꾸며놓은 풍원한정식과는 다르게, 연못과 정자 등으로 약간의 일본풍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어두운 배경에 노랗게 깔리는 조명이 꽤 보기 좋았다.
잠시 좌우를 살피며 경치를 구경하다, 차영규가 기다리고 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벅.
“몇 분이세요?”
“누굴 좀 만나러 왔습니다.”
“혹시 예약자분 성함이요?”
“차영규.”
“아, 이쪽입니다.”
나는 직원이 안내하는 방에 도착했다.
드르륵-.
직원이 문을 열자, 거기 앉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겼으며, 금색 뿔테 안경을 쓴 차가운 인상의 50대 중년.
국정원장 차영규가 나를 향해 눈짓했다.
“왔나.”
“예.”
“앉지.”
“그러죠.”
“식사는 했나?”
털썩.
차영규의 물음에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뇨.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한술 뜨게.”
굳이 밥을 먹을 생각까진 없었지만, 상차림을 보니 수저를 안 들기엔 너무 아까웠다.
“잘 먹겠습니다.”
이럴 때 안 먹으면 또 언제 먹겠어?
풍원한정식과는 다른 메뉴 구성에 입맛이 돌았다.
“원장님도 드시죠.”
“그러지.”
그렇게, 나와 차영규는 잠시 말없이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젓가락을 내려놓은 차영규가 나를 불렀다.
“이주혁.”
“예. 말씀하시죠.”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가?”
“무슨 의미신지.”
“그쪽에서 봤을 땐 꽤 날이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딱히 그런 기색은 아니군.”
호정그룹의 회의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제가 그랬습니까?”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차영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너를 믿지 않는다.”
“…이유는요?”
“네가 살아온 삶의 궤적, 앞뒤 정황. 그리고 감.”
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런 말씀 하시려고 믿지도 않는 놈을 이런 곳까지 불렀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군.”
“예.”
“선생과 정확히 무슨 관계인가.”
내가 입술에 침을 바르자 차영규가 덧붙였다.
“후계자, 그런 소릴랑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야.”
“제가 저번에 설명해 드린 걸로 기억하는데요. 납득하고 넘어가셨고.”
“납득과 믿음은 다르지.”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절 추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차영규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눈을 들여다보듯 쳐다봤다.
“네가 선생과 처음부터 같은 편이었다면, 강남파를 무너뜨리고 선생을 공격한 것도 전부 그가 의도했다는 건가?”
“….”
“선생이 제 살을 깎아 먹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 학벌이라고는 없는 HID 전역자에게 자신을 공격시키고, 후계자 자리를 맡길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지.”
역시 국가정보원의 수장인가.
나에 관해서 아주 샅샅이 조사한 모양인데.
이미 저렇게 확신하고 있는 이상, 더 잡아떼 봤자 받아들일 것 같진 않았다.
애초에 허술한 점이 없는 계획도 아니었고.
그러니 그냥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한 가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다. 넌 선생의 뜻을 따르는 하수인인가?”
그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난 내 뜻만을 따릅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차영규가 바닥에 있던 인삼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10년 묵힌 인삼주다. 한잔하겠나?”
“예. 좋지요.”
쪼르륵-.
향긋한 인삼주를 받아 마시자, 차영규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하던 이유는.”
“예.”
“모임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예?”
나는 인삼주의 맛을 즐길 새도 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작년에 취임한 이후로, 난 선생이라는 자가 주도하는 카르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후룩.
인삼주로 목을 축인 차영규가 말을 이었다.
“이 나라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권력이 분리되지 않으면 독재 정권이 될 뿐이야.”
“모임에 끼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 봤자 소수지. 진짜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들이 뭉쳐서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있는 거다.”
탕!
차영규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가지만, 한 명밖에 없다면 잘못된 곳으로 향하는 걸 짚어줄 사람이 없겠지.”
“그러니까… 그런 이유로 모임을 해체시키려고 한다, 이 말씀입니까?”
이 양반의 생각과 목적은 알았다.
하지만 차영규가 이루려고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모임을 없앤다고 해서 해결될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생각이셨습니까?”
“선생, 그자와 등에 업고 있던 조병철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선생이 잠적했겠군요.”
내 짐작에 차영규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그자가 사라진 탓에 그동안의 준비가 무용지물이 됐다. 그리고 너라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 거지.”
대충 상황을 이해한 나는 차영규에게 물었다.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신다는 건, 저더러 도와달라는 뜻입니까?”
내 말에 차영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죠. 국정원의 누군가가 찾아와서 제 회사의 폐업을 강요했던 일.”
종로에서 삼합회 놈들이 일으켰던 칼부림 사건.
그 범인들의 수장이었던 왕후성이란 놈이 자기 부하한테 뒤통수를 맞고 죽었었다.
그런데 잡혀간 범인들이 왕후성을 죽인 게 나라고 증언했고, 그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겪었었다.
다행히 피해자의 증언과 광철이 아저씨의 도움으로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었지만, 회사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좋지 못한 꼴을 봤지.
“그건 선생이 우리 쪽 실장을 섭외해서 벌인 일이었다.”
“원장님도 묵인했겠죠.”
“사과를 바라나?”
“사과까진 됐고, 합당한 피해보상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영규는 내 말을 듣고 싸늘한 목소리로 날 위협했다.
“조폭들에게 저지른 사적 제재와 SA시큐리티를 드나드는 국제 범죄자들. 그런 이슈들이 언론을 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럼 머지않아 국정원의 수장도 바뀌겠죠.”
하지만 내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자, 차영규는 찌푸렸던 인상을 펴며 말했다.
“역시, 넌 굽혀지는 사람이 아니군. 차라리 맞부딪혀 깨지는 성격이야.”
“이제 와서 테스트는 좀 늦은 감이 있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협박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나도 태연하게 넘겼던 거다.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다 털어놨는데, 이 시점에서 나와 적대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한잔 더 받지.”
“예.”
차영규는 내 잔에 인삼주를 한 번 더 따라줬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네 목적은 뭐지?”
그 질문에 일체의 고민 없이 답했다.
“아마 원장님과 비슷할 겁니다.”
대답을 들은 차영규가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은 자리가 길어지겠군.”
“동감입니다.”
나는 차영규와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잔을 털어 넣었다.
쭈욱!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