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이미 선생에게 물건을 받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아십니까?”
“그래, 그래. 고생했네. 이번 달 보너스는 두둑이 넣어주지.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게나.”
“예. 감사합니다.”
달칵.
조병철은 중국에서 돌아온 김정우의 볼멘소리를 적당히 들어주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곤 책상의 서랍을 열어 담뱃갑을 꺼냈다.
툭툭.
갑을 쳐 담배 한 개비를 꺼낸 조병철은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선생…. 이미 삼합회까지 손을 뻗고 있었단 말인가.’
조병철 또한 선생과 나름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었으나, 그가 다른 나라에서 뭘 하는진 알 도리가 없었다.
“선생, 선생….”
슥.
담배를 입에 문 조병철이 잇새로 중얼거렸다.
“이 X발.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이주혁이 나타나기 전부터, 조병철은 선생이 죽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고작 특수부대 출신 애송이에게 당할 만큼 만만한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점쟁이보다 더 정확한 예측을 해 주던 그가 없어지니 영 마음에 걸렸다.
혹시 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내가 뭔가를 놓치고 넘어가진 않았을까.
처음부터 몰랐다면 자신의 판단을 믿고 밀어붙였을 터.
팅-. 치익.
조병철은 결국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읍….”
평소엔 담배를 잘 피우지 않지만,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한 대씩만 태우던 것이었다.
“후우…….”
폐부를 채우는 묵직한 담배 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일이 조금 꼬일 뻔하긴 했어도, 어쨌든 목적은 반쯤 이뤘다.
장쉬안이 자신의 제안을 생각해 보겠다곤 했으니까.
그러나, ‘성수’를 팔아먹을 루트를 제공해 주겠다는 그 제안에 그리 혹한 눈치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제 나름대로 방도가 있었다 이거지?’
러시아든 어디든 팔아먹을 자신이 있으니 선생에게서 ‘성수’를 받은 것이리라.
‘혹시 이미 상품화를 끝냈나?’
만약 그랬다면, 굳이 조병철의 도움이 없어도 삼합회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 터.
타닥.
담배 끝이 타들어 가고, 조병철의 고민도 길어졌다.
“쯧.”
조병철로선 장쉬안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일이 조금 번거로워질 뿐, 큰 지장은 없었다.
국정원의 시선을 돌릴 사건을 만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차영규. 그놈이 뭔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가 기획조정실장으로 있던 시절, 당시 국정원장의 옷을 벗길 정보를 넘겨준 게 바로 조병철이었다.
머리도 좋고, 능력도 있어서 한번 밀어줘 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주제 파악도 잘 하는 듯해 모임의 존재도 알려줬다.
어떻게 보면 이 나라의 모든 정보와 안보를 책임지는 곳이 국정원이었기에, 그 수장이 이쪽에 붙으면 앞으로의 일이 편해지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국정원에 심어놓은 프락치에게서 차영규의 수상한 정황을 전해 들었다.
‘블랙 요원과 독대했다던데….’
국정원장이 현장에서 뛰는 요원과 단둘이 만날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리고 그와 만난 요원은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블랙 요원에 무언가 개인적인 지시를 내린 게 분명한데, 그 내용까진 알 수 없었다.
예전에 도청을 시도해 봤지만, 사흘도 지나지 않아 바로 발각된 탓이었다.
그 때문에 심어놓은 프락치만 뽑혀나갔다.
“이놈도 삼합회에 볼일이 있나?”
조병철은 베이징에 김정우를 보냈다.
차영규도 마찬가지로 요원을 파견했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또 이 추측이 맞다면, 차영규는 삼합회를 통해 뭘 하려는 것일까.
치익-.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조병철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
* * *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앙지검의 차장검사 자리까지 순조롭게 승진.
그러다 전 국정원장의 눈에 띄어 국가정보원의 기획조정실장으로 발탁된다.
왜 검사를 그만두고 기조실장을 맡은 건진 알 수 없으나, 국정원에서 일하던 도중 보스의 비리를 터뜨려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국정원장이라는 직함을 달게 된 인물.
‘차영규….’
행적만 살펴보면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검사 출신 국정원장이다.
차영규라면 국가의 안보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고, 그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가 조병철 비서실장이다.
모임이라는 카르텔까지 도달한 걸 보면, 차영규라는 인간도 꽤 더러운 꼴을 봤을 터.
서해결 검사처럼 정의를 위해 한 몸 바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거란 소리다.
‘단순히 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해 이 거대한 카르텔을 부수려고 한다라….’
뭘까. 거기 담긴 속내가.
탁. 탁.
손가락으로 시트를 두드리다 차에서 내렸다.
텅.
참고로 술을 마셔서 대리를 불렀다.
대리는 내 경호로 따라다니기로 한 황성빈이었다.
“진짜 누구랑 마셨는지 안 알려주실 겁니까?”
“알아서 뭐 하게?”
“아니, 우리끼리 술자리 할 때는 항상 빠지시더니, 다른 사람이랑은 한잔하셨다길래 궁금해서 그럽니다.”
“네가 궁금한 거 맞아?”
내 물음에 황성빈이 머쓱한 표정으로 털어놨다.
“사실, 통영 애들이 누군지 꼭 알아 오라고 성화를….”
“하, 그 자식들.”
나는 황성빈에게 적당히 답했다.
“그냥 공무원.”
“공무원요?”
“그래. 존나게 높은 공무원.”
“아. 뭐 국회의원 같은 사람입니까?”
“비슷하지.”
주차장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도착했다.
“이제 들어가 봐. 난 내 사무실에서 눈 좀 붙이게.”
“아, 예. 알겠습니다.”
황성빈을 보내고 나도 사무실로 향했다.
‘머리 좀 식혀야겠어.’
조병철이고 차영규고.
뱀같은 인간들이랑 대화를 나누고 나면 항상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까득.
겉옷을 벗어놓은 뒤, 책상 위에 있는 버번위스키를 까서 한 잔 따랐다.
쭈욱-.
“어후.”
아세톤 향이 코를 찔렀다.
익숙해지면 이거만 한 게 없다며 스가와라에게 받은 위스키인데, 아무래도 내 입맛에 썩 맞진 않았다.
역시 20년을 함께한 소주가 제일 낫단 말이지.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겉옷을 벗고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창문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데.
반짝.
건너편 건물에서 뭔가 빛나는 걸 보고 황급히 소파 아래로 몸을 굴렸다.
“….”
잠시 눈치를 살피던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다시 창문을 내다봤다.
“…아.”
순간 저격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밖의 조명이 비친 것 같았다.
“후우….”
아무래도 킬러들이 올 거란 사실 때문인지 신경이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긴장한 근육을 풀며 창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커튼을 확 쳐버렸다.
촤락!
“….”
셔츠를 살짝 벌려 안에 덧대 입은 방검복을 확인했다.
“인생 참.”
난 다시 위스키를 까서 한잔 더 원샷을 때렸다.
아까 인삼주도 꽤 마셔서 그런가, 취기가 슬슬 올라왔다.
곤두서있던 신경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 광철이 아저씨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항상 아버지랑 소주 한잔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술 마시고 자지 말라고 하면,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마. 네가 이 나이 먹어봐라. 술 없으면 잠을 못 자요.
왠지 이젠 그 말이 이해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푸욱.
나는 소파에 몸을 누인 채 눈을 감았다.
내일 또 바쁘게 움직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지만, 서서히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
.
.
스윽.
들려오는 인기척에 눈이 떠졌다.
‘…뭐지?’
이 시간에 내 사무실에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그리 생각하며 상체를 일으키던 순간, 뭔가 번쩍하는 불빛이 어두운 공간을 밝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몸이 뒤로 확 젖혀졌다.
“커헉…!”
소파 뒤로 구르며 가슴팍에 손을 대보니, 피가 마구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머리가 갑작스러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씨…!”
이를 악물며 내 책상 쪽을 향해 박차고 달려갔다.
하지만 이어지는 총성과 함께 몸이 옆으로 허물어졌다.
“컥….”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충격 때문인지 팔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후욱!
그때, 나에게 총을 쏜 그림자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푹.
그리고 내 가슴엔 어느새 칼이 꽂혀있었다.
나는 목구멍에서 피가 역류하는 걸 느끼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
놈의 얼굴은 무언가로 가려진 듯 볼 수가 없었다.
쑤욱.
칼을 뽑은 놈은 그대로 다시 한번 쑤셔왔다.
갈비뼈를 가르는 섬뜩한 날붙이의 감각이 느껴졌다.
“허억…!”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
가슴팍을 더듬으며 좌우로 고개를 돌리자, 이내 자기 전과 똑같은 사무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꿈이었나….”
꿈자리가 이렇게 뒤숭숭한 것도 오랜만이네.
내심 불안감과 부담감이 쌓여있었던 모양이다.
이게 다 미국으로 보내려던 마종석이 잠수를 타서 그런 거다.
“쯧. 다시 자긴 글렀구만.”
어차피 잠도 깬 거, 그냥 일이나 하기로 했다.
그래도 두 시간은 잤으니 크게 지장은 없을 거다.
사락.
나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삼합회 간부들의 명단을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건지 대강 방향을 정했으니, 슬슬 야쿠자 쪽에도 떡밥을 던져 줄 차례다.
현재 난 거물 여럿에게 발을 걸쳐 준 상태다.
한국에선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조병철 비서실장. 그리고 일본 야쿠자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스미요시카이의 사이토 회장.
마지막으로 세계 각지의 거점에 사람들을 두고 있는 민지훈까지.
차영규도 끗발이 조금 딸리긴 하나 어쨌든 국정원의 수장이다.
‘조만간 어디 한 쪽으로 발을 옮기지 않으면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단 말이지.’
조병철, 차영규. 이 둘은 언젠가 틀어질 게 확실하다.
사이토 회장도 민지훈에게 갚아줄 원한이 있기에 절대 곱게 나가지 않을 테고.
거기다 네 사람의 목적이 전부 달라서 섣불리 판단하긴 힘들었다.
‘누굴 빽으로 두는 게 제일 좋을까.’
민지훈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그놈은 잠적 중.
대한민국의 실세는 조병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병철의 뒤통수를 노리는 차영규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또 아니었다.
국가정보원의 정보는 꽤나 쓸모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사이토 회장도 상당한 거물이다.
‘스가와라한테 듣기론 의원들과도 술잔을 나누는 사이라던데.’
뒷세계의 조직과 정·재계의 결탁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주철수의 강남파에서 시작한 DG그룹이 재계 3위의 자리까지 올라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한국 행정부의 실세냐, 일본 뒷세계의 거물이냐.
한국 대 일본. 이것도 한일전인가?
실없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나는 어떻게 환승해야 잘 갈아탔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했다.
‘일단, 지금 가장 위험한 건 조병철 그 노인네야.’
미래를 보는 게 정말 미래인지 뭔지 그러면서 의미심장하게 굴던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당분간은 그 인간과 협력해야 하겠지만, 난 조병철의 뒤통수를 치겠다는 차영규의 계획에 동참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조병철을 확실히 보내버릴 약점을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러고 보니, 조병철이 성수를 써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뒷세계와 사이비 종교에서 사용하던 불법 약물.
그 뒷배엔 비서실장이 있었다.
꽤 그림이 괜찮았다.
물론 조병철이라면 사건 자체를 덮어버릴 수도 있겠으나, 차영규가 전면으로 나선다면 영 불가능하진 않겠지.
“흐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문어발처럼 빨대를 꽂아놓으면, 언젠가는 탈이 나는 법.
“좋아. 이 시나리오로 간다.”
그렇게, 내 첫 번째 목표가 정해졌다.
‘조병철. 슬슬 보내줄 준비를 해야겠어.’
노후는 감옥에서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