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조병철과 장쉬안이 대화를 나누는 식당이 보이는 건물의 옥상.
“흐음….”
선글라스를 쓰고 수염을 기른 남자, 춘식은 쌍안경을 거둬들이며 중얼거렸다.
공항에서 마주한 장쉬안을 미행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거참. 관광만 하라니까.”
춘식은 혀를 차며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장쉬안이 조병철과 만났습니다.”
-역시. 괜히 한국에 발을 들일 리가 없지. 알겠습니다.
“계속 지켜볼까요.”
-부탁드립니다.
“부탁하실 것까지야. 명령하시면 가서 처리하고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주혁이 웃으며 그를 만류했다.
-지켜보기만 해주세요. 노출됐다 싶으면 바로 복귀하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춘식은 전화를 끊고 다시 쌍안경을 들었다.
룸 안으로 들어가 바깥에서 그들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보였다.
음식을 나르는 서버 둘. 가드가 가게 정문에 둘, 후문에 둘. 귀한 손님들이 드나드는 걸로 보이는 건물 근처엔 넷.
무장은 모르겠으나, 만만한 자들은 아닐 것이다.
‘얼굴이라도 보였으면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유추라도 해볼 텐데….’
춘식은 고개를 돌리며 가게 내부를 최대한 살폈다.
그러다 장쉬안이 향한 건물 쪽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주로 정면을 보고 있는 가드들과는 달리, 그는 연신 좌우를 경계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체격이 건장하고 눈빛이 날카로운 것이, 최소 실전 경험이 있는 군인이나 용병 출신으로 보였다.
“삼합회 양반 옆에는 없었으니까… 조병철 쪽 사람인가.”
수석 경호원, 뭐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남자의 정체를 대강 추측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춘식이 있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스윽.
“….”
춘식은 순간 흠칫했지만, 그는 프로였다.
여기서 깜짝 놀라 엄폐하는 건 아마추어. 오히려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면 더 수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미동도 하지 않고 배경과 동화되는 게 나았다.
거기다 남자가 있는 곳에서 여기까진 거리가 꽤 된다.
몽골인의 시력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저기서 머리만 내민 춘식을 확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휙.
그렇게 숨죽이고 가만히 있자, 남자는 다시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인지 무언가를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조금 난감했다.
쌍안경의 렌즈가 햇빛이 비칠 것까지 생각해서 은신 장소를 구했는데, 그걸 뚫고 수상함을 감지했다는 뜻이었으니까.
탁.
조심스럽게 옥상 난간에서 몸을 빼낸 춘식은 다시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무슨 일 있습니까?
“그건 아닌데, 혹시 조병철 근처에 군인이나 용병 출신 인물이 있나요?”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우웅-.
고용주에게서 MMS가 한 통 도착했다.
거기엔 한 남자의 얼굴 사진이 있었다.
-김정우라고, 라세흠 부장님 부대 동기입니다. 이 사람 말고는 아직 우리도 파악 못 했습니다.
춘식은 남자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맞네요. 지금 이 식당에 와 있습니다.”
-그래요?
“예. 혹시 몰라서 연락드렸습니다. 감이 좋은 것 같더라고요.”
-조심하세요. 우리 팀원들은 물론이고, 부장님과도 동수를 이루던 사람입니다.
존경하는 고상미 누님.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고상미보다 약간 우위에 있는 라세흠 부장.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자랑하던 라세흠과 비슷하게 강하다면, 그로서도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살벌하네요.”
-혹시 지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춘식은 고용주와의 통화를 종료하고 다시 난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쌍안경을 눈에 갖다 댔다.
“…?”
아까 봤던 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꿀꺽.
춘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알아챈 듯한 눈치는 아니었다.
“연기였나? 아니면 단순 자리 비움?”
갑자기 생리현상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그도 사람이니까.
‘아니야.’
춘식은 옥상에서 내려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일하는 중엔 항상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찾아왔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게 춘식이 DS컴퍼니의 ‘도살자’로 일하고 살아서 은퇴한 이유이기도 했다.
덜컹.
결국 춘식은 감시 장소를 옮기기 위해 옥상을 떠났다.
그러고 잠시 후.
끼익-.
닫혀있던 옥상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
이어 작게 열린 문틈으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조병철의 수행비서, 김정우였다.
품 안에 반쯤 손을 넣은 그는 천천히 옥상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시선을 좌우로 돌리며 누군가의 흔적을 살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봤나.”
길 건너 옥상에서 뭔가 거뭇한 게 보였다.
느낌이 좋지 않아 식당 가드들에게 알린 뒤 조사를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분명 사람 같았는데 말이지.”
춘식의 우려대로, 김정우는 시력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라세흠이 짐승 같은 육감과 본능대로 움직인다면, 김정우는 날카로운 색적 능력으로 적들을 찾는 타입이었다.
먼 곳에 있는 적도, 풀숲에서 위장하고 있는 적도 찾아내는 게 바로 그였다.
“흠….”
잠시 고민하던 김정우는 별 소득 없이 몸을 돌렸다.
혹시 몰라 춘식이 자신의 흔적을 깔끔히 지운 탓이었다.
김정우에게도, 춘식에게도 행운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마주쳤다면, 둘 모두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불꽃은 아슬아슬하게도 화약 옆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덜컹!
조만간 상대와 다시 마주할 줄은.
* * *
한편, 그 시각.
“한국에 길을 만들어 준다고 하셨지요.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자세한 건, 지금부터 정해봅시다.”
조병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쉬안은 천천히 말했다.
“우선, 조 실장님이 제공해 주시려고 했던 물건은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음.”
이미 양산화 마무리 과정이었지만, 그것까지 상대에게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조 실장님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실 수 있는 건 아직 남아있지요.”
척.
장쉬안이 손가락 하나를 들며 말했다.
“지금, 한국의 뒷세계는 무주공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요.”
대한민국의 중심지, 서울을 꽉 쥐고 있던 강남파와 서울광목파, 미추리파.
강남파는 토벌당했고, 미추리파는 망했다.
서울광목파가 남아있긴 하나, 강남파만큼의 위상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중심지, 부산을 거점으로 하던 정광제의 국제파도 그의 죽음 후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거기다 항구에서의 총격 사건과 정광제의 밀수 등 범죄가 낱낱이 드러나 머리를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삼합회가 들어설 자리가 차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해외의 세력도 없진 않다.
성남지부를 위시한 삼합회 일부와 야쿠자들까지.
그러나 그들은 특수수사국이라는 범죄 조직 전문 수사 기관이 발호한 탓에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괜히 눈에 띄었다가 특수수사국에 찍히기라도 하면 그날로 장사를 접어야 할 테니까.
“그러니, 우리 삼합회가 한국의 흑사회黑事會를 관리하게 해주십시오. 그게 제 조건입니다.”
음지에서 나오는 수익은 생각보다 아주 많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국가에서 강력히 단속 중인 마약 관련은 차치하더라도, 불법 도박이나 사기. 유흥업은 꽤 돈이 된다.
“조 실장님께서 그걸 용인해 주신다면, 활동 범위가 늘어날 테니 수익도 더 커지겠지요.”
슥.
장쉬안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그 수익의 20%를 드리겠습니다.”
“20%라. 내 지갑에 넣기엔 너무 많은 돈 같습니다만.”
음지에서 벌어들인 돈은, 깨끗하게 세탁하지 않으면 꼬리가 밟히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해외 은행으로 세탁할 겁니다. 그리고 검은돈을 다루는 방법은 아주 많지요.”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할 수도 있고, 미술품 등 가치가 높은 현물로 바꿔도 된다.
조병철은 술잔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한국의 조폭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삼합회를 앉혀둬도 되는가.
어떻게 보면, 중소 조직들이 난립한 지금보다 더 형편이 나아질 수도 있었다.
자잘하게 나뉘어져 있는 것보단, 하나로 통합된 삼합회가 더 관리하긴 편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단점도 존재했다. 입맛대로 움직이기엔 삼합회의 사이즈가 꽤 컸다.
‘일단 두고 볼까.’
어차피 거슬리면 그때 특수수사국을 통해 밀어버려도 될 것이다.
조병철은 우선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만, 변수가 많아 조건을 충족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요. 완전히 장악하기도 어려울 테고.”
뒷세계라는 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먹겠다고 한다 해서 접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연히 이권 문제가 생길 거고, 그로 인한 분쟁도 터져 나올 터.
거기다 기존의 조직들과 이해관계로 얽힌 사업가나 정치인들도 있으니,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엔 그걸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국은 중국만큼 검열이 강하지도 않을뿐더러, 마약사범이 사형을 당하지도 않는다.
또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다른 나라로 건너가기도 용이하다.
“그럼, 이제 실장님이 원하는 걸 말씀해 보시지요.”
그 말에 조병철은 술잔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이쪽이 원하는 건… 장 사장님과의 긍정적인 관계입니다.”
“….”
장쉬안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들은 것과 다르군요.”
“예. 아랫사람을 보냈을 땐 각성제 이야기만 했지요. 샘플을 제공할 테니 양산해달라. 하지만 진짜 목적은 이거였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정부의 권력자께서 왜 우리와 손을 잡고 싶은 건지 궁금해지는군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조병철의 힘은 여러 곳에 닿아있다.
현재 행정부는 꽉 잡고 있으며, 모임에 속한 이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없는 게 있었다.
바로 모임의 뒤를 닦아줄 조폭들이었다.
주철수는 물론이고, 이쪽과 커넥션이 있던 조직들이 모조리 쓸려나간 탓에 음지에 관여하기가 어려웠다.
‘김용수가 부리는 야쿠자들은 수도, 영향력도 한미하니.’
조병철이 이주혁의 특수수사국을 묵인한 것도 그 이유였다.
거를 놈들은 거르고, 모임에 도움이 될 만한 조직들만 남겨놓는 게 창설 의도였으니까.
그리고 다른 이유는, 필요할 때 쓸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주먹들, 칼잡이들. 어쩔 땐 폭력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니.
또 삼합회 조직원들은 외국인이다. 별 미련 없이 써먹고 꼬리를 자르기도 쉬웠다.
조병철은 이러한 이유를 최대한 순화해 설명했다.
“흐음. 그렇군요. 실장님을 뒤에서 도울 이들이라.”
장쉬안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짐작하긴 했다.
더러운 일에 투입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칼잡이 몇을 대가로 뒷세계를 먹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남는 장사였다.
고민하던 장쉬안이 눈앞의 노련한 정치가에게 바라봤다.
“우리 삼합회의 은밀한 도움. 그 외에 원하시는 건 없으신 겁니까?”
“아. 그 전에, 이거 한 가지만 물어보지요.”
조병철은 깊은 눈빛으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자리,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삼합회 내에서의 권력을 얼마나 오래 쥐고 있겠나.
거기 담긴 뜻은 이러했다.
그에 장쉬안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죽을 때까진, 문제없을 겁니다.”
오