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DS컴퍼니 본사의 한 회의실.
그곳에서 임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보게. 헨리. 우린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엄연한 기업일세.”
“그렇소. 아직 구멍 난 인력을 메꾸지도 못한 상황에, 그 박사에게 연구비를 그렇게 많이 내주면 어떡하자는 거요.”
“지분을 주고 무기를 사 오는 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전쟁을 일으킬 것도 아니지 않나.”
그들은 쿠데타를 통해 DS컴퍼니의 실권을 잡은 인물, 헨리에게 따지듯 말하고 있었다.
턱을 치켜든 채 임원들의 이야기를 듣던 헨리가 입을 열었다.
“이거야 원, 회의가 아니라 청문회군요.”
스윽.
고개를 돌린 헨리는 총대를 메고 그를 데려온 임원을 쳐다봤다.
“크흠….”
그러자 그는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며 헛기침을 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헨리는 싸늘한 눈빛으로 임원들을 훑었다.
선생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임원 대부분이 사망했다.
전 대표를 따르는 이들이 제거되고, 적당한 사람을 새로운 임원으로 만들었다.
“헨리. 그 박사는 데리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네.”
“동감이다. 지금 그자 때문에 내가 관리하는 바이오테크의 예산이 부족해.”
“이전 이사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쯧쯧.”
“애초에 제이콥이 이상한 놈을 데려온 거지. 듣자 하니 보통 괴짜가 아니라던데.”
한 임원이 말한 이름에 헨리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주혁에게 당한 그의 친구, 제이콥.
이윤종 박사와의 거래를 담당한 게 바로 그였다.
“킬러들을 데리고 있던 것도 그자 아니오?”
“그렇네. 청소부 주제에 나서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묵묵히 그들이 쏟아내는 불만을 듣고 있던 헨리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눈치를 본 임원들이 하나둘씩 입을 다물었다.
‘무슨 눈빛이….’
‘그러고 보니 둘이 친구였다고 했나.’
임원들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예. 잘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닥터 리에게 투자하는 걸 그만두고, 지분도 되찾자는 말이군요.”
“그렇네. 고작 생화학 무기에 지분을 넘긴 건 실수였네.”
“고작이라고 불릴 만한 물건은 아닙니다만.”
임원 하나가 손가락을 들며 열변을 토했다.
“우린 기업일세. 기업. 군대가 아니라! 그런 걸 가지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단 말이네! DS컴퍼니가 정치인들과 친하긴 하다지만, 정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계의 주요 인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정부에서 직접 조사해 생화학 무기를 발견한다면, 절대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DS컴퍼니라는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가만두지 않겠지요.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라면?”
“미 국방부.”
그 말에 임원들이 흠칫했다.
“그들과 정당하게 거래한다면 아무도 문제 삼을 수 없을 겁니다.”
“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이미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임원들이 당황하며 수근대기 시작했다.
괜히 벌집을 들쑤시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국방부와의 커넥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물론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든 상관없었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우리 DS컴퍼니는 더욱더 발전해 나갈 테니까.”
기업가나 사업가 출신으로 뽑힌 임원들은 헨리의 방향성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온 이상, 그의 앞에서 대놓고 반대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다.
헨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건도 다 끝난 것 같은데, 회의는 여기까지 합시다.”
대답도 듣지 않고 회의실을 나온 헨리에게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다가왔다.
“이사님.”
“음?”
“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비서의 보고를 들은 헨리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왔다고?”
“예.”
“쯧. 하필 지금이라니.”
헨리는 혀를 차며 미간을 구겼다.
“지금 어디 있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 사무실에 외부인이 멋대로 들어가도록 놔둔 건가?”
신경질적인 반응에 비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후. 아니, 됐다. 가지.”
어차피 여기에 선생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헨리와 비서뿐이었다.
벌컥.
헨리는 본인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는 지적인 인상의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오셨군요.”
그의 뒤에 선 강인한 인상의 남자를 힐끗 쳐다본 헨리가 말했다.
“주인도 없는 방에 당당하게 드나드는군.”
“우리 사이에 뭘 그러십니까.”
선생, 민지훈의 너스레에 헨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그런 농담도 할 줄 알았나?”
말없이 미소 지은 민지훈이 손짓했다.
“일단 앉으시죠.”
“좋아. 바쁘니 용건만 교환하자고.”
“그러지요.”
헨리가 자리에 앉자 민지훈은 곧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요새 한국에 관심이 부쩍 많아시졌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만두시지요.”
그 말에 헨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만두라고? 지금 그만두라고 했나?”
헨리가 이를 악물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이주혁, 그놈이 제이콥을 죽였어! 시작부터 함께해 온 내 친구를!”
민지훈은 헨리의 강렬한 시선을 담담히 마주했다.
“헨리.”
“날 말릴 셈인가?”
“예.”
스윽.
앞으로 몸을 기울인 민지훈이 싸늘하게 말했다.
“자꾸 선 넘으려고 하지 마세요.”
“…….”
말문이 막힌 헨리가 무어라 소리치려 했으나, 민지훈의 추궁이 먼저였다.
“육군장관과 만났더군요. 무기 때문이었습니까?”
헨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히 아무에게도 알린 적이 없는데, 대체 이자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민지훈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물엇다.
“헨리. 계약한 대로만 하는 게 어렵습니까?”
“…선생에게 알리지 않은 건 내 실수야. 하지만 나도 손에 쥐고 있을 패는 필요하지 않겠나?”
“그럼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시죠.”
“둘?”
척.
민지훈의 손가락 두 개가 펼쳐졌다.
“나, 혹은 국방부.”
“….”
“하나를 쥐었으면, 다른 하나는 내려놓으셔야 할 겁니다.”
“글쎄. 사람 손은 두 개 아닌가?”
그 말에 민지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헨리. 우리가 서로에게 뭘 해주기로 약속했는지 잊었습니까?”
“아니, 좋아. 까놓고 얘기하지. 그들과 손잡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뭐야?”
“FBI가 붙었습니다.”
“뭐?”
“제이콥의 회사에서 몇 가지 문제가 될 만한 게 발견됐더군요.”
그가 습격당할 때 클레이모어를 설치했고, 폭발하는 일이 있었다.
가뜩이나 민감한 상황에서 폭발물이 사용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제이콥이 암살 의뢰를 처리하던 건물이었기에, 미처 숨기지 못한 관련 증거가 남아있었다.
그러한 민지훈의 설명을 들은 헨리가 침음을 흘렸다.
“…중요한 게 샌 건가?”
“수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마 불법을 저질렀다는 건 알아냈을 겁니다.”
제이콥이 처리하는 일은 암살에 관련된 것뿐만이 아니었다.
탈세, 돈세탁, 뇌물 수수.
온갖 더러운 일은 전부 도맡아 하고 있었으니, FBI에게 털리면 제이콥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금방이다.
“우선 꼬리 자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제이콥의 명예를 땅바닥에 내던지라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지요. 아니면 직접 나서서 죗값을 치르시겠습니까?”
헨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지금껏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떠오른 탓이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건 이해합니다. 다만 대비를 해두시라는 겁니다.”
“알았다.”
“그리고, 당분간은 한국에 관심 끄세요.”
그 말에 헨리가 고개를 들었다.
“복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아요.”
“…그건 동의해.”
“기회가 있을 겁니다. 기다리세요.”
헨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한국에 가 있는 수하들에게 이주혁을 죽이라고 지시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자신까지 해를 입을지도 몰랐다.
민지훈은 답답한 듯한 얼굴의 헨리를 향해 말했다.
“일단, 이미 잡힌 수하들의 입은 내가 막죠. 당신은 제이콥과 관련된 모든 걸 정리하시고요.”
“부탁하지. 용건은 그게 다인가?”
“네.”
“덕분에 바쁜 일이 생겨 배웅은 못 하겠군.”
“다음에 뵙죠.”
스윽.
민지훈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헨리가 물었다.
“그런데, 혹시 그동안 어디 있었나?”
“그건 왜 물으시죠?”
“내가 러시아 쪽 소문을 들어서 말이야.”
경호대가 러시아의 킬러 집단, 글라자에 잠시 가입한 일.
그걸 말하는 듯했다.
민지훈은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잠시 그쪽에 볼일이 있었거든요.”
“그래?”
“네. 그럼.”
탁.
민지훈이 사무실을 떠났다.
헨리는 그가 나간 곳을 잠시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무슨 꿍꿍이인 거냐….”
혀를 찬 헨리가 한쪽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
“들었지? 괜한 문제 만들지 말라신다. 그 변호사도 풀어줘.”
“그래도 되겠습니까?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입을 막는 게 어떤지….”
“적당히 처리해. 죽이진 말고.”
“예. 알겠습니다.”
비서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헨리는 벌떡 일어나 커다란 창으로 향했다.
댈러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이었지만, 어쩐지 속이 더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제이콥…. 명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꾸욱.
주먹을 꽉 쥔 헨리가 창밖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신, 복수는 꼭 해주마.”
* * *
한편, 헨리의 사무실을 나선 민지훈에게 경호대장 육진모가 물었다.
“선생님. 저자를 저렇게 두셔도 되겠습니까?”
“못 둘 거 뭐 있어요?”
“성정이 좋지 않고 즉흥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조만간 정리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그 말에 민지훈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그와 눈을 마주친 육진모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아니죠.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럼…?”
“내가 헨리의 쿠데타를 도와준 이유가 있잖아요?”
“하지만 왜 저자보다 더 휘두르기 좋은 허수아비를 앉혀두지 않으시고.”
피식 웃은 민지훈이 물었다.
“내가 왜 헨리를 선택했는지 알아요?”
“제 부족한 머리로는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야망이 있고, 힘이 있었지만… 약점이 있었으니까요. 뭔지 아세요?”
“무엇입니까?”
툭.
민지훈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이, 머리가 부족했거든요.”
“머리… 말입니까?”
“네. 자신의 그릇을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하지만, 본인은 그걸 깨닫지 못하죠.”
민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 마디로, 감당하지도 못할 것을 꿈꾸는 몽상가라는 소립니다. 난 그 꿈을 이용하는 거고요.”
“그렇군요.”
“하지만, 대장님의 말대로 이용 가치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죠. 더 좋은 옵션이 나타났으니.”
“…이주혁, 그자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십니까?”
“충분히 헨리 이상이죠. 실행력도 있고, 세력도 이젠 만만치 않아요. 심지어 내 자리까지 차지했죠. 그건 정말,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육진모는 즐거운 듯 설명하는 민지훈에게 물었다.
“그럼, 한 번 더 회유하실 겁니까?”
잠시 침묵하던 민지훈이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언젠가는 처리해야겠죠.”
“….”
“그땐 대장님이 나서주세요.”
그 말에 육진모가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러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