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10
#410화
남자를 따라가던 홍기동이 불쑥 물었다.
“근데 너, 혹시 개방과 관계가 있는 건가?”
그 말에 남자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무슨 소리지?”
“오늘까지 두 번. 개방의 조직원이 내게 접근한 횟수다. 너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그 의혹을 받아넘겼다.
“거지들이랑은 관계없다.”
“그렇군.”
하긴, 그가 개방 소속이었다면 조금 전 중년도 홍기동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어야 했다.
끼익-.
남자와 홍기동은 지난번에 마주했던 장소, 주점에 도착했다.
“일단 앉지.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아서.”
홍기동은 잠자코 손에 잡히는 의자를 빼 앉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짐들을 출구에 가까운 쪽에 놓아뒀다.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군.”
남자는 맥주를 담은 커다란 잔을 양손에 들고 왔다.
탁.
맥주를 받아든 홍기동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치이-.
홍기동은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그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뭐지? 이직이라면 생각 없다고 말했었는데.”
“마음은 바뀌는 법이지. 나도 처음부터 이런 데서 일할 줄 알았겠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또 그가 잠자코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 남자의 기세 때문이었다.
조곤조곤 말하고 있긴 하지만,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 때문에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싸웠다가 가진 자료들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곤란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할 얘기 있으면 빨리 해라.”
“그래.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주지.”
저벅.
남자는 태블릿을 가져와 홍기동 앞에 내려놓았다.
“나 말고 내 고용주가.”
꾹.
버튼을 누르자, 태블릿의 화면에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언뜻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눈빛 안에는 날카로움이 담긴 지적 인상의 남자.
민지훈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홍기동 씨.
“…누구십니까?”
-저는 당신의 실력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홍기동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에 민지훈은 더욱 짙은 미소로 물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 * *
“웰컴! 마이 프렌드!”
내가 반갑게 인사하자, 한 남자가 씨익 웃으며 다가와 포옹했다.
콱!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군인 특유의 짧고 검은 머리카락.
구르카의 용병 출신이며, 현재는 내 직원이 된 샤키야였다.
“오랜만이야. 친구.”
샤키야는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머리가 좀 길어서 그런가, 더 잘생겨졌어.”
“나도 알아.”
“그 뻔뻔한 성격도 그대로고.”
“별말씀을. 뒤에 계신 분들은 가족이야?”
“응. 소개해줄게.”
중년 여성과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업은 젊은 여성.
각각 샤키야의 어머니, 아들, 아내였다.
“안녕하세요? 샤키야 친구 이주혁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나는 샤키야를 향해 물었다.
“일단 너희 가족이 지낼 곳부터 들릴까?”
“좋아. 기대되는데?”
샤키야가 그리 말하긴 했지만, 그렇게 기대하는 것 같진 않았다.
뭐,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었다.
녀석과 나는 비슷한 나이다.
내가 준비한 집이 얼마나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피식.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샤키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 보면 깜짝 놀랄 거다.”
.
.
.
우리는 용산의 한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어어…?”
샤키야가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러고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 우리가 살 집이 여기라고?”
“그래.”
“정말로…?”
샤키야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뭘 멍하니 있냐. 한번 들어가 봐.”
“으응.”
나는 샤키야와 그 가족들을 데리고 아파트 위로 올라갔다.
특수국의 송태석 과장, 그리고 오늘 조용히 운전대를 잡아준 황성빈이 사는 고급 아파트였다.
올라가는 길, 황성빈이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저, 대표님. 그럼 이분들도 저희 이웃이 되는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송 과장님처럼 뭔 일 생기면 제가 달려가면 됩니까?”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누굴 돕냐?”
“예, 예?”
“걱정하지 마라. 너 열 명이 덤벼도 끄떡없는 사람이니까.”
“아하. 엄청난 분이셨네요. 어쩐지 옷 밑으로 근육이….”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샤키야의 가족이 살 집 앞에 도착했다.
삑. 삑. 띠리릭.
“허억.”
“지, 진짜 여기라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샤키야의 반응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맛에 선물 주는 거지.
“네가 집 소개 좀 해드려. 낯선 가구들도 있을 테니까.”
그 말에 황성빈이 난감한 듯 말했다.
“그럼 대표님 경호는 누가 섭니까?”
“아, 이제 경호 필요 없어.”
마종석이 선생의 이름을 팔아 DS의 헨리 놈에게 경고를 날렸으니, 이제 저번처럼 암살자가 튀어나온다든가 하는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황성빈은 내 설명에도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래도 안 됩니다. 그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 개박살 납니다.”
“누구한테?”
“라세흠 부장님이랑, 대표님 이분한테요.”
황성빈이 새끼손가락을 슬쩍 들어 올렸다.
하긴 유나 씨가 나도 그렇게 혼냈는데, 얘는 더 갈구겠지.
“그래. 그럼 당분간은 따라다녀.”
“아유, 감사합니다.”
“일단 안내부터 하고….”
손을 휘휘 저으려는데, 다가온 샤키야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친구!!”
“어, 뭐야.”
“정말 고마워!”
샤키야가 눈물을 훔쳤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고마우면 일 열심히 해라.”
끄덕.
샤키야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최선을 다할게. 친구.”
역시, 사람은 돈이 있고 봐야 돼.
* * *
그렇게, 샤키야의 가족들을 데려다 놓은 우리는 회사로 이동했다.
새로운 팀원을 소개해 주기 위해서였다.
저벅.
“음?”
샤키야, 황성빈과 함께 회사 로비로 들어가자,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며 프론트 직원이랑 수다를 떨고 있던 사발이 우리를 돌아봤다.
“어, 대표님! 오셨어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
“뉴페이스야.”
“아하. 이분은 뭐 하시는 분입니까? 한국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필리핀? 태국?”
“네팔.”
“이야, 네팔! 히말라야산맥의 나라! 제가 또 20대 초반에 카트만두로 여행을 갔었거든요. 거기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어우, 됐어.”
나는 길어지려는 사발의 말을 끊었다.
사발 이 자식은 말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수다스러워진 느낌이었다.
“할 일 없어? 우재성 씨 도와주라니까, 심심하면 여기 와서 놀고 있네.”
그 말에 사발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섭한 말씀을. 일 때문에 잠깐 들린 겁니다.”
“근데 왜 커피 마시면서 수다나 떨고 있어?”
사발이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잠깐의 휴식이 또 인간의 삶의 질을 상승시킨다는….”
“….”
“먼저 가 보겠습니다. 대표님.”
사발은 커피를 원샷하고 후다닥 회사를 나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샤키야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가자. 우리 회사를 소개해 줄게.”
.
.
.
벌컥.
“여기가 훈련실. 운동하고, 서로 대련도 하는 곳이지.”
“오호.”
샤키야는 훈련실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아무래도 원래 몸 쓰는 녀석이니까.
“응?”
“뭐야.”
샤키야를 데리고 들어가자, 운동기구 하나에 한 명씩 붙어있던 팀원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다 녀석을 알아봤는지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어어? 뭐야.”
“설마 파견 가서 봤던 구르카 걔냐?”
“어. 맞다.”
“이야! 오랜만이다!”
웃통을 깐 팀원들이 근육을 불끈거리며 우르르 몰려왔다.
“웬일이야?”
“여긴 어쩐 일이냐?”
“이 친구 이름이 뭐였지? 샷시? 아, 스키야?”
“샤키야, 이 새끼야.”
“맞다. 그래.”
샤키야는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팀원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나처럼 대화를 자주 나누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들 안면은 있으니까.
나는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이쪽은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된 샤키야입니다.”
내 소개에 팀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샤키야도 고개를 끄덕이며 영어로 인사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열심히 할게.”
팀원들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수근대기 시작했다.
“뭐래냐?”
“만나서 좋다, 뭐 이런 거 같은데.”
“쟤는 한국어 좀 배워야겠다.”
“네가 영어를 배워야지. 글로벌 시댄데.”
“뭔 시대?”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자 하니 한숨이 나왔다.
운동 안 하고 쉬고 있던 배상훈이 손을 슬쩍 들고 물었다.
“그러면 쟤는 전투원이냐? 우리가 하던 것처럼?”
“당연하지.”
구르카 용병을 전투에 안 써먹으면 어디 쓰겠어?
척.
배상훈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영어로 물었다.
“샤키야. 최근에 작전 나간 적 있어?”
“아니. 요 몇 주간은.”
“그럼 몸 좀 풀어야 되지 않겠어?”
그 말에 샤키야가 씨익 웃으며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그러고 보니, 잘 드러내지 않을 뿐 이 녀석도 부장님만큼 승부욕이 강했지.
“나야 좋지.”
스윽-.
샤키야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자 논두렁처럼 쩍쩍 갈라진 녀석의 탄탄한 전완근이 드러났다.
근육 사이엔 핏줄이 꿈틀거렸다.
부장님처럼 빵빵하고 우락부락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실전으로 다져진 압축 근육이었다.
예전에 내가 손가락으로 눌러봤는데 안 들어간다. 아주 돌덩이야. 돌덩이.
“둘이 한판 할 거면 저기 링에서 해.”
대련실 한쪽에 설치된 사각 링을 본 샤키야가 감탄했다.
“오, 제대로네.”
“올라와.”
펄쩍!
링 위로 뛰어오른 배상훈이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샤키야가 웃으며 물었다.
“보호장비는 필요 없어?”
악의 없는 그 말에, 배상훈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필요 없으니까 빨리 올라와라.”
“그럼.”
스륵.
샤키야가 걸치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오우.”
녀석의 옷 아래 감춰져 있던 야수 같은 근육이 요동쳤다.
그걸 본 배상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살짝 움츠러들었다.
“X바, 뭔 약을 먹었나. 몸이 왜 저래?”
샤키야는 목을 뚜둑 꺾으며 링 위로 올라왔다.
척.
배상훈이 킥복싱 자세를 잡았다.
“준비되면 들어와.”
꾸욱.
주먹을 말아쥔 샤키야도 묘한 자세를 취했다.
녀석은 무에타이, 칼리 아르니스, 영춘권 등 여러 무술을 마스터한 근접전의 달인이다.
특히 쿠크리를 들면 괴물이 되지만, 맨손으로도 충분히 강하다.
솔직히 나도 녀석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몇 년 전 녀석과 대련했을 때도 승률은 반반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내가 조금 더 높았을 거다. 아마도.
“간다!”
상대가 준비된 걸 확인한 배상훈이 달려들었다.
후욱!
여유롭게 미소 짓던 샤키야의 등 근육이 확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배상훈이 뒤로 날아갔다.
뻐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