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99
#399화
회사로 돌아온 나는 기다리던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어. 고민은 좀 해봤어?”
-네가 정말 그 제안대로 보수를 쳐줄 수 있다면, 난 언제든지 너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지.
구르카 용병이면서 내 스승 중 한 명인 샤키야.
최고의 실력자 중 하나인 그의 대답을 들은 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 환영해. 친구.”
-고마워. 고용주라고 부르면 되나?
“딱딱하게 그럴 것까지야. 호칭은 편한 대로 하자고.”
-그럴까. 그럼 우린 언제 한국으로 넘어가면 돼?
“준비되는 대로 바로.”
-좋아. 전역 처리가 끝나면 갈게.
웃음을 흘린 샤키야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나라에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이참에 잘됐네. 오면 풀코스로 대접해 줄게.”
-이거 기대되는걸.
“그때 보자고.”
전화를 끊었다.
곧 한국으로 들어올 샤키야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몇 가지 있었다.
녀석과 가족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낼 장소와 약속한 보수부터 마련해야겠지.
씨익.
나는 샤키야의 칼솜씨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프 대결로는 내가 전력을 다해도 이길까 말까 하는 수준의 실력자.
그런 샤키야가 합류해 준다면, 앞으로 일을 훨씬 마음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다.
“아주 좋아.”
그렇게 흡족하게 웃던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특수국의 수사과장, 송태석이었다.
“이 양반이 웬일로 먼저 전화를?”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나한테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약간의 불안함을 가지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잠깐 통화되지?
“예. 무슨 일입니까.”
-하. 그게, 너 찌른 새끼들 있잖냐.
얼마 전, 주차장에서 헨리 놈이 보낸 암살자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제압해서 경찰에 넘겼지만.
“그놈들이 왜요?”
-죽었다. 어제.
“예?”
그 말에 나는 인상을 구기며 되물었다.
“죽었다고요? 자살입니까?”
-그런 것 같다. 세 놈 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청산가리를 먹었어.
“…우리나라 경찰 유치장이 원래 이렇게 잘 뚫립니까?”
주철수 때도 그렇고, 자꾸 잡아놨던 놈들이 입막음을 당한단 말이지.
송태석도 할 말이 없는지 착잡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게 외부에서 들어온 건지, 내부자가 넣어준 건지는 조사 중이야. 미안하다. 특수국에서 철저하게 감시할 걸 그랬어.
“이미 지나간 일을 어떻게 할 순 없죠. 대신 누구 짓인지 확실하게 밝혀주셔야 합니다.”
-그래. 알았다.
“예. 수고하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헨리, 그놈 짓인가?’
암살자들의 입을 막을 사람은 그놈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청산가리가 어디서 났는지였다.
‘헨리가 경찰을 매수할 정도로 한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건 아닐 텐데.’
놈의 본거지는 어디까지나 미국이었으니까.
‘이건 나도 한번 알아봐야겠어.’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나니 입맛이 썼지만, 상정 범위 내였다.
어차피 뭘 알아낼 수도 없는 놈들이라 죽어도 큰 의미 없었고.
헨리가 받아들인 건 나에 대한 공격의 중지였으니, 자기 수하들을 제거한다 한들 내가 트집 잡을 건 없었다.
‘조병철의 진짜 목적을 알아내는 게 우선이지만.’
유선화에게 듣기론, 조만간 삼합회의 차기 보스가 정해질 거란다.
그러니 그 전에 조병철의 약점을 찾아내는 게 좋았다.
조병철은 삼합회와 엮어서 보내버릴 작정이었으니까.
‘그래도 단서가 없진 않아.’
조병철의 오른팔, 김정우를 조사해 본 결과 그가 주기적으로 들리는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 명의로 되어 있는 조병철의 별장인데, 거기 사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방문하는 것도 김정우를 포함한 몇 사람밖에 없었다.
척 봐도 수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지.
‘거긴 내가 직접 뒤진다.’
오늘 밤, 믿을 만한 사람들 몇 명과 함께 그곳에 침입해 단서를 찾을 거다.
과연, 뭐가 나올지 궁금하네.
* * *
미국의 고급스러운 호텔 객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차를 마시며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경호대를 이끄는 육진모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책을 읽고 있던 그를 본 육진모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휴식을 방해했군요.”
“방해라니요. 대장님이 괜히 찾아올 리는 없을 테고, 무슨 일이죠?”
“조금 전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삼합회 성남지부에서 장쉬안을 노리고 논란을 터뜨렸습니다.”
“성남지부요?”
선생, 민지훈은 잠시 성남지부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워낙 기억할 것이 많아서 바로 떠올리긴 어려웠다.
“아, 왕후성 이야기군요.”
“예.”
“증거는 다 없애지 않았나요?”
전 지부장이 살해당한 건 인근 조폭들과의 이권 다툼 때문이다.
이렇게 이미 증거를 조작했는데, 갑자기 그 문제가 대두된 것이 의문이었다.
“예.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단순 의혹일 뿐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알아두시는 게 좋을 듯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요.”
육진모는 꾸벅 인사하고 객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점에 갑자기 이런 일이라.”
성남지부는 애초에 타국에 있어서 영향력이 크지 않다.
자본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명목상으로만 삼합회지, 사실상 상인이 대부분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뒷배가 있나?’
누군가를 등에 업은 게 아니라면, 괜히 적만 만드는 행동에 불과했다.
어떤 집단이 개입한 것이 분명했지만, 증거도 없이 장쉬안을 모함하는 미친 짓을 할 사람은 삼합회 내에 없었다.
역풍을 맞았다간 본인만 손해를 볼 테니 말이다.
‘누구지? 누가 바람을 넣은 거지?’
민지훈의 머리에서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굳이 성남지부를 움직일 만한 이는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그럴 수도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항상 예상도 못 한 방식으로 그를 방해했던 남자.
“이주혁…?”
잠깐 그에 관해 생각하던 민지훈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고작 성남지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DS컴퍼니는 손에 넣었고, 글라자는 없앴다.
그리고 조만간 삼합회의 우두머리도 그와 함께하는 이로 바뀐다.
‘이제 슬슬 복귀할 시간이지.’
지금껏 민지훈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서클’.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날 시간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도울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동안 마련해 둔 기반과 경호대로는 변수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 테니까.
‘특히 가장 큰 변수인 그자가 문제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일시적인 협력이 끝나는 즉시 사사건건 방해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민지훈은 내려놓은 책 옆에 있는 종이들을 살폈다.
여러 사람의 사진과 신상이 적힌 자료들이었다.
용병, 정보국 요원, 퇴역 군인.
모두 그에게 필요한 인재들이었다.
‘비자금을 풀어야겠군.’
민지훈이 입꼬리를 올렸다.
신념은 돈으로 살 수 없다지만, 사람의 신념은 얼마든지 변하는 것이었다.
* * *
김태한과 바깥으로 나온 홍기동에게 팀원들이 다가왔다.
“팀장님.”
“음?”
“우선 보고부터 하시죠.”
그 말에 김태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고는 미룬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망자가 나왔잖습니까.”
“성훈이 말이 맞수. 일단 윗선에 보고부터 해야 지원이 오든 일을 접든 할 거 아뇨.”
팀원들의 주장은 합당했다.
하지만 김태한은 완고하게 그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지원을 기다릴 시간도 없고, 접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어.”
“팀장님.”
“보위부 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야. 어쩌면 우리나라의 안보가 달린 일이라고.”
“….”
김태한이 팀원들을 향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화를 도청해서 알겠지만, 이놈들은 머지않아 또 만나게 될 거다. 그리고 그땐 자기 패를 꺼내 들겠지. 우린 그 순간을 노려야 돼.”
팀원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들도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있었기에 큰 반발은 없었다.
무엇보다 어차피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김태한이었다.
‘흠.’
그의 뒤에서 고민하고 있던 홍기동이 생각했다.
조기태의 죽음은 삼합회의 짓으로 결론 날 터.
‘나머지는 언제 처리해야 할까.’
지금 당장 제거하기보단,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을 때 실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홍기동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그러니까… 음? 홍 요원. 어디 가나?”
“잠깐 볼일이 있습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음. 그래.”
김태한이 미심쩍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는 홍기동을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조기태를 데리러 간 사람이 그였고, 갑자기 삼합회가 조기태를 살해한 일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홍기동은 최고 수준의 현장 요원이자, 김태한의 아랫사람도 아니었다.
‘의심 말고 할 수 있는 건 없지.’
임시 본부를 나선 홍기동은 어디론가 향했다.
그의 목적지는 베이징의 한 술집이었다.
끼익-.
아직 해가 지기도 전이라 그런지,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내부는 조명이 꺼져있어 어두컴컴했다.
술집을 슥 둘러본 홍기동이 입을 열었다.
“사람을 불렀으면 나와서 얼굴이라도 보여주지그래.”
그러자 가게 안쪽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팔짱을 낀 건장한 남성의 얼굴엔 여러 개의 기다란 흉터가 있었다.
그는 험악한 인상을 떨떠름하게 구긴 채 홍기동에게 다가왔다.
“….”
홍기동은 주머니 속의 칼을 매만지며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날 여기로 부른 이유가 뭐냐.”
몇 시간 전, 그는 익명의 메시지를 받았다.
한 장소로 오라는 아주 수상쩍은 내용이었지만, 몇 사람밖에 알지 못하는 자신의 번호로 온 연락이었다.
누가 그를 부른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설령 함정이라 한들 당해주지 않을 자신감도 있었다.
홍기동의 질문에 남자가 답했다.
“병원에 노모를 모시고 있다지.”
그 말을 들은 홍기동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뭐 하자는 거냐.”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두고 이직해라. 국정원의 개로는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을 벌게 될 거다.”
“다짜고짜 사람을 불러내서 돈을 주겠다고? 누군진 몰라도, 내가 거기 설득당할 거라는 병신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비난 섞인 어조에 남자의 미간이 꿈틀했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믿을 수 있는 걸 보여주면 되겠나?”
“보고 판단하겠다.”
남자는 카운터 뒤에서 서류가방을 가져와 건넸다.
“확인해 봐라.”
달칵.
그 내용물을 확인한 홍기동이 흠칫 놀랐다.
서류가방은 빳빳한 달러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가져가도 된다.”
어쩐지 꺼림칙함을 느낀 홍기동은 가방을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남의 돈을 함부로 먹으면 탈이 나는 법이지.”
“깨끗하게 세탁된 거다만. 뭐, 그건 알아서 해라.”
“….”
홍기동은 괜히 사양했나 살짝 후회했다.
스윽.
다시 서류가방을 집어든 홍기동이 물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부터 말해. 일단 들어는 보지.”
“국정원장.”
홍기동은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눈을 크게 치떴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그자의 파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