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96
#396화
“후우….”
숨을 고른 덩치가 나를 돌아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떻십니까! 행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었다.
“잘했다.”
덩치가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툭툭.
어깨를 두드려 준 뒤, 녀석을 지나쳐 바닥에서 꿈틀대는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햄. 내 어땠노.”
“좀 치던데. 백기준 씨 정도는 제끼겠어.”
“아, 글나? 예전에 내가 아이긴 하지. 가서 함 붙자 캐야겠다.”
등 뒤에서 덩치를 담그기 위해 진행되는 계획은 무시한 채 한 놈의 옆에서 몸을 숙였다.
“너희 대장 자리에 있냐?”
내 물음에, 배를 잡고 꺽꺽대던 놈이 결연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내가 입을 열 것 같니!”
“너희가 먼저 덤벼서 반격한 거지, 해코지하려고 온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대화. 평화로운 대화가 내 목적이다.”
그 말을 들은 놈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 그거를 어떻게 믿나.”
“지금 네가 날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해? 난 아주 중요한 용건으로 온 거야.”
척.
“그런데, 너 때문에 내가 그냥 돌아가면. 손해를 보는 게 누구겠어?”
“…….”
“적어도 난 아닐 것 같은데.”
인상을 찡그린 채 고민하던 놈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내는 해 주겠다.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기야. 거긴 우리 동료들이….”
“알았다. 알았어. 안내해.”
나머지 둘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썅! 그렇게 아가리를 놀린다고 안내해줄 것 같…!”
빠악!
앞사람과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졌다.
“여긴가.”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의 보스가 지내는 곳은 바로 한 다방이었다.
직전의 지부장이었던 유선규는 허름한 집에서 살더니, 여기 대가리들은 전부 취향이 오묘했다.
딸랑-.
쭈뼛대는 놈들을 따라 다방 안으로 들어서자, 가게 안쪽에서 퇴폐적인 인상의 한 여성이 나왔다.
“뭐야. 손님?”
언뜻 보면 40대 초중반의 평범한 사장으로 보이지만, 앞에 있던 놈들의 어깨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예. 손님이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덩치와 황성빈도 눈치껏 따라 앉았다.
또각. 또각.
다가온 여사장이 우리 앞에 생수를 탁 놓으며 물었다.
“뭘로 드려요?”
“행님. 시켜도 됩니꺼.”
“어. 앉았는데 각자 목은 축여야지.”
“그라모… 쌍화차로 한잔 주이소. 노른자 동동 띄워가.”
“네가 쌍화차도 먹냐?”
덩치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다.
“아부지가 좋아하셔가지고예.”
“그래? 그럼 난 커피로 하지 뭐.”
“비율은요?”
“사장님 비법대로. 황성빈 너는?”
“저도 같은 걸로 하겠습니다.”
끄덕.
“오케이. 노른자 동동 쌍화차에 커피 둘. 조금만 기다려요?”
주문을 받은 여사장이 물러났다.
저기서 준비하는 게 커피일지, 다른 무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으….”
삼합회 놈들이 가게 안을 힐끗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누군지 모를 우리를 여기까지 안내한 데다가, 내가 여유롭게 커피가 주문하고 있으니 불안한 거겠지.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는 놈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여사장이 우리가 주문한 것들을 가지고 다가왔다.
탁. 탁. 탁.
잔을 앞에 하나씩 놓아준 여사장이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
“때렸니? 얼굴이 상했던데.”
“지나가는데 먼저 시비를 걸길래.”
여사장이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 그랬어?”
“그게….”
“예, 예. 덩치 크고 인상두 디럽길래… 다른 구역에서 넘어온 놈들인 줄 알았슴다.”
“하아.”
한숨을 내쉰 여사장이 팔짱을 꼈다.
“우리 애들이 사고를 쳤나 보네. 사과할게.”
“받아들이죠.”
“고마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할까?”
나는 미소를 짓는 여사장의 눈을 마주 봤다.
누군지도 모르는 건장한 남자 셋을 앞에 두고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보통이 아니야.’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건네며 말했다.
“이주혁입니다.”
“이주혁…. 정말 이름만 말할 건 아니지?”
“내가 누군지 설명 안 해도 아는 눈치인데요.”
그 말에 여사장이 슬쩍 웃었다.
“아니라곤 못 하겠네. 유선화야.”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혹시 유선규 씨와 관계가 있으십니까?”
유선규. 작년에 사망한 이전 성남지부장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은 유선화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사촌 오빠였지. 선규 오빠를 아니?”
“예전에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습니다. 소탈한 분이었죠. 유감입니다.”
사실 만나서 한 이야기라곤 정보를 뜯어낸 것밖에 없지만, 적당히 안면이 있는 척을 하는 게 나았다.
“오빠가 그런 성격이긴 하지. 정말 손님이었네.”
유선화가 우리를 안내한 놈들을 째려봤다.
“죄, 죄송함다.”
“다시 한번 사과할게. 쟤네가 착한데 성격이 너무 급해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요새 착한 사람들이 주머니에 칼을 넣고 다녔던가요?”
“너무 비꼬진 말고. 다친 덴 없잖니?”
“그렇긴 하죠.”
뻔뻔한 태도에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너무 압박하는 것도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협조를 구하는 게 좋으니까.
“그래서, 여긴 어쩐 일로 찾아온 거야?”
유선화가 짝다리를 짚으며 물었다.
“그 전에 이것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성남지부는 본토와 얼마나 자주 교류합니까?”
“외부인한테 내부 사정을 말하라고?”
미간을 찌푸리는 유선화에게 덧붙였다.
“대답해 주셔야 도울 수 있습니다.”
“네가 우릴 어떻게 돕는다는 거지?”
나는 날카로워진 유선화의 눈빛을 보며 말했다.
“유선규 씨를 살해한 게 누군지 아시죠?”
“….”
유선규와 그의 수하 몇이 죽은 사건.
겉으로는 조선족 조폭들의 내분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홍콩지부에서 온 왕후성의 수하들에게 제거당한 것이었다.
성남지부를 몰아내고 한국에 거점을 만들기 위한 선생의 지시였다.
“알지. 알다마다.”
유선화의 눈빛에는 명백한 적의가 서려 있었다.
“그럼 그들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이 삼합회의 보스가 될 거란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
장쉬안을 일컫는 말에 유선화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
“하지만 유력하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그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가 뭐니?”
이유는 간단했다.
아마 모든 지부장에게는 삼합회의 소식이 전해지는 것 같은데, 마침 난 그놈들의 정보가 필요했다.
“유선화 씨와 손을 잡고 싶습니다.”
“원하는 게 뭔데?”
“삼합회의 정보입니다. 현재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럼, 넌 나한테 뭘 줄 수 있지?”
후룩.
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복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뭐?”
“오. 커피 맛이 좋네요.”
“자세히 말해봐.”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스윽.
손가락 두 개를 펼친 뒤, 하나씩 접었다.
“왕후성. 이놈은 이미 뒈졌으니 어쩔 수 없고, 장쉬안. 이자에게 복수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
잠시 동요하던 유선화는 이내 침착하게 대꾸했다.
“장쉬안은 거물이야. 네가 돕는다고 해서 과연 그를 잡을 수 있을까?”
“예.”
유선화는 내가 당당하게 대답하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대체 뭘 믿고 그렇게 호언장담하는 거니?”
“유선화 씨는 저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글쎄. 강남파와 전쟁을 벌인 미친놈?”
“….”
생각보다 아는 게 많진 않네.
하긴, 삼합회에서 사람을 풀어봤자 내 정보는 많이 얻을 수 없었을 거다.
고작 이런 데 들킬 만큼 허술하게 행동하지도 않았고.
“유선화 씨. 장쉬안이 보스가 되면, 성남지부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마 정리되겠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이곳, 성남지부는 한국에 남은 유일한 삼합회 지부다.
본단과 연락을 주고받긴 하지만, 아무래도 타국에 있다 보니 소외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거기다 장쉬안은 왕후성이 죽기 전, 나와 유선규가 만났다는 것까지 알고 있을 터.
그놈으로선 성남지부를 남겨둘 이유가 없는 거다.
“물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보복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들은 버티지 못하겠죠.”
“그러니까, 당하기 전에 먼저 쳐라. 이거니?”
“그렇습니다. 전 그 일을 도울 능력이 있고요.”
“하….”
한숨을 내쉰 유선화가 얌전히 눈치만 보고 있는 수하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담배 좀 줘 봐.”
“예.”
치익.
연기를 길게 내뿜은 유선화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난 너도 믿기 힘들어.”
“이해합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복수를 돕겠다는 놈을 의심 없이 믿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장쉬안은 뒤탈이 생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들었으니까.
이리 죽나, 저리 죽나.
유선화는 내 제안을 일단 받아들일 수밖엔 없을 거다.
“좋아.”
역시 내 예상대로 유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너의 도움이 필요해. 우리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이상하잖아?”
틀린 소린 아니었다.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성남지부가 정보를 얻기 위해 나서면, 다른 이들이 의문을 갖는 건 당연할 일이다.
“다른 지부와 같은 선상에 올라갈 만한 게 있어야돼.”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은 약자와는 맞먹으려고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 약자가 손에 폭탄을 들고 있다면 어떨까.
최소한 대화로 해결하려고는 하겠지.
위로 올라갈 수 없을 땐, 상대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전생의 강남파 시절, 주철수의 지시로 흑색선전을 통해 한 후보의 대선을 완전히 망쳐버렸던 일이 기억났다.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자, 유선화는 꺼림칙한 걸 본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유선화를 보며 말했다.
“고춧가루는 제가 준비할 테니, 유선화 씨는 그냥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 * *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바깥으로 나왔다.
“진짜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했네예.”
“내가 말했잖냐.”
내 바람대로, 성남지부장과의 대화는 나름 유익하게 마무리됐다.
중간에 살짝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뭐. 그 정도는 사소하지.
“행님. 솔직히 이해가 안 가가 그런데예. 그 아지매랑 뭔 얘기를 그래 하신 겁니까?”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덩치를 쳐다봤다.
그 옆의 황성빈도 마찬가지로 눈에 초점이 없었다.
중간부터 멍 때리는 것 같더라니, 역시 하나도 안 들었구만.
“덩치, 너는 기억하지? 우리가 처음에 주철수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아, 예. 현금 못 쓰게 하고, 돈줄 막고 그랬었지예.”
“그래. 원래 몸집 큰 놈들은 바로 모가지를 못 따. 흠집부터 내야지.”
“아하.”
잠자코 듣던 황성빈이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고춧가루가 그겁니까?”
“정답.”
장쉬안이 뒤가 구린 놈이긴 하지만, 내가 알기로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는 없었다.
겉으로는 멀쩡한 제약회사의 사장일 뿐이니까.
하지만 난 놈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만들 예정이다.
‘차근차근 작업해 주지.’
장쉬안. 넌 선생과 손을 잡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