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똑똑.
“들어와.”
덜컥.
차영규의 사무실로 홍기동이 들어왔다.
“복귀했습니다.”
“그래.”
차영규는 그의 손에 들린 서류가방을 보고 물었다.
“이게 그건가?”
“예.”
탁.
홍기동이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몇 시간 동안은 방문자를 받지 말라고 전해뒀으니, 누가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디.”
차영규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서류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꼼꼼하게 봉인된 서류봉투, 그리고 푸른색으로 찰랑거리는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 들어있었다.
“이게 바로 그….”
“예. 각성제. 일명 여의주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차영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해줬군. 아주 잘했어. 이 자료들은 뭐지?”
“보위부의 림영호 국장과 명운제약 장쉬안이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확인해 봐야겠어.”
서류봉투를 챙긴 차영규가 자신의 책상으로 향하며 말했다.
“고생했다.”
“예.”
“일주일 정도 푹 쉬어.”
“기꺼이 쉬고 오겠습니다.”
“어머니는.”
움찔.
“아직 차도가 없으시나?”
그 물음에 홍기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괜한 걸 물었군.”
“아닙니다. 아직 의식이 없긴 하지만… 조금씩 회복 중이랍니다.”
“그래? 그럼 이번 주는 푹 쉬면서 어머니도 찾아뵙고 해.”
“예. 알겠습니다.”
“가 봐.”
홍기동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런 그에게 차영규가 말했다.
“야. 홍길동이.”
“….”
“문제없지?”
잠시 침묵하던 홍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보겠습니다.”
“그래.”
끼익. 탁.
홍기동이 원장실을 나섰다.
“후.”
혼자 남은 차영규는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봉투를 뜯었다.
“한번 볼까.”
팔랑-.
첫 번째 장은 해외1팀에서 추적한 보위부 림영호의 이동 루트와 숙소 위치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도청한 숙소 내의 대화 내용이 보였다.
이번 거래를 무사히 마쳐야 하고, 따라붙은 감시자는 없는지에 관해 누군가와 대화한 모양이었다.
다음 장에는 림영호가 장쉬안과 나눈 대화를 도청한 것이 토씨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줄줄이 읽어나가던 차영규는 그 내용 속에서 한 가지 단어를 찾아냈다.
바로 각성제였다.
‘여의주라니, 이름 센스 한번 고약하군.’
이 각성제의 효과는 통각을 극도로 무디게 만드는 것과 더불어 사고의 속도를 빠르게 한다.
만약 이게 양산이라도 된다면 군사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지는 무기가 될 터.
차영규는 서류들을 내려놓고 푸른 용액을 살폈다.
육안으로 봐선 크게 특별할 게 없었다. 음료수나 부동액 같기도 했다.
‘연구소에 보내봐야겠어.’
장쉬안에게 이 각성제의 원본을 넘긴 건 조병철이다.
각성제의 원본, 성수의 베이스에는 메스암테파민. 즉 필로폰이 포함된다.
이 각성제의 성분을 분석해서 여기 불법적인 무언가가 들어가기라도 했다면, 조병철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마약을 엄중히 처벌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아무리 삼합회의 간부라도 장쉬안의 실각은 당연히 따라온다.
그 문제가 대두되는 순간, 조병철에게 중국의 거대 범죄 조직 수장과 커넥션이 있는 범죄자 프레임을 씌울 수 있었다.
‘그 정도라면 제아무리 조병철이라도 빠져나오기 힘들겠지.’
삼합회와 엮인 카르텔의 수장.
설령 정말 무고하더라도 이미지를 나락으로 처박을 수 있는 무서운 문장이었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선 수십 장의 문서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문제는, 조병철의 꼬리부터 머리까지 향하는 것이었다.
목을 따기 위해 올라가는 도중에 꼬리가 잘려버리면 절대로 머리에는 닿을 수 없으니 말이다.
탁.
차영규는 각성제를 내려놓고 보고서를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그리고 나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지?’
무언가 이상했다.
홍기동이 작전이 종료되었다고 보고한 시간과 그가 한국으로 들어온 시간 사이의 간극이 묘하게 이상했다.
중간에 한 시간 정도가 비었다.
“….”
밥을 먹었겠거니 하고 넘기기엔 그럴 시간대가 아니었다.
“설마.”
차영규는 머릿속에 피어나는 의심을 지웠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홍기동은 허튼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동안 충실하게 조직을 위해 일해왔고, 그의 어머니도 국가 소속의 병원에 있었다.
자신의 인생과 가족을 포기하는 게 아닌 이상, 그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뚜르르-.
그러나, 차영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병원에 별다른 일 없나?”
그 물음에 홍기동의 모친이 있는 병원에서 대기하던 요원이 어리둥절한 투로 말했다.
-아, 예. 이상 없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확실해? 병실에 본인이 있는지 확인해봤어?”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차영규는 인상을 찌푸렸다.
‘쯧. 얼빠진 놈.’
그리고 잠시 후, 차영규의 불길한 상상이 들어맞았다는 듯이 요원이 당황하며 보고했다.
-저, 대상이 사라졌습니다. 수술 일정이 있던 것도 아니고, 분명히 나가는 걸 못 봤는데, 대체 어디로 갔는지….
“확실해? 그 병실에 출입하는 사람은 없었나?”
-제가 볼 땐 없었습니다만, 잠깐 볼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적이 몇 번 있습니다.
“X발. 내부자군.”
차영규는 한숨을 내쉬곤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대상을 추적한다. 근처에 있는 요원들에게 전부 연락 돌리고, 가장 최근에 들어왔거나 경력이 불투명한 의사나 간호사 신상 모두 정리해서 전송해.”
-예. 알겠습니다!
“추가 보고 사항 있으면 상황실과 통신하도록. 내가 직접 전달해 놓지.”
뚝.
전화를 끊은 차영규가 이를 부득 갈았다.
“어떤 새끼지?”
홍기동의 어머니는 그의 유일한 목줄이자 족쇄였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라는 것은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그 목줄이 풀려버렸다.
작전의 마무리에 의문스러운 점이 남았던 이 시점에 말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
팅-.
차영규는 초조함에 담뱃불을 붙였다.
물론 그의 어머니가 사라졌다 해서 반드시 홍기동이 배신한다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상황실에 현황을 전달한 차영규는 곧바로 홍기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신호음이 한참을 울렸지만, 그가 전화를 받는 일은 없었다.
“X발!”
쿵!
차영규가 책상을 내리쳤다.
안일했다. 담보가 잡혔다는 이유로 한 사람만을 보내다니, 너무나 안일했다.
그러나 그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었다.
‘아니, 핑계 댈 시간은 없다.’
정신을 차린 차영규는 대응책을 고민했다.
출국하지 못하게 해양경찰과 공항에 수배를 때린다?
그렇게 되면 홍기동의 신분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타인에게 노출된다.
또 검경까지 연이 닿아있는 조병철이 분명히 냄새를 맡을 터.
정말로 홍기동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일단은 풀어주는 게 나았다.
가진 무력이 위험하긴 하나,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입에서 나와선 안 될 게 나오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지.’
단순히 은퇴를 바라고 잠적한 거면 상관없지만, 다른 의도가 있을 시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조병철에게 내부 정보가 새어 나가는 순간 대응할 여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차영규는 골치가 아파 오는 걸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개 같은 새끼.”
항상 달고 살던 편두통이 다시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샤키야가 우리 팀에 합류했다.
신입이 들어오면 일단 써 먹어봐야 하는 법.
녀석의 감이 떨어졌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실력 한번 봐야지.
마침 공교롭게도, 우리 지하실에 곱게 모셔둔 장쉬안의 따까리를 찾기 위해 그쪽에서 사람을 더 보냈단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시, 신촌. 신촌에 있습니다….
백기준과 단둘이 한 시간 정도 더 뒀더니, 툭 치면 불더라고.
그래서 바로 흥신소 직원 몇 명을 그쪽 본거지에 보냈다.
거기 있는 작은 지하상가에 몰려 있던데, 몇 분 전에 그 아래에서 험악하게 생긴 놈들이 연장을 들고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아마 성남지부로 가는 거겠지.’
한참 전에 출발했던 놈이 연락이 두절됐으니까, 걱정도 되고 무슨 일인가 싶었을 거다.
혼자 간다고 할 때 따라갈걸, 하는 소리도 하면서.
만약 그놈들이 성남지부에 멀쩡히 도착한다면, 아마 힘없는 상인들을 협박하고 괴롭히면서 놈의 행방을 찾으려고 할 게 분명하다.
물론 나는 놈들이 그렇게 하도록 둘 생각 없었고, 우리에겐 대인전 최강의 용병이 있었다.
손에 쿠크리가 들리면 라세흠 부장님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괴물 녀석 말이다.
탁.
가끔 타는 세단. 뒷좌석에 오른 내 옆으로 샤키야가 탔다.
“준비는 됐어?”
옆을 돌아보며 묻자, 녀석은 허리춤의 칼자루를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이거면 충분해.”
놈들이 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수십 명을 보내도 의미 없었다.
.
.
.
잠시 후.
우리는 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삼합회 성남지부에 도착했다.
그러자 저번에 덩치한테 당했던 놈들이 골목에서 죽치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벅.
차에서 내린 우리가 그리로 다가가자,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실실대던 놈들이 이쪽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너, 너희들은.”
“오랜만이다?”
지난번에 당했던 수모가 떠올랐는지 녀석들의 눈빛이 사나워졌지만, 이내 우리가 성남지부를 돕고 있다는 걸 깨닫고 시선을 돌렸다.
“무, 무슨 일이오.”
“너희 보스 자리에 있지? 사람들한테 말 좀 전해줘라.”
“…무어라 말이오.”
“동네 입구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문 잠그고 나오지 말라 하고, 유선화 씨한테는 잠깐 여기로 오시라고 해.”
그 말에 녀석들이 발끈했다.
“어디 누님더러 오라가라니!”
“보여줄 게 있으니까 빨리 가서 말씀드려라.”
눈썹을 찌푸리며 강조하자, 녀석들은 입을 다물고 동네 안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기만 해 보라!”
피식.
“별일 맞을 거다.”
* * *
“뭐라고?”
유선화는 동생들의 말을 듣고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상인들을 대피시키고, 또 보여줄 게 있으니까 나오라니.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코웃음도 안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라면 허튼 소리를 한 건 아닐 터.
“하아.”
유선화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말대로 동네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저기 계시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저 멀리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데.
끼이익-.
저 멀리에서 자동차 여러 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어어 하는 사이 밴은 동네 입구에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연장을 든 남자들이 내렸다.
‘설마….’
그때 찾아왔던 차오라는 남자. 그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온 이들이 틀림없었다.
유선화는 입술을 깨물며 한쪽에 여유롭게 기대있는 남자, 이주혁을 불렀다.
“당장 이리로 와! 거기서 뭐 하는 거니?!”
그 목소리에 이주혁은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태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스윽.
이주혁의 옆에 있던 약간 까무잡잡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 상대는 연장을 든 열댓 명의 삼합회 조직원들.
하지만 이주혁과 그 옆의 남자는 전혀 걱정하거나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같이 구경이나 하시죠.”
유선화는 이주혁의 미소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주 재밌는 걸 보게 되실 테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