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95
#395화
“마종석 씨.”
“…예.”
“나랑 다시 함께합시다.”
“…!”
그 제안에 마종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침묵하던 마종석이 물었다.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질문을 들은 민지훈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유능합니다. 개인의 무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쓸 줄 알죠. 그리고 용병계에 걸친 인맥도 꽤 유용합니다. 원한 관계가 없으니까요.”
마종석은 호승심이 강하긴 해도, 다혈질적이거나 과격한 성격은 아니다.
그 덕에 용병으로 활동하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과 어지간해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날 다시 고용하시겠다?”
“그렇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당신 입장에서 난 상대편으로 붙은 놈일 텐데, 또 나를 믿겠단 말입니까?”
“마종석 씨에게 한 의뢰는 주철수의 곁에서 그를 감시하는 것. 하지만 주철수가 죽었으니, 우리 의뢰는 거기서 끝난 겁니다.”
민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뒤론 당신이 이주혁의 의뢰를 받든 말든 상관없는 거죠.”
“…명분은 잘 들었습니다.”
마종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이유를 듣고 싶은데요. 이미 이주혁과 일하는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 이유를.”
그러자 씨익 웃은 민지훈이 대꾸했다.
“이유를 들으면 의뢰를 수락해야 하는데.”
마종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현재 그는 비무장 상태.
습격이라도 받으면 대처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제기랄.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했어야 됐어.’
마종석이 속으로 욕을 삼키는 사이 민지훈이 덧붙였다.
“협박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의뢰 내용이 알려지면 꽤 곤란해질 수 있어서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럴까요. 그럼 블랙맘바의 명성을 믿고 말하죠.”
스윽.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민지훈의 입에서 그의 목적이 흘러나왔다.
“한국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걸 들은 마종석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보전이라면 그 누구보다 뛰어난 게 당신 아닌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미국까지.
선생의 하수인들은 곳곳에 있었다.
그만큼 그의 정보망은 탄탄했다.
그런 마종석의 의문에 민지훈이 뒤로 몸을 기대며 설명했다.
“원래 한국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자가 최근 들어 조금 이상해서 말입니다. 믿음이 안 간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믿을 만한 용병을 고용하겠다는 소립니까?”
민지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 한 명 정도는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요. 그 사람과는 달리.”
그 말에 마종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렇군요. 자세한 의뢰 내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받아들이시는 건지?”
“다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말없이 미소짓는 민지훈을 본 마종석이 한 마디 추가했다.
“참고로, 긍정적으로 생각 중입니다.”
“좋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이주혁에 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
미간을 찌푸린 마종석이 되물었다.
“이주혁 말입니까? 지금은 협력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하하. 협력이라…. 순진한 말씀은 하지 마시죠.”
이 세상에서 끝까지 같은 편일 순 없다.
마종석도 그걸 잘 알고 있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망설임이 생겼다.
“그는 내 유일한 이해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날 절대로 이해하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개소리냐, 라고 하고 싶은 걸 참았다.
“자세히 설명해 드릴 건 아니고… 어떻게, 마음의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끄덕.
“보수는 어떻게 됩니까.”
마종석에게서 나온 긍정적인 대답에, 민지훈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수금 50만 달러. 의뢰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100만 달러 더 드리죠.”
“…!”
페이가 상당했다.
하지만 마종석은 곧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선수금 100만 달러로 합시다.”
“왜죠?”
“그놈들 사이에서 간첩 노릇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아시잖습니까.”
눈치 빠른 이주혁과 감이 좋은 라세흠.
그 둘을 제외하더라도 이주혁의 사람들은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다.
설령 스파이 짓이 걸리기라도 하는 날엔 뼈도 추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좋습니다. 선금 100만 달러. 스위스 계좌로 송금해 드리면 됩니까?”
“예.”
스윽.
“잘 부탁드립니다.”
마종석이 손을 내밀었다.
잠시 그 손을 내려다보던 민지훈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아, 하나 궁금한 게 있군요.”
마종석은 손을 거뒀다.
“뭐죠?”
“미국엔 어떤 용건으로 오신 겁니까?”
“…DS컴퍼니의 대표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대표요?”
“아니, 헨리 이사요.”
현재 DS컴퍼니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이는 대표가 아닌 헨리였다.
그 말을 들은 민지훈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헨리를 암살하러 온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경고라도 하랍니까?”
마종석은 정곡을 찌르는 민지훈의 물음에 혀로 입술을 핥았다.
‘하여튼 날카롭군. 사람 마음이라도 읽을 줄 아는 건가.’
순순히 대답하고 싶진 않았지만, DS컴퍼니와 깊게 엮여있는 자가 그였기에 적당히 상황을 설명했다.
“헨리가 이주혁을 죽이려고 하는 건 알고 있습니까?”
“소식은 들었습니다. 한국이 또다시 떠들썩했더군요.”
민지훈은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였다.
“…이주혁은 경고를 위해 절 보낸 게 맞습니다.”
“마종석 씨를 보낸 이유도 대충 알겠습니다. 신상이 노출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나와 관련이 있으니 그랬겠죠.”
저 말이 맞았다.
헨리는 이주혁 주변 인물의 신상을 조사했지만, 마종석은 그 대상이 아니었다.
SA시큐리티의 직원도 아니었고, 바깥을 오갈 때는 항상 모자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니 말이다.
굳이 더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낀 마종석이 말했다.
“상황은 짐작하신 것 같은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도와달라고요.”
“예. 제가 이름을 파는 것보단,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게 더 효과가 좋지 않겠습니까.”
“뭐, 좋습니다.”
민지훈은 예상보다 흔쾌히 마종석의 요구를 수용했다.
“안 그래도 슬슬 목줄을 쥐려던 참이었으니, 어려울 거 없죠.”
드륵.
민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그럼, 마종석 씨는 돌아가서 이주혁에게 해결됐다고 이야기하세요.”
“…알겠습니다.”
“앉아계시죠. 배웅은 사양하겠습니다.”
딸랑-.
민지훈은 그의 뒤를 따르는 수하들과 함께 카페를 나섰다.
엉거주춤하게 있던 마종석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
생각에 잠긴 그의 옆으로 직원이 다가왔다.
“커피 나왔습니다.”
덥석!
“어엇!”
마종석은 직원의 손목을 붙잡고 물었다.
“주문한 적 없다만.”
“아, 그… 맞은편에 계시던 손님이 주문하셨던 겁니다. 본인이 떠나면 드리라고….”
손목을 놓자, 직원은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 돌아갔다.
“….”
잠시 새까만 커피를 내려다보던 마종석은 살짝 입술을 댔다.
묵직한 향과 씁쓸한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후….”
마종석은 커피를 즐기는 척하며 티 나지 않게 눈을 굴렸다.
이 가게 안에 둘. 창밖에 셋.
그를 감시하는 인원의 수였다.
‘시선이 끈적하군.’
감시하는 걸 숨기려는 듯했지만, 그동안의 전장 경험으로 단련된 마종석의 직감을 속일 순 없었다.
결국 마종석은 감시자들이 자리를 물릴 때까지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후룩.
마종석은 자신에게 달라붙던 시선들이 없어진 걸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에 온 건 큰 실수였다.
‘아니지.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선생의 의뢰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완전히 이주혁에게서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이주혁의 자산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일만 열심히 한다면 선생에게 받을 보수 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다만 고민인 것은, 최후에 일어날 이주혁과 선생 간의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선생 편에 붙었다가 이주혁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끝장이다.
그렇다고 이주혁을 믿고 선생의 뒤통수를 치기엔 객관적인 전력 차가 명확히 보였다.
‘이주혁이 조커 카드긴 하지만… 선생에 비하면 약세인 것도 사실이야.’
그러나 이주혁은 최근 들어 한국의 높으신 분들과 자주 만나며 무언가 일을 꾸미는 중이었다.
‘언제까지고 미룰 수도 없다.’
섣불리 결정하지 않아도 문제였다.
양쪽 모두에게 박쥐 취급당하며 버려질 가능성도 있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마종석은 가게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X발. 인생 한번 더럽게 꼬이는군.”
* * *
우리는 한참을 달려 삼합회의 성남지부가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여깁니꺼.”
“어.”
지난번에 왔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평범하게 일하는 과일 장수, 떡집 주인, 노점상.
어딜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이들의 정체가 삼합회 조직원이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가자.”
길이 대충 눈에 익는 것 같아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부장님과 깽판을 친 걸 기억하는지, 상인 몇은 날 보더니 빠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묘하네요.”
“걱정할 건 없어.”
삼합회에 속해 있다고 전부 칼잡이 출신이고 이런 건 아니다.
그저 상부에 가져다 바칠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놈들일 뿐, 위험하진 않았다.
저벅.
그렇게 얼마나 안쪽으로 향했을까.
뒤에서 따라오던 덩치가 조용히 물었다.
“행님. 언제까지 들어가야 되는 겁니까?”
나는 좌우로 눈을 굴렸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가게들의 숫자가 줄고, 목적을 알 수 없는 빈 상가들이 보일 무렵.
‘왔구만.’
골목에 서 있던 한 무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이. 니기들 뭐야?”
“여기 대장 만나러 왔는데.”
“뭐?”
그 말에 선두에 서 있던 남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썅간나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아, 잠깐만.”
내가 손을 들자 다가오려던 남자들이 멈칫했다.
“귀찮은 일 만드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좋게좋게 갈 생각은 없냐?”
“이 개새끼가 뭐라니!”
놈이 까끌까끌해 보이는 수염에 침을 튀기며 나머지 둘에게 소리쳤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여길 아주 만만하게 보는구나 야. 저 새끼 손 좀 봐주자!”
놈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하아.”
“행님. 여긴 저한테 맡겨주이소.”
“뭐? 쟤넨 셋인데?”
씨익.
덩치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앞으로 성큼 나섰다.
“딱 봐도 비리비리한 기, 혼자 함 해 봐도 될 거 같은데예.”
“그래라. 그럼.”
나는 위험해 보이면 곧바로 끼어들 생각으로 뒤로 물러났다.
부웅!
가장 먼저 달려온 놈이 덩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덩치는 상체를 틀며 가볍게 피해냈다.
“썅!”
그리고 자세가 무너진 놈을 어깨로 밀친 뒤, 따라서 달려오던 남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돌진했다.
기습적인 태클은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쿵!
“커억!”
덩치의 무게를 더해 땅에 처박힌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개새끼가!”
덩치의 얼굴로 옆에 있던 녀석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퍼억!
덩치는 가드를 들어 발차기를 막은 뒤,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밀었다.
“어억!”
균형을 잃은 남자가 털썩 넘어지자, 덩치는 놈의 배를 발로 뻥 차버렸다.
“크엑!”
멱 따는 소리를 내며 배를 부여잡는 동료를 본 마지막 놈이 이를 악물었다.
“이런 씨X랄. 누가 보낸 기야!”
치킹.
아니나 다를까, 놈은 궁지에 몰리자 칼을 뽑아 들었다.
슬슬 끼어들까 하던 그때, 덩치가 오히려 먼저 뛰어들었다.
그에 남자가 칼을 휘둘렀지만.
“개색…!”
덥석!
덩치는 놈의 칼을 든 손목을 붙잡은 후, 그대로 멱살을 잡고 박치기를 날렸다.
쩌억-!
뭔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놈은 거품을 물며 몸을 허물어뜨렸다.
“후우….”
숨을 고른 덩치가 나를 돌아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떻십니까! 행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었다.
“잘했다.”
덩치가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