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샤키야와의 협상은 반쯤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바로 답을 주진 않았지만,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할까.
실력 하나는 확실한 녀석이라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샤키야가 합류해 주기만 한다면 어지간한 놈들은 다 박살 낼 수 있다.’
구르카 용병의 막강한 무력과 우리 SA 팀원들의 힘을 합치면 많은 게 가능할 거다.
스윽.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곽환성의 연락처를 찾았다.
전대의 거물 조폭 출신으로, 주철수에게 배신당한 뒤 조병철의 밑으로 들어가 명줄을 유지한 인물이었다.
현재 조병철의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에게도 정보를 제공해 주기로도 했다.
“…아니야. 지금 연락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내가 뒤를 캐려고 하는 사람은 김정우.
조병철의 수행원이었다.
아무리 조병철이 곽환성더러 내게 정보를 제공해 줘도 된다고 허락했다 한들, 대놓고 그쪽 뒷조사를 할 순 없었다.
‘일단 내 선에서 최대한 해봐야겠어.’
김정우를 설득하든, 회유하든.
아니면 협박하든 해서 조병철의 약점이 될 만한 걸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선은 거의 일정했다.
조병철의 곁을 지키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가끔씩 심부름을 가는지 어디 다른 곳으로 빠지곤 했다.
‘주로 들리는 곳은 곽환성이 묵는 호텔. 또는 서울 외곽의 별장.’
그 별장은 조병철이 휴식을 취할 때 찾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아니면 주기적으로 찾는 중요한 무언가가 숨겨진 데일 수도 있고.
‘뭐, 그건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중요한 건, 조병철의 의표를 찌를 약점이다.
현재 조병철을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권한에, 정·재계의 여러 인물과 이어진 인맥까지.
거기다 모임을 통해 검경과도 커넥션을 두고 있으니, 사실상 법적으로 처벌하기란 요원했다.
물론 어지간한 일일 때의 이야기다.
도무지 덮는 게 불가능한 스캔들을 터뜨린다면, 제아무리 조병철이라도 이전 같은 권력을 유지할 순 없을 거다.
‘성수. 그걸 집중적으로 파봐야 할 것 같은데….’
다만 문제는, 조병철이 성수를 통해 장쉬안이라는 놈을 밀어주려는 목적을 모른다는 거였다.
그땐 자세히 캐물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의 비서실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뜬금없이 삼합회의 간부와 손을 잡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뭐가 아쉬워서?’
내 상상력으론 도저히 추측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대신 퍼즐 조각을 찾아줄 사람을 구해야지.’
일전에 대화를 나눴던 국정원장, 차영규를 떠올렸다.
그라면 조병철의 현재 상황을 알고 있을 거고, 어쩌면 그놈이 삼합회에 접근하려는 이유를 추측해낼 단서를 얻을 수도 있었다.
조병철을 무너뜨리기 위해 내 협력을 구하던 양반이니, 이 정도 정보는 흔쾌히 넘겨줄 거다.
삑.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에 한 번호를 입력했다.
차영규에게 직통으로 걸리는 전화였다.
‘제대로 된 단서 하나라도 나오면 좋겠군.’
이왕이면 좀 큰 걸로 말이다.
* * *
홍기동은 눈앞에 앉은 남자를 물끄러미 노려봤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 이자가 다가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누구지? 보통 인간은 아니다.’
그가 경계하는 걸 본 남자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괜한 소란은 일으키지 않는 걸 추천하지.”
“….”
홍기동이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경고가 아닌, 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정체와 목적을 밝혀라.”
“정체는 거지. 목적은 저쪽이다.”
남자가 이야기 중인 장쉬안과 북한 측 인사 쪽을 향해 턱짓했다.
“그럼 저쪽으로 갈 것이지, 왜 나한테 온 거냐.”
그 물음에, 남자는 씩 웃으며 검댕이 묻은 손으로 고추잡채를 집어 먹었다.
홍기동이 미간을 찌푸렸다.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남자는 슬쩍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어느새 권총을 꺼내든 홍기동이 책상 아래로 남자를 겨누고 있던 것이다.
“인심 한번 팍팍하군. 난 정보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남자의 말에 홍기동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정보 조직이라면 개방 말인가.”
“호오. 아나 보군.”
“거지꼴의 정보원이 그곳 말고 더 있겠나.”
대답을 들은 남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정답이다.”
까딱.
남자는 장쉬안 쪽을 턱짓하며 설명했다.
“저쪽에 관해 알아볼 게 있어서 여기 왔는데, 어제부터 이 가게를 들락거리는 수상한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 말에 홍기동은 바깥에서 대기 중인 정보원을 떠올렸다.
정보원들은 장쉬안과 북한 측 인물의 대화를 도청하기 위해 가게 테이블 밑에 미리 장치를 설치해뒀다.
아마 이 남자가 그 모습을 발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철컥.
홍기동은 표정을 굳히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국정원 요원에 관한 정보가 새어나갔다면, 이 남자를 제거하는 게 베스트였다.
그러나 여기서 총을 쏠 순 없었다.
뒤에 있는 두 사람이 바로 도망칠 테니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남자가 여유롭게 웃었다.
“너, 한국 놈이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억양을 들어보면 본토 사람은 아닌데, 일본 놈이 여기까지 왔을 것 같지도 않아서.”
슬쩍.
홍기동의 어깨너머로 눈치를 본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넌 정보원인가?”
그 질문에 홍기동은 입을 다물었다.
정보원의 앞에선 함부로 말을 꺼내선 안 된다.
작은 것 하나가 정보가 될 테니 말이다.
남자는 침묵하는 홍기동에게 제안했다.
“보아하니 저 인간들이 뭘 하는 건지 좀 아는 것 같은데, 나와 정보를 교환할 생각 없나?”
“뭐?”
“말 그대로야. 내가 아는 것과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누잔 거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핸드폰을 힐끗 본 홍기동이 남자를 노려봤다.
[앞에 앉은 사람, 누굽니까.] [율도. 빠지십시오.] [빠져야 합니다!]바깥에 있는 정보원의 다급한 문자가 날아왔지만, 홍기동은 그걸 무시하며 남자를 향해 말했다.
“진짜 목적을 말해.”
“내가 최근 삼합회에 관한 일을 조사하고 있어서 그렇다. 근데 너희 쪽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우리가 조사한 저들의 정보를 원한다는 거냐?”
“정확히는 저 영감과 이야기 중인 사람이 누군지.”
홍기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번호 놓고 꺼져라.”
“현명한 선택이다. 바로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니 조금만 앉아있다 가지.”
그 말과 함께 남자는 고추잡채에 든 고기를 골라 먹기 시작했다.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던 홍기동은 정보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적은 아니다. 재량껏 판단해 대처하겠다. 도청은 잘 되고 있나?] [예. 삼합회 쪽에서 어떤 물건을 팔아넘기려는 것 같습니다. 가격을 협상 중입니다.]홍기동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물건을 판다고?’
삼합회에서 북한에 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저자가 제약회사의 사장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 물건이라는 건 약물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 정도면 충분한 단서군.’
약물이라면 어쨌든 실체가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지금 장쉬안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당장 물건을 넘기는 게 아니란 의미였다.
‘거래가 성사된 후에 거래 물품을 가지고 한 번 더 만날 거다.’
북한 보위부 사람과 만날 정도니 중요한 것일 테고, 그런 문제엔 본인이 직접 나설 터.
장쉬안을 주시하고만 있으면 많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판단을 마친 홍기동은 손가락을 쪽쪽 빠는 남자에게 턱짓했다.
스윽.
그러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떠났다.
출구 쪽과 가까운 자리였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때, 홍기동의 귀에 장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럼, 다음에 다시 연락 주십시오.”
“그러겠소.”
저벅.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홍기동은 고개를 숙인 채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거렸다.
슬쩍 눈동자를 들어보니, 정장을 입은 보위부 인물이 서류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서는 게 보였다.
꾹. 꾹.
[보위부의 누군지는 알아냈나.] [예. 보위부에서 해외 쪽을 담당하는 국의 장입니다. 이름은 림영호.]정보를 확인한 홍기동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꽤 거물이 직접 발걸음하셨군.’
아랫사람을 보낼 만도 한데, 그 정도의 인물이 중국까지 온다?
이 거래가 북한 측에도 꽤 중요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거지 놈과 대화를 나눠봐야겠어.’
정말 정보 교환을 위해 접근한 건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만약 신분이 노출됐다면 가만히 둬선 안 됐다.
‘우선 도청한 것부터 들어보고….’
그렇게 계획을 꾸미던 홍기동의 옆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장쉬안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갑자기 옆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턱!
홍기동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아, 미안합니다. 벌레가 날아다녀서 그만.”
자신의 손아귀에 잡힌 손목을 본 홍기동의 눈가가 꿈틀했다.
두꺼운 손목의 주인은, 장쉬안의 뒤를 따르던 그의 수하였다.
손을 놓아주자, 수하는 고개를 까딱하곤 장쉬안의 뒤를 따라갔다.
“….”
홍기동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쳐다봤다.
[자리를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드륵.
몸을 일으킨 홍기동은 음식값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조용히 골목으로 빠지려는데.
씨익.
차에 타려던 장쉬안이 이쪽을 보고 웃고 있었다.
홍기동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그가 수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어디 소속인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할 테지만, 적어도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챈 것처럼 보였다.
‘그 새끼 때문인가.’
아마 갑자기 나타난 개방 놈 때문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리라.
물론 한번 떠봤을 뿐일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할 필요가 있었다.
핸드폰을 꺼낸 홍기동이 반대편 건물에 있을 정보원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삼합회 쪽이 눈치챈 것 같다.] […일단 포인트에서 만나시죠.] [그러지.]홍기동의 입술 끝이 살짝 비틀렸다.
꼬인 일은, 그의 전문이었다.
* * *
부웅-.
달리는 차 안.
뒷좌석에서 담배를 꺼내 문 장쉬안에게 수하가 물었다.
“식당의 그자,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셔도 되는 겁니까?”
그 물음에 장쉬안은 대답 대신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어디서 보냈는지도 모르는 수상한 자입니다. 후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후환이라.”
피식 웃은 장쉬안이 말했다.
“그자가 정말 내 뒤를 캐고 있다면, 다시 한번 접근해야지.”
“그래서 일부러 계약을 다음으로 미루셨습니까?”
“어디에 눈과 귀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하지 않겠나.”
수하는 핸들을 돌리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그동안 사장님이 누구와 만났는지 새어나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그와 만나는 건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걸세.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렇군요.”
후.
연기를 길게 내뿜은 장쉬안이 물었다.
“놈의 눈빛을 봤나?”
“눈빛 말입니까?”
“그래.”
장쉬안은 삼합회의 조직원으로 50년 가까이 활동하며 수많은 인간군상을 마주했다.
그로 인해 눈을 보면 대강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본 그자는 야차였네. 수없이 피를 보며 살아온 듯한 느낌이었지.”
“…인간 백정이라. 사천四川에서 온 놈일까요?”
“글쎄. 그거야 모르는 일 아니겠나.”
수하의 추측이 맞을 가능성도 있긴 하나, 왠지 그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한 가지 사건이 떠오른 장쉬안이 입을 열었다.
“습격당한 장생병원. 그곳에 침입한 자를 본 이들이 있다고 했지?”
“예. 대략적인 인상착의를 기억하는 상인이 몇 있었습니다.”
수하의 대답을 들은 장쉬안은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이며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설마, 그자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