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국정원의 블랙 요원, 홍기동은 멀어지는 장쉬안의 차를 바라봤다.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진 않았어도, 최소한 수상하게 돌아가는 정황을 느낀 건 분명해 보였다.
“후.”
작게 한숨을 내쉰 홍기동은 모자를 눌러쓴 채 인파 사이로 스며들었다.
저벅.
잠시 후, 주변을 돌며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한 홍기동이 사전에 지정한 포인트에 도착했다.
그곳엔 평범한 인상의 한 20대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어.”
“일단 올라가시죠.”
홍기동은 불안한 듯 좌우를 둘러보는 남자를 따라 골목에 위치한 문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마치 작은 사무실처럼 꾸며진 공간이 나타났다.
타닥. 탁.
“그놈 누군지는 알아냈어?”
“아뇨. 데이터베이스에 없어서….”
책상 두 개에 모니터, 팩시밀리를 비롯한 장비들이 놓여있었다.
이 장소는 보위부 국장이 여기로 온다는 첩보를 받고부터 준비한 간이 상황실이었다.
“없다고 다가… 왔구만.”
부하 직원에게 뭐라고 하던 중년의 안경 쓴 남자가 다가왔다.
“홍 요원.”
“예. 팀장님.”
국정원의 해외정보 1팀장, 김태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맞은편에 앉은 그놈은 누구야?”
“개방의 정보원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랐습니다.”
“장난해? 그 새끼 때문에 작전이 틀어질 뻔했어!”
스윽.
“보셨다시피 저라고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습니까.”
홍기동이 고개를 들며 말하자, 김태한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그래. 그래도 돌발 상황치곤 잘 넘어가긴 했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장쉬안이 상황을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뭐?”
조금 전의 일을 설명하자 김태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X발. 림영호는?”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습니다.”
“후우….”
김태한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작전은 강행한다. 이제 와서 무르기엔 늦었어.”
“예.”
“쯥…. 일단 상황부터 정리해 보자.”
팔랑팔랑.
장쉬안과 림영호의 대화를 받아적은 종이를 집어 든 김태한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우선, 장쉬안은 림영호를 통해 어떠한 약물의 판매 루트를 뚫으려고 한다. 가격을 들어보니 꽤 비쌌지? 뭐일 것 같냐.”
홍기동을 안내한 젊은 청년, 윤성훈이 손을 들고 말했다.
“마약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아.”
아무리 북한이라도 마약은 강력하게 단속한다.
“기냥 의약품 아니겄소? 파스, 뻘건약. 이런 거 말요.”
큰 덩치에 턱수염을 기른 남자, 정순용의 의견이었다.
그 말에 윤성훈이 반박했다.
“에이. 그 약을 누가 삼합회한테서 사 가요?”
“뭐 싸게 준다 했는갑지.”
“일리는 있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모니터 앞에 앉아 자료를 확인하던 여성, 박미연이 입을 열었다.
“보위성에서 사람을 보낼 정도면, 고작 의약품은 아니겠죠. 아마 군용이거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김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놈들이 별것도 아닌 물건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 리가 없단 말이지.”
“동의합니다.”
홍기동을 쳐다본 정순용이 김태한 팀장에게 물었다.
“그게 참말이면 큰일 나븐 거 아뇨?”
“그러니까 막아야지. 대신 무작정 거래를 파토내는 건 안 돼.”
“왜요?”
윤성훈의 물음에 김태한이 허리에 손을 짚으며 설명했다.
“장쉬안이가 팔아먹을래던 게 뭔지는 알아내야 되거든? 성훈아.”
“네.”
“기태는 아직 연락 없냐?”
조기태. 현재 림영호가 어디로 가는지 추적하고 있는 팀원이었다.
“아직 연락 없습니다.”
“그래? 연락 오면 바로 얘기해.”
“옙.”
“홍 요원.”
홍기동은 자신을 부르는 김태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장비는 권총밖에 없지?”
“그렇습니다.”
스윽.
김태한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방탄조끼를 건넸다.
“하나 챙겨. 보위부에 삼합회까지 엮였으니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예.”
그걸 묵묵히 받아든 홍기동은 그 자리에서 조끼를 덧대 입었다.
그러자 정순용이 슬쩍 다가왔다.
“기동이. 담배 한 대 피우자고.”
홍기동은 정순용을 따라 빈방으로 들어갔다.
“아, 자네가 담배를 태웠는가?”
“아뇨.”
“그럼 나 혼자 펴야 쓰겄네.”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인 정순용이 재떨이에 침을 탁 뱉었다.
“어으, 씨X럴. 김 팀장 저 양반은 기냥 설명해 줄 것이지, 꼭 한 번씩 물어븐다니께.”
정순용은 투덜대며 담배를 태우다 물었다.
“기동이 자네는 중국에 먼저 와 있었담서. 뭐 땀시 미리 왔당가?”
“…그냥, 볼일이 있었습니다.”
“아하. 글쿠마잉.”
그 말에 정순용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근디 말여. 나가 어디서 줏어 들은 게 있는디.”
“뭘 말입니까.”
“자네가 원장님 거시기라고.”
정순용이 손가락을 수직으로 까딱거렸다.
“….”
“직속 말여. 직속. 아녀?”
“몇 번 개인적으로 만났을 뿐, 그런 건 아닙니다.”
“기여?”
정순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기를 빨아들였다.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적당히 흡연 장소에서 빠져나온 홍기동에게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C – 돌아오기 전에 모든 자료 회수. 전원 제거.]메시지의 내용을 본 홍기동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해외 1팀의 팀원들을 쳐다봤다.
“….”
잠시 그러고 있던 홍기동은 답신을 보냈다.
[확인.]* * *
국정원장 차영규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 바쁜 양반이라 그런지 전화 연결이 되진 않았다.
그 대신으로 나는 인천의 야쿠자, 스가와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왕래가 없던 사이토 회장에게 슬슬 떡밥을 던져줄 때가 됐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으니까.’
사이토 회장도 복수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기에 나와 협력하기로 한 것이긴 하다.
그래도 초장부터 나에 대한 평가를 낮추고 시작할 순 없었다.
뚜르르-.
한 20초쯤 신호음이 울렸을까.
탁.
-여보세요.
“바빠?”
-통화할 시간 정도는 있다. 무슨 일이지?
“대충 가닥이 잡혀서 그런데, 너희 회장한테 말 좀 전해줘라.”
그 말에 스가와라가 반색했다.
-드디어.
“왜. 재촉이라도 당했나?”
-말도 마라. 3일에 한 번씩 연락할 때마다 은근히 압박하시는 게…. 아니지. 어서 말해봐라.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구상한 계획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삼합회의 세력은 공안의 철퇴를 맞고 대폭 축소될 예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성수를 일본에도 팔아넘기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될 거다.
그럼 자연스레 야쿠자와 삼합회의 골은 깊어질 터.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지?
“이전에 회장이 말했다시피, 야쿠자가 연합에 들어오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해.”
동아시아부터 미국까지 걸친 권력자 및 범죄 조직들의 공동체.
서클. 또는 태평양 연합.
야쿠자들이 적대하는 선생이 거기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지금껏 그들은 연합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삼합회는 연합 내에서도 꽤 입지가 있는 조직이지. 머릿수도 많고, 넓은 땅덩어리는 무시 못 할 이점이야.”
하지만 내분으로 세력이 쪼개지고, 국제적인 질타를 받은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탄압한다면.
“그놈들이 아무리 날고 기는 놈들이라고 해도 뭘 어쩔 수 있겠어?”
-우리 스미요시카이가 삼합회의 빈자리를 대체하라는 건가?
“그래. 삼합회가 떨어져 나가면, 이제 남은 뒷세계는 일본뿐이니까.”
스가와라가 미심쩍은 듯 물었다.
-그것만으로 명분이라기엔 부족하지 않나?
“부족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기까지만 해 주면 나머지는 내가 채울 수 있어.”
사이토 회장의 스미요시카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거대 야쿠자 조직에게 연합에 들어오는 걸 조건으로 미래 지식을 푼다.
결국 그들은 군침을 흘리며 합류할 수밖에 없을 거고, 스미요시카이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동참하면 된다.
-좋아. 그렇게 한다 치자. 그 대가로 마약, 밀수. 온갖 범죄자들이 일본으로 모일 거다.
연합의 몇몇은 아마 조건을 내걸 것이다.
거대 야쿠자들이 지시한 마약 금지의 철회 정도일까.
위험한 한국과 중국 대신 일본에 팔아야 할 테니 말이다.
스가와라는 일본에 억제해 두고 있던 마약이 풀릴 걸 걱정하고 있었다.
“그 정도 요구사항은 들어줘야 할 거다. 그리고 암흑가로 도는 건 너희 쪽에서 관리할 수 있지 않나?”
-….
내 말에 스가와라가 침묵했다.
“복수를 얻으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야.”
-…일단 알겠다. 회장에게 전달하지. 어떻게 반응하실진 모르겠군.
딱히 부정적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사이토 회장도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을 뿐, 복수를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조금 허술한 부분이 있으면 알아서 메꾸겠지.
“그래. 수고해라.”
-이주혁.
“음?”
-정말… 삼합회를 칠 건가?
스가와라가 경고하듯 말했다.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데, 삼합회의 저력은 네 예상 밖일 거다. 머릿수에서 나오는 힘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전면에 나서는 건 민지훈일 테니까.
물론 사이토 회장과 스가와라는 그놈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기에, 이 사람들한테 거기 관해선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잠시라도 손잡은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터.
마지막으로 갈아탈 버스를 벌써 뒤집어엎을 순 없는 노릇이니 당연한 거였다.
-그래. 생각이 있겠지. 끊겠다.
녀석과의 통화를 종료하고, 나는 오래간만에 유나 씨를 만나기로 했다.
사실 본 지 며칠 안 되긴 했지만,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것처럼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인 거니까.
‘이럴 때 쓰는 게 맞나?’
어쨌든, 점심도 먹을 겸 풍원한정식을 들릴 생각이었다.
요새 프랜차이즈로 또 뭐 하날 준비하고 있다는데, 거기 관해서도 좀 얘기해 보고.
저벅.
그렇게 차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려는데, 복도 저편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후배 녀석들을 발견했다.
“야! 니들 뭐해?”
“어, 행님!”
날 보고 후다닥 달려온 덩치, 돼지, 난쟁이가 반갑게 인사했다.
“행님. 안녕히 주무셨으예.”
“웬일로 이 시간에 여기 있냐?”
내 물음에 덩치가 대답했다.
“저랑 돼지는 꼬맹이 학교 델따주고 왔고예, 난쟁이 임마는 여기로 심부름 왔다가 마주쳤십니더.”
“심부름?”
“예. 재서이햄이 뭐 좀 가꼬 오라 캐서예.”
난쟁이의 손엔 서류봉투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럼 바쁘겠네. 점심 먹을 거라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돼지가 난쟁이를 뒤로 밀며 외쳤다.
“행님! 저는 전혀 바쁘지 않십니더.”
“저도예.”
“이, 이 쉐끼들이?!”
순식간에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 난쟁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뭐, 급한 일이야?”
“그건 아이고, 내일 필요한 거 미리 가꼬 가는 깁니더.”
“그럼 밥이나 한 끼 먹자. 내가 산다.”
“오오! 비싼 거 무도 됩니꺼?!”
“풍원한정식 갈 거야.”
“우오옷!”
신난 녀석들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뒤, 차를 끌고 도로로 나왔다.
부릉-.
그렇게 풍원한정식을 향해 액셀을 밟으려는데.
힐끗.
백미러를 통해 뒤쪽에 있는 검은 세단 하나가 보였다.
선팅이 상당히 짙었다.
나는 혀를 굴리며 핸들을 두들겼다.
‘비서실일까, 국정원일까….’
잠시 고민하다 페달을 밟았다.
피식.
‘뭐, 그거야 확인해 보면 알겠지.’
부우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