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빙글.
칼을 한 바퀴 돌린 남자가 상대방의 배를 노렸다.
휘익!
라세흠은 허리를 뒤로 빼며 피했다.
조병철의 경호실장, 박준배가 다시 자세를 잡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 언제 도망가려고?”
“실력보다 아가리가 더 낫네.”
라세흠의 응수에 박준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곤 있지만, 상대의 몸놀림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X팔. 차에 치였는데도 왜 이렇게 멀쩡한 거지?’
보통 사람이 차에 치이면 걷지도 못한다.
‘치이는 소리가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제대로 안 박혔나 보네.’
박준배는 자세를 잡으며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를 바라보던 라세흠이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손에 둘둘 감았다.
날붙이에 베이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휘릭.
박준배의 칼끝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상대하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그 특유의 기술이었다.
쇄액!
하지만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라세흠의 동체시력 때문에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칼이 들어오는 방향을 읽고 피한 라세흠이 주먹을 단단히 말아쥐었다.
부웅!
박준배는 명치로 들어오는 주먹을 보고 상체를 틀었다.
이어 그대로 손목을 돌리며 칼을 올려쳤다.
츳!
칼날은 라세흠의 얼굴을 스치듯 훑고 지나갔다.
“흡!”
기합성을 내지른 라세흠이 돌려차기를 날렸다.
박준배는 다급히 팔을 들었다.
퍼억-!
“큭!”
박준배의 허파에 들어있던 공기가 훅 빠져나갔다.
적당히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발차기에 실린 파워가 상상 이상이었다.
라세흠은 휘청이는 그를 향해 연속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막으면 안 된다!’
박준배는 필사적으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그러다 상대의 다리를 향해 회칼을 찔러넣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 순간, 라세흠이 골반을 틀며 발차기의 궤도를 바꿨다.
몸통을 노리던 발차기는, 목표를 바꿔 박준배의 목을 노렸다.
완벽한 브라질리언 킥이었다.
퍽!
팔로 다시 한번 막은 박준배의 이마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크악!”
힘을 줘서 막았는데도 뼈에 금이 간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박준배는 꽤 오랜만에 느끼는 짜릿한 통증에, 눈에 힘을 주며 오히려 앞으로 달려들었다.
사사삭!
연속으로 휘둘러지는 회칼에 라세흠의 공격 흐름이 끊겼다.
‘거리를 두면 오히려 불리하다! X발, 사시미 들고도 붙어야 된다고?’
기다란 날붙이를 든 이상 무조건적으로 맨손보단 리치가 더 길 수밖에 없지만, 저 발 때문에 문제였다.
막아도 이런 충격인데, 정타가 들어오면 바로 골로 갈 수도 있었다.
‘뭐 하는 놈이지?’
조폭 생활을 할 때도 이 정도 레벨의 강자는 보기 드물었다.
서울의 주철수나 충청도의 정무배, 대구 허동팔 같은 보스나 그 오른팔 정도 되는 놈들도 이런 실력자는 아니었다.
“군인이냐? 어디서 보낸 놈이야?”
시간을 끌기 위해 입을 열어봤으나, 라세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집중했다.
최대한 빠르게 박준배를 처리하고 합류 장소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텁.
라세흠이 쓰고 있던 모자를 잡고 던졌다.
모자는 박준배의 시야를 가리며 얼굴로 날아갔다.
“썅!”
당황한 박준배가 손을 휘둘러 모자를 걷어냈다.
하지만 그 잠깐의 틈은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라세흠의 정강이가 박준배의 무릎 옆을 채찍처럼 후려쳤다.
떠억!
“크윽!”
균형을 잃은 박준배가 옆으로 기우뚱했다.
라세흠은 기울어지는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와 동시에 박준배도 넘어지면서 라세흠의 가슴팍으로 칼을 찔러넣었다.
뻐어억-!
“커헉…!”
제대로 얻어맞은 박준배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
땡그랑!
라세흠은 자신의 쇄골 쪽을 긁고 떨어진 기다란 회칼을 쳐다봤다.
조금만 깊었다면 쇄골하동맥에 꽂혀 손쓸 수 없게 됐을 것이리라.
텁.
칼을 집어 든 라세흠은 피가 묻은 걸 그대로 하수구 구멍 안에 던져버렸다.
혹시 흔적이 남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쿠흡. 쓰바…!”
박준배는 피가 줄줄 흐르는 코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퉷!”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 박준배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여기 뒤쪽 골목이다! 프흡! 빨리 튀어와 이 새끼들아!”
라세흠은 맨몸이 된 그에게 돌진했다.
그에 박준배는 들고 있던 무전기를 던졌다.
텁!
얼굴을 향해 날아온 무전기를 낚아챈 라세흠이 손아귀에 힘을 줬다.
으직!
무전기가 그대로 으스러졌다.
그걸 본 박준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런 괴물 같은…!”
뛰어오른 라세흠은 그대로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퍼억!
팔을 교차해 막은 박준배가 뒤로 넘어져 나뒹굴었다.
라세흠은 달려가 자세를 바로 잡는 그를 축구공이라도 된 듯 발로 뻥 걷어찼다.
박준배의 부러진 팔이 뒤로 튕겨 나갔다.
마지막으로, 고통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 커다란 주먹이 틀어박혔다.
콰앙-!
박준배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얼굴은 빈말로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없을 만큼 처참해졌다.
“후우.”
라세흠은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힘드네. 힘들어. 늙어서 그런가.”
척.
바닥에 떨어져 있던 모자를 쓴 라세흠은 마스크까지 다시 착용했다.
그리고 약속 장소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흩어졌던 우리는 다시 타고 왔던 밴에서 모였다.
부장님 한 사람을 빼고 말이다.
‘왜 안 오시는 거지?’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이라 그런지, 그렇게 큰 걱정이 되진 않았다.
“야. 잘못된 거 아니냐?”
“설마.”
“무슨 일 생겼을 수도 있잖아.”
“뭐, 호승심 생겨서 누구랑 또 붙고 있을지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슬슬 출발할 준비를 했다.
“슬슬 연락해봐야겠는데.”
여기서 더 대기하면 우리를 추적하던 놈들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에 무전기를 꺼내려는데.
“어, 부장님!”
저 멀리서 부장님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뭔가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나는 다가온 부장님의 옷에 묻은 피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뭐야. 다치셨어요?”
“아니, 뭐.”
“여기 옷이 다 찢어졌는데요? 싸웠어요? 어디서 구른 것처럼….”
부장님이 입맛을 쩝 다시며 말했다.
“일이 조금 있었다. 일단 가자.”
“예. 그래요. 타.”
철컥. 부릉-.
시동을 걸고 바로 밴을 출발시켰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별거 없었다니까. 테이저 한 대 맞고, 차에 한 번 치이고, 칼에 조금 베인 게 다야.”
“…그게 별일이 아니라고요?”
“야. 이 정도는 침 바르면 나아.”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며 신신당부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가서 바로 치료받으세요.”
“이 야밤에 어디서?”
“구급상자 있는 걸로 처치부터 하고, 내일 신 닥터 부를게요.”
“에이. 그 아저씬 너무 비싸.”
“그냥 병원으로 가면 들킬 수도 있잖습니까. 혹시 목소리나 얼굴 들키진 않았죠?”
조수석에 앉은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확실하죠?”
“아마 그럴 거다.”
잠깐 머뭇거린 게 조금 수상쩍긴 한데, 그래도 알아서 잘 처리하셨겠지.
부웅-!
나는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 * *
조병철의 집무실.
그의 수행원, 김정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곳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게.
집무실로 들어선 김정우가 조병철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됐나?”
“그게….”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에, 조병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
“어떻게 됐냐니까.”
“침입자들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박 실장이 당했습니다.”
“당했다고?”
“예. 의식을 잃어서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만, 깨어날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상태가 어떻길래?”
“코와 광대뼈가 함몰됐고, 뒤통수가 깨졌습니다.”
설명을 들은 조병철이 침묵했다.
김정우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설명을 덧붙였다.
“차량으로 이동한 흔적을 찾아 계속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건 됐고, 저택에서 없어진 건?”
“…파일 몇 개가 사라졌습니다.”
“누구 파일.”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 대부분과… 선생의 파일입니다.”
“….”
팅-.
조병철은 말없이 담뱃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뱉는 조병철.
김정우는 고개를 숙인 채로 바닥만 내려다봤다.
‘X 됐다.’
조병철이 쥐고 있는 목줄이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사라졌다.
또 침입자는 잡지도 못했다.
어떤 욕을 처먹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치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담배만 연신 빨아들이던 조병철이 손가락을 까딱했다.
“예.”
“김 실장.”
“예.”
“자넨 누구라고 생각하나?”
“침입자 말씀이십니까?”
“그래.”
김정우가 고민하다 답했다.
“…제 부족한 식견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후욱.
연기를 내뿜은 조병철이 그에게 지시했다.
“곽환성 시켜서 차영규, 그놈 뒤를 털어보게.”
“국정원 쪽에서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 그건 아직 알 수 없지.”
꾸깃.
조병철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구기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다른 놈일 수도 있고.”
* * *
다음 날.
나는 조병철의 저택에서 가져온 파일들을 꺼내 정리했다.
어젯밤에 한번 쭉 읽어봤는데, 그걸 통해 알게 된 건 여기 있는 파일 주인들의 뒤가 구리다는 것 정도였다.
정작 알아내려고 했던 조병철의 진짜 목적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흐음….”
그건 어떻게 알아내야 할까.
본인한테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남한테 물어본다 해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쯧.”
일단은 이걸 얻은 걸로 만족해야겠지.
이 파일이 있으면 방해되는 모임의 인원은 얼마든지 치울 수 있을 테니까.
우웅-.
그때, 책상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음?”
우리가 어제 털어먹은 저택의 주인, 조병철의 전화였다.
“크흠.”
나는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바쁜가?
“짧게 통화할 시간 정도는 됩니다. 무슨 일입니까.”
-자네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물어보시죠.”
-혹시, 어젯밤에 뭐 했나?
그 물음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이젠 밤일까지 궁금합니까? 집에서 주식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
“그래서, 그건 왜 물어보는 겁니까.”
-아닐세. 고생하게.
뚝.
전화가 끊겼다.
상당히 꺼림칙한 마지막 말을 보면 아무래도 날 의심하는 것 같은데.
어차피 내가 거기 갔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없다.
타고 간 차도 대포차고, 일부러 CCTV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얼굴도 가렸으니, 녹화된 영상을 일일이 다 따서 확인해봐도 우리 정체를 알아내긴 힘들 거다.
탁.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다 멈칫했다.
차영규가 조병철의 약점이 될 만한 걸 가져오라고 했었는데, 이 파일들은 어떨까.
애초에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라 법적 효력은 없겠지만, 이 안에 있는 정보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번 연락해봐야겠어.’
* * *
한편, 그 시각.
유선화가 있는 삼합회의 성남지부.
그곳에 한 남자가 도착했다.
저벅.
모자를 쓴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인가.”
남자는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무리를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갔다.
“이봐.”
“음? 중국인?”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들에게 남자가 물었다.
“유선화, 어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