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끼익.
습하고 왠지 기분 나쁜 공기를 맡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저벅.
원래는 지하창고로 사용하려고 한 공간이었지만, 워낙 나쁜 놈들이 많아 개조해서 심문 장소로 쓰는 곳이었다.
“어, 왔냐?”
지하실로 내려오니, 고문이 특기인 백기준이 나를 맞이했다.
그 앞에는 한 남자가 나무 의자에 묶여있었다.
나는 백기준의 옆에 서 있는 춘식이에게 물었다.
“이놈, 정체가 뭡니까?”
“홍콩지부의 차오랍니다.”
“차오라고요? 차오는 성 아닙니까?”
“글쎄요. 진짜 이름인진 모르겠습니다.”
스윽.
묶여있는 차오라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
반항기 가득한 눈동자 속엔 숨길 수 없는 적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눈깔 봐라. 기준아. 얘 아직 새 거지?”
“어. 시작할까?”
“혹시 모르니까 그 전에 몇 가지만 물어보자고.”
그때, 차오 놈이 입을 열었다.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거라고 생각하나?”
“어? 뭐야. 한국말 하네?”
차오라길래 한국어는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꽤 오래 지낸 모양이었다.
나는 춘식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통역도 부탁할 겸 해서 불렀는데, 할 일이 없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멍청하긴. 퉷!”
차오가 침을 뱉길래, 뒤로 빠지며 가볍게 피했다.
“나한테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다.”
“흠. 글쎄.”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백기준에게 물었다.
“어떨 것 같냐?”
“큭. 저렇게 말하는 놈치고 오래 버티는 거 못 봤다.”
뚜둑.
백기준이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할래?”
“얼마 정도?”
“목표는 5분.”
“오케이. 기다리지 뭐. 춘식 씨는요?”
춘식이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기준 씨 고문 기술을 보고 배우고 싶어서요.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탁.
라텍스 장갑을 낀 백기준이 피식 웃었다.
“이게 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
.
.
그렇게 5분이 지났다.
차오 놈은 생각보다 독종이었다.
“끄으으….”
달그락.
사각형 쟁반 위에 연장을 내려둔 백기준이 어깨를 돌리며 풀었다.
“질기네. 질겨.”
“맛탱이 간 거 아냐?”
“대가리는 멀쩡해.”
두리번두리번.
백기준이 주변을 둘러보다 물었다.
“혹시 소금 못 봤냐?”
“몸을 괴롭히는 건 여기까지 하자.”
“음? 그래도 되겠어?”
나는 차오의 독기 가득한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이런 놈은 다루는 방식이 따로 있지.”
조금 치사한 수긴 한데, 이놈 같은 성격엔 곧잘 먹혀들어 가거든.
“차오라고 했나?”
“….”
“뭔가 이상하지? 심문을 하는데 아무것도 물어보질 않으니까.”
백기준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 중 하나였다.
고통은 주지만, 질문이 없으니 대답을 해서 고문을 끝낼 수가 없다.
당하는 사람의 멘탈을 갉아먹고, 알아서 정보를 불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끝까지 입을 다물 놈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내가 앉아서 구경하면서 생각을 해봤거든? 네가 어떻게 성남까지 갔는지.”
성남지부가 장쉬안을 규탄한 후로 하루 만에 사람을 보내왔다.
그 말인즉슨, 한국 안에 있던 조직원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차오 이놈이 있던 본거지는 어디일까.
멀어도 경기도 내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네 본진을 찾을 수 있을까? 없을까. 난 있다고 보는데.”
“…!”
“이제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대답한다고 너희 보스를 배신하는 것도 아닌 간단한 질문을. 여기에만 대답하면 돼.”
스윽.
“참고로 말해주는 건데, 한국 경찰엔 너희 같은 조폭을 전담하는 기관이 따로 있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네 동료들을 감방에 처넣을 수 있단 소리야.”
“….”
놈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고문에는 굴하지 않았지만, 동료를 언급하니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조폭 특유의 의리.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조직이 경찰에 넘겨질 수 있다는 사실.
지금 이놈은 머릿속으로 온갖 것들을 저울질하고 있을 거다.
입을 열었을 때와 입을 다물었을 때 당할 불이익.
‘복잡하겠지.’
나는 바닥을 쳐다보며 고뇌하는 듯한 놈에게 질문했다.
“장쉬안이 보냈냐?”
“……그래.”
“이제 대답할 마음이 조금 드셨나 보구만. 좋아.”
처음부터 중요한 걸 물어보면 안 된다.
대답해도 상관없는 것들로 시작하는 거지.
“차오는 본명인 건가?”
“내 성이다.”
“오케이. 이름까진 안 궁금하니 넘어가고. 유선화는 왜 찾아간 거지?”
그 물음에 놈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경고라.”
유선규의 일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 때문이겠지.
“그래서, 네 경고는 먹혔나?”
“아니. 건방지게도 어르신께 대항하려 하더군.”
주절거리던 차오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고개를 퍼뜩 들었다.
“설마… 유선화가 믿는 뒷배가 네놈인가?”
“글쎄. 네가 질문하는 시간은 아닌데.”
“….”
“경고가 안 통하면 어떡할 생각이었지?”
날 잠시 노려보던 놈이 말했다.
“…어르신께 보고했겠지.”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
“삼합회에서 성남지부는 사라졌을 거다.”
“역시.”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알아둬. 없어지는 건 성남이 아닌 홍콩지부다.”
“…뭐?”
“그리고 넌 그걸 못 보겠지.”
드륵-.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놈은 분노와 당황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기준아.”
“어.”
“알아서 처리해.”
그 말에 백기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알았다.”
“큭! 자, 잠깐만.”
“수고해.”
나는 차오 놈과 달리,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함께 지하실의 계단을 올라가던 춘식이 물었다.
“어쩌시렵니까? 정말 그 영감을 치려고요?”
“예. 물론 정면승부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삼합회는 머릿수가 많기도 하고, 성수도 손에 넣었으니 위험하다.
그러니 놈을 칠 때는 최대한 빠르게, 은밀하게 일을 진행해야겠지.
‘그전에 일단 차기 보스가 정해져야 돼.’
장쉬안이 알아서 내부 정리를 해줄 때까지 기다릴 거다.
입지 있는 놈들의 세력을 알아서 줄여줄 테니, 우리는 가장 큰 덩치가 된 장쉬안만 처리하면 오케이.
어떻게 보면 어부지리를 노리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조만간일 것 같은데.
‘마침 샤키야네도 출발했다고 했지.’
나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계획에 필요한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이고 있었다.
* * *
베이징의 한 호텔.
삼합회 홍콩지부장이자, 명운제약의 사장.
장쉬안은 미간을 구긴 채 수하의 보고를 들고 있었다.
“아직 연락이 없다고?”
“예. 그렇습니다.”
“허어….”
경고를 위해 성남지부로 보낸 차오가 연락이 없다.
‘쉽게 당할 녀석이 아닌데, 설마 혼자 가기라도 한 건가?’
아무리 성남지부가 이빨 빠진 사냥개라도, 여럿이서 덤벼들었다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최악의 가정.
단순히 보고가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지만, 장쉬안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성남지부에서 차오가 당했다면, 그의 수하만 벌써 세 사람이 한국에서 당한 게 된다.
“흐음.”
장쉬안은 고민했다.
성남지부를 어떻게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최대한 좋게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손을 쳐낸 건 그들이었다.
‘설령 놈들이 정말 우리 쪽에서 유선규를 처리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다. 덩치가 큰 건 명운제약.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방법은 적지 않았다.
암살, 고립, 협박.
장쉬안은 어떤 길이 가장 뒤탈이 없을까 생각했다.
‘오늘까진 더 기다려보고 결정해야겠군.’
다소 문제가 생겨서 보고가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스윽.
“출발하실 겁니까?”
“그래.”
수하가 재빨리 다가와 장쉬안에게 외투를 건넸다.
오늘은 북한 보위부의 림영호 국장과 재차 협상하는 날이었다.
이전의 자리에선 상대의 조건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재정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단순히 높은 금액을 받기 위해서라면 러시아 같은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팔아넘기는 게 나았다.
선생의 ‘성수’를 바탕으로 한 양산형 각성제. 그 가치는 필로폰이나 코카인 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조선 쪽과 거래하는 게 편하지.’
국경이 맞닿아있기도 할뿐더러, 국가 간의 관계도 좋았다.
거기다 보위부라는 조직에 줄을 대놓을 시엔, 잘만 하면 VIP에 연이 닿을 수도 있었다.
삼합회의 산주 자리에 오르고, 북한 고위층과의 관계도 돈독히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는 탄탄대로였다.
‘어차피 다음 산주는 내가 되는 게 확정이다.’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던 류비엔이 최후의 발악을 하겠지만, 어차피 꿈틀대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대세에 영향을 미치진 못할 터.
이제부턴 이후의 일을 준비하면 된다.
‘선생과도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안팎으로 여러 도움을 주고, 성수까지 넘겨준 선생.
장쉬안이 산주 자리에 오르는 순간, 선생은 그에게 지금껏 지워뒀던 빚을 받으려 할 것이다.
선생과는 웬만하면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런 비범한 남자와 적대해서 좋을 게 없으니 말이다.
저벅.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나가다 보니 어느새 대기시켜 둔 차 앞에 도착했다.
달칵.
수하가 문을 열자 장쉬안이 뒷좌석에 올랐다.
부웅-.
그가 탄 자동차가 약속 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
.
.
베이징 안에 있는 고급 식당, 정화루.
그곳에 한 남자가 원형 테이블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북한 보위부의 정보기술연구국장, 림영호였다.
“….”
림영호는 서류가방을 무릎 위에 놓은 채로 좌우를 살폈다.
어제 장쉬안과 만났을 땐 가게 내부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어느 누가 다른 세력의 정보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중요한 사항은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강의 수량과 금액 정도만 협의했을 뿐.
오늘은 일부러 프라이빗한 룸으로 잡았으니, 대화가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똑똑똑.
룸의 문이 열리고, 직원이 한 노인과 남자를 안내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삼합회의 장쉬안. 그 뒤를 따르는 남자는 그의 수하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 물음에 림영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숙소를 추천해준 덕에 잘 지냈소.”
“허허. 다행입니다.”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다.
그들의 뒤에는 각자의 수행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물건은 가져왔소?”
“물론이지요.”
까딱.
장쉬안의 손짓에, 수하가 서류가방을 들고 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턱.
림영호는 작게 마른침을 삼키며 가방에서 시선을 뗐다.
저 안에 그 물건이 있었다.
똑똑.
다시 한번 문이 열리며, 종업원들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장쉬안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베이징에 들를 때마다 찾는 곳인데, 여기 음식이 아주 괜찮습니다. 들면서 이야기하시지요.”
“좋소.”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 * *
해외1팀의 상황실.
-좋소.
헤드폰을 끼고 있던 여성.
박미연은 도청장치를 통해 들려오는 림영호의 목소리를 확인한 뒤, 옆에 서 있는 김태한 팀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확인한 김태한은, 들고 있던 핸드폰에 대고 작전의 개시를 알렸다.
“시작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