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93
#393화
나는 계속해서 룸미러로 뒤를 힐끗대며 차를 몰았다.
그러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덩치가 의아한 듯 물었다.
“행님. 뒤에 누구 있으예?”
“돌아보진 말고.”
“아, 옙.”
덩치는 내가 왜 이러는지 눈치챈 듯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
분위기는 급속도로 조용해졌다.
꿀꺽.
침을 삼킨 돼지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행님. 혹시 미행입니까.”
“어.”
“설마 선생인지 뭔지 하는 금마라예?”
“글쎄다.”
누가 저놈들을 보낸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일단 별 행동 없이 따라오기만 하는 걸 보면 날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조병철인가? 아니면 국정원?’
어쩌면 경찰 쪽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풍원한정식을 향해 차를 몰던 나는, 신호가 바뀌는 순간 액셀을 밟았다.
부웅-!
“어억!”
“우왓!”
끼익-.
코너를 돌고, 골목으로 들어가며 동선을 꼬았다.
내 목적지를 노출해서 좋을 건 없으니, 될 수 있으면 꼬리를 떨어뜨리고 갈 생각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갈고닦은 운전 실력을 발휘해 핸들을 좌우로 돌리며 길목을 누볐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오던 검은 세단은 보이지 않게 됐다.
“속이… 우욱.”
“따, 따돌린 거 같은데예?!”
정말 따돌린 건지, 눈치껏 빠진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뒤따라오던 놈들이 사라지긴 했다.
‘워낙 일을 벌여놔서 그런가, 누구 짓인지 추측하는 것도 힘드네.’
후보가 한둘이 아니었다.
쉽게 물러난 걸 봐서 날 적대하는 놈들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내 행적을 완벽히 숨길 순 없으니까.’
끼익-.
나는 풍원한정식의 주차장에 차를 댔다.
점심시간인 탓인지 차들이 꽤 많았다.
“어서 오세요. 풍원한정식입니다. 몇 분이세요?”
낯선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최근 장사가 잘 돼서 직원을 늘린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4명입니다.”
“네.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복도를 지나며 마주친 강예원과 눈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크. 행님. 이래 저희 넷만 있는 것도 오랜만 아입니까?”
방석도 없이 자리에 털썩 앉은 덩치가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
“그러게.”
아버지와 살던 집에 얘네랑 모여 지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거기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다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라이까예. 통영 촌놈들이 이런 비싼 한식당도 와보고. 진짜 출세했십니더.”
녀석들이 히죽 웃었다.
그러던 난쟁이가 물었다.
“근데 행님. 아까 금마들은 누굴까예?”
“안 그래도 경찰한테 한번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송태석 과장이면 번호판 조회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니까.
우웅-.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타이밍 좋게도 송 과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꾹.
눌러서 내용을 확인한 나는 눈매를 좁혔다.
[대포차네. 기록 뒤져봐도 나오는 건 없다.]“쯧. 대포차라네.”
“하기사, 미행하는 데 지 차 쓰는 빙신은 없지예.”
순간 불길한 상상이 스쳐 테이블 밑을 손으로 슥 훑었다.
그리고 방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뭔가 수상한 장치는 없나 확인했다.
유난일 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들이 주절주절 떠들다 보면 무슨 정보를 흘릴지 몰랐다.
드륵-.
그때, 아까 지나가다 봤던 여직원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직원은 벽을 더듬거리는 날 보고 살짝 놀란 듯 물었다.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신지…?”
“아, 아닙니다. 파리가 있길래.”
“파리요?”
직원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위생을 중시하는 식당에서 파리가 나왔다는 것 때문인 듯했다.
유나 씨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기에 황급히 손을 저었다.
“그게, 확인해 보니 잘못 본 것 같네요. 제가 시력이 별로 안 좋아서. 하하….”
내가 생각해도 어색하게 둘러대자, 여직원은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음식을 놓고 나갔다.
아무래도 유나 씨한테 얘기하려는 분위기였다.
‘젠장. 괜히 호들갑 떨었나.’
나는 실실 웃고 있는 녀석들한테 괜히 짜증을 냈다.
“그만 쳐다보고 밥이나 먹어라.”
“옙!”
“잘 먹겠십니더!”
후루룩. 우걱우걱.
돼지를 필두로, 녀석들은 한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밥을 처먹기 시작했다.
식사 예절을 따지는 성격은 아니라, 나도 맑은 소고기뭇국을 떠먹었다.
“크.”
역시 풍원한정식은 맑은 국물이 일품이라니까.
물론 메인요리도 훌륭했다.
그렇게 식사를 음미하는데, 돼지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행님.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예.”
“어. 물어봐.”
“김정우, 그 양반 뒤는 와 캐시는 깁니꺼.”
작년, 김정우가 내 포섭을 거절하고 우리 회사를 탈출한 적이 있었다.
덩치가 잠깐 막아서긴 했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갔었다.
그 일도 있었을뿐더러, 돼지는 흥신소 일을 돕고 있기에 충분히 궁금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 정도는 말해도 괜찮겠지.’
방을 한번 삭 훑었는데도 딱히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그러니 간단한 설명 정도는 해줘도 상관없을 거다.
“그놈이 모시는 사람에 관해 알아봐야 되거든.”
“아, 그래서….”
돼지도 눈치를 보고 더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말을 아끼는 걸 느꼈는지 덩치가 씩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는 술 먹고 암 말이나 지껄여도 들을 사람 하나 없었는데. 안 그렇십니꺼.”
“하. 그러네.”
주철수 잡고 재벌의 삶이나 한번 살아볼까 했었다.
근데 어쩌다 이렇게 인생이 꼬여버렸을까.
“염병. 밥이나 먹자.”
“흐흐. 예.”
나는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퍼 입에 쑤셔 넣었다.
* * *
음식을 서빙했던 여직원이 빈방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사장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드륵-.
문을 닫고 뒤를 슬쩍 돌아본 직원은, 이내 갈비찜이 담겨 있던 그릇으로 손을 뻗었다.
달그락.
그리고 그 아래에 붙어 있던 조그마한 장치를 회수했다.
스윽.
그것을 주머니에 넣은 직원은 조용히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 * *
나는 오랜만에 여기서 주방 겸 경호원으로 일하는 정태섭과도 인사를 나눴다.
어쨌거나 본 목적은 유나 씨였지만.
“그럼, 가볼게요.”
“네. 연락해요!”
미소를 지으며 날 배웅해 준 유나 씨가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
뒤통수가 따가워서 고개를 돌려보니, 후배 녀석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냐.”
“새삼 부러워서 그라지예. 그 얼음 같던 형수님을 어떻게 녹이셔가지고.”
하긴, 예전의 유나 씨와 지금의 유나 씨를 비교하면 온도 차이가 상당히 나겠지.
처음 만났을 땐 굉장히 차가운 느낌이었으니까.
지금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살갑게 굴어준다.
“너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덩치야.”
그 말에 난쟁이가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행님. 노력한다고 다 되는 기 아이라예. 점마 보이소. 덩치만 있지 면상이 영 꽝이다 아입니까. 저는 얼굴은 나름 괜찮은데 키가….”
“마, 내 얼굴이 뭐 어떤데!?”
“어떻긴 뭘 어때. 15세 미만은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는 면상이지.”
“이런 씨!”
“괘안타. 그래도 얼굴에다 몸매까지 저 모양인 돼지 점마보단 낫다 아이가.”
“이 개쉐끼가! 가마 있는 내는 왜 건드노!”
갑자기 셋의 언쟁이 시작될 분위기길래 녀석들을 말렸다.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왜 그러냐. 시간 나면 배상훈이랑 좀 놀러 다니던가. 그럼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배상훈은 요새도 일주일에 두 번은 클럽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래야겠십니더. 내가 니보단 더 빨리 애인 만들 끼다.”
“지랄.”
나는 아직도 투닥대는 녀석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얘넨 변하질 않네.
그래도 이렇게 편한 분위기로 있으니 아무 것도 없던 작년 생각도 나고 좋았다.
‘이제 다시 복귀할 시간이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시시덕대고 있을 순 없었다.
날 미행하던 검은 세단. 그리고 조병철의 약점을 알고 있을 김정우의 조사.
해야 할 일들을 끝내야 됐다.
“돼지야.”
“예.”
“연락 온 거 없냐?”
내 물음에 핸드폰을 확인한 돼지가 고개를 저었다.
“예. 아직 없십니더.”
“뭐 나오면 바로 얘기해라. 나 없으면 전화하고.”
“그랄게예.”
“그리고 난쟁이.”
“예, 예.”
“넌 요새 편하냐?”
내가 눈을 흘기며 묻자 녀석이 찔끔했다.
“아, 뭐 편한 것까진 아이고….”
“죽어가는 우재성 씨나 좀 도와줘라. 로운이는 이제 알아서 잘 하니까.”
“예에….”
난쟁이는 최근 이로운의 상식 교육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황성빈의 여동생이 로운이 녀석과 붙어 다니며 챙겨준다고 들었다.
‘다시 실무로 던져넣을 때가 됐단 소리지.’
나는 왜인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덩치에게 말했다.
“덩치는 나랑 어디 좀 가자.”
“오오! 예! 좋십니더!”
“어딘진 알고 좋아하는 거냐?”
팔짱을 낀 채 흐흐 웃음을 흘린 덩치가 입꼬리를 올렸다.
“행님이랑 둘이 함께하는데, 어딜 가서 뭘 하든 무슨 상관입니꺼.”
그때, 마침 주차장으로 차 한 대가 굴러 들어왔다.
당분간 내 경호를 서기로 한 황성빈이 몰고 온 차였다.
스르륵 다가온 차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갔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어. 넌.”
“전 먹고 왔습니다.”
뒤적.
나는 바지 주머니를 뒤져 차 키를 돼지에게 던졌다.
“엇.”
“먼저 돌아가서 볼일 봐라.”
“예. 근데, 어디 가시는 깁니꺼?”
“그건 비밀. 갈 때도 아까 내가 한 것처럼 빙빙 돌아.”
날 미행하던 놈들이 과연 포기했을까.
아니. 그런 녀석들은 어지간해선 끝까지 따라붙는 경우가 다반사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대기 중이거나, 우리가 있을 만한 곳을 돌아다니는 중이겠지.
그래서 덩치와 난쟁이가 먼저 차를 타고 가게 하는 거다.
선팅이 짙어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진 정확히 보이지 않을 테고, 여기 낚여서 얘네를 따라갈 확률이 높으니까.
‘그 틈을 타서 난 조용히 빠진다.’
지금부터 할 일은 보는 눈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으니 말이야.
“타자.”
탁.
내가 조수석에 오르자, 뒤에 탄 덩치가 궁금한 듯 물었다.
“행님. 근데 진짜로 어디 가는 건데예?”
“삼합회 지부.”
“예?”
나는 당황한 얼굴의 덩치에게 확인 사살하듯 말했다.
“삼합회 놈들 찾아간다.”
* * *
딸깍.
국정원장, 차영규는 부하 직원이 보낸 녹음 파일 하나를 받았다.
풍원한정식에서 이주혁이 나눴던 대화를 딴 것이었다.
이주혁의 주변인에 관한 정보도 수집할 겸 해서 요원 하나를 위장으로 취업시켰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간 만에 성과가 나왔다.
딸깍. 딸깍.
차영규는 그의 컴퓨터로 파일을 재생했다.
녹음 파일에선 낮은 음질로 이주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닙니다. 파리가 있길래.
-파리요?
-그게, 확인해 보니 잘못 본 것 같네요. 제가 시력이 별로 안 좋아서. 하하….
잠시 시답잖은 내용의 대화가 지나가고, 드디어 본론이라고 할 만한 게 나왔다.
-김정우, 그 양반 뒤는 와 캐시는 깁니꺼.
-그놈이 모시는 사람에 관해 알아봐야 되거든.
이주혁이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아마 조병철일 것이다.
그에게 결정적일 때 사용할 조병철의 약점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바로 차영규였으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나온 김정우라는 이름의 인물이 조병철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그의 측근이라면 뒤가 깨끗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까 이주혁이도 김정우라는 놈을 캐려는 거겠지.’
차영규는 조사를 위해 부하 직원에게 이름 석 자를 보내며 생각했다.
‘김정우. 이놈 밑천을 한번 털어봐야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